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80화 (80/112)

80. 유혹2016.12.12.

“우와. 그럼 우리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가요?”

“어. 방학이라 자원봉사 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은 모양이야.”

“어디든 도와줄 수 있는 곳이면 좋죠!”

낙원의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현관을 들어서며 이번 주에 자원봉사를 갈 보육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학하게 되면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고 봉사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 방학 때만이라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지난번 방문했던 곳은 이번 주엔 다른 사람들이 오기로 했다고 하기에 다른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신청해두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찬 공기가 두 사람의 몸을 감쌌다.

“보일러 안 켜고 있었어?”

“아, 정신이 없었어요.”

급하게 거실로 가 벽면 한쪽에 붙어 있는 버튼을 누르는 은유를 보던 낙원이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집 비워서 미안해.”

“아니에요. 저도 잘못한 건데요 뭐.”

“내가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처음으로 심하게 다퉜고, 처음으로 외박까지 했으니 제 잘못이 컸다.

낙원은 성숙하지 못했던 제 모습을 반성하며 은유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그 사과에 되려 미안해진 그녀가 고개를 휙휙 저으며 너른 품에 안겨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요. 그나저나 이틀 동안 어디 있었어요? 본가에 있었어요?”

“아니. 강지혁 집에 있었어.”

“네? 도련님 집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같이 있는 그림이 영 어색하게만 느껴지는데.

의아한 듯 쳐다보는 은유를 내려다보며 낙원이 작게 웃었다.

“이상하게 강지혁이 생각나서.”

무원이 죽기 전엔 서로의 집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녔던 게 익숙했던 탓인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혁의 집은 어색하지 않았다. 전보다 조금 더 쓸쓸한 것 같다는 느낌만 뺀다면.

낙원이 그의 집에 있었으면서, 도련님은 제게 아무런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 하긴 뭐, 낙원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전해주고 본가까지 데려다 준 것만 해도 지혁에게 있어선 큰 일이었을 것이다.

“도련님한테 감사하다고 해야겠어요.”

“또 둘이 밥 먹게?”

제법 날이 선 말투와 달리 부드럽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은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낙원씨랑, 저랑, 도련님이랑, 주원 아가씨까지 불러서 다 같이 먹어요.”

“그래. 그러자.”

“피곤할 텐데 얼른 씻고 나와요 낙원씨. 내일 또 출근하려면 일찍 자야죠.”

‘씻고’와 ‘자야죠’라는 단어에 꽂힌 낙원은 은유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같이 씻을까?”

“네에? 돼, 됐어요!”

“아직도 그렇게 쑥스러워?”

“다, 당연하죠!”

지난 번엔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해놓고, 막상 같이 샤워를 하자고 하면 이렇게 쑥스러워 하니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같이 욕조에 몸을 담근 적은 있지만 샤워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차이냐고 하겠지만 은유에겐 엄연히 달랐다.

잘 보이지 않는 거품이 풀어진 욕조 안에 있는 것과, 전신을 다 드러내놓고 있는 건 정말 천지차이였다.

“우리 이틀이나 못 했는데.”

“뭐, 뭐, 무, 무슨!”

제게로 허리를 숙여오는 남편의 모습에 또 다시 얼굴이 붉어진 은유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내뺐다.

“왜 피해.”

“아, 아니 너무 갑작스러워서…….”

눈에 띄게 당황하는 은유를 보며 낙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는 불그스름한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선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피곤할 텐데 쉬게 해줘야지. 너도 들어가서 씻어.”

평소 같았으면 밀어 붙였을 그가 오늘은 순순히 물러나주었다. 왜지?

제게서 떨어져 등을 돌려 욕실로 향하는 낙원을 보며 은유는 유난히 그의 어깨가 쳐진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차 싶었다.

본인도 상처를 받았으면서 긴 시간 동안 눈물을 쏙 뺀 저를 걱정하는 게 틀림 없었다.

저렇게 자상한 남편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여전히 부족한 제 모습을 탓한 은유는 안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며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얼굴로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읽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참담하게 변했다.

“……이런걸 좋아한다고? 왜?”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 오랜만에 친구인 소희에게 전화를 건 은유는 다짜고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소희야. 남자 유혹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내가 낙원씨를 좀 많이 속상하게 했는데, 풀어주고 싶어서. 아니 풀기는 했는데, 그래도 좀 모자란 것 같아서.”

“[……푸하하!]”

“아 왜 웃어!”

“[너 인터넷에 검색 해봤지?]”

이런 귀신 같은 지지배.

“어떻게 알았어?”

“[보나마나 뻔하지. 검색했는데 네가 원하는 내용은 없었으니까 나한테 전화를 했겠지.]”

“와……. 너 진짜 눈치 대박이다 소희야.”

“[그래서, 인터넷에선 뭐라는데?]”

차마 제 입으로 말하기가 민망한 것들을 간신히 전달하고 나자 소희는 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너 때문에 웃는다 진짜. 근데 아예 틀린 말도 아니야.]”

“뭐? 대체 어디가?”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남편도 똑같은 남자야. 스킨십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냐? 그리고 너 맨날 부끄럽다고 먼저 제대로 하지도 않았을 거면서.]”

“……너 우리 집에 CCTV설치했어?”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이건 나도 써먹었던 건데 효과가 아주 좋아.]”

확신에 찬 친구의 목소리에 옷을 벗고 화장을 지우던 은유의 얼굴에 궁금증이 한 가득 피어 올랐다.

“뭔데?”

그리고 정확히 20분 뒤.

은유는 문이 굳게 닫힌 드레스 룸 안에서 벌써 몇 분째 심각한 표정으로 전신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대체 이런 걸 왜 좋아하지? 아니, 그리고 낙원씨가 이런 걸 좋아한다는 법이 있나?”

소희가 알려준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그리고 흔한 방법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연출되었던 장면.

샤워를 마친 은유가 드레스 룸으로 들어와 몸에 걸친 것은 제 옷이 아니었다.

낙원의 옷인 하얀 색의 와이셔츠 하나만 몸에 걸친 그녀는 거울 속 제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몸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며 여전히 의문 가득한 얼굴이었다.

‘[속옷만 챙겨 입고 와이셔츠를 입어. 네 거 말고, 낙원오빠 걸로. 꼭 하얀색 와이셔츠 하나만 걸쳐야 돼. 단추는 한 두어 개 정도 푸르고. 머리는 좀 젖은 게 좋아.]’

‘……그런 게 효과가 대박이라고?’

‘[야. 너 내일 나한테 고맙다고 절할 준비나 해.]’

‘너무 흔하잖아. 그리고 이런 거 싫어할 수도 있고.’

‘[얘가 아직도 뭘 모르네. 왜 흔하겠어? 그만큼 성공률이 높으니까 너도 나도 다 하는 거지. 그리고 이런 거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냐? 걱정 말아라 친구야. 이건 백프로다, 백프로.]’

대체 뭘 믿고 백프로라는 거야. 아무리 봐도 그냥 좀 이상한데.

특히나 낙원은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서 작은 제 몸에 걸치니 와이셔츠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한참이나 덮었고 소매는 길게 내려와 손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섹시하게 보이려면 좀 보여야 하는 거 아냐? 아니지. 너무 대놓고 보여도 좀 그런가?

똑똑.

“엄마야!”

“심은유. 안에 있어?”

“어, 어. 네! 왜, 왜요?”

“거기서 뭐 해. 안 자?”

“아, 나, 나가요!”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지 닫힌 문 앞에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은유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다시 한 번 거울을 쳐다보았다.

목까지 채웠던 단추를 두어 개 푸르자 쇄골과 하얀 피부가 드러나 꼭 채운 것보단 좀 나아 보였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을까? 혹시 옷 뺏어 입었다고 화내진 않을까?

한없이 의심의 생각을 키우던 은유는 고개를 휙휙 젓고는 방문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애 고수인 소희의 조언이니 일단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방문 손잡이를 돌렸다.

“뭐 하느라 문까지 닫고 있……었…….”

드레스룸 문 옆에 팔짱을 끼고 기대서 있던 낙원은 방문이 열리고 드러난 은유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뭐지, 이거.

지금 눈 앞에 있는 게 뭐지 대체?

“……심은유.”

“역시, 이상하죠? 망했어 진짜. 저 옷 좀 갈아입고 올-”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낙원의 표정에 은유는 ‘망했다’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서려다 거센 힘에 의해 다시 몸이 돌려 세워졌다.

“뭐야, 이거.”

“네?”

“뭐냐고.”

무언가 잔뜩 억누르고 있는 목소리에 은유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분명 멋대로 옷을 꺼내 입어서 화가 난 것이리라.

뭐? 고마워서 절을 해? 퍽이나.

“죄, 죄송해요. 어, 그냥 낙원씨 옷은 어떤가 하고……. 하하.”

“내 옷이 어떤가, 입어봤다고?”

박소희.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유혹은 무슨, 이러다 더 미움 받게 생겼다고.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제 몸을 꿰뚫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에 사로잡힌 은유는 결국 작은 숨을 토해내며 슬그머니 낙원의 티셔츠를 쥐며 작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그……. 음. 아무래도 낙원씨가 저 때문에 속상했을 거고, 기분도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서……. 우리 이틀이나 떨어져 있기도 했고…….”

“그래서.”

“어……. 아, 정말. 낙원씨랑 알콩달콩하려고, ‘남자 유혹하는 법’을 검색했더니 막 이런 게 나오잖아요. 소희한테도 물어봤는데, 남자들은 여자가 하얀 와이셔츠 입고 있으면 좋아한다 길래…….”

이게 대체, 무슨.

낙원은 그야말로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작은 체구에 걸쳐진 제 와이셔츠 아래로 드러난 하얀 다리와 긴 소매로 잘 보이지 않는 손, 두어 개 푸른 단추 사이로 보이는 깊은 쇄골과 눈처럼 새하얀 피부.

보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섹시함을 철철 흘리고 있는 아내 때문에 벌써부터 피가 뜨거워 지는 것 같은데 ‘남자 유혹하는 법’을 검색했단다. 제 기분을 풀어주려고.

“……내가 진짜, 진짜 너를 어떻게 해야 돼.”

“죄, 죄송해요……. 화 많이 나셨어요? 어, 얼른 갈아입고 나올- 꺅!”

“가긴 어딜 가.”

그대로 은유의 다리 뒤와 허리로 손을 넣어 안은 그가 놀라 벌어진 입에 제 입술을 맞대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은유가 눈을 감을 새도 없이 입술을 붙인 채로, 그녀를 안고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간 그는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그녀를 눕힌 채로 키스를 퍼부었다.

입술을 물고 당기며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는 남편의 키스에 정신이 아찔해진 은유는 본능적으로 그의 티셔츠를 꼭 쥐었다.

여전히 입술을 부딪힌 채로, 그 달콤한 공간을 휘젓는 채로 제 티셔츠를 잡은 손을 떼어 깍지를 낀 그가 다른 손으로 잘록한 허리 라인을 움켜쥐었다.

작은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남편의 아래에서 숨이 찬 은유는 작은 손을 말아 쥐고 그의 가슴팍을 콩콩 때렸다.

그 손마저 붙들려 잡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이 떨어지며 그녀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하아, 하. 수, 숨은 좀 쉬어야-”

코 앞에서 내쉬는 숨소리에 다시 자극을 받은 낙원이 아내의 입을 막고선 제 와이셔츠 단추를 빠른 손길로 풀어냈다.

놀람으로 인해 잠시 눈을 크게 떴던 은유가 다시 두 눈을 꼭 감으며 긴장으로 인해 손과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안달이 난 그는 급한 마음에 오늘따라 잘 풀어지지 않는 단추를 몇 개 남겨놓고 결국 두 손으로 잡아당겨버렸다.

투둑 소리를 내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단추에 놀란 건 은유 혼자였다.

낙원은 이 따위 셔츠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얼마 전 어린 아이가 허락도 없이 만졌던 벌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저만의 부분을 커다란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

맞닿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 나온 소리에 낙원의 손길이 점점 더 대담해졌다.

그리고 은유는 비로소 깨달았다.

남편 유혹하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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