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모든 게 제자리로2016.12.28.
아침 일찍부터 자신을 깨운 남편을 따라 집을 나서는 은유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며칠 전, 웨딩 사진을 새로 찍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처음엔 의아했지만 두 사람이 처음과는 달라졌기에 정말 가족 같은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전해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었다.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한 은유는 익숙한 건물을 보고 기분 좋게 웃으며 시동을 끄는 낙원을 쳐다보았다.
“여기는 잊을만하면 오는 것 같아요.”
은유의 말에 낙원이 공감한다는 듯 웃으며 차에서 내려 빙 돌아와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손을 내밀었다.
“내리자.”
“아, 네.”
맨 처음 웨딩 사진을 찍기 전에 들렀던 곳이자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면 낙원과 함께 찾는 샵이 이젠 제법 익숙해지려고 한다.
1층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다가와 두 사람을 맞이하고는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스태프들의 손에 이끌려 의자에 앉은 은유는 긴장한 표정으로 거울 속에 비친 남편을 쳐다보았고, 낙원이 다가와 작은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였다.
“예쁘게 하고, 이따 보자.”
“네!”
그 말만 남긴 채로 낙원은 다른 스태프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고, 남겨진 은유는 여자 스태프들에 의해 세수를 하고 얼굴에 화장을 시작했다.
제 얼굴에 무언가를 열심히 바르는 스태프를 보며 은유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저기……. 저 얼굴 많이 안 부었나요?”
“아뇨. 아침인데도 이 정도면 양호하신 편이에요.”
“아……. 네…….”
낙원이 웨딩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날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한 은유는 오늘따라 유난히 부어 보이는 것만 같은 얼굴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역시 전문가들의 손길은 굉장했다.
메이크업이 끝난 뒤 마주한 거울에 보이는 제 모습에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늘 느끼는 사실이지만 역시 여자는 가꿔야 한다.
“우와…….”
“마음에 드세요?”
“엄청요! 너무 예뻐요. 아니, 제가 아니라 그. 화장이랑 머리요!”
“고객님께서 예쁘신 거 맞으세요. 오늘 유난히 더 예쁘시네요.”
예쁘게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손질을 마친 은유는 스태프의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 앞에 멈췄고, 그 안으로 자신을 밀어주는 여자를 쳐다보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위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올라가시면 돼요.”
“아, 네. 감사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맨 위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그 앞에 서있는 남편이 보였다.
“낙원씨!”
자신에게 내민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은유는 자신 만큼이나 변한 낙원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잘생긴 얼굴에 이렇게 해 놓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대체?
“그렇게 이상해?”
“네? 아뇨? 완전 잘생겼어요! 어떡해요?”
“뭘 어떡해.”
“저 반한 것 같아요!”
거짓 없이 속마음을 표현하는 은유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 낙원이 얇은 허리를 감싸 안고 귓가를 간질이듯 속삭였다.
“난 이미 반했어.”
황홀한 고백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은유를 이끌고 낙원이 들어온 곳은 드레스 룸이었다.
그야말로 많은 종류의 드레스가 마련되어 있는 공간에서 은유는 또 한번 놀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와. 너무 예뻐요!”
“지난 번에 이거 마음에 든다고 했지?”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자신에 관한 건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남편의 섬세함에 은유의 얼굴에 꽃이 피어났다.
전체적으로 여성스럽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벨라인 드레스부터 시작해서 굴곡진 라인을 강조하는 머메이드 스타일과 클래식한 느낌의 A라인, 무릎까지 오는 미니드레스까지.
중간중간 낙원이 이건 생각보다 너무 야한 것 같아서 안 된다, 이건 너무 짧아서 안 된다 하긴 했지만 은유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거 입고 싶어요’하고 애처롭게 쳐다보는 바람에 허락한 것들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남자의 턱시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 낙원이 은유와 함께 몇 가지를 고른 후에 작은 손을 꼭 잡고 다시 건물을 빠져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요?”
“일단 비밀로 할게.”
이번엔 대답을 해주지 않는 남편을 보며 은유는 궁금증이 잔뜩 일었지만 일단 수긍하고선 차에 올랐다.
복잡한 시골을 빠져나간 낙원의 차는 한적하고 공기 좋은 길을 달려 커다란 저택 앞에 도착했다.
“세상에……. 여기 우리 사진 찍었던 곳이잖아요!”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사진을 찍었던 스튜디오는 지금도 여전히 크고 예쁘고 웅장했다.
“너랑 나한테 의미 있는 곳이라서.”
작은 고백을 하듯 눈을 마주하며 전해오는 남편의 진심에 은유는 심장이 떨려옴을 느끼며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어 남편을 끌어당기고는 붉은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요.”
“……심은유.”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한 거에요? 나 진짜, 진짜로 너무 행복해요 낙원씨.”
예쁘게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낙원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손등에 입맞춤을 선사했다.
“화장했으니까, 얼굴엔 못 하겠다.”
“응. 우리 들어가요!”
낙원과 손을 꼭 붙들고 저택 안으로 들어선 은유는 넓은 크기에 한 번 놀랐고, 예쁘게 꾸며진 인테리어에 또 한번 놀랐다.
“여전히 너무 예쁘네요.”
“마음에 들어?”
“네!”
결혼 전 웨딩 사진을 찍어줬던 친구는 사업차 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지혁이 소개시켜준 작가에게 오늘 일정을 맡기기로 했다.
영국에서 만났다는 지혁의 친구는 굉장히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작가에게 설명을 듣고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서로 떨어진 두 사람은 잠시 후 마주한 서로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끈이 없는 튜브 탑의 A라인 드레스는 허리 아래쪽으론 민 무늬로 깔끔했고, 상체엔 꽃무늬 레이스로 볼륨 감과 청순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낙원은 전체적으로 깔끔한 블랙 턱시도에 늘 까맣던 머리를 밝은 갈색의 톤으로 헤어 스프레이를 뿌려놨더니 만화 속의 왕자님이 튀어 나온 기분이 들었다.
“……머리 좀 어색해.”
“아니에요! 완전, 완전 멋있어요!”
이건 뭐, 연예인을 해도 아깝지 않을 비주얼 이었지만 이런 모습은 저만 봐야 한다며 은유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제 모든 모습을 좋아해주는 아내를 보며 낙원은 오늘 유난히 더 예쁜 모습에 자꾸만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로에게 푹 빠진 두 사람을 지켜보던 작가가 찰칵 하며 그 장면을 찍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작가에게로 향했다.
“방금 전에 느낌이 너무 좋아서요. 자, 준비 다 되셨으면 이제 시작할까요?”
작가의 말에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일사분란 해지며 두 사람도 긴장감과 설렘으로 물든 마음을 안고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
첫 컷은 스튜디오 내부에서 찍게 되었다.
깔끔한 회색의 배경을 뒤로 하고 그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긴장된 얼굴로 손을 잡았다.
“지금 좋아요. 표정 조금만 더 풀어주시고, 찍습니다.”
그 뒤로도 촬영은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처음 긴장했던 모습과 달리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고, 스킨십을 하며 작가로부터 열띤 환호성을 받으며 촬영을 가장한 서로의 사심 채웠다.
“신랑님 좋습니다! 신부님 조금만 더 가까이 가실게요!”
낙원이 은유의 허리를 끌어안고, 은유가 두 손을 낙원의 가슴팍에 올린 후 살짝 시선을 들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진한 눈동자에 담겨 있는 제 모습에 맑은 두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그 눈을 마주한 낙원이 살며시 웃으며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을 주어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여전히 예쁘다.”
“……낙원씨도요. 오늘 정말로, 너무 멋있어요.”
“너만 할까.”
두 사람이 시선이 허공에서 위태롭게 얽힌 순간 찰칵 소리와 함께 예쁜 장면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자. 이번에는 옷 갈아입으시고 갈게요!”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었지만, 예쁜 사진을 위해 아쉬움은 잠시 뒤로한 채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이번에도 먼저 갈아입고 나온 낙원은 짙은 네이비 색상의 수트를 몸에 착 감고 있었고, 여자 스태프들은 아내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을 황홀함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곧이어 피팅룸 문이 열리고 주인공인 은유가 등장했고, 벽에 기대어 서있던 낙원은 제게 다가오는 아내를 떨리는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작은 키에 비해 잘록한 허리와 볼륨이 있는 가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머메이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은 은유는 세상 그 어느 여자보다 아름다웠다.
튜브 탑인 드레스의 가슴 위쪽부터 목 바로 아래까지는 민소매의 투명한 시스루로 훨씬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낙원씨?”
“……나 진짜 죽을 것 같다.”
“왜요? 저 너무 예뻐서요?”
환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묻는 그 질문에 낙원은 실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잠시 촬영을 쉬었다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목까지 차 올랐지만 보는 눈이 많았기에 낙원은 ‘참을 인’을 제 가슴 속에 새기면서도 은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분명 한 번 웨딩 촬영을 했었는데. 그 때에도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내가 미쳤다 진짜.”
“네?”
“이렇게 예쁜 걸 몰랐으니까. 내가 미쳤어.”
이렇게 예쁜 여자를 그 땐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용서가 안 된다.
멍청한 강낙원. 미리 알았어야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낙원에게 가까이 다가간 은유가 예쁘게 웃으며 낙원의 팔에 제 팔을 끼고선 약하게 잡아당겼다.
“지금이라도 알아줬으니까 괜찮아요.”
“난 벌 받아야 돼.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 걸 몰랐다는 게 말이 돼?”
“남들 들으면 욕해요 낙원씨.”
“누가 욕을 해. 이렇게 예쁜데.”
오늘 작정하고 다정함 폭탄을 장착한 낙원의 모습을 보며 스태프들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신부는 정말이지 예뻤으니까.
“준비 되셨으면 이제 다음 컷 갈까요?”
“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계속되었다.
낙원이 은유의 다리를 감싸서 안아 들고, 은유는 그런 낙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얼굴을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커다란 소파 위에 앉은 은유와 그 다리를 베고 누운 낙원이.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정면을 바라보는 부부.
손에 든 꽃을 내려다보고 있는 은유와 그런 은유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낙원이.
두 사람이 함께한 여러 장면들이 카메라에 끊임 없이 담겼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식사 하시고 다시 이어갈게요~”
점심식사를 알리는 말과 함께 스튜디오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며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밥 배달 왔습니다!”
“세상에……. 민지야! 원식 오빠랑 도련님까지 어쩐 일이세요?”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나타난 세 사람을 본 은유의 눈이 커다래졌다.
우선 손에 들고 있던 음식들을 스태프들에게 나눠준 세 사람이 부부에게로 다가와 봉투를 하나씩 건넸다.
“자. 이거는 우리 제수씨랑 강낙원 거.”
“이게 뭐에요?”
“잘 먹어야 촬영도 힘내서 하죠. 내가 새벽부터 강지혁이랑 민지랑 힘 좀 썼어요.”
스튜디오 내부에 마련된 미팅 룸으로 들어가 커다란 책상 위에 준비해 온 음식들을 꺼낸 민지가 으쓱한 표정으로 낙원과 은유에게 손짓했다.
“짜잔! 맛있겠죠!”
정말 열심히 준비한 티가 날 만큼 음식들은 작고 정갈한 모양으로 예쁜 상자에 담겨 있었다.
이 커다란 선물에 감동을 받은 은유가 세 사람에게 감사를 전했다.
“어떡해. 너무 감사해요. 저 정말 너무 좋아요.”
“좋아해주니까 우리도 좋네. 얼른 앉아서 먹어요.”
정성 들여 한 화장이 망가지지 않도록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종류도 다양했다.
샐러드부터 시작해서 새우구이, 닭강정, 주먹밥과 각종 과일들까지. 전부 다 한입 크기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준비해온 음료에는 빨대까지 꽂아 주었다.
“이 많은 걸 다 준비하신 거에요?”
“두 사람 웨딩 촬영인데, 이 정도쯤이야 뭐.”
은유의 감동과 칭찬에 우쭐해진 원식을 보며 지혁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일 틱틱거리던 사람이.
활짝 웃는 얼굴로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형수님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원래 예쁜 건 알았지만, 오늘 보니 정말로 예뻤다.
자신 때문에 그 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과 함께 저 예쁜 웃음을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유난히 밝은 미성이 지혁의 귓가를 울렸다.
“고맙다, 강지혁.”
저를 보며 웃고 있는 낙원의 얼굴이 목소리만큼이나 밝아서 지혁은 온 몸이 따뜻해져 옴을 느끼며 씩 웃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살아라, 강낙원.”
이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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