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자선바자회2016.12.06.
두 사람의 봉사활동은 오후 5시를 넘기고 나서야 끝이 났다.
고작 몇 시간뿐이었지만 아이들과 정이 들어 인사를 나눌 때에는 서운해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차에 오른 뒤로 말이 없는 은유가 걱정이 된 낙원은 작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쉬워?”
“……네. 세진이도 마음에 걸리고…….”
선물로 가져간 곰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로 저를 쳐다보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다.
마치 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듯한 눈빛이 몇 번이고 은유를 뒤돌아보게 만들었지만 결국 멀어지고야 말았다.
“앞으로 자주 오자.”
“정말이요?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힘 빼지 말고, 기운 내. 그래야 또 애들 보러 가지.”
“네! 그래야겠어요.”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씻고 나온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티비를 켰다.
채널을 돌리던 낙원은 뉴스 채널에서 나온 ‘권중식’이라는 이름에 멈칫했다.
은유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그를 쳐다보다 다시 브라운관으로 눈을 돌렸다.
[다음 대선까지는 1년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요즘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권중식 의원의 행보가 주목 받고 있습니다. 늘 후원을 해오던 장애인 복지시설에 아내와 함께 봉사활동을 갔는데요, 이미 시설에서 그는 유명인사였습니다. 김아름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교무실에서 마주했던 얼굴이 브라운관을 가득 매웠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직접 장애인들을 돌보는 모습, 말이 어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습에 은유의 두 손에 잘게 떨렸다.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대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지.”
낙원의 커다란 손이 가늘게 떨리는 은유의 손을 꽉 마주잡았다.
“안돼요.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라뇨.”
“그래. 안 돼. 근데 이미지 세탁을 너무 잘했어.”
“……안돼요. 우리 민지가 얼마나 힘들어했는데, 얼마나 괴로워하는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신고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민지가 피해자이니까.
뉴스가 끝나고 티비 전원을 끈 후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낙원이었다.
“일단 기다려보자. 내가 되도록 빨리 알아볼 테니까.”
“……우리 민지 그런 세상에서 살게 할 수는 없어요.”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우리 조금 기다려보자.”
이제 막 욕실에서 나온 지혁은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식탁 앞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엎어놓은 컵을 바로 내려놓고 차가운 물을 따르던 그는 뻐근한 뒷목을 매만지며 컵을 들어올렸다.
‘난 그 때 진술 다 했습니다. 더 할말 없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던 대답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차가운 물을 넘기는 지혁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처음 경찰에 진술했을 땐 분명 수상한 자들을 봤다고 했었죠.’
‘……난 그런 적 없습니다.’
‘그 뒤로 정확히 3일 뒤에 진술을 바꿨고요. 한 남자의 소행이라고. 그리고 나서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 됐다? 이거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그 말에 시선을 땅으로 떨어뜨렸던 것과 가늘게 떨리던 어깨가 지혁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것을 사주했는지는 당신만이 알고 있겠죠. 근데 그거 아십니까? 알아내고자 한다면 내 힘으로 못할 건 없습니다 문창수씨. 난 당신한테 부탁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대기업 총수 아들을 죽일 정도의 힘과 잔인함이 당신에게까지 뻗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쪽에서 당신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버려지게 될 겁니다. 아주 처참하게.’
분명하게 전해오는 지혁의 목소리에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거짓이라곤 느낄 수 없었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이 제 귀로 정확하게 박혀 들어왔을 때 그 공포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그를 덮쳤다.
‘내가 당신을 만났다는 건 어떻게 해서든 그쪽 귀로 들어갈 거고, 그로 인해 당신 신변은 위험해질 겁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문창수씨 당신이 결정할 일입니다. 계속 그렇게 돈에 휘둘려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지, 다 털어내고 새로 시작할지. 아, 방금 전에 말했듯이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당신 목숨 잘 간수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그에게 현재의 상황도 제대로 일깨워줬으니 남은 건 기다림뿐이었다.
분명 빠른 시일 내로 답이 올 것이다.
주방에서 방으로 걸음을 옮긴 지혁은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 놓은 다섯 장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총 다섯 명의 용의자. 그리고 유난히 낯이 익은 한 장의 사진 속 얼굴.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거워진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 드레스 룸으로 향한 지혁은 수많은 와이셔츠들 중 깔끔한 하얀 색을 꺼내 탄탄한 몸 위에 걸쳤다.
목부터 채우기 시작한 단추는 소매 단추를 꽉 여미고 나서야 틈을 감추었고 거울 앞에 선 그는 마지막으로 제 모습을 확인하고는 방을 나섰다.
.
“와. 너무 예쁘세요!”
분명 저를 보며 한 말인데 은유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퇴근 후 낙원과 함께 찾은 곳은 강남에 위치한 한 샵이었다.
건물 전체가 검정색으로 도배되어 1층부터 4층까지 미용실, 메이크업 실, 드레스 실과 VIP전용 실을 갖추고 있는 이곳은 몇 달 전 결혼하기 전에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왔던 곳이었다.
얼마 전 할머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조만간 어머님인 수연이 자선바자회를 여는데 낙원과 함께 참석해주었으며 좋겠다고.
낙원은 불편해할 은유를 생각해서 거절했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은유가 괜찮다며 그를 말렸다.
늘 받기만 했는데 이런 것쯤이야 열 번도 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알았다고 답했는데 오늘 보니 좀 무리일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피부가 고우셔서 뭐든 다 잘 어울리시네요.”
끊임없이 쏟아지는 직원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은유가 어색한 듯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평소 수수하게 화장을 했던 얼굴은 전문가의 손에 의해 제법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덮어졌고, 늘 길게 늘어뜨리거나 하나로 질끈 묶었던 머리는 예쁘게 말아 올려 반짝이는 보석이 박힌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어깨 끈이 없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옅은 버건디 색의 긴 튜브 탑 드레스에 평소 잘 신지 않던 높은 굽의 힐. 목에 걸린 반짝이는 목걸이와 귀 밑으로 길게 내려오는 귀걸이, 가느다란 팔에 둘러진 얇은 팔찌까지. 전부 다 어색한 것들이었다.
아직까지 제 모습이 적응이 되질 않아 거울 앞에 멍하니 서있던 은유는 제 뒤로 다가오는 한 남성에게 시선이 빼앗겼다.
큰 키의 몸에 맞춰 제작된 듯한 핏의 짙은 검정 색의 정장 바지와 팽팽한 와이셔츠, 그 위로 걸친 짙은 버건디 색상의 자켓.
왜 학생들이 입을 모아 ‘핫바디’라고 외치는지 제대로 깨달은 은유가 입을 헤 벌린 사이, 가까이 다가온 낙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몸을 살짝 숙였다.
“유혹하는 거야, 지금?”
속삭이듯 전해진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은유의 얼굴이 붉어졌고 지켜보던 직원은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전신거울 앞 커다란 공간에 둘만 남겨지자 분위기가 더 이상해졌다. 특히 저 위에서 흩어져 나오는 조명 탓에 그렇지 않아도 예쁜 아내가 더 빛이 났다.
예쁜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평소 예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귀엽다’는 이미지가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대놓고 섹시하게 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그, 그만 좀…….”
“바자회고 뭐고 때려치우고 집으로 갈까?”
점점 농밀해지는 남편의 시선에 은유가 더 붉어진 얼굴로 그의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그만해요 정말. 창피하단 말이에요…….”
부끄러운 듯 수줍게 양 볼을 붉히고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낙원은 당장이라도 은유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한쪽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화장 지워질까 봐 뽀뽀도 맘대로 못하겠네.”
“응. 조심해야 돼요. 스텝 언니가 애써 신경 써주셨단 말이에요.”
“이렇게 예쁜 건 나만 봐야 되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장난해? 여기가 우리 침실이 아닌 걸 감사하게 생각해. 너 때문에 진짜 미치겠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해오는 남편이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준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좋았기에 은유는 그저 작게 웃으며 힐을 신은 발에 힘을 주어 까치발을 서고는 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추었다.
“이 정도로 봐주세요.”
은유가 건네온 기습 뽀뽀에 정신이 아찔해진 낙원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던 찰나 저 밖에서 흠흠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두분 출발하셔야 합니다.”
타이밍도 참 뭐처럼 맞춘 직원의 목소리에 낙원은 아쉽다는 듯 입을 다물고는 은유의 팔을 제 팔에 끼워주었다. 그리고 그 어느 날보다 미치게 섹시한 아내를 보며 마지막으로 작게 속삭였다.
“집에 돌아가면 각오해. 그 뽀뽀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선전포고와도 같은 낙원의 말에 심장폭행을 당한 그녀는 저를 옭아매는 시선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만족한 얼굴로 웃는 그를 따라 나섰다.
샵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 나란히 오른 지 20분 뒤, 노강호텔의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이미 모여 있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어머, 웬일이야.”
“저 둘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커다란 내부에 저마다 한껏 치장을 하고 온 사람들을 발견한 은유는 그 기에 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어머님인 수연이 여는 바자회는 1년에 한 번씩 있는 행사라고 들었다. 그 때마다 낙원은 늘 조용히 자리만 지키다가 가곤 했는데 이번엔 두 사람이 결혼했으니 함께 와주었으면 한다는 말에 승낙을 하고 그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행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평소 텔레비전으로 봤던 정치계 사람들과 신문 경제면에서 봤던 기업의 주인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톱스타들도 중간중간 끼어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네, 네.”
은유의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바로 느낀 그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녀를 달래고는 연회장 앞쪽으로 향했다.
“어머, 우리 은유 왔니?”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수연이 두 사람을 발견하곤 환한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
그 모습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의 여성들이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았고, 수연은 그들에게 둘을 소개시켰다.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에요. 이쪽은 한성그룹 사모님, 강성호텔 사장님, 배우 이은희씨.”
10대 대기업 안에 드는 기업의 사모님에 노강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인 강성호텔의 여사장님, 그리고 톱 배우 이은희.
은유는 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침착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머 세상에. 며느리가 너무 곱네요 여사님. 그럼 이쪽이 낙원인가요?”
“예. 안녕하셨어요.”
어릴 적부터 봐온 사람들이기에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낙원을 보며 세 여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죽은 무원에게 가려져 있었을 뿐이지 낙원 또한 빼놓을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잘생긴 외모에 비상한 두뇌로 기업가들 사이에서 장차 크게 될 아이라며 주목을 해왔는데 갑자기 선생님을 하겠다는 소식에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그래도 집안이 노강그룹 이었기에 다들 제 여식과 결혼을 시키려고 눈에 불을 키고 있었는데 여자에는 관심도 없다던 그가 몇 달 전 갑자기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아가씨는 화려하게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선한 인상으로 호감을 갖게 하는 얼굴이었다.
여전히 아쉬움으로 입맛을 다시는 세 여자를 뒤로하고 낙원은 은유를 에스코트하며 연회장을 돌아 여러 사람에게 그녀를 소개시켰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불편할 법도 한데, 은유는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낙원의 옆에 꼿꼿하게 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일찍 왔네.”
계열사 사장과 인사를 나누던 두 사람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켜준 사장이 방금 전까지 서있던 자리로 걸음을 옮긴 남자가 은유에게 와인 잔을 건넸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색다르네요, 형수님.”
“아……. 오랜만이에요 도련님.”
거의 일주일 만에 보는 지혁은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 보였다.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일주일 동안 자리를 비운 지혁도 노강그룹 사람이었기에 이 행사에 빠질 수는 없었다.
오늘 새벽 멜버른에서 돌아온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준비를 마치고 이곳으로 나와야 했기에 피곤함이 밀려들어 모든 게 다 귀찮게 느껴졌지만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혁이 건넨 와인 잔을 은유의 손에서 제 손으로 옮긴 낙원이 말끔한 네이비 색의 수트를 차려 입은 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이 왜 그래?”
“요즘 유난히 내 걱정 한다, 강낙원?”
웃음소리가 섞인 말에 낙원은 눈을 가늘게 떴다.
“헛소리 하지 말고. 일도 없는데 무슨 출장을 일주일이나 가.”
“일이 있으니까 출장을 갔지. 내 일에 너무 관심이 많다, 너.”
예전이었으면 기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말렸을 은유는 두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에 따뜻함이 조금은 느껴져 그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차려 입으니까 못 알아보겠네요 형수님.”
“너 알아보라고 차려 입힌 거 아니니까 계속 알아보지 마.”
“……와. 진짜 충격이다 강낙원.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시끄러워. 가서 인사나 드려.”
낙원의 떠밂에 지혁은 싫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아이 같다가도 저럴 때 보면 영락없는 기업인이라는 게 강하게 느껴져 은유는 새삼 지혁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어깨에 짊어져 있는 무거운 것들에 대해 안쓰럽게 느껴졌다.
지혁을 쳐다보던 은유의 시야로 버건디 색상의 자켓이 들어찼다.
“누굴 봐 지금.”
“네? 아. 그냥, 도련님도 힘드시겠다 싶어서요…….”
“강지혁이 왜.”
“음……. 기업인이라는 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절대 아니지. 그래서 내가 안 한 거고.”
여러 사람에게 꼼짝없이 붙들려 어릴 적부터 경영 수업을 받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들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가면을 쓰고 웃고.
낙원이 사람들 틈에 섞여 웃고 있는 지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표정 감추는 건 누구보다 잘하는 녀석이 요즘 자꾸 그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낙원의 두 눈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괜한 의심이 아니길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