외전 7. 나의 강선생님(완결)2017.01.01.
처음 먼저 입을 맞춘 건 민지였지만 어느새 지혁의 리드에 천천히 제 몸을 맡겼다.
입술을 붙인 채로 그녀를 안아 들어 침실로 간 지혁은 커다란 침대 위에 그녀를 내려놓고는 잠시 입을 떼었다.
“정말로 후회 안 하겠어?”
“……네. 근데 저기, 저, 처음이에요…….”
“조금 아플 거야. 노력은 해보겠지만, 많이 힘들면 나 때려도 돼.”
진지하기만 한 그의 말에 민지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그럼 저, 잘 부탁 드려요.”
“나도.”
민지의 머리를 감싼 지혁이 천천히 그녀를 매트리스 위로 눕히고선 진하게, 그러나 느리게 입을 맞추며 그녀의 혼을 쏙 빼놓았다.
달콤하기만 한 서로의 촉감과 향기에 취한 두 사람은 멈춘 세상 속에 둘만 존재하는 듯 서로에게만 집중했다.
온전히 서로만을 위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는 은유의 얼굴엔 긴장감과 설렘이 가득 번져 있었다.
첫째인 은하를 임신하고 나서 일을 그만 둔 후, 몇 개월 전 둘째인 은수까지 출산하고 지금까지 약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노강고등학교에 온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적었다.
최근에 왔었던 게 1년 전이니 긴장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양손 가득 커다란 봉투를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으며 교정 안을 제 눈에 담았다.
여전히 푸른 나무들과 커다란 건물들. 그리고 운동장에서 산책하고 있는 학생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대로인 학교를 보며 괜히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넓은 운동장을 지나 건물로 들어와 교무실에 도착한 그녀가 천천히 교무실 문을 열자 안에 있던 선생님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어? 심선생님!”
마침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 있던 은혁이 환한 얼굴로 나와 그녀를 반겼다.
“이선생님! 잘 계셨어요?”
“당연하죠! 어쩐 일이세요?”
“아가씨네 집에 왔다가, 인사 드릴 겸 왔어요. 교감 선생님은요?”
“저기 계세요.”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뵙는 교감선생님과 마주한 그녀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셨어요?”
“아이고,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에요 심선생!”
학교생활을 하며 묵묵히 잘 챙겨주시던 교감선생님께서는 어느새 주름이 더 많이 느셨다.
양손 가득 들고 온 선물봉투를 그에게 건넨 은유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선 도서실에 있다는 다현을 보기 위해 교무실을 나섰다.
꽤 시끌시끌한 복도를 거닐자 옛 추억이 떠올랐다.
도서실에 올라가기 전 낙원과 인사를 나누었던 3학년 2반 교실.
그 곳엔 이제 다른 아이들이 책상 앞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교실을 지나쳐 천천히 도서실로 올라간 은유가 입구에서 버튼을 누르자 반가운 얼굴이 그녀를 반겼다.
“심선생!”
“송선생님!”
작년에 결혼한 다현은 더 밝아진 얼굴로 그녀를 보며 맞은 편에 앉았다.
“학교 오니까 어때?”
“너무 신기해요. 아직도 다 그대로고, 너무 좋아요.”
“복직 생각은 아직 없고?”
“일도 하고 싶은데, 그래도 은하랑 은수 크는 거 보고 싶어서요.”
“그렇지. 여건 되면 아이들 크는 거 보는 게 좋지. 애들은 고모 집에 있어?”
“네. 자기들 예뻐하는 거 알아서 신났어요 아주.”
어제 오후에 주원이 조카들이 보고 싶다며 낙원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은하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물론이고 은수의 옷까지 잔뜩 쌓아놓고 기다리던 주원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낙원은 바로 학교로 출근을 했고, 은유는 주원과 두 아들과 놀다가 여기까지 온 김에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릴 겸 학교로 왔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 양손을 무겁게 하고 왔는데 좋아하시던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선생님 아마 수업 들어가셨을 걸?”
“네. 아직 안 끝났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송선생님은요? 일 다 마치셨어요?”
“난 거의 다 끝났어. 가서 복도 돌아다니면서 구경 좀 해 심선생. 오랜만인데.”
“수업 중이라 조용히 다녀야겠어요.”
“응. 수업시간 거의 끝났으니까 지금 가면 강선생님 보겠다. 먼저 내려가 있어. 나도 마무리하고 금방 갈게.”
“네. 조심해서 오세요 선생님.”
다현과 인사를 나누고 도서실을 나온 은유는 3학년 교실 복도를 지나 음악실에 도착했다.
안에서 작게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예전에 낙원과 이 곳에서 몰래 입을 맞추던 게 생각이 나 금새 얼굴이 붉어져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1층으로 내려간 은유는 마침 이사장실에서 나오는 지혁을 발견하곤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 보였다.
“도련님!”
그 외침에 고개를 든 지혁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말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어제 아가씨네 집에서 자고, 오늘 낙원씨랑 같이 가려고 왔어요.”
“강주원이 애들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기어코 거기서 재웠네.”
“하핫. 네. 근데 어디 가세요?”
“본사에 일이 있어서요.”
함께 복도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은유는 요즘 들어 굉장히 밝아진 지혁이 보기 좋아 그의 팔을 아프지 않게 톡 때렸다.
“좋아 보여요 도련님.”
“그래요? 연애해서 더 잘생겨졌나.”
“참 나. 말이나 못하면 정말. 오늘도 민지 만나세요?”
“일 끝나고 보기로 했어요. 주말에 같이 밥 먹어요. 민지랑 그 쪽으로 갈게요.”
“그럼 너무 좋죠. 그렇지 않아도 은하가 도련님이랑 민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어느새 학교 현관 앞까지 나온 은유는 지난 번 자신을 도서실까지 데려다 주었던 지혁이 생각이 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러니까 옛날 생각 나요.”
“저번엔 내가 도서실까지 데려다 줬으니까, 이걸로 퉁 쳐요.”
“그래요. 일 잘 마무리하시고, 민지도 잘 부탁 드려요.”
“네. 주말에 봬요 형수님.”
손을 흔들어주고 저 멀리 멀어지는 지혁을 보던 은유는 몸을 돌려 3학년 건물을 지나 1,2학년 건물이 있는 쪽으로 옮겨갔다.
복도를 걷던 은유는 제법 소란스러운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대박. 야야. 교무실에 옆 반 담임선생님 와이프 와 계시대!”
“진짜? 헐. 말로만 들었던 그 전설의 선생님?”
“어! 아. 완전 궁금해!”
시끄러운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린 은유는 어색한 얼굴이 되어 그 곳을 빠르게 지나치려다 들려온 소리에 다시 발걸음이 느려졌다.
“강낙원 선생님 엄청 잘생겼다고 좋아하시던 여선생님들 질투하겠다.”
“미쳤지. 어디 유부남한테!”
“그 선생님이 좀 잘생기셨냐? 내가 그 얼굴이었으면 선생님 말고 연예인을 했겠다.”
“나도. 아무튼 보는 내가 다 기분 나쁘다니까? 어디 감히 우리 선생님한테 눈웃음 살살 치고 난리야 짜증나게.”
그러니까 지금.
내 남편이 유부남이라는 걸 알고도 여자 선생님들이 눈요기로 좋아했다, 이거지?
이거 좀 기분 나쁘네.
“근데 저 여자 누구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몰라. 누구 엄만가?”
“그러기엔 너무 젊으신데?”
“그럼 언니나 누나겠지 뭐. 아, 빨리 교무실 가고 싶은데.”
“그니까 왜 졸아서 벌을 서냐고!”
“야. 너도 졸아서 같이 벌 서잖아.”
복도에 나란히 서서 투닥거리는 학생들을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온 은유는 다시 한 번 제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잡아당겨 늘 하나로 묶었던 긴 생머리는 아가씨인 주원의 손에 의해 예쁜 웨이브가 만들어졌고, 항상 캐주얼하게 입었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정색의 치마에 깔끔한 버건디 블라우스를 입고 높은 구두까지 신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그것도 남편이 일하는 곳에 온다고 신경을 쓰길 잘했지.
나보고는 남자들이 번호 물어본다고 질투했으면서, 자기는 여자 선생님들한테 사랑을 듬뿍 받아?
점점 더 크게 타오르는 전투력을 느끼며 화장실을 나서자 마침 수업시간을 마치는 종이 학교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자유를 얻은 것처럼 아이들이 교실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했고, 수업을 마친 선생님들도 각자의 교실에서 나왔다.
수업이 있던 낙원을 기다리던 은유는 멀지 않은 곳에서 보이는 잘생긴 얼굴에 다가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 옆 반의 문을 열고 나온 젊은 여선생이 낙원에게 다가가 반갑다는 듯 활짝 웃는 얼굴이 보여 기분이 상했다.
자신도 저렇게 어렸던 시절이 있던 것 같은데. 이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이를 먹었다.
아주 잠깐 나이를 먹은 것에 회의감을 느꼈지만 그건 정말로 잠깐이었다.
그 두 아이의 아빠는 저 잘생긴 남자고, 그 남자의 아내는 다름아닌 자신이다. 그러니 회의감을 느낄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 여선생의 수다를 받아주며 교무실로 발을 옮기던 낙원이 복도 끝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곤 눈이 커다래졌다.
“심은유?”
“강선생님!”
저를 보고 웃으며 작게 손을 흔드는 그 여자가 제 아내가 맞는지 계속해서 쳐다보던 낙원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요. 데리러 왔죠.”
학교 내 스타이자 철벽남으로 유명한 강낙원 선생님이 웬 예쁜 여성과 마주서서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으로 이야기를 나누자 온 시선이 그 둘에게로 쏠렸다.
낙원의 옆에서 같이 걸어 오던 여선생이 두 사람에게로 다가와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강선생님. 아시는 분이세요?”
“제 와이프에요.”
“……네?”
낙원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여선생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가 강낙원 선생님 와이프라고?
그 말로만 듣던?
“안녕하세요. 심은유라고 합니다.”
“아, 네, 네. 안녕하세요…….”
기존에 학교에 계시던 선생님들에게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사진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떡 하니 눈 앞에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동안이고, 예뻤다.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데 애 엄마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사로잡은 여자는 대체 누구일지 궁금했는데,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원래 여기 선생님으로 계셨다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여선생은 그녀에게 인사를 한 후 먼저 자리를 비켜주었고, 낙원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입 꼬리를 매만지며 은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락도 없이 와서 놀랐어.”
“그래서 실망했어요?”
“엄청 좋지. 네 얼굴 보고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같이 교무실로 향하는 동안 아이들은 두 사람의 꿀 떨어지는 시선에 난리가 났다.
그 유명한 강낙원 선생님이 지금 아내와 함께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내가 미모의 여인이 맞았다, 그 철벽 같던 선생님이 아주 정신을 못 차리신다 라며 학교 안에 빠르게 소문이 퍼졌다.
낙원과 함께 다시 교무실로 들어간 은유는 그가 가방을 챙기고 나서 선생님들에게 다시 인사를 건넨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수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자 처음 그와 퇴근하던 날이 떠올랐다.
“처음에 같이 퇴근하던 날 생각나요?”
“당연하지. 네가 나한테 말도 없이 그냥 갔잖아.”
“그땐 낙원씨 진짜 불편했어요. 어렵고, 무섭고.”
차에 시동을 걸고 핸들을 틀어 주차장을 빠져나간 그가 은유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그랬지.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옛날 생각 나네.”
“그죠? 시간 참 빨라요. 당신한테 프러포즈도 받고, 우리 은하도 태어나고. 은수도 태어나고.”
“그러게.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정말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살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행복하고 고마운 하루하루를 사는 지금, 낙원은 옆자리에 앉은 은유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고마워. 너라서.”
“……나도 마찬가지에요. 낙원씨한테 전부 다 고마워요. 알죠?”
주원의 집에 도착해 은하와 은수를 데리고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온 두 사람은 한 명씩 맡아 아이들을 씻겼다.
아직 기지 못하는 은수는 엎드린 채로 놀다가 아빠와 씻고 나온 은하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은수야!”
동생이 뱃속에 있던 순간부터 시도 때도 없이 은유의 배를 쓰다듬고 뽀뽀를 하고,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던 은하는 은수가 태어난 뒤로는 동생바보가 되었다.
작은 여동생이 놀다가 어디 부딪히려고 하면 재빠르게 제 손을 넣어 막아주거나 아빠,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엄마인 은유를 대신해서 제 품에 안고 우유를 먹여보기도 하고, 문화센터에 가는 시간을 빼면 은수의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오늘도 낙원이 내복을 입혀주자마자 은수에게로 달려온 은하는 통통한 볼에 쪽 뽀뽀를 하고는 동화책 한 권을 들고 와 그 옆에 엎드려 책을 읽어주었다.
낙원이 거실에서 아이들을 보는 동안 내일 아침식사 준비를 마친 은유가 소파에 앉았다.
“은수야. 오빠가 책 읽어주니까 좋아?”
은유의 물음에 은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에 은하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낙원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아빠! 은수가 또 엄청 좋아해요!”
“은하가 예뻐해 줘서 그래. 동생이 그렇게 좋아?”
“네! 은수 너무 예뻐요!”
“우리 은하도 예뻐.”
이 가족을 보고 있으면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빠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축복 속에서 자란 은하는 그 사랑을 은수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한참 동안 은수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은하는 잠이 든 은수를 보고 조용히 책을 덮으며 낙원과 은유의 앞에 다가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아빠.”
“응?”
“저는 은수가 제 동생이라서 너무 행복해요. 은수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누굴 닮았는지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하고 똘망똘망한 은하를 보며 낙원이 부드럽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아들을 안아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아빠도 그래. 은하가 은수 사랑하는 것처럼, 아빠랑 엄마도 은하 똑같이 사랑해.”
“그러니까요.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은수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아빠. 은수한테도 동생 만들어주시면 안돼요?”
“뭐?”
당돌한 4살짜리 아들의 말에 낙원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듯 다시 되물었다.
“뭐라고, 은하야?”
“저도 은수가 있어서 이렇게 행복한데, 우리 은수도 동생이 생기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풉. 은하는 은수가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어?”
“네!”
그 말에 패닉에 빠져 있던 은유도 못 말린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은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엄마랑 아빠가 생각해볼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은하는 설레는 얼굴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잠에 푹 빠진 두 아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부부는 조용히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서로에게 기대었다.
“내 아들이지만 은하는 말을 진짜 잘 해.”
“그러게요. 표현력이 날로 늘어가니까 신기해요. 저게 4살이 맞나 싶고.”
“장모님이 당신은 말 엄청 빨랐다던데. 그건 당신 닮았나 봐. 그나저나 어떻게 생각해? 은하가 은수 동생 만들어주고 싶다는데.”
낙원의 질문에 은유는 웃으며 그의 커다란 손에 제 손을 턱 올려놓았다.
“천천히 생각해봐요 우리. 아직 은수도 어리고, 잘 챙겨줘야 하는데 내가 임신하면 그게 힘들 것 같아서요.”
“마찬가지야. 아이는 좋지만 둘로도 당신 충분히 벅차. 내가 24시간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요. 난 집에서 토끼 같은 아이들 보느라 정신 없는데, 우리 강선생님은 예쁜 여선생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서 정신이 없겠어요.”
누가 봐도 ‘나 질투나요’하는 그 모습에 당황한 낙원이 은유에게 기댔던 몸을 곧게 세우고선 그녀를 쳐다보았다.
“누가? 내가?”
“흥. 아까 다 봤어요. 엄청 예쁜 분이 낙원씨 보고 이렇게, 이렇게 웃으시던데요?”
제 눈에 손가락으로 웃음 표시를 만들며 따라 하는 은유를 본 낙원이 작게 웃고는 그 두 손을 잡아 내렸다.
“그래서, 속상했어?”
“아주 잠깐이요.”
“잠깐?”
‘잠깐’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낙원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
그 미간을 제 손가락으로 쓸며 잘생긴 두 얼굴을 감싼 은유는 남편의 입술에 짧게 뽀뽀를 하고선 씩 웃었다.
“학교에서는 모두의 선생님이겠지만, 퇴근하면 낙원씨는 제 거잖아요. 심은유의 강선생님이죠.”
“당신한테도 내가 선생님이야?”
“그럼요. 이렇게 사랑하는 법도 가르쳐줬고, 내가 예쁜 여자라는 것도 가르쳐줬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는 것도 가르쳐줬죠. 나한테 낙원씨는 계속 존경스러운 사람일 거에요.”
“이러니 내가 안 예뻐할 수가 없지.”
존재 자체로도 사랑스러운 너를 예뻐하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마 없을 거야.
그런 네 사랑을 받는 남자가 나라는 게 가끔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기만 한 걸 네가 알고 있을까.
“나도 존경해 은유야. 여자로써, 아내로써, 아이들 엄마로써. 네 사랑과 희생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우리’사랑과 희생이죠. 낙원씨도 대단해요. 일하면서 나랑 아이들 다 챙겨주고. 내가 항상 고마워하는 거 알고 있죠?”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서로가 얼마나 고마운지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은 오늘도 잊지 않고 서로에게 감사함과 사랑함을 표현했다.
앞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인생의 선생님이자 동반자가 되길 바라며.
늘 그래왔듯 오늘도 두 사람은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의 강선생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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