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105화 (105/112)

105. 좋은 아빠, 좋은 엄마2016.12.30.

먼저 식당으로 들어와 주문을 할 때까지도 은유는 돌아오지 않았다.

꽤 긴 시간을 기다렸고, 음식들이 나올 때쯤 도착한 은유의 얼굴은 조금 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어두웠다.

“은유야. 어디 아파?”

“아뇨? 저 괜찮아요. 배탈이 좀 나서 그랬어요. 하핫.”

“배탈났어? 약 사올까?”

“아. 괜찮아요! 기다려보고 안되면 그때 사서 먹죠, 뭐. 얼른 먹어요 낙원씨. 맛있겠다!”

혹시라도 그가 알아차릴까 봐 두려움이 앞선 그녀는 애써 웃으며 그 이야기를 숨겼고, 낙원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평소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이 났고, 낙원은 운전을 하면서도 힐끔힐끔 옆자리를 쳐다보며 은유의 얼굴을 살폈다.

식당에서부터 굳어졌던 얼굴은 점점 더 딱딱해져 풀어질 줄을 몰랐다.

심지어 그 긴 시간이 지나 차가 지하 주차장에 멈춰 섰음에도 은유는 여전히 멍하니 창 밖만 보고 있었고, 낙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자 그때서야 고개를 돌렸다.

“벌써 도착했어요?”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에요. 내려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에도 은유는 계속 멍한 표정이었고, 현관문을 열고 그녀를 집안으로 들이면서도 낙원은 걱정이 되어 작은 손을 끌어당겼다.

“은유야. 정말로 괜찮아? 배 아파서 그래?”

“아, 네. 저 일단 씻고 올게요.”

“약은 안 먹어도 되겠어?”

“네. 괜찮아요.”

“그래. 씻고 나와. 따뜻한 물 줄게.”

“네.”

은유가 씻는 동안 일찌감치 씻고 먼저 나온 낙원이 주방으로 가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냉장고 문을 열고 얼마 전 엄마가 보내준 유자청을 꺼내 예쁜 찻잔에 조금 덜어내었다.

주전자가 끓고 불을 끈 낙원이 컵에 차를 담아 잘 젓고선 안방으로 향했다.

“다 씻었어?”

“네. 그건 뭐에요?”

“유자차. 좀 마셔.”

“고마워요.”

낙원이 건넨 차를 마시려던 은유는 순간 ‘아차’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어색하게 웃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휴대폰을 들고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와 문을 잠근 은유는 검색 창을 켜고 ‘임산부에게 피해야 할 차’를 검색했다.

유심히 글을 읽던 은유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행히도 유자차는 좋은 쪽에 속한다고 했다.

물론 시중에서 파는 유자차 같은 경우에는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좋지 않지만, 낙원이 가져다 준 것은 어머님께서 직접 만드셨기 때문에 마음을 놓아도 되었다.

심호흡을 하고 밖으로 나간 은유는 화장대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있던 낙원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배에서 신호가 와서요.”

“괜찮아?”

“네! 그렇지 않아도 따뜻한 거 마시고 싶었는데, 고마워요. 낙원씨는 안 마셔요?”

“난 됐어. 계속 배 아파서 어떡해. 집에 지사제 있나?”

“있으니까 괜찮아요. 계속 아프면 이따가 먹을게요.”

“병원 갈 정도는 아니야?”

“그럼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유난히 저에게 다정한 남편이지만 납치 사건 이후로 더 제 건강에 예민해진 모습에 은유는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며 그가 타준 유자차를 깔끔하게 비웠다.

양치를 하고 침대로 들어오자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온 낙원이 옆으로 들어와 작은 몸을 꼭 안았다.

“아직도 많이 졸려?”

“네. 봄이라서 그런가 봐요.”

혹시라도 그가 의심할까 봐 은유는 날씨 때문에 그렇다고 둘러대며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이며 너른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은유를 안은 채로 얼굴 이곳 저곳에 입을 맞춘 낙원은 납작한 배 위로 손을 얹어 부드럽게 쓸었다.

“지금은 좀 어때?”

“따뜻한 거 마시니까 괜찮아졌어요. 고마워요.”

“다행이다. 혹시라도 자다가 아프면 꼭 얘기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알았지?”

“응. 그럴게요. 나 졸려요.”

“그래. 자자.”

“잘 자요.”

“잘 자.”

은유는 여전히 포근하기만 한 남편의 품에서 빠르게 잠에 들었고, 낙원은 그런 은유를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고 토닥거리다 눈을 감았다.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새벽.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 나온 은유는 가방 안에 숨겨두었던 테스트기를 들고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테스트기를 쥐고 있던 은유가 결심했다는 듯 테스트기를 뜯었다.

설명서를 꼼꼼하게 잘 읽어본 뒤 테스트를 마치고 나서 한참을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두 눈을 뜨고서도 테스트기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혹시라도 임신이 아니라면?

그럼 자신이 실망할 것만 같았다.

만약에 임신이라면?

과연 남편이 행복해할까?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갖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한참 동안이나 서 있던 은유는 마음을 비우며 천천히 테스트기를 들었다.

“……세상에…….”

빈 공간 안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두 줄.

두 줄이면……. 두 줄이면 분명…….

“……임신…….”

너무 놀라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게 잘못 됐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모르니 빨리 병원을 가봐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테스트기를 비닐봉투에 담아 다시 가방에 잘 숨긴 은유는 발소리를 죽이고 침대 위로 올라가 조심스레 누웠다.

그러자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낙원의 기다란 팔이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왔다.

“……어디 갔었어…….”

“화장실이요.”

“아파?”

“아니에요. 자요, 낙원씨.”

잠에서 덜 깬 목소리에 심장이 떨려옴을 느낀 은유가 웃으며 낙원의 가슴에 이마를 대며 그의 탄탄한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어쩌면, 당신과 내 아이가 태어날 지도 몰라요.

만약에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신이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은유는 거의 정신을 놓고 있었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오늘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출근이 조금 늦어질 거라고 양해를 구했고,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는 낙원을 말리고 먼저 학교를 보낸 후에야 집 근처의 산부인과를 찾을 수가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접수를 하고, 혈액검사를 마치자 간호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결과는 빠르면 오늘 오후에 나올 거에요. 결과 나오면 문자로 연락 드릴게요.”

“네, 네. 감사합니다.”

병원을 나서던 은유는 문득 아내와 함께 와 있는 남편들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자신의 아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남편들의 얼굴에 보고 있는 자신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빠르게 병원을 나와 지하철에 오른 은유는 오랜만에 친구인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유야!]”

“소희야. 뭐 해?”

“[나 일하다가 잠깐 쉬러 나왔어.]”

“일 시작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야야. 직장 상사 잔소리처럼 들린다? 그나저나 너 학교 있을 시간 아니야?]”

“나 병원 들렀다 가는 길이야.”

“[병원?]”

소희의 질문에 은유는 그간의 일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러자 휴대폰 너머로 꺅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테스트기 두줄 나왔으면 임신이네! 아 어떡해! 웬일이야! 심은유가 엄마라니! 너무 축하해! 아, 정말 어떡하면 좋아!]”

“아직 정확하게는 몰라. 이따 결과 나와봐야 알지.”

“[두줄 선명하게 나왔으면 거의 확실해! 아 어떡해. 왜 내가 눈물이 나냐? 진짜 너무 잘됐다 은유야. 너무 잘됐어!]”

“미리 고마워. 근데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래, 일단 기다려보자. 결과 오늘 오후에 나온다고?]”

“응. 시간은 정확하게 모르겠어.”

“[낙원오빠는? 형부는 아직 몰라?]”

“응. 아직 얘기 못했어. 혹시라도 아니면…….”

“[그래. 기다려보고, 결과 나오면 꼭 얘기해줘. 알겠지? 몸 조심해서 가고!]”

“응. 고마워 소희야.”

“[고맙기는! 내가 더 고맙다. 너 기대해. 내가 조카 옷은 책임진다.]”

누군가에게 터놓고 나니 꽉 막혔던 가슴이 조금은 뚫린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도 모르는 채 학교에 도착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낙원이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병원에서 뭐래?”

“아, 그냥 배탈인 것 같다고 약 지어줬어요.”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얼굴이 안 좋은데.”

“괜찮아요. 이제 수업 들어가죠?”

“응. 다녀 올 테니까 쉬엄쉬엄 해. 알았지?”

“걱정 마요. 수업 잘 하고 와요.”

그렇게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오후시간이 되자 은유는 저도 모르게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며 마음이 초조해졌다.

작은 진동에도 빠르게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기다리는 결과는 결국 퇴근할 때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 임신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침울해져 오늘도 어제처럼 기운이 쭉 빠진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낙원은 은유가 많이 아파서 그런가 하며 심각하게 걱정을 했지만 아내는 아프다기보단 꼭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뿌옇게 김이 서린 욕실 안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긴 채 멍하니 서있던 은유는 수납장 안에 넣어둔 휴대폰에서 짧게 울린 진동 소리에 샤워기를 끄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유리문을 열자 일정한 간격으로 반짝이며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휴대폰이 보였고,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휴대폰을 든 은유는 문자 아이콘을 클릭함과 동시에 눈을 감아버렸다.

떠야 하는데, 확인을 해야 하는데.

눈 앞에 어떤 진실이 있던지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만 같았다.

한참을 수증기 안에서 서있던 그녀가 미친 사람처럼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눈을 떴고, 두 눈에 문자 내용이 가득 들어찼다.

‘[심은유님 혈액검사 결과 임신입니다. 초음파 검사를 위해 3월 20일에 내원해주시고, 혹시 그 전에 배가 아프거나 출혈이 있다면 언제든 내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산부인과-]’

정말 세상에…….

세상에.

이게 지금,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임신이야…….”

패닉에 빠져 물기를 대충 닦고 나온 은유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옷을 입고선 거실로 나갔다.

아직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어 그 내용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임신이다. 다시 봐도 임신이다.

정말로 임신했다.

자신의 뱃속에 사랑하는 남편과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어떡해…….”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밀려오는 감정에 은유의 눈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두 손으로 닦아도 모자랄 만큼 거세게 내리는 비처럼 쏟아져 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 엉엉 우는 사이, 샤워를 마친 낙원이 문을 열고 나오다 흐느끼는 소리에 놀라 그녀에게 달려갔다.

“은유야!”

“흐흑……. 흑…….”

“은유야. 왜 그래. 어? 무슨 일이야. 아파? 배 아파서 그러는 거야?”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은유를 보며 속이 시꺼멓게 타 들어간 낙원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들어 올려 저와 눈을 마주하게 했다.

“그럼 왜 그래. 응? 왜 울어. 말을 해야 알지. 은유야.”

오로지 저를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남편을 보자 더 서럽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두 손으로 낙원의 허리를 끌어 안고 엉엉 울던 은유는 한참이 지나서야 코를 훌쩍이며 그의 품에서 얼굴을 떼었다.

“이제 말할 수 있겠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내를 보던 낙원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

“왜 울었어. 뭐가 그렇게 서러웠어.”

“……저 할 말이 있어요.”

“응. 듣고 있어.”

나 임신했어요 낙원씨.

우리 아이에요.

당신이랑 나의 첫 아이.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망설이는 은유를 보며 낙원은 이상함을 느꼈는지 퉁퉁 부은 두 눈을 어루만지며 다시 물었다.

“아직 힘들어? 그럼 더 기다릴게. 계속 기다릴 테니까, 진정 되면 얘기해줘.”

늘 저를 생각해주는 남편.

무섭게만 느껴졌고, 어렵게만 생각되었던 그와 가까워졌고 사랑에 빠졌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설렜고, 그의 눈빛 하나에 녹았으며, 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온 몸이 따뜻했다.

프러포즈할 때 약속했던 것처럼 저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은 항상 빛이 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남편이라면 당연히 기뻐할 것이다.

분명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은유는 불안했던 감정들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제게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남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낙원씨는 분명히 좋은 남편이 될 거에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리고 분명히 좋은 아빠가 될 거에요.”

“…….”

“당신이랑 나랑, 반반씩 닮은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은유야…….”

아내를 부르는 그의 고운 미성이 그 어느 때보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나 임신했어요. 우리 아이에요, 낙원씨.”

“……아……. 아……. 어떡해…….”

가슴이 크게 부풀어올랐다.

‘임신’이라는 단어에 낙원은 머리 속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지금 제가 잘 들은 게 맞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런데 은유의 얼굴을 보니 맞는 것 같다. 아니, 맞다.

순간 울컥 하는 마음에 목이 따끔거리며 눈가가 매워졌다.

천천히 손을 뻗어 은유의 얼굴을 감싼 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고마워. 고마워 은유야. 고마워.”

“……나도 고마워요.”

“내가,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더 노력할게. 고마워 은유야. 고마워.”

분명 눈은 울고 있으면서, 낙원의 입가엔 예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웃음에 은유는 긴장을 풀며 남편의 넓은 품에 폭 안겨 제 얼굴을 비볐다.

“저, 진짜 걱정했어요. 혹시라도 낙원씨가 기뻐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했어. 아, 나 진짜 어떡하지? 지금 죽어도 좋을 것 같아. 아니지. 너랑 아이 두고 죽으면 안 되지. 너무 고마워 은유야. 고마워. 내 아내여서, 내 아이 엄마여서, 너무 고마워. 나 진짜 너무 행복해.”

아직 촉촉하게 젖어 있지만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들떠 있었다.

품에 안긴 은유를 꽉 안던 낙원이 순간 멈칫하며 팔의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꽉 안아도 돼? 그래도 되는 거야? 안 아파?”

“풉. 괜찮아요. 안 아파요.”

“어떻게 알았어. 언제 알았어?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쉴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낙원을 보며 은유는 기분 좋게 웃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혹시라도 아니면 낙원씨도 실망할 것 같아서……. 임신이라고 하면 좋아해줄까 걱정 되면서도, 아닐 경우를 생각하니까 그것도 그것대로 걱정이 됐어요.”

“그럼 오늘 병원 다녀온 게, 산부인과 다녀온 거였어?”

“네.”

“아. 내가 같이 갔었어야 하는데! 병원 어디로 갔어? 몇 시까지야? 나랑 같이 가. 앞으론 무조건 나랑 가. 남편 두고 왜 혼자 갔어.”

“미안해요. 다음부턴 꼭 같이 가요. 다음 주에 초음파 검사 하러 가야 해요. 그 날 같이 가요.”

“그럼, 그럼 우리 아이 사진으로도 볼 수 있어?”

“네. 지금은 엄청 작아서, 아기집밖에 안 보일 거에요.”

은유의 설명에 낙원은 두 눈이 붉어진 채로 납작한 배 위로 커다란 손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여기에 있다는 거지? 우리 아이.”

“네. 여기 있어요. 낙원씨랑, 내 아이.”

“……아……. 진짜 미치겠다. 이걸 어떻게 해야 돼. 나 죽을 것 같아. 너무 좋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숨긴 게 미안해져 은유는 낙원의 커다란 손 위에 제 손을 포개었다.

“우리 잘 해봐요. 좋은 아빠, 엄마 되려고 노력해요.”

“응. 나 정말로 많이 노력할게.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볼게.”

“나도 노력할게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되도록.”

견고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를 마주보며 낙원이 천천히 은유에게 다가갔다.

눈물로 얼룩진 뺨 위에 입을 맞추고, 늘 제 이름을 불러주는 예쁜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마주 댄 낙원이 환하게 웃었다.

“지금도 좋은 아내야.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은유야.”

“……고마워요.”

“사랑해.”

“…….”

“사랑해 은유야.”

그 말을 끝으로 낙원은 은유의 목 뒤를 부드럽게 감싼 후, 얇은 허리 위로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그 맞은 편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 속의 두 사람은 여전히 예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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