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질투의 화신2017.01.01.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교생실습을 하게 된 한국대학교 권민지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길었던 대학생활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며 사범대학교 학생들의 교생실습 기간이 돌아왔다.
민지는 자신의 모교인 노강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아 오늘부터 한달 동안 학생들이자 후배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아침조회가 끝나고 난 뒤 제게 다가온 익숙한 얼굴에 민지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선생님!”
“잠은 잘 잤어?”
“아뇨. 저 엄청 긴장돼서 잘 못 잤어요.”
교무수첩을 챙겨 민지와 함께 나란히 교무실을 나선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의 담임선생님이었던 낙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가 담임선생님으로써 그녀에게 베풀어준 모든 일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하고 감사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납치 사건 후로는 그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선생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오롯이 자신을 위해 괜찮다고 해줬지만 그녀가 괜찮지 않았다.
큰아버지네 가족이 자신을 데려가며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제 앞으로 해두었던 재산까지 가져갔었는데 그 액수가 어마어마했다.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납치 사건 이후로 담임선생님 형의 살인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함께 밝혀져 그 재산이 다시 제게로 돌아왔다.
그 돈으로 학교 근처에 작은 방을 하나 구해서 살며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다니고 근 4년을 정말로 바쁘게 지냈다.
“요즘 바쁘다고 집에도 자주 안 오고. 은유가 엄청 서운해 해.”
“아. 그렇지 않아도 연락 드린다는 게 이거 준비한다고 너무 정신이 없었나 봐요.”
“끝나고 같이 가서 밥 먹자. 지혁이도 올 거야.”
“네? 아, 네, 네.”
교실로 향하며 제안한 저녁 식사에 거론된 이름에 당황스러웠지만 표정을 숨기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1-3’이라고 적혀있는 팻말이 달린 교실 앞에 선 낙원이 민지를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준비됐어?”
“자, 잠시만요! 저 심호흡 좀 할게요!”
“긴장하지 마. 괜찮아.”
“저 진짜 떨려요 선생님.”
“나도 아직도 떨려. 지극히 정상적인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낙원의 커다란 손이 교실 앞문을 열자 수많은 시선이 낙원의 옆에 서있는 민지에게로 쏟아졌다.
새로 오실 교생 선생님에 대한 소문은 이미 다 퍼졌는데 자신들의 반을 담당하실 분은 어느 분인지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기에 서로가 긴장을 한 상태였다.
계속해서 얼어있는 민지와 달리, 아이들은 예쁜 그녀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엄청 잘생긴 남자 선생님과 엄청 예쁜 여자 선생님. 이렇게 두분 중에 한 분이 담당 교생선생님이 되길 바랐는데,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안녕. 나는 오늘부터 너희들 수학을 가르치게 된 권 민지야. 앞으로 한달 동안 잘 부탁해.”
그녀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예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호구조사에 들어간 학생들을 보며 낙원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교탁을 조용히 쳤다.
“조용. 첫날부터 선생님 힘들게 하지 말고. 오늘 아침 조회는 특별한 거 없으니까 다들 수업 준비하고. 오늘 하루도 기운 내. 졸리면 산책도 좀 하고.”
여전히 학생들에게 다정한 자신의 담임선생님을 보며 민지는 제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낙원과 나란히 교실을 나서 교무실로 향하는 도중 누군가가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거기 앞에 둘. 딱 서.”
제법 건방진 목소리로 이렇게 낙원에게 명령할 사람은 이곳에 딱 한 명뿐이다.
이사장님 강지혁.
뒤를 돌아본 낙원은 팔짱을 낀 채로 이사장실 앞에 기대어 서서 저와 민지를 번갈아 쳐다보는 지혁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뭐냐? 오늘 일 있어서 학교 못 온다며?”
“일정이 바뀌었어. 오랜만이다, 권민지?”
“네, 네. 아, 안녕하셨어요.”
지혁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인사하는 민지를 보며 낙원이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오랜만이야. 일주일 전에도 같이 밥 먹어놓고.”
“그러니까. 그 일주일 동안 못 봐서 오랜만이라고.”
이 이사장님이 진짜.
목 끝까지 그만하라는 말이 차 올랐지만 민지는 낙원이 옆에 있었기에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다시 목 뒤로 삼키며 웃었다.
“네.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이만 먼저 가 볼게요.”
지혁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민지는 몸을 돌려 교무실로 향했고, 덩그러니 남겨진 지혁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 모습에 낙원이 의아한 듯 지혁을 쳐다보았다.
“뭐하냐, 너?”
“내가 뭐?”
“왜 갑자기 민지한테 시비 거냐고.”
“시비? 내가 언제?”
“방금. 너 내 학생한테 너무 막 대한다는 생각은 안 드냐?”
강낙원 네 학생이 아니라, 이젠 내 여자친구라서 그런다.
당장이라도 소리지르고 싶을 만큼 가슴이 답답했지만 민지와 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지혁은 잘 정돈된 머리를 제 손으로 헝클어뜨리며 짜증을 가라앉혔다.
“됐다. 입 다물어야지 내가.”
“왜 이래 또.”
“됐다고. 그나저나 오늘 저녁 뭐 먹을 건데?”
“은유가 너랑 민지 온다니까 찜닭 한다던데.”
“집에서 직접? 애들은 어떡하고?”
“은하랑 은수는 오늘 장모님이 봐주신다고 하셨어.”
몇 개월 전 둘째를 출산한 형수님은 그 동안 같이 못 만난 게 아쉽다며 오늘 저녁 집으로 초대를 했다.
힘이 들 것이 분명한데도 얼굴도 자주 못 봐 속상하다는 그 말에 낙원이 져준 것이다.
지혁은 낙원과 함께 교무실 쪽으로 향하며 조카인 은하와 은수의 사진을 구경했다.
“은하가 은수 엄청 챙기네.”
“어. 동생이라고 아주 알뜰살뜰 난리도 아니야. 은유 힘들까 봐 기저귀도 갖다 주고. 예뻐 죽겠다.”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토끼 같은 자식들, 그것도 아들 하나 딸 하나라는 환상의 조합으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낙원은 요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낙원과 제 모습이 비교가 되는 것 같아 지혁은 다시 한 번 분노하며 교무실 앞에서 발을 멈추고는 그 안을 슬금슬금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뭐 해 강지혁.”
“야. 교생으로 온 애들 중에 한국대 사회교육학과 유재민 있지?”
“어. 왜?”
“걔 어때?”
“뭐가?”
“생긴 거나, 사람 됨됨이나.”
낙원은 지혁이 지금 뭘 묻는 건가 싶어 의아해하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잘생겼고, 착하던데.”
“뭐? 야. 잘생겨 봤자 뭐 얼마나 잘생겼겠냐? 그리고, 지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착하대.”
“왜 또 짜증이야. 이번엔 뭔데?”
“……됐어. 나 간다.”
유난히 축 처진 어깨로 뒤돌아서 가는 지혁을 보며 교무실로 들어서던 낙원은 익숙하지 않은 장면에 잠시 멈칫했다.
제 맞은 편 자리인 민지의 책상 옆으로 서 있는 기다란 형체 하나.
그 사람이 방금 전 자신이 칭찬했던 ‘유재민’이라는 것을 깨달은 낙원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이거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스토리가 맞는 건가.
“나 진짜 엄청 떨었잖아. 애들 다 웃고.”
“나도야. 말도 엄청 버벅대고. 바보처럼 보였겠지?”
민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의 옆으로 다가간 낙원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회교육학과, 유재민 맞지?”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 민지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아. 민지랑은 학교에서 제일 친해요.”
‘제일 친하다’라…….
그것까진 그렇다고 치자.
근데 강지혁이랑 권민지는 뭐지?
“내가 말했던 나 고3때 담임선생님.”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으로써 너무 존경스러워요.”
저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재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낙원의 머리 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민지는 제게로 닿은 낙원의 시선에 의아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왜요 선생님?”
“너. ……아니다. 나중에.”
민지에게 무언가 물어보려던 낙원은 설마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설마’는 점심시간에 ‘확신’으로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네.”
요즘 재단 일로 바빠 오전에만 학교로 출근하고 오후의 대부분은 본사에서 일을 하던 지혁이 어쩐 일인지 학교에서 점심까지 먹고 있다.
그런 지혁의 맞은 편에 앉은 재민은 교장선생님보다 더 높은 직함을 달고 있는 그를 보며 긴장한 듯 했지만 이내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가 너무 좋아요 이사장님. 시설도 최고에요. 학생들이 되게 좋아할 것 같아요.”
“내가 일을 잘해서 그래요.”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미쳤다고 욕을 했겠지만, 지혁이 하는 말은 모두 다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가 아닌 정식 이사장으로 부임한 지혁은 정말 일을 잘 하는 남자였다.
공과 사도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알고 학생들과 관련된 일에는 절대 그냥 넘어가는 것 없이 늘 꼼꼼하고 세세하게 하나씩 다 따져보며 일을 진행했다.
웬만하면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지혁은 제 맞은 편에 앉아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거는 재민이 미웠다.
가뜩이나 신경이 쓰이는데, 재민은 옆자리에 앉은 민지를 보며 오늘의 일정을 물었다.
“민지야. 오늘 끝나고 뭐해? 같이 저녁이나 먹고 갈까?”
국을 한 숟가락 뜨던 지혁의 손이 잠시 그대로 멈췄다.
지금, 뭐?
같이 저녁이나 먹고 갈까?
누구한테 감히 ‘저녁이나’야. 저 새파랗게 어린 게.
“아, 미안해. 나 끝나고 약속이 있어서…….”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누구 만나? 네 주위 사람들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하. 가지가지 한다 정말.
모를 리가 없어? 왜 모를 리가 없어. 네가 뭔데?
재민을 향해 무시무시한 레이저를 발사하던 지혁은 제 옆구리를 쿡 찌르는 손에 잠시 시선을 돌렸다.
깨끗하게 비운 식판을 앞으로 밀어놓고 턱을 괸 채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낙원과 마주친 그가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왜. 뭐.’
요즘 집에서 은유와 함께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드라마를 보며 생긴 촉을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지금의 강지혁은 누가 봐도 질투하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은유가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할 때면 제가 딱 저 얼굴이었으니까.
“너 나 좀 보자.”
“널 왜 봐? 지금 봐.”
“말장난 하지 말고.”
“장난 아닌데. 나 기분 되게 안 좋아 지금.”
“그니까 나 좀 보자고.”
먼저 식판을 들고 일어서는 낙원을 보던 지혁은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까지 재민을 노려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나섰다.
멀어지는 두 남자의 뒷모습에 민지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사장실로 들어온 지혁은 소파에 앉아 저를 빤히 쳐다보는 낙원을 보며 그 맞은 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갑자기 왜?”
“너 민지랑 뭐 있지.”
“……뭐? 야. 내, 내가 있긴 뭐가 있어?”
“너 목소리 떨린다 강지혁.”
“흠흠. 기분 탓이겠지.”
“아닌 거 알 텐데.”
조금만 더 있으면 제 얼굴까지 뚫릴 것만 같은 그 짙은 시선에 눈을 피하던 지혁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제 이마를 쓸었다.
“뭐 있어. 나랑 민지랑.”
“……너 연애하냐? 민지랑?”
“아, 뭐 또 그렇게 훅 들어와.”
“……민지 몇 살인 줄은 알고?”
절대 듣기 싫던 질문을 사랑하는 사촌의 입에서 전해 들은 지혁의 얼굴이 한 순간에 구겨졌다.
“정확히 나랑 열한 살 차이. 그게 왜.”
“……그래. 아직 정신은 있는 것 같고. 너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 아니, 언제부터야?”
“얼마 안 됐어. 오늘이 정확히 110일째야.”
……강지혁이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난 숨길 생각 없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근데 민지가 싫어해. 너랑 형수님 얼굴 볼 자신 없다고.”
“둘이 죄지었냐? 우리 얼굴을 왜 못 봐. ……야. 너 설마.”
낙원을 빤히 쳐다보던 지혁은 그의 얼굴 위로 드러난 불안함을 보며 펄쩍 뛰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지?”
“아, 강낙원 진짜!”
“그럼 왜. 왜 못 봐.”
“너도 알잖아. 민지 그 일로 상처 많이 받았어. 죄책감도 많이 느끼고. 지금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데 여전히 힘들어해. 자기 큰아버지가 무원이형 죽게 한 일에 가담했다는데 네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하더라.”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민지는 여전히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졸업해서도 그녀의 선생님이라고 한 건 자신이면서, 아이가 생기고 정신이 없다는 이유로 민지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 낙원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 낙원의 마음을 알아차린 지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불렀다.
“강낙원.”
“왜.”
“너 죄책감 좀 그만 느껴. 민지가 힘들어하는 게 네 잘못이야? 너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야. 형수님이랑 애들한테 신경 써야 하는 게 당연한 거고. 네가 언제까지 민지의 모든 부분을 다 일일이 챙겨줄 수는 없어.”
“알아. 나도 아는데.”
“알면, 그만해. 너 할 만큼 했어. 지금처럼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서 얼굴 보고, 밥 먹고, 얘기 하고. 이것도 대단한 거야. 더 욕심내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해. 다른 건 내가 할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에 낙원은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민지가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던 건 아니지만, 그 상대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혁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다른 건 네가 한다고 치고. 둘이 왜 냉랭해? 연애한 지 얼마나 됐다고.”
“얼마 전에 우리 백일이었어. 민지가 부담스러워 할까 봐 화려하게는 못해주고 남들처럼만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내가 진짜, 레스토랑 예약도 하고 케이크도 준비하고, 선물도 샀는데. 난 바쁜 일정 다 빼가면서 겨우겨우 시간 냈는데, 그 약속한 시간을 민지가 어겼어. 저 망할 유재민인가 뭔가 하는 놈 만난다고.”
“민지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그럴 애가 아닌데 유난히 저 유재민한테 약하니까 열이 받는다고. 그 날 걔가 레포트 다 날아갔다고 도와줘야 한다고 그러고선 나 바람 맞혔어.”
민지에게 재민의 이야기는 가끔씩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서 학교 다니는 게 즐겁다고 했던 얼굴이 낙원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렇다고 열한 살이나 어린 여자친구한테 이런 식으로 시위를 해?”
“내가 무슨 시위를 했어?”
“네 얼굴이 지금 딱 그래. 연애 많이 해봤다면서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다른 여자들이랑 권민지가 같아? 너한테 소중하듯이 나한테도 소중해. 가뜩이나 상처도 많아서 힘든 애한테 화내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대화로 풀어야지. 민지 착하고 똑똑해. 또래 애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그러니까 잘 얘기해서 풀어. 너 지금 남들이 봤을 땐 도둑놈인 거 알지?”
조금의 배려도 없이 팩트폭행을 하는 낙원을 보며 지혁의 눈썹 한 쪽이 삐죽 올라갔다.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야겠냐?”
“잘 하라고. 네 말마따나 민지 나랑 은유한테도 소중해. 그냥 제자 아닌 거 알잖아. 너도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거 아닌 거 알아. 그래도 네가 더 이해하고 신경 써. 서른 넷이나 먹고 어린 여자친구랑 기 싸움 그만 하고.”
“……잘났다 강낙원.”
낙원이 작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자 덩달아 일어난 지혁이 그의 등을 아프지 않게 툭 쳤다.
“나가. 나 혼자 있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던 참이야. 오늘 퇴근하고 민지 네 차로 데리고 와.”
“당연한 거 아니야? 설마 네 차에 태우려고 했어?”
“내 학생이니까 내가 데려가는 게 왜.”
“진짜 뻔뻔하네 강낙원. 나가 빨리!”
질투의 화신이 된 지혁을 보며 사무실을 나서던 낙원은 조금의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선 씩 웃었다.
“내 제자한테 잘해라 너.”
“안 꺼져?”
“꺼진다, 꺼져.”
문을 닫고 몸을 돌려 교무실로 향하던 낙원의 얼굴은 유난히 더 밝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지혁이 좋은 사람인 건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고, 상처가 많은 민지를 같이 보듬어줄 수 있는 것도 지혁만큼 적임자가 없다.
그래서 낙원은 두 사람을 응원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이젠 자신과 은유처럼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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