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91화 (91/112)

91. 시작된 싸움2016.12.23.

당시 무원은 한창 진행하던 ‘카타르 사업’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기는커녕, 얼굴을 보기도 힘들던 시기에 무원은 프로젝트가 잘 진행이 되고 있다며 잠깐의 짬을 내어 식사를 제안했고 그 날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 전화 통화로만 종종 들었던 사업 얘기를 직접 듣고 응원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서 도서관을 나왔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사업은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던 프로젝트였어.”

“……알아. 형이 그만큼 절실하게 준비했으니까.”

“그래. 네 말대로 절실했지. 그 사업만 따내면 중동은 물론이고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성공만 한다면 그 비용과 비교할 수도 없는 금액은 확보하고도 남고.”

“정진건설 김태형이라고.”

“지난 번 바자회에서 봤었지? 형수님이랑 같이. 그 정진건설 김태형 맞아.”

아내와 크게 다퉜던 이유이기도 했던 그 남자.

저와 아내를 보고 서글서글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라 단단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또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제 정말로 힘든 시간이 왔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 지혁을 보며 낙원이 공허했던 눈에 초점을 맞추며 그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똑바로 얘기해 강지혁. 또 뭐가 있는데.”

“무원이형 살인사건 조사하던 담당경찰이 갑자기 바뀌었었어. 내부적으로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인사이동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

“당시 사건 담당하던 경찰들 교체하고, 빨리 종결시키라고 지시한 사람.”

지혁의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은 채로 낙원에게 향해 있었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사람.”

“…….”

“그리고, 민지 큰아버지인 사람.”

굳어진 입가 사이로 튀어나온 이름에 머리 속이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다시.”

“권중식 의원이야 낙원아.”

커다란 방 안을 감쌌던 따뜻한 공기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없었다.

그 어떤 말소리도 오가지 않는 조용한 순간, 낙원의 고개가 툭 떨어졌고 곧이어 따뜻한 공기가 내려 앉았던 카펫 위로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커다랗게 떨리는 어깨에 자리에서 일어난 지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낙원의 옆자리에 앉았고, 그 너른 어깨를 감쌌다.

미안해 강낙원.

너한테 이렇게 아픈 이야기를 내 입으로 전해서, 미안해.

너한테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고 이렇게 아프게 해서 미안해.

한참을 지혁의 품에 안겨 울던 낙원은 자꾸만 쏟아지는 눈물을 커다란 손으로 아무렇게나 훔치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했다.

“빠짐없이, 다 얘기해줘.”

“힘들면 좀 쉬자.”

“아니. 전부 다 알아야겠으니까 얘기해줘. 지금.”

울음이 섞였지만 단호한 음색에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파일을 들고 다시 낙원의 옆자리에 앉았다.

“확실한 건 무원이형 죽음에 정진그룹이랑 권중식 의원이 개입했다는 거야. 무원이형이 죽기 훨씬 전부터 정진그룹 회장이랑 권중식 포함해서 몇몇이 자주 만나던 바가 있어. 거기에서 일했던 여직원이 진술해준 내용이랑 같이 있는 사진들.”

꽤 많은 서류와 사진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피는 낙원의 얼굴은 떨리는 손과는 달리 진중했다.

“그리고 이건 사건 기록 파일. 보면 목격자에 문창수라는 사람이 있어.”

“나도 알아. 정은호가 형 집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다고.”

“그래. 목격한 목격자는 맞는데, 대상이 틀렸어. 살인범은 두 명이야. 문창수씨가 직접 얘기해준 거고.”

“……입을 열었다고?”

“얼마 전까지 호주에 있었어. 그 사건 후에 로또에 당첨되어서 온 가족이 이민을 갔고. 그 로또라는 건 정진그룹에서 준 돈이었고.”

그래서 네가 거길 갔었구나.

난 바보처럼 웃고, 행복해하던 시간에 넌 이 모든 걸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었구나.

“그렇게 쳐다보지 마. 다시 말하지만 넌 몰랐던 거야. 강낙원.”

죄책감을 갖는 자신을 다독이는 목소리에 낙원은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다시 파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문창수씨가 진짜 살인범 두 명을 봤다는 얘기야?”

“어. 당시 그 일대에 전기공급이 끊기면서 CCTV도 잘려나갔는데 문창수씨가 형 옆집에 택배 배달을 왔다가 우연히 본 거야. 그날 밤에 정진그룹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왔고.”

지혁의 설명에 낙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동네 보안이 심각하게 잘 되어있다는 건 너도 알지?”

“나도 그게 의문이야. 직접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무원이형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형이 워낙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경호원을 따로 붙이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단으로 침입했다면 분명 경고음이 울렸을 텐데.”

그런 그 집에 당당하게 두 발로 들어갔고, 무원을 죽이고 두 발로 걸어 나왔다.

흔들리던 동공이 또렷해지는 것을 지켜본 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네 생각이랑 같아. 무원이형이 살인범들을 알던 거야. 그렇지 않고선 설명이 안 되니까.”

“정진건설 김태형일 가능성은 없어? 당시에 형이랑 꽤 가깝게 지냈다고 했어. 형의 죽음으로 인해 제일 이득을 본 쪽도 정진건설이고.”

“그 생각을 안 해봤던 건 아닌데 김태형은 알리바이가 명확해. 그날 갑자기 일본 출장이 잡혀서 출국했었거든. 이미 출입국 기록이랑 CCTV 확인했고.”

그럼 대체 누굴까.

“모든 상황을 전부 다 고려해봐야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김태형 쪽에서 사주한 게 아닌가 싶다.”

“사주라…….”

“지금 무원이형 죽음에 관련되어 있는 건 정진그룹이랑 권중식 의원이야. 당시 무원이 형은 권중식 의원과는 아무런 교집합이 없었어. 그러니 남은 건 정진그룹이지. 김태형과 가깝게 지냈던 형이니까, 그 살인범들을 김태형이 움직였다는 가설이 현재로써는 제일 가능성 있어.”

논리적인 지혁의 추리에 낙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서류를 손에서 내려놓은 낙원이 마른 얼굴을 쓸어 내리며 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당시 검찰청에 그 사건 담당하다가 그만 두신 검사님이 따로 있어. 내일 오후에 그분 뵙기로 했고. 일단 문창수씨는 신변보호 차 내 별장에 모셨고, 정은호도 우리 쪽에서 먼저 접촉해서 교도소 쪽에 얘기해뒀으니 당분간은 별일 없을 거야.”

“내일 오후에 나도 같이 가.”

“그래.”

낙원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지혁을 따라 일어서서 그의 넓은 어깨를 묵직하게 두드려주었다.

“고생했다. 미안하고, 고맙다 강지혁.”

“나야말로. 얘기 듣느라고 고생했어 강낙원. 오늘은 가서 이만 쉬어라. 그래야 내일부터 제대로 시작하지.”

“너도 좀 쉬어 오늘은.”

“난 돈 벌어야지.”

“내 주식 줄게.”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낙원의 말에 책상 위에 올려둔 서류를 집어 든 지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 몫 얼마나 된다고 그걸 주겠대? 됐다 됐어.”

“나 무시하냐?”

“어. 너 돈 가지고 나한테 덤비지 마. 내가 너한테 줬으면 줬지 네 걸 받겠냐?”

“엄청 기분 나쁘네 이거.”

“그러니까 호텔 네가 물려받는다고 하지 그랬어.”

“됐다. 난 갈 테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쉬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었다.

찢어지도록 아픈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이렇게나마 서로 위로해주고 있다는 것을.

지혁은 사무실 앞에 서서 멀어져 가는 낙원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형수님. 우리 강낙원 잘 부탁 드립니다.’

오늘만 아프고 나랑 같이 기운내자 강낙원.

쨍그랑.

“다시 한 번 말해봐. 누가 뭘 해?”

제 옆으로 날아가 벽에 맞고 땅으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난 유리컵을 보며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 애초부터 죄송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귓가로 내리 꽂힌 매서운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죄송합니다.”

“기어이 문창수를 한국으로 데려왔다는 거지 강지혁이.”

“예 회장님.”

문창수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을 때 없애버렸어야 한다.

강지혁의 행동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테이블 위로 말아 쥔 주먹에 핏줄이 도드라지며 중년 남자의 턱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된 이상 손 놓고 볼 수는 없지. 강지혁이 알고 있으면 강낙원이 아는 것도 시간 문제야. 둘이서 덤비면 진짜로 답 없어.”

“어떻게 할까요?”

깊은 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중년 남자는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남자를 가까이 불렀다.

‘회장님’이라는 중년 남자에게로 다가간 남자는 여느 때처럼 임무를 받았다.

“권민지 걔. 한국으로 데려와.”

“권민지를 말입니까?”

“그래. 우리 태형이 목을 죄어오면 여기서도 같이 죄어줘야지. 권민지 데려오면 강낙원 마누라인 그 여자가 움직일 거야. 둘이 잘 붙들어놓고, 내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일이 생기면 강지혁이랑 강낙원이 더 의심을 할거야. 여차하면 다 죽여버려. 집에 불을 지르던, 교통사고를 가장하던. 그 일은 아예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예.”

중대한 임무를 받은 남자가 커다란 방을 나서자 중년의 남자는 제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좀 봅시다, 권의원님.”

[지금부터 탑승 수속을 시작하겠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창가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던 민지가 몸을 일으켰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밤 비행기로 한국에 가야 하는데, 새벽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낙원과 은유가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며 지혁이 급히 한국으로 오라고 전해달라고 했다며 노강재단의 직원이 연락해왔다.

대충 짐을 꾸려 보내준 티켓을 들고 공항으로 달려왔고,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힘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낙원과 은유와 영상통화를 하며 곧 만난다는 사실에 설레어 했는데, 갑자기 교통사고라니.

민지는 제발 선생님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긴 비행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민지는 입국수속을 어떻게 마쳤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면 강지혁 이사님께서 보낸 재단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사람 따라서 오면 되십니다.’

비행기 티켓과 함께 전달받은 메시지에 입국장으로 나와 무수히 많은 사람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던 민지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양복 입은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저기, 혹시 노강재단에서 나오셨어요?”

“예. 권민지 양 되십니까?”

“네! 저희 담임선생님은요? 은유 선생님은요? 어떻게 되셨어요? 어느 병원이에요?”

“일단 가시죠. 가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심각한 남자의 표정에 민지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그 뒤를 쫓았다.

돌아선 남자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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