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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선생님-72화 (72/112)

72. 내 첫사랑2016.12.03.

지금까지 30년 넘게 살며 ‘오빠’란 소리를 들은 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동생인 주원부터 시작해서 이웃집 꼬마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서도.

늘 저에게 다가오며 ‘오빠’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았던 여자들.

대한민국 남자들은 물론이고 한국으로 유학을 온 유학생들마저 어쩔 줄을 몰라 한다는 ‘오빠’라는 그 단어를 낙원은 단 한번도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단어를 듣고 좋았다거나, 설렜다거나 했던 적도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제 아내가 처음으로 제게 ‘오빠’라고 불렀는데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설렘과 떨림이 온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이 단어가 원래 이렇게 좋은 단어였나?

이 단어가 원래 이렇게 설렌 단어였나?

이 단어가 원래 이렇게 섹시했나?

아내가 던진 말에 패닉에 빠진 사이, 은유는 더 과감하게 그에게 다가섰다.

“오빠. 무슨 생각해요?”

“……심은유. 내가 잘못했어.”

“뭘요? 오빠는 잘못한 거 없는데? 뽀뽀도 그 여자가 먼저 했다면서요. 이렇게.”

쪽 하는 달콤한 소리와 함께 볼에서 느껴진 말랑한 감촉에 낙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고작 볼에다 했을 뿐인데 마치 심장이 데인 것처럼 몸이 달아올랐다.

“근데 나는.”

“…….”

“오빠 아내니까, 이런 것도 할 수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낙원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은유가 먼저 제게 입을 맞춰왔다.

평소에도 자주 먼저 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오는 작은 손과 제 입술을 살며시 물고, 끌어당기며 안달이 나게 하고 있었다.

낙원의 입 속을 부드럽게 헤집던 은유가 이번엔 목을 감았던 손을 내려 그의 가운 사이로 드러난 가슴팍에 올렸다.

놀란 낙원이 움찔하자 다른 한 손으로 목을 끌어당겨 제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낙원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작정하고 덤비는 아내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미 ‘오빠’라는 그 말에 무너졌고, 제 가운 사이를 파고드는 손길에 또 한번 무너졌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떨어졌고, 낙원은 두 팔로 은유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후회는 네가 할 것 같은데.”

“제가요? 그럴 리가요.”

“또 뭘 할 수 있는데?”

“뭐에요?”

“그 여자는 못하는 키스도 할 수 있고, 또 뭐가 있을까?”

이렇게 된 이상 낙원은 일부러 더 은유를 자극했다.

어디까지 용기를 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 끝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낙원의 자극은 성공적이었다.

키스로 인해 풀어져있던 눈이 화르륵 타오르며 낙원의 손을 잡고 주방을 벗어났다.

“어디 가?”

“조용히 해요.”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는 힘이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낙원을 안방으로 이끈 은유는 그를 침대로 데려가 앉히고는 몸을 돌려 방문으로 향했다.

혹시 오늘 독수공방 시키려는 건가, 싶어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려던 찰나 시야가 차단되었다.

은유가 불을 끈 덕분에 어둠에 익숙해지지 못한 시야는 캄캄하기만 했고,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은유가 밀어낸 힘에 의해 그의 상체가 침대 위로 넘어갔다.

“뭐 하는 거야?”

정말 순수하게 물어오는 질문 안에 담긴 웃음에 은유는 또 한번 불타올랐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웃고 있다니!

절대 못 웃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의 위에 올라가 앉자 숨을 들이쉬는 게 느껴졌다.

낙원의 가슴팍 위에 손을 얹고 천천히 상체를 숙인 은유가 작게 속삭였다.

“혼내줄 거에요. 어른스럽게.”

“……나 진짜 잘못한 것 같은데…….”

“잘못 했잖아요. 혼나야죠.”

고개를 돌린 은유가 다시 낙원의 입술에 키스하기 시작했고, 두 손으로는 그의 허리에 묶인 가운 끈을 풀어 상체를 벗겼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낙원의 두 손이 자연스럽게 은유의 허리를 감싸왔다.

그러나 은유는 두 손으로 그의 두 팔을 꽉 잡고는 제 허리에서 떼어내었다.

“만지지 마요.”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오빠는 혼나는 중이에요. 내가 할 거니까 만지지 마요.”

“……아……. 나 진짜 미치겠다.”

“겨우 이 정도로요?”

“……어디 네 마음대로 해 봐. 대신, 너 오늘 침대 밖으로 못 나가.”

“피차 일반이네요.”

낙원이 손에 힘을 빼고 옆으로 내림과 동시에 은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이어 뜨거운 열기와 함께 달리기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친 숨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

잠결에 몸을 돌려 눕던 은유는 곧이어 제 몸을 끌어당겨 다시 돌려 눕힌 힘에 꼼짝없이 갇혔다.

답답함을 느끼며 다시 뒤를 돌려는 은유를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손이 더 강하게 몸을 죄여왔다.

결국 포기한 채로 몸에 힘을 빼고 안기자 이마로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왔다.

“나한테 등 돌리지 마.”

“…….”

“예뻐 죽겠네 진짜.”

어제 엄청난 유혹으로 저를 안달 나게 했던 아내의 모습은 정말이지, 지금껏 봐온 그 어떤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섹시했다.

몇 번이나 손이 올라갔지만 그 때마다 제 손을 잡아 내리며 몸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애가 타서 죽을 것만 같았다.

늘 받기만 했으니 오늘은 제가 하겠다며 나서는 그 예쁜 마음을,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유혹을 이길 수가 없어 그대로 놔두었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금새 적응해서 저를 천국으로 데려간 아내는 그 어떤 천사보다 아름다웠다.

밤새 아내의 밑에서 아내가 주는 사랑을 받다가 지친 그녀를 일으켜 다시 제 품에 가두고 안기를 여러 번. 마지막에는 잘못했다고 되려 사과하는 아내의 말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매력이 끝이 없네, 심은유.”

“…….”

“난 아직도 부족한데. 이렇게 잠이나 자고.”

어제 그렇게 긴 시간을 안고 또 안았음에도 은유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었다.

무슨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채워도 채워지질 않는다.

제 투정 아닌 투정에 몸을 웅크리며 안겨 오는 모습을 보며 낙원은 기분 좋게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은유가 눈을 뜬 건 10시가 넘어서였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을 뜬 은유는 주위를 둘러보다 침대 가에 앉아 저를 내려다보는 낙원을 발견하곤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미쳤다 미쳤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했지?

술이 웬수다, 술이 웬수야.

슬그머니 이불 속으로 숨으려던 은유는 낙원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왜 숨어.”

“……어, 어제 일은 다 잊어주세요.”

“절대 안 되지.”

“아……. 망했어…….”

질투심에 눈이 멀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먼저 남편을 덮쳤다. 세상에나.

부끄러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는 은유와 달리, 낙원은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일으켰다.

“밥 먹어야지.”

“저, 저 옷부터 좀 입고…….”

“다 본 사이에 뭘 입어.”

“네? 안돼요! 이, 입어야죠!”

낙원은 정말로 아쉽다는 얼굴로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은유의 옷을 가져다 주었다.

“아니, 저……. 소, 속옷도 꺼내야 하는데…….”

“입지마.”

“네에? 아, 얼른 나가요 낙원씨! 저 옷 입고 나갈게요!”

“아직도 그렇게 쑥스러워?”

“다, 다, 당연하죠!”

어제는 술김에 미쳐서 저지른 짓이지만 그런 짓을 하고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품에 안고 나가고 싶었지만 낙원은 정말 얼굴이 빨개진 은유를 배려해 작게 웃고는 방을 나섰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한 은유는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옷을 입던 은유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목부터 시작해서 쇄골, 어깨, 가슴, 배, 허벅지, 종아리, 팔, 심지어 발목까지. 어디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온 몸이 붉은 반점투성이였다.

혹시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건가 생각하던 그녀는 어제 밤 낙원이 이곳 저곳을 깨물던 생각이 나 반점들 마냥 얼굴이 시뻘개졌다.

눈물을 머금고 목 티에 긴 바지를 입고 안방을 나선 은유는 주방을 왔다 갔다 하는 낙원을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왔으면 앉……. 옷이 왜 그래?”

“……몰라서 물으시는 건 아니죠?”

“몰라서 묻는 건데.”

“이게 다 낙원씨 때문이에요!”

갑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외침에 낙원이 의아한 얼굴로 물기를 닦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가?”

한숨을 내쉬며 목 부분을 끌어내린 은유를 본 낙원이 웃었다.

아니, 또 웃어? 이 상황에?

“이거 때문에?”

“웃음이 나와요? 오늘 봉사활동 가야 하는데!”

“옷 때문에 안보여.”

“발목에도 있단 말이에요!”

“양말 신으면 안보여.”

“하…….”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낙원의 모습에 기가 찬 은유가 할말을 잃었다. 어쩜 점점 이렇게 능글맞아지는 것 같지? 아니 표정은 또 안 그러면서.

“밥 먹게 와서 앉아.”

“……미워요 진짜.”

“먼저 유혹한 게 누군데.”

“그래도 이건 좀 심했잖아요!”

“자꾸 불평하면 하나 더 만드는 수가 있어.”

“……밥 먹을게요.”

말렸다, 말렸어.

완전 망했어.

난 이제 강낙원한테 꼼짝없이 잡혔다.

주말인데다가 밤새 내린 눈으로 인해 도로가 얼어붙어 차가 막혔다.

보육원으로 향하는 낙원의 차 안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이 한 가득 실려 있었고, 운전석에 앉은 낙원은 조수석에 앉은 은유의 손을 꼭 잡고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손이 차네.”

“저 수족냉증 있어서 그래요.”

“히터 틀었는데도?”

“원래 혈액순환이 잘 안되면 따뜻하게 해줘도 그래요.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병원 가봤어?”

“예전에 한 번 한약 먹었었는데 그래도 효과 없었어요.”

“속상하게 진짜.”

차가운 손을 제 온기로 녹여주겠다는 듯 꽉 마주잡은 낙원은 손목 아래로 드러난 붉은 점을 보고 씩 웃었다.

“여기도 있네.”

“이씨……. 그만 놀려요! 진짜 낙원씨 때문에.”

“근데 어제는 ‘오빠’고, 오늘은 왜 또 ‘낙원씨’야?”

“……어제는 화 나니까 그랬죠. 혹시 낙원씨도 ‘오빠’라는 단어 좋아해요?”

“아니. 근데 네가 해주는 건 다르지.”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설렌 말들을 잘도 한다.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데.

혹시 다른 여자들에게도 그런 것일까? 그래서 그 여자들이 그렇게 남편에게 반한 걸까?

아니지. 송선생님이나 정선생님을 보면 또 그렇지 않은데.

“무슨 생각 해.”

“낙원씨는 좋아했던 사람 없어요?”

“없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에 은유는 입을 헤 벌렸다.

워낙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진짜 없었단다.

“왜요? 그 동안 살면서 단 한번도 없었어요? 아주 어릴 때도? 커서도?”

“어.”

“남자들은 첫사랑이 꼭 한 명쯤은 있다고 하던데…….”

“첫사랑은 있지.”

그럼 그렇지. 없을 리가 없지.

근데 대체 누구야? 갑자기 또 전투의지가 샘솟는 것 같아 누구냐며 따져 물으려던 은유보다 낙원이 조금 더 빨랐다.

“너잖아.”

“네?”

“내 첫사랑.”

“…….”

“너라고, 심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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