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84화 (84/112)

84. 미치도록 행복하다2016.12.16.

“이번엔 네가 사.”

“아, 왜 또 나야? 저번에도 내가 샀는데?”

“저번엔 내가 샀다고. 이번엔 네 차례야.”

넓은 방 안, 건장한 남자 셋이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투닥거리는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무원과 지혁에게 밀려 침대를 벗어난 낙원은 두 남자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자주 시켜먹는 중화요리 전문점에 전화를 걸었다.

여느 때처럼 같이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그 안에서 세 사람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다 그 침대 위에서 무원이 지워졌고, 뒤이어 지혁이 지워졌다.

혼자 남겨진 낙원은 주위를 둘러보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눈을 떴다.

“…….”

벌어진 시야 사이로 들어온 건 하얀 천장과 침실 안으로 가득 쏟아져 내리고 있는 햇빛이었다.

달콤한 꿈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 옆자리를 본 낙원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베개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방 안에는 자신 혼자였다.

문득 제 몸을 덮쳐온 불안함에 침대를 벗어난 낙원이 방문을 열자 주방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발을 옮긴 그는 제 시야로 꽉 들어찬 뒷모습을 보자마자 팔을 뻗어 품에 가뒀다.

“엄마야!”

“없어진 줄 알고 놀랐잖아.”

“미안해요. 낙원씨 피곤할까 봐 안 깨웠어요.”

밤새 울다 지쳐 잠든 낙원을 어르고 달래주던 은유는 다른 때보다 일찍 눈이 떠져 조심스럽게 나와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밀린 청소를 하고 아침식사를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껴안는 손길에 놀랐다.

제 허리를 끌어안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는 낙원을 보며 은유가 기분 좋게 웃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침 먹어야죠 낙원씨.”

“이러고 다닐 거야.”

무슨 말인가 싶던 은유는 곧 그 의미를 깨달았다.

식사 준비를 하는 내내 낙원은 은유를 뒤에서 안은 채로 그녀가 가는 곳마다 졸졸 쫓아다녔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쫓아다니는 것 같으면서도 저보다 훨씬 몸이 큰 그가 이러고 있다는 게 귀엽게 느껴져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왜 자꾸 웃어.”

“좋아서요. 낙원씨 오늘 왜 이렇게 귀여워요?”

“귀엽긴 누가 귀여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와는 달리 두 손은 여전히 은유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앞으로 간 은유가 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그에게 내밀자 호로록 하고 받아 먹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은유를 안았다.

“우리 밥 먹어야 되잖아요 낙원씨.”

“이리 와봐.”

잘 차려진 음식들 앞에 앉은 낙원이 은유를 끌어당겨 제 옆자리에 앉혔다.

“이러고 밥을 먹자구요?”

“어. 왜, 싫어?”

“아, 아니 싫은 게 아니라…….”

“그럼 이러고 먹어.”

대체 손을 꼭 잡은 채로 밥을 어떻게 먹자는 건지. 하고 생각하던 은유에게 낙원이 뜨끈한 밥을 한 숟가락 퍼서 그녀의 입 앞에 대령했다.

“아.”

“……네?”

“아. 하라고.”

“아니, 제가 먹어도 되는데…….”

“빨리.”

뒤에서 아이처럼 쫓아다닐 땐 언제고, 이젠 밥을 먹여 주겠단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도 했지만, 은유는 어색해하면서도 그가 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낙원은 은유에게 한 입 먹이고, 저도 한 입 먹고, 반찬도 주고, 국물도 떠주고. 그 행동을 반복하며 어렵지 않게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그리고 반찬을 정리하는 은유를 다시 뒤에서 안은 그가 싱크대로 가 그녀를 안은 채로 그 뒤에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제가 할게요.”

“가만히 있어. 내가 할 거야.”

불편할 법도 한데, 낙원의 팔이 길어서인지 그는 힘든 내색 없이 그 상태로 설거지까지 마쳤다.

제 허리를 감싸는 낙원의 손을 붙들고 뒤를 돌아선 은유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또 뭐 할까요?”

“뭐 하고 싶은데?”

“음, 우리 양치부터 해요.”

낙원의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온 은유는 남편의 칫솔에 치약을 짜주었고, 그의 입에 물려주고는 제 칫솔에도 똑같이 치약을 짠 뒤 입에 넣었다.

나란히 서서 양치를 하는 모습을 거울로 보는 건 정말이지 이상하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좋았다.

그렇게 양치를 마치고 욕실을 나서는 순간에도 낙원은 은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작은 몸을 꼭 붙들어 안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운 게 비가 오려나 봐요.”

“그러게.”

“낙원씨 비 오는 거 좋아해요?”

“별로. 넌?”

“전 좋아요. 비 내리는 소리도 좋고, 특유의 흙 냄새도 좋고, 그 분위기도 좋아요.”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이야기를 하는 은유를 보며 낙원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허했던 마음이 은유로 꽉 들어차 너덜너덜해진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기분이 들었다.

“책 읽을까?”

“네!”

각자 읽을 책을 챙겨 거실로 나온 부부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낙원이 은유를 끌어당겨 제 다리 사이에 앉히고는 등 뒤로 그녀를 안았다.

“낙원씨?”

“나랑 같이 보자.”

“네?”

“책, 같이 읽자.”

남편의 투정 아닌 투정에 은유는 행복한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 뒤로 느껴지는 든든함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선 책을 펼쳤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펴고 같은 구절을 읽는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제 등 뒤로 바로 느껴지는 남편의 존재에 은유는 책을 읽으면서도 ‘미치도록 행복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책을 읽던 은유는 허리 뒤쪽 부근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기……. 낙원씨.”

“왜.”

‘왜’라니.

분명 제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어 허리 뒤쪽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는 건 당신 손인데.

“그……. 저희 책 읽는 중인데…….”

“알아.”

“……아니, 이러면 제가 집중을…….”

말끝을 흐리는 은유를 보며 낙원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을 제 손으로 옮긴 뒤 소파 옆쪽으로 치웠다.

그리고 은유의 어깨에 제 턱을 대고선 허리 부근을 매만졌던 손을 점점 더 위로 올렸다.

“나, 낙원씨.”

“안고 싶어.”

“네, 네?”

은유는 순간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놀란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아니, 책 읽자며. 잘 읽다 말고 갑자기 왜?

그렇게 생각하던 은유는 어느새 부드러운 살결 위를 쓰다듬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움찔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몸을 배배 꼰 것도 잠시, 오늘따라 유난히 저와 붙어 있으려는 남편이 걱정이 된 그녀는 몸을 돌려 앉아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커튼 쳐주세요.”

은유의 한마디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낙원이 커다란 창문의 끝에 달린 커튼을 쳤고, 그렇지 않아도 우중충한 날씨로 인해 어두웠던 실내는 커튼을 침으로써 완전히 깜깜해졌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는 사이, 서로의 실루엣만 보였고 소파 위에 앉아 있던 은유가 두 팔을 벌렸다.

그 안으로 파고든 낙원은 그대로 은유를 눕혀 제 안에 가두고는 천천히 얼굴을 내렸다.

“오늘 좀 욕심 내도 돼?”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에 은유는 커튼을 쳐달라고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붉어진 얼굴로 ‘네’하고 작게 대답했다.

은유에게 제 입술을 내림과 동시에 그녀의 티셔츠를 벗겨낸 낙원이 보드라운 살결 위로 입술을 옮겨 이곳 저곳에 제 흔적을 새겼다.

“아……. 낙원씨…….”

제 품에 안겨 제 이름을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심장을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의 몸에 걸쳐져 있던 옷가지들이 하나 둘씩 소파 아래로 떨어지고, 얼마 후 집안은 달콤한 열기로 가득 찼다.

흔들리는 시야로 저와 눈을 마주해오는 낙원을 보며 은유는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작은 몸을 제 안에 품고 볼과 눈, 입술, 어깨에 입을 맞추며 얇은 허리 아래로 손을 넣어 안고는 제 몸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 행동에 은유의 예쁜 입에서 잘은 숨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낙원은 그 소리를 전부 집어 삼키겠다는 듯 입술을 부딪히며 은유와 숨을 나누었다.

얼마 후, 어둡고 조용한 거실의 소파 위에 몸을 겹쳐 누운 두 사람은 제법 고른 숨을 내뱉으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땀이 마르고 추위를 느낀 은유를 위해 침실에서 이불을 꺼내온 낙원 덕분에 도톰한 이불 아래에서 맨몸으로 살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엔 행복함과 평온함이 공존했다.

은유의 이마를 부드럽게 문지른 낙원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쪽 입을 맞추었다.

“예쁘다.”

“낙원씨도요.”

“내가 예뻐?”

“네. 저한테는 예뻐요.”

남편이니 예쁜 건 당연했고, 실제로도 그의 외모는 잘생김과 예쁨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에 은유는 일말의 거짓도 없이 답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잘난 사람이 제 남편이라니.

“너무 신기해요.”

“뭐가?”

“이렇게 낙원씨랑 마주보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해요.”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하는 은유가 예뻐 낙원은 또 한번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도 그래.”

“그래요?”

“어. 이렇게 예쁜 여자가 어디서 나타났나 하고.”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말을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전해오는 남편의 모습에 설렌 그녀가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너른 가슴팍에 제 이마를 폭 기댔다.

그 기댐에 몸 전체가 떨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낙원이 얇은 허리를 더 힘주어 안았다.

“좋다.”

‘좋다’는 그 말 한마디에 은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낙원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제가요?”

이런 은유의 모습은 낙원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를 무서워하고 어려워하기만 했던 아내가 이렇게 애교를 부리고 예쁜 눈으로 봐줄 때면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드는 것 같다.

“그래. 많이 좋아해, 내가.”

“……저 방금 심쿵했어요.”

“왜, 너무 좋아서?”

“네. 저도 낙원씨 많이 좋아해요.”

온 몸이 간지러울 정도로 기분 좋은 설렘과 떨림에 은유는 문득 처음 그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낙원씨가 이렇게 다정한 사람일 줄은 전혀 몰랐는데.”

동의 한다는 듯 낙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야.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네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은 더더욱 몰랐고.”

소파 위에 서로를 끌어 안고 누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첫 만남을 회상했다.

날이 좋던 어느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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