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69화 (69/112)

69. 널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2016.11.30.

“이 부분은 약분이 되니까, 그 다음에 나오는 게 3분의 2의 n제곱 마이너스 1. 자, 이 값이 얼마라고 했지?”

“6이요.”

“그래. 6이라고 했고, 이 때 상수 a의 값을 계산하라고 했으니까.”

칠판 앞에 서서 분필로 수식기호를 써내려 가는 낙원을 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했다.

수학 포기자. 일명 ‘수포자’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자신들은 구원을 받은 게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어려운 과목에 저렇게 잘생긴 외모와 섹시한 핫바디에 마성의 목소리, 또렷한 눈빛으로 수업을 해줄 선생님이 몇이나 될까?

그 어렵다는 수학을, 어려워서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수학을 담당하는 사람이 낙원이라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있어선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이 아래랑 위는 0이 되고 남는 건 9a. 9a는 6이 되니까 결론적으로 a는 3분의 2.”

그 문제 풀이를 마치자마자 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수업이 끝났다는 기쁨 반, 낙원을 못 본다는 아쉬움 반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분필을 내려놓은 낙원이 책을 덮고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오늘 수업 중에 이해 안 되는 부분 있는 사람은 교무실로 오고, 수고했다.”

“네!”

교실을 나선 낙원은 이제 막 도서실에서 내려오는 은유와 다현을 발견하곤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낙- 아니아니. 강선생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낙원씨’하고 튀어나갈 뻔한 걸 막고 ‘강선생님’이라고 정정하는 은유를 보는 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서던 학생들이 두 사람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이제 졸업할 고3 학생들은 제외하고 예비 고2, 고3 학생들이 방학 보충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강낙원 선생님과 심은유 선생님의 설렘 가득한 장면들을 보는 맛이 아주 쏠쏠했다.

특히나 저렇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널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하는 낙원이 가진 특유의 눈빛이 여학생들의 마음을 헤집어놨다.

“수업 잘 하셨어요?”

“네.”

그리고 은유 또한 떨리는 일이기도 했다.

원래 고1, 고2였던 학생들은 기존 고3 학생들과 사용하는 건물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해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래서 학생들 앞에서는 말투며 행동이며 조심하자는 은유의 제안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있는 공간에서는 존댓말을 써주기 시작한 낙원의 모습이 어찌나 섹시한지.

고작 존댓말일 뿐인데 그게 또 가슴에 불을 지핀다.

“식사 하셔야죠.”

“네!”

이미 윤주가 있는 쪽으로 사라진 다현을 따라 은유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하는 낙원을 보며 아이들은 눈에 하트를 머금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야 했다.

보충수업 기간 동안 은유보다 훨씬 일찍 끝나는 낙원은 늘 같이 점심을 먹고, 은유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을 하곤 했다.

오늘도 먼저 자리를 맡고 있던 은혁과 다현, 윤주에게로 다가간 부부는 나란히 식판을 내려놓고 앉았다.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

식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은혁이 뜨끈한 콩나물국을 한 숟갈 뜨며 입을 열었다.

“끝나고 안 잊었지?”

“당연하죠~”

며칠 전, 다같이 모여서 밥을 먹자는 은혁의 제안에 다들 흔쾌히 찬성했고 그 날이 오늘이었다.

밥을 먹기로 한 순간부터 뭘 먹을지에 대한 토론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단체 채팅 방에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하며 각자의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은혁의 강력 추천으로 돼지갈비가 낙찰되었고 다들 그 기대감에 부풀어올라 오늘 점심은 조금씩만 배식을 받아 왔다.

“내일 주말인데 다들 뭐 하세요?”

“날도 춥다는데 집에나 있어야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잖아. 윤주 쌤은 뭐 할건데?”

“저는 영화나 보러 가려고요.”

“애인도 없으면서?”

“아 진짜. 애인 없으면 뭐, 혼자 못 봐요?”

오늘도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은혁과 윤주를 보며 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사를 마친 후 카페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나서 은유와 다현을 제외한 세 사람은 3시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강선생. 우리 3시까지 뭐하지?”

“난 도서실 갈 건데.”

“뭐? 도서실은 왜? 설마 심선생님 보러?”

“어.”

낙원의 대답에 은혁은 ‘지겹다, 지겨워’하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고, 낙원은 가방을 챙기며 어깨를 으쓱 했다.

한숨을 내쉰 은혁은 주위를 둘러보다 한 사람이 없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낙원을 바라보았다.

“근데 정윤주선생은 어디 간 거야?”

“아까 은유랑 송선생님이랑 같이 올라가던데.”

“어딜? 도서실에? 아니 정선생은 또 거길 왜 갔어?”

“셋이 친하잖아. 너 안 갈 거면 나 혼자 간다.”

“아 기다려!”

결국 선택의 여지 없이 낙원을 따라 나서야만 했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학교.

은혁과 함께 도서실로 올라온 낙원은 도서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의아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박! 진짜 잘생겼다.”

“그죠? 이번에 낸 앨범이 진짜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에요!”

“와, 진짜 대박. 이 피지컬들이 나보다 동생들이라니. 충격의 도가니다.”

“에이, 송선생님이랑 동갑도 두 명이나 있는데요 뭐!”

탁자 앞에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세 여자에게 소리 없이 다가간 두 남자는 휴대폰 액정을 통해 정신 없이 흘러나오는 노래와 장면들을 발견했다.

“어머, 어머. 웬일이야.”

“세상에. 이거 뭔데 이렇게 섹시해?”

“앓다 죽을 오빠들.”

“그래, 잘생기면 다 오빠지!”

낙원의 입에 희미하게 걸려 있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세 여자는 한 아이돌의 새로 나온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신체 건장한 남자 여섯이서 노래에 맞춰 연기를 하고, 춤을 추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는데 저번에 은유가 좋다고 했던 ‘빅시’라는 그룹이었다. 이 망할 놈의 기억력.

“와. 춤 진짜 잘 춘다.”

“진짜 섹시해.”

“이런 게 바로 ‘으른섹시’라는 거죠.”

두 남자가 온지도 모른 채로 아주 휴대폰 화면으로 들어갈 기세인 세 여자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어머. 미쳤다 미쳤어.”

“춤도 너무 잘 추지 않아요?”

“어떡해. 진짜 멋있어. 나 입덕 당할 것 같아.”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아예 팔짱을 끼고 세 여자를 감상하기 시작한 두 남자는 점점 분노게이지가 상승함을 느꼈지만 일단 꾹 참았다.

“꺅! 어떡해!”

“대박!”

“미쳤어! 오빠!”

툭.

잘 참고 지켜보던 낙원은 은유의 입에서 나온 ‘오빠’라는 단어에 잡고 있던 이성이 끊어짐을 느꼈다.

“오빠?”

“오빠! 어떡해. 진짜 잘생겼어!”

반문하는 제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또 ‘오빠’란다. 거기다 ‘진짜 잘생겼어’란다.

무시무시한 기운에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고 놀란 다현과 윤주와는 달리, 은유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헙.”

“가, 가, 강선생님…….”

은유에게로 향한 낙원의 무서운 시선에 다현과 윤주가 슬며시 손을 뻗어 은유를 두드렸지만 그녀는 시선도 떼지 못하고 ‘잠시만요’라는 기가 막힌 대답만 내놓았다.

“심은유.”

“아 잠시만요. 저 이것만 좀 보고요. 대박.”

“심은유.”

“와, 진짜 잘생겼어. 송선생님, 역시 섹시는 으른섹시…….”

뮤직비디오가 끝나고 나서야 다현에게 시선을 돌리던 은유는 그 옆으로 기다랗게 뻗어 있는 다리에 시선을 올렸고, 그 끝에 닿은 순간 멍 해졌다.

“으른섹시.”

“……나…낙원씨……. 어, 언제…….”

“앓다 죽을 오빠들. 진짜 섹시해. 미쳤다. 오빠. 진짜 잘생겼어. 으른섹시.”

4분 가량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은유가 내뱉은 탄성을 그대로 되새긴 낙원을 보며 은유는 심장이 저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가 오는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은데, 대체 언제 온 거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저걸 다 들어서 기억했지?

“나, 낙원씨. 그게 아니라…….”

“됐다.”

‘됐다’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그대로 몸을 돌려 도서실을 나가는 낙원을 보며 은유는 망연자실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다현이 다급하게 은유의 팔을 붙잡았다.

“심선생! 얼른 쫓아가!”

“네, 네?”

“아오. 강선생님 엄청 화나셨네! 얼른 쫓아갔다가 와!”

“아, 가, 감사합니다!”

헐레벌떡 뛰어나가는 은유를 보며 다현은 한숨을 푹 내쉬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는 은혁을 올려다보았다.

“이선생님?”

“……잘생기면 다 오빠?”

은혁의 시선이 정확히 윤주에게로 향해 있었다.

“입덕?”

“……아니 뭐, 잘생겼잖아요.”

“참 나.”

그리고 은혁은 ‘참 나’라는 말과 함께 도서실을 나갔고, 남겨진 윤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다현을 쳐다보았다.

“아니 이선생님은 왜 저래요?”

“……정선생도 나가.”

“네? 제가 왜요?”

“일단 나가봐. 빨리!”

“아, 송선생님!”

다현은 윤주까지 일으켜 도서실 밖으로 떠밀고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여기고 저기고 진짜.

“그나저나 이선생님은 대체 왜 고백을 안 해? 저렇게 티 낼 거면서.”

급하게 도서실을 나와 아래층으로 향한 은유는 복도의 저 앞에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낙원을 보고 다급히 달려갔다.

“강선생님!”

제 부름에도 낙원의 긴 다리는 여전히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낙원씨!”

보충수업이 모두 끝나 학교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낙원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체력장을 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간 은유가 낙원의 앞에 멈춰 섰다.

“헉. 헉. 자, 잠시만요!”

“비켜.”

비키라는 그의 말에도 은유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가슴팍을 탕탕 쳤다.

“잠시만요. 헉. 저 숨 좀, 헉. 쉬고.”

저러다 숨 넘어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헉헉거리는 은유를 보던 낙원의 표정은 무서움에서 걱정으로 바뀌었다.

커다란 손을 뻗어 마른 등을 쓸어주자 놀란 얼굴이 낙원의 눈에 들어왔다.

“뛰긴 왜 뛰어.”

“화, 화 나신 거 아니에요?”

“났어. 근데 너부터 진정시키고.”

토닥거림으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낙원은 손을 떼고는 다시 매서운 눈길로 은유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된 것 같으니까 좀 비키지?”

“제가 잘못했어요!”

“뭘.”

“네?”

“뭘 잘못했냐고.”

그러게. 내가 뭘 잘못했지?

빅시가 멋있다고 해서? 잘생겼다고 해서? 섹시하다고 해서? 오빠라고 해서?

아니, 멋있으니까 멋있다고 했고. 잘생겼으니까 잘생겼다고 했고. 섹시하니까 섹시하다고 했고.

나보다 오빠니까 오빠라고 했는데?

이건 마치 나한테 ‘넌 왜 이름이 심은유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사과는 왜 했어.”

“아니, 그게…….”

낙원의 눈동자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런 남편의 눈을 보며 은유의 심장도 같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낙원의 등 뒤로 수위아저씨가 보였고, 은유는 되는 대로 그의 팔을 붙잡고 옆에 있는 문을 열고 재빠르게 들어왔다.

그 곳이 어떤 곳이 될 줄도 모르는 채로.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