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제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2016.12.25.
정신 없이 차를 몰아 태형이 보내준 문자에 찍힌 주소지에 도착한 낙원은 차에서 내려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짧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고, 낙원이 성큼성큼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커다란 공간에 필요한 가구만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는 내부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방금 전 전화했던 태형이었다.
“앉으세요.”
“은유 어디 있어.”
“지금부터 그 얘기 할 거니까 앉으세요. 강낙원씨.”
역시. 당신이 범인이었나.
우리 형을 죽게 사주하고, 이젠 내 아내와 학생까지 납치한 게.
떨리는 두 손에 주먹을 쥐어 힘을 실으며 소파에 앉은 낙원은 제 맞은 편에 앉는 태형을 매서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태형의 입이 열렸다.
“시간이 없습니다.”
“뭐?”
“당신이 믿을 지 안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에 알았습니다. 강무원씨가 죽은 이유, 그리고 당신 아내인 심은유씨와 그 학생이 납치된 이유.”
태형은 지금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전혀 몰랐다는 것처럼 얘기하는 겁니까, 지금?”
“당신 형이었던 강무원씨와 나는 꽤 가깝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바닥에서 마음 맞는 사람을 찾는 게 굉장히 어려웠는데 우연히 봉사활동에서 당신 형을 만난 뒤로 우리는 친해졌습니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겁니까.”
“당신 형이 죽던 날, 연락을 받았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면 같이 식사하지 않겠냐고. 가족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마침 할 일도 없었고, 쉬는 날이었기에 태형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끊자마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급히 일본 출장이 잡혔으니,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공항으로 갔고, 못 간다는 연락을 하려고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난 비행기에 올랐고, 일본에 도착해서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강무원씨가 죽었더군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통화했던 무원이, 죽었다는 소식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살인이라니.
“일본에 있느라 장례식에는 참석도 하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준비했던 카타르 사업을 우리 정진 쪽에서 성공시켰고 이사로 승진했죠.”
열심히 준비했던 결과라고 생각했다.
밤낮을 지새우고, 무원과도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당시엔 노강건설에서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무원은 능력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무원이 죽고 대안과의 경쟁에서 자신들이 살아남았다.
그 사업으로 이사로 승진하게 되었고, 기업은 크게 성장하며 해외로 진출했다.
“이 바닥에서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었기에 많이 허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었는지 그 사업으로 인해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서서히 잊혀졌죠. 그 뒤로 난 일에 파묻혀 지냈고.”
“…….”
“오늘까지는 몰랐습니다. 그 성공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었다는 걸.”
“……무슨 말입니까.”
몇 시간 전, 회사에 계시다는 아버지를 모시고 식사라도 할까 해서 직접 사무실로 찾아갔다.
평소엔 여느 부자지간처럼 트러블이 있었지만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서 열심히 일하시는구나 싶어 마음이 짠했다.
그 마음에 시간이 있을 때 챙겨드려야겠다 생각하며 문을 열려던 순간, 우연히 안에서 들려오던 대화 소리에 심장이 떨어졌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 끔찍해서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일들.
준원이 그 곳을 떠나자마자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추궁했고, 그간의 일을 모두 전해들은 후에 태형은 무너졌다.
“지금까진 내가 잘해서, 내가 열심히 살아서 얻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던 것 같습니다. 날 업계 최고로 만드시겠다는 욕심으로, 규모가 큰 카타르 사업을 제게 제안하셨고 전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이미 짜놓은 판이었다.
“……아버진 날 성공시키려고 죄 없는 내 하나뿐인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강무원씨를 살해했고……. 정부에 돈을 갖다 받치셨고……. 이젠 그 일을 덮으려고 또 다른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다.”
“……당신이 몰랐다는 게……. 말이 돼?”
“믿기지 않겠죠. 그 정도로 전 순진했고 멍청했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그렇게만 살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강무원씨가 더 멋있어 보였고, 그를 보며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당신 형은, 강무원씨는 나 때문에…….”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었다는 사실과 마주한 순간, 그 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시간들이 전부 다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았고 자신이 가져온 모든 것이 남의 것이었다는 충격을 받았다.
늘 아버지가 계획해놓은 대로 꼭두각시처럼 살다가 우연히 무원을 만났다.
저와는 달리 기업인으로써, 그리고 아들로써도 주체적이고 당당했던 무원이 멋있어 보여서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고 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존경하며 닮으려고 노력했던 그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온 자괴감과 괴로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하며 울컥했던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쪽지 한 장을 낙원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아버지가 친하게 지내는 조폭의 이름 앞으로 되어 있는 별장입니다.”
“……이건…….”
“맞아요. 심은유씨 거기 있을 겁니다. 숨기기 좋은 곳이거든요. 들켜도 아버지에겐 손해가 없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걸 왜…….”
“지금까지 내가 누려온 모든 것들. 전부 다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난 내 힘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거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이 자리에 오르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이걸 나한테 주면, 당신은……. 김태형씨 당신 아버지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강낙원씨. 내가 알던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난 내가 알던 아버지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 분께서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는 태형은 울고 있었다.
그 동안 자신이 존경해왔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어서.
그 진짜 모습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끔찍하고, 충격적이어서.
태형에게서 건네 받은 쪽지를 손에 꽉 쥐고 일어선 낙원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고맙다는 인사는 못하겠습니다.”
“……이해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가보세요.”
“…….”
“그리고. 그 사람들 보통 사람들 아니니 강낙원씨 혼자로는 힘들 겁니다.”
“가보겠습니다.”
낙원이 떠나간 자리를 보며 태형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에게 전화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을 하고 망설였는지 모른다.
자신의 한마디로 인해 그 동안 대대로 일궈온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수가 있다.
자신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현재 이 곳에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형은 진실을 선택했다.
자신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저물었고, 그 사람의 가족들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가족의 가족들까지 위태로워졌다.
언젠가는 잘라내야 하는 끈이다. 그게 오늘이고, 자신일 뿐이다.
그래서 태형은 어려운 선택을 했다. 죄 없는 사람들 대신, 자신이 무너지기로.
한참을 주저앉아 울던 태형이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준비 끝나셨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이젠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전부 다.
.
태형의 집을 나서서부터 지혁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짧게 설명한 낙원은 쪽지에 적힌 주소로 차를 몰았다.
지혁은 경호원들을 그쪽으로 보내겠다는 말을 전하며 전화를 끊었고, 한참을 달려 김포의 외곽에 위치한 커다란 별장 근처에 도착한 낙원은 이미 먼저 와 있던 경호원들을 발견하곤 차에서 내렸다.
“오셨습니까.”
“강지혁은요.”
“이사장님께서는 따로 하실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도련님께서는 여기에서 기다리시죠. 안에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조폭들이라 위험합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직접 가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랬다가 짐이 되어 은유와 민지에게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낙원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경호실장은 작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모여 있는 경호원들을 가까이로 불렀다.
“제일 중요한 건 인질들의 안전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들어가고, 혹시라도 인질들이 위험하다면 급소 제외하고 납치범들 사격해도 좋다는 강준원 사장님의 말씀이 있었다.”
경호실장의 말에 낙원은 쓰디쓴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늘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할 수 없다던 아버지께서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뒷감당은 자신이 하시겠다며 가족들의 안전만을 당부하셨다.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 속 깊이 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낙원은 천천히 경호원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제 눈에 담았다.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도는 상황에서 낙원은 경호실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 드립니다. 제 아내도, 학생도. 그리고, 실장님도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 다 무사하게 나오셔야 합니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도련님.”
경호실장의 지시에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경호원들을 보며, 낙원은 차에 올랐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오늘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모두가 무사하기를.
.
오후 4시 45분.
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까딱이며 조용한 전화기를 내려다보던 김태민 회장은 똑똑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접니다.”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태민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며 들어오라는 답변을 했고, 동시에 문이 열리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그에게 걸어왔다.
“이 시간에 여기는 어쩐 일이냐? 오늘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
“있었죠. 아버지랑 저녁 먹으려고 식당 예약해뒀었는데.”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오늘은 내가 좀 바쁜데.”
“왜요. 회사에 무슨 일 있으세요?”
태형의 물음에 태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은 무슨. 나야 늘 바쁜 게 일이지.”
그 자연스러움에 태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동안 아버지의 본 모습을 몰라봤던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아버지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그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너무나도 계획적으로.
절대 이렇게까지 하는 일이 없길 바랬는데, 하고 생각하며 태형은 천천히 제 옷깃을 여미는 척하며 안에 넣어둔 볼펜의 위쪽에 있는 버튼을 조용히 눌렀다.
“아버지.”
“허허.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럴까.”
“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 없으십니까?”
“……하고 싶은 말이라니? 내가?”
“네.”
“흠, 글쎄……. 너야말로 무슨 일 있는 거냐? 표정이 안 좋아. 어디 몸이라도 아픈 게야?”
그렇게 나를 걱정하고 있는 아버지의 두 눈은 진실인 겁니까?
아니면 그마저도 거짓인 겁니까?
“태형아. 이 녀석이 정말 왜 이래.”
“……저한테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친구?”
“아버지도 아실 겁니다. 노강건설 강무원 전무.”
“…….”
태형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까딱거리던 태민의 손가락이 우뚝 멈춰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
“사람 자체로도 훌륭하고, 일 적인 부분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태형아.”
“5년 전에 살해당한 강무원씨. 아버지께서 하신 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아들을 보며 태민은 뒷목이 뻐근해짐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천천히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무슨 소리냐 그게. 내가 왜?”
“……정말로, 아버지가 하신 게 아니십니까?”
제발 사실대로 말씀해주세요.
지금이라도 괜찮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사실대로 얘기해주세요 아버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대체 누가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한 거냐?”
“……기회 드렸잖아요.”
“뭐?”
“제가……. 제가 지금, 기회 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왜 거짓말 하세요. 왜요!”
악을 쓰며 눈물을 떨구는 태형의 모습에 놀란 태민은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형아.”
“……언제까지 숨기실 생각이셨어요?”
“얘야.”
“대체 언제까지!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너 어떻게 안 거냐. 누구야. 누가 얘기했어? 혹시 노강그룹에서 널 찾아간 거냐?”
이 순간에도 ‘누구’에 의해 밝혀진 것인지에 대해서만 전전긍긍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태형은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연민의 감정이 사라짐을 느꼈다.
“제가 말씀 드리면, 그 사람도 찾아가서 죽이시려고요?”
“김태형!”
“자수하세요.”
“무슨 소리냐.”
“자수하세요 아버지.”
“내가 아니래도!”
아들인 제게조차 아니라고 발뺌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치가 떨렸다.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세요. 아버지, 사람 죽이셨어요. 아세요? 살인하셨다고요. 사람을 죽이셨다고요!”
“그 입 다물어! 네가 지금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데. 가만히 있어라 태형아. 이러면 너만 망가져!”
“여기서 더 어떻게 망가져요. 아버지께서 살인을 하셨는데. 제가 여기서 어떻게 더 망가져요!”
후회하지 않을 쪽으로 답변을 달랬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나, 강준원 사장?
매섭게 가라앉은 눈으로 휴대폰을 든 태민을 보며 태형이 낮게 웃었다.
“왜요. 또 전화하셔서 죽이라고 하시려고요?”
“넌 가만히 있거라. 내가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쨍그랑.
두 여자를 데리고 있는 남자에게 전화를 하려던 태민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깨진 유리 조각을 들고 저를 보며 울고 있는 아들이 그의 눈에 가득 들어찼다.
“……태, 태형아.”
“전화하세요. 그 조폭들한테.”
“태형아. 지, 진정해라. 진정해.”
“전화하셔서, 무사히 풀어주라고 하세요.”
“태형아!”
태민의 외침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유리를 꽉 움켜쥔 태형의 손이 가느다란 목으로 가까이 향했다.
“아버지도 후회 않으실 선택 하세요.”
“태형아, 제발. 제발 그것 내려놓고 얘기하자. 응?”
“시간 없어요, 아버지. 어차피 처음부터 제 인생이 아니었잖아요.”
날이 선 투명한 유리가 정확히 아들의 목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보며 태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 준비했던 것들인데. 그런데 너는 왜.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화번호를 누른 태민이 귓가로 휴대폰을 가져다 대었다.
“제가 들을 수 있게, 스피커 켜세요 아버지.”
“……태형아…….”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제 삶에 후회 없습니다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아들의 말에 태민은 억울한 감정을 누르며 스피커를 켠 뒤 책상 위에 천천히 휴대폰을 올려두었다.
“[예 사장님. 어떡할까요?]”
“……풀어줘라.”
“[……예?]”
“……풀어줘. 안 다치게.”
한숨 소리에 섞인 ‘예’하는 대답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이제,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태형아.”
“사실대로 밝히세요. 아버지 입으로 직접, 다 밝히세요.”
“태형아…….”
“저도 오늘 8시까지만 기다리겠습니다. 아버지도 느껴보세요. 자식 생명을 담보로 받는 협박이 어 떤 기분인지.”
손에 쥐고 있던 유리를 내던진 채 등을 돌려 나가는 태형을 보며 태민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늘 품 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저에게서 등을 돌렸다.
넌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게 널 위한 것인데. 나 좋자고 한 일들이 아닌데.
여전히 태민은 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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