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107화 (107/112)

외전 2. 가족여행(2)2016.12.31.

대충 짐을 푸른 후에 바로 앞 해변으로 나온 가족들은 전부 다 은하에게로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외할머니인 은유의 엄마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는 은하의 주위로 몰려든 어른들은 천진난만하기만 한 얼굴을 보며 자신들이 더 좋아라 했다.

덕분에 낙원과 은유 두 사람은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가족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 커다란 손 안에 은유의 작은 손을 꼭 쥐고 걷던 낙원은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조금 풀어진 아내의 목도리를 바람 하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매주고는 다시 해변을 거닐었다.

“바람 차갑다. 춥지?”

“괜찮아요. 바다 보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좋아요.”

임신했을 때는 감기에 걸릴까 봐, 출산 후에는 은하를 키우느라 바빠서 근 2년 동안은 바다 구경도 못한 은유는 지금 굉장히 들떠 있었다.

더군다나 낙원과 자신, 은하 셋뿐만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과 전부 모여 있다는 그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 같이 바다에 온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러게. 데이트를 더 많이 했었어야 하는데.”

“조금 아쉽죠?”

“아쉽지. 그래도 너랑 은하 있으니까 좋아. 지금 알고 나니까 이런 감정 더 늦게 알았으면 엄청 아쉬웠을 것 같아.”

“저도 그래요. 힘들다가도 은하 얼굴 보면 또 금새 풀리고. 게다가 난 낙원씨가 너무 잘해줘서 힘든 것도 아니에요.”

아무리 자신이 도와준다고 한들 아빠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인데, 말조차 이렇게 예쁘게 하는 은유는 정말 좋은 아내이자 엄마임에 틀림 없다.

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은유를 내려다보며 허리를 감싸자 가족들 눈치를 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두 눈에 들어찼다.

“쑥스러워?”

“네. 아버님이랑 어머님 다 계시는데…….”

“한두 번도 아닌데 뭘. 이젠 그러려니 하시니까 괜찮아.”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아내가 아이를 낳고 나면 나 몰라라 한다는 남편도 굉장히 많다고 들었다.

집안일도 혼자 다 하고, 아이도 혼자 기르고. 그러나 그런 말들은 자신들의 집에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야자감독을 하고 늦게 들어온 날에도 낙원은 늘 은유가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은하를 돌봐주었다.

자신의 아들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런 당연한 일들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기에 이렇게 가정적인 낙원의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엄청난 화제거리였다.

은하와 닮은 초롱초롱한 눈을 마주보며 낙원은 행복하다는 듯 웃으며 작은 몸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좋다. 오랜만에 둘이 이러고 있으니까.”

“저도요. 꿈 같아요.”

두 사람이 겨울 해변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던 찰나 저 멀리서 주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언니! 빨리 들어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었다간 은하가 감기에 걸릴까 봐 어른들은 작은 아이를 폭 안은 채로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낙원은 주원을 향해 손을 휙휙 저어 보이고는 은유의 손을 잡고 제 주머니 속에 쏙 넣었다.

“천천히 걸어서 들어가자.”

“응. 그래요.”

펜션 안으로 들어오자 어느새 소파 위에 앉아 삼촌인 은석에게 재롱을 부리고 있는 은하가 보였다.

어른들은 그런 은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한참 재롱을 피우던 은하는 집으로 들어서는 아빠와 엄마를 발견하고는 손뼉을 짝짝 치며 두 사람을 반겼다.

훈훈한 실내 공기에 외투를 벗고 욕실로 가 손을 깨끗하게 씻고 나온 두 사람은 나란히 은하의 앞에 앉았다.

자신을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린 은하를 보며 은유가 함박웃음을 짓고는 두 팔을 벌려 작은 아들을 꼭 껴안았다.

“우리 은하 잘 놀고 있었어?”

“이거!”

조카 바보가 된 은석이 사다 준 인형을 흔들며 자랑하는 은하를 본 낙원이 기분 좋게 웃으며 보들보들한 뺨 위로 쪽 입을 맞추었다.

“삼촌 감사합니다, 했어?”

“말도 마요 매형. 지금까지 내내 재롱 부렸다니까요? 어쩜 얘는 갈수록 애가 더 잘생겨진대요?”

누나 뱃속에 있을 때 보여줬던 초음파 사진에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보통 외모는 아니겠구나 하고 짐작은 했지만 태어나고 보니 이건 정말 최고였다.

매형과 누나의 장점들만 어쩜 그렇게 쏙쏙 골라서 잘 조합이 되었는지.

조금만 더 크면 여자 여럿 울릴 얼굴에 은석은 그런 은하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괜히 어디 가서 이상한 여자 만나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하던 은석을 보며 은유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남동생이 태어난 조카를 보자마자 맨날 전화해서 조카 목소리 좀 들려줘라, 사진 좀 보내라 하며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심지어 집으로 찾아와 은하를 봐주기도 하고 둘이 데이트를 하고 오라며 친정 집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은유 배고프지 않니?”

“조금요 어머님. 배고프세요? 식사 준비 할까요?”

“어머, 얘는. 넌 가만히 있어. 오늘 내일 얌전히 있어 은유야. 나랑 사돈이 다 할 테니까.”

그 말을 마친 채로 낙원의 엄마는 은유의 엄마와 함께 주방 속으로 사라졌다.

할아버지들은 하나뿐인 손주에게 시선이 빼앗겨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노진희 여사도 증손주가 제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은하야. 할아버지한테 와. 할아버지랑 놀자.”

낙원의 아빠가 은유에게서 은하를 받아 들자 은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안에선 어머니들이 사이 좋게 앞치마를 두르고선 이제 막 음식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가 왜? 뭐 필요하니?”

“아뇨 어머님. 저도 같이 해요.”

수연은 팔을 걷고 다가오는 은유를 보며 손을 크게 내저으며 걷어 올린 소매를 다시 내려주었다.

“너는 올라가서 좀 쉬어.”

“네?”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애 보랴, 집안일 하랴. 잠도 제대로 못 잘 텐데, 오늘 내일이라도 푹 자고 가.”

“네? 아니에요 어머님. 저 괜찮아요. 일도 낙원씨가 다 같이 해주는데요 뭐.”

“그래도 피곤해서 안 돼. 여긴 우리한테 맡기고, 은하는 할아버지들이랑 고모랑 삼촌이랑 놀게 두고. 얼른 올라가서 좀 자.”

결국 은유는 수연의 손에 떠밀려 별장의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주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정이 야채를 흐르는 물에 씻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해요 사돈. 우리 은유 정말 친딸처럼 아껴주시고.”

“어머, 제가 더 감사하죠. 은유처럼 예쁜 아이 저희 집에 보내주셔서. 낙원이가 우리 은유랑 결혼하고 나서 얼마나 사람이 됐는지 아세요? 저는 은유한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은유가 어려서 많이 부족한데, 다 사랑으로 감싸주시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낙원이가 처음엔 엄청 무뚝뚝하게 굴어서, 은유도 그렇고 사돈어르신들 뵙게 너무 죄송했는데. 그래도 좀 많이 살가워졌죠?”

살가워지다 마다.

매일 잊지 않고 자신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별 일 없으셨나, 식사는 어떻게 하셨냐 묻는 사위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잊어버리기도 전에 딸과 손주와 함께 집으로 와 자고 가니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무뚝뚝했던 모습은 생각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날이 갈수록 다정해지는 사위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다.

그렇게 아래층에서 훈훈하고 사랑 넘치는 대화가 오가는 동안, 어머님에게 떠밀려 방으로 들어온 은유는 따뜻한 침대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공기도 훈훈하고, 몸도 따뜻하고, 마음도 행복하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눈이 감기는 찰나 조용히 방문이 열리며 남편인 낙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은유야. 자?”

“……아직이요. 왜요?”

“너 올라왔다고 하시길래. 많이 졸리지?”

“네. 좀 졸려요. 낙원씨는 안 피곤해요? 운전하느라 고생했는데, 얼른 누워요.”

나른한 얼굴로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치는 아내가 귀여워 낙원이 씩 웃고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옆에 몸을 누이고선 자연스럽게 머리 아래로 팔을 넣었다.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제 가슴팍에 폭 안겨오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아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낙원씨 심장소리 들린다.”

“너 때문에 그래.”

“치……. 아직도 나 보면 그렇게 좋아요?”

“당연하지. 넌 아니야?”

“저도 당연히 그렇죠. 그냥, 너무 신기해서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색깔은 흐려지고, 정이 남는다고들 하던데.

두 사람은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아직 어르신들에 비해서 결혼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늘 옆을 함께해주는 서로에게 고맙고, 늘 서로만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랑스럽고, 늘 서로만을 부르는 목소리가 달콤하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사랑의 결정체인 아들 은하까지 태어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들이 서로를 끈끈하게 지탱해왔다.

작은 머리에 입을 맞춘 그가 커다란 손으로 마른 등을 토닥거렸다.

“예쁘다.”

“……낙원씨도요…….”

어느새 잠에 취해 웅얼거리는 그 모습이 또 예뻐서, 낙원은 피곤함이 가시는 기분에 웃으며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예쁘니 이것도 큰일이라면 큰일이다.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것도, 잠결에 제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것도, 가끔씩 제 가슴팍에 이마를 문지르는 것도.

전부 다 아내가 주는 사랑스럽고 설레는 것들이었다.

그 행복함에 빠져 낙원은 은유가 잠들고도 한참 뒤에서야 무거운 눈꺼풀을 닫을 수가 있었다.

오후 6시를 넘기며 가족들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커다란 주방 안으로 모였다.

바닷가까지 온 만큼 몸보신을 해야 한다며 아버지들이 직판장에 직접 가서 공수해온 각종 해산물들이 식탁 위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은하를 한 팔에 안은 낙원이 의자에 앉자 요즘 들어 손 힘이 남달라진 은하가 작은 손을 뻗어 앞 그릇을 잡았다.

순간의 방심으로 혹시라도 아들이 다칠까 봐 낙원이 재빠르게 접시를 제 손으로 옮겼다.

“은하 위험해서 안돼.”

“시어!”

“은하는 아직 어려서 무거운 거 들고 있다가 놓치면 다치겠지? 조금 더 크면 우리 연습하자. 그 때까지는 아빠가 들게.”

아직 갓난 아이라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조카에게 부드럽게 타이르듯 이해시키는 오빠가 멋있어 보여 주원은 입을 헤 벌렸다.

오빠인 그가 무뚝뚝해서 그렇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가정적이고 다정다감 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오빠와 새언니를 보며 외로움이 느껴져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벌써 몇 개월 째인지.

저 오빠가 눈만 높여놔서 웬만한 남자는 눈에 차지도 않으니 이것도 이것대로 큰일이었다.

주원이 그러거나 말거나, 낙원은 은유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은하를 제 무릎에 앉힌 후 놀아주었다.

“아유. 우리 강서방 못 먹어서 어떡해.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데.”

“괜찮습니다 장모님. 편하게 드세요.”

엄마의 안타까움을 들은 은유는 웃음을 터뜨리며 잘 깐 새우 하나를 초장에 콕 찍어 낙원의 입 앞에 대령했다.

“먹어요 낙원씨.”

“너 먹어 은유야.”

“나 먹고 있어요. 은하 보느라 하나도 못 먹었잖아요.”

이렇게 항상 서로를 위하는 모습들이 예뻐 어른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했다.

어리게만 느껴졌던 아들, 딸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행복한 가정을 이룬 자식들이 대견스럽게만 느껴졌다.

“좋아 보이는구나.”

행복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는 제가 하겠다며 나선 은유의 옆으로 다가온 노진희 여사의 말이었다.

그 어느 날처럼 둘이 나란히 서서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닦으며 노진희 여사가 인자한 얼굴로 손주며느리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행복하냐?”

“네 할머님. 저 진짜 너무 행복해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조금의 거짓도 없이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노진희 여사도 같이 끄덕이며 넓은 접시를 들어 수세미로 꼼꼼하게 문질렀다.

“지금에 와서 궁금한 건데, 낙원이랑 왜 결혼하겠다고 했어?”

그 언젠가 낙원이 제게 해왔던 질문을 똑같이 노진희 여사에게 받은 은유는 역시 피는 못 속이겠다는 듯 웃으며 잠시 그릇을 내려놓고 주름진 얼굴을 마주했다.

“할머님이 좋아서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님이 너무 좋았어요. 너무 재미있으시고, 유쾌하시고, 멋있으시고. 그런 할머님 밑에서 자란 손주 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서 결정했어요. 제가 행복한 건 다 할머님 덕분이에요.”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직접 전해들은 이 순간, 노진희 여사의 두 눈 끝에 눈물이 맺혔다.

한평생 살아온 게 헛되진 않았구나.

내가 내 소신껏 살아온 게 잘못된 삶이 아니었구나.

내가 자식들 하나는 잘 키웠구나.

내가 사람 복은 정말로 많은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래서였어? 그래서 낙원이랑 결혼하겠다고 한 거야?”

“당연하죠. 결혼하고 얼마 안됐을 때도, 저 할머님 아니셨으면 결혼생활 더 힘들었을 거에요.”

“낙원이가 워낙 무뚝뚝하긴 했지?”

“어휴. 장난 아니었잖아요 할머님. 진짜 집에서도 선생님처럼 엄청 무서웠는데.”

“지금은, 많이 편해졌고?”

“음. 편한데 어려운 건 똑같아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노진희 여사는 의아한 듯 ‘어려워?’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은유가 양 볼을 수줍게 붉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려워요. 낙원씨라는 사람이 어렵다는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요. 너무 좋아서 막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고. 그래서 어려워요.”

“그렇게 좋아?”

“그럼요. 우리 낙원씨 같은 남편이 또 어디 있겠어요. 이렇게 좋은 가정에서 사랑 듬뿍 받고 자랐죠, 그래서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도 알죠, 누구보다 저랑 은하 많이 사랑해주죠. 전 진짜 복 받았어요 할머님.”

깨끗하게 닦은 그릇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고무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그런 은유를 가만히 쳐다보던 노진희 여사가 고무장갑을 벗고 두 팔을 뻗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고맙다 아가.”

“……할머님.”

“이렇게 예쁜 사람이어서 고마워. 이렇게 예쁜 네가,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맙다.”

저도 감사해요 할머니.

이렇게 항상 저 예뻐해 주시고, 믿어 주셔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가정에 저도 가족으로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노진희 여사와 설거지를 마친 후 은하를 부모님들께 맡기고 펜션 앞으로 산책을 나온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낮에 봤던 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느낌에 밤바다의 매력에 푹 빠져 한동안 서로 말없이 고운 모래 위를 걷기만 했다.

“아까 할머니랑 무슨 얘기 했어?”

“되게 신기해요. 할머님이 낙원씨랑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신 거 있죠?”

“할머니가?”

“네. 예전에 낙원씨도 물어봤었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똑같이 대답했죠. 할머님이 좋아서, 낙원씨랑 결혼했다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오시는 할머니의 두 눈가가 유난히 붉어 아,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고 짐작했는데 그런 질문을 하셨을 줄이야.

하여튼 피는 못 속인다니까.

낙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은유의 보폭에 맞추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손자로 태어나서 진짜 다행이다.”

“왜요?”

“안 그랬으면 너랑 결혼 못 했을 거 아냐.”

“아니에요. 우린 분명히 어떻게든 만났을 걸요?”

걸음을 멈추고 저를 올려다보며 이야기하는 두 눈이 너무나도 확고하게 빛나고 있어 낙원은 그 시선에 매료되었다.

“저는 운명이라는 거, 있을 순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한텐 그런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낙원씨 만나고 나니까 알 것 같아요. 운명은 분명히 있어요.”

“그렇게 자신해?”

“당연하죠. 낙원씨가 할머님의 손자가 아니었더라도 우린 꼭 만났을 거에요. 근데 난, 낙원씨가 할머님 손자라는 사실도 좋아요. 이렇게 행복한 가정에 저도 같이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아요.”

날이 갈수록 표현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낙원에게 있어선 굉장히 감사하고 즐거운 일중에 하나였다.

옛날이었다면 부끄럽다며 눈을 피했겠지만, 지금은 또렷하게 마주보며 제 마음을 이렇게 세세하게 말로 전해줄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오르곤 한다.

“난 네가 심은유라서 좋아.”

“…….”

“내 아내인 것도 좋고. 우리 은하 엄마인 것도 좋고. 사실 은하도 좋지만, 나한테 있어서 1위는 늘 너야. 알지?”

“우리 은하 들으면 서운해 하겠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당연히 비교할 수 없지만, 굳이 고르라면 너야. 네가 없었으면 우리 은하도 없었을 거고.”

예전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만큼 다정하고 포근한 모습들에 여러 번 놀라는 은유는 오늘도 그 모습들에 감사하며 남편의 두터운 점퍼 안으로 제 몸을 폭 안겼다.

“전 욕심이 많으니까 둘 다 1위 할래요.”

“그래. 다 네 거 해. 네가 좋으면 나도 됐어.”

“있잖아요 낙원씨.”

“응.”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죠?”

“…….”

이마를 댄 낙원의 가슴이 크게 올라가는 게 느껴져 은유는 입가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랑해요. 엄청 많이요.”

“나도 사랑해. 엄청 많이.”

그 언젠가 낙원이 했던 고백처럼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서로를 비추는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빛들을 조명 삼아, 낙원은 두 손으로 은유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는 천천히 제 얼굴을 내렸다.

“앞으로도 계속 같이 살자.”

그 말을 끝으로 달빛과 별빛에 반사된 두 사람의 그림자는 하나로 포개어졌다.

서로가 함께할 수많은 날들 중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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