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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선생님-65화 (65/112)

65. 고마운 잠투정2016.11.26.

핑시선 열차를 타고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펀 역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서 풍등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맑은 하늘 위로 그 사람들이 날린 풍등들이 제각각 올라가고 있었다.

“와. 진짜 예쁘다!”

푸른 하늘을 도화지 삼아 색칠하듯 떠오르는 풍등들을 보며 은유의 심장이 콩닥거렸다.

좁은 길 사이로 열차가 지나가고 난 뒤 낙원과 은유도 다른 사람들처럼 상점을 정해 풍등을 구입했다.

건강과 평안을 나타내는 빨간색을 양면으로 마주보고, 사랑과 결혼을 나타내는 주황색, 행복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분홍색을 빈 양면에 마주보고 있는 풍등을 받아 글자를 써내려 갔다.

서로 비밀로 하기로 하고 각자 두 면씩 맡아 적고는 풍등을 날리기 위해 철로 위로 향했다.

불을 붙이고 기념하기 위해 스텝의 도움을 받아 사진까지 찍은 후에야 하늘 위로 풍등을 보내줄 수가 있었다.

풍등이 위로 떠오르는 속도가 빨라 겉에 적힌 소원을 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유독 은유의 눈길을 끄는 글자가 있었다.

행복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분홍 색의 면은 낙원이 쓴 것이었다.

‘내 인생에 찾아와준 너와 늘 행복하기를.’

그리고 낙원의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랑과 결혼을 나타낸 주황색 면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사랑을 하게 해주세요.’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표현해주고 있는 말들이었다.

하늘 위로 높게 떠오르는 자신들의 풍등을 보던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했다. 매일 매 순간이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제법 쌀쌀한 하늘을 소원을 담은 풍등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스펀에서 유명한 닭날개 볶음밥을 먹고 다시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 곳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지우펀이었다.

대만의 옛 정취를 느끼기 좋은 이 곳은 구불구불 이어진 비탈길을 따라 늘어선 예스러운 건물들이 눈길을 끄는 곳으로, 골목마다 묻어나는 낭만적인 분위기와 홍등이 빛나는 이국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유명한 영화에 나온 실제 장소로 유명해지기도 해서 이미 구경을 와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가 오늘 본 곳 중에 사람 제일 많은 것 같아요.”

“그러네. 좀 많다. 손 꽉 잡아.”

“네!”

낙원의 손을 잡고 입구에 들어서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맑은 하늘에 수채화로 그려지듯 붉은 노을이 차 올랐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지우펀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홍등가로 발을 옮겼다.

가파른 계단을 중심으로 양쪽에 길게 늘어져 있는 홍등은 지우펀의 최대 볼거리였다.

낙원과 은유도 가게들을 구경하다 사람들 틈에 섞여 홍등가 거리로 향했다.

어스름한 하늘에 불이 켜진 홍등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는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두 사람 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걸 다 잊을 만큼 홍등거리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와……. 여기는 또 봐도 너무 예뻐요.”

“실제로 보니까 예쁘다. 왜 이렇게들 보러 오는지 알겠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어김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오늘 찍은 사진만 해도 벌써 500장이 넘었다.

그림보단 눈에 담는 걸 더 좋아해서 좀처럼 사진을 찍지 않는 두 사람이 이정도 찍은 건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홍등거리 입구에서 같이 찍고, 서로 한 명씩 찍어주기도 하고 정말로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꽤 긴 시간을 구경하고 완전한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홍등거리 아래에서 보이는 해변가 풍경을 구경하던 두 사람도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처음 내렸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 우리 조금 더 걸어가서 타요 낙원씨.”

“다른 데서?”

“네! 여기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버스정류장 하나 더 있어요. 입구에서 바로 타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앉거든요.”

은유의 제안에 두 사람은 결국 입구에서 한정거장 더 위로 올라가서 버스를 기다렸고, 10분쯤 지나 텅텅 빈 버스에 오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버스가 한 정거장 지나 지우펀 입구에 멈춰 서자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보였다.

“진짜 가이드 맞네.”

“헤헷. 잘했죠?”

“어. 잘했어.”

사람들을 가득 태운 버스는 깊은 산속을 달렸다. 경사가 급하고 길 자체가 구불구불한지라 안전운행을 해야 하는데 작년이나 지금이나 버스 운전기사의 운전 속도는 굉장히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아빠는 물론이고 낙원도 운전을 할 때 거칠기는커녕 부드럽게만 했기 때문에 은유는 이런 버스를 탈 때면 늘 무서움에 시달렸다. 그 무서움이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서워?”

“네?”

“손에 힘 들어갔어.”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낙원의 손을 힘주어 잡은 모양이다.

미안함에 어색하게 웃자 낙원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은유를 쳐다보다 몸을 일으켰다.

“나랑 자리 바꿔.”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낙원의 배려에 창가에 앉아 있던 은유가 냉큼 그가 앉아있던 복도 쪽으로 옮겨 앉았다. 여전히 무섭기는 했지만 확실히 안쪽이 더 마음이 놓였다.

창가에 앉은 낙원이 커다란 손으로 은유의 왼손을 감싸고는 보드라운 손등을 엄지로 문질렀다.

“좀 괜찮아?”

“네. 고마워요.”

“이런 거 있으면 바꿔달라고 얘기해.”

“네. 그럴게요.”

버스가 어지러운 산속을 끝없이 내려가는 사이 창 밖으로 야경을 보던 낙원은 제 어깨에 툭 하고 닿은 무언가에 고개를 돌렸다.

작은 머리통이 제 어깨에 기대어져 있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니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은유의 얼굴이 보여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세 군데나 돌아다닌다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하긴, 어제 밤에는 제가 잡고 놔주지 않아 제법 늦게 잠이 들었고, 아침엔 일찍 일어났고, 걷기는 또 많이 걸어 다녔다.

‘피곤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앞쪽으로 걸어 나온 승객들이 두 사람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어색했지만 낙원도 그들에게 눈인사로 작게 웃음으로써 미소에 답했다.

산을 내려와 한참을 달려 시내에 들어섰다. 호텔 근처에 도착하자 은유를 깨워 차에서 내린 낙원은 여전히 비몽사몽인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많이 피곤해?”

“아니요? 저 괜찮은데요?”

대답과 달리 눈은 풀렸고 몸에 기운도 없다. 저녁을 제대로 못 먹어서 뭘 먹기는 해야 하는데 상태를 보아하니 식당에 가기도 힘들 것 같고.

결국 낙원이 은유를 데리고 돌아온 곳은 호텔 방이었다. 일단 피곤했을 몸을 눕혀주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잠에 취해 걷는 것도 엉성한 탓에 아예 은유를 안아 든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실로 향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침대 위에 눕혀놓은 뒤 신발을 벗겨주자 꼼지락거리며 이불을 찾았다.

손을 뻗어 이불을 덮어주자 혼잣말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장…….”

“뭐라고?”

“……지워야……되는데…….”

여전히 눈을 감고 웅얼거리는 모습에 낙원이 작게 웃으며 은유가 부러워했던 긴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걸쳐 앉은 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휴대폰을 들어 검색 창을 열었다.

“……화장 지우는 법……. 뭐가 이렇게 많아.”

수많은 게시 글들 중에 아무거나 클릭한 낙원은 함께 포스팅 된 사진들과 그 아래 적힌 설명을 하나하나 유심히 읽었다.

“화장 솜에 아이리무버를 덜어서, 눈 위에 30초 정도 올려두었다가 부드럽게 닦아낸다. ……아이리무버가 뭐야?”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말 투성이였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하지만 이런 용어는 처음 접하는 것들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낙원은 침착하게 처음부터 다시 읽고 모르는 용어는 또 다시 검색을 했다.

그러기를 10분째.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은 그가 욕실로 들어가 넓은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보던 그의 눈에 포착된 케이스로 다가가 뚜껑을 열자 화장 솜이 들어있는 게 보여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화장 솜을 들고 또 욕실을 둘러보던 그가 이번에는 수납장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내가 사용하는 화장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아이리무버……. 여기 있네.”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던 그가 아이리무버를 발견하고는 뚜껑을 열어 두 개의 솜에 묻혔다.

촉촉해진 솜을 들고 침실로 나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은유를 보고 살구 빛의 섀도가 묻어 있는 두 눈두덩에 솜을 하나씩 올렸다.

혹시나 깰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아내는 푹 잠들어 있었다.

30초를 센 낙원이 눈꺼풀을 살짝 위로 올려 잔여물을 깨끗하게 닦았다.

“후…….”

이제 겨우 하나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힘이 들 줄이야.

“대체 여자들은 이걸 어떻게 맨날 하고 사는 거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들여 화장을 하고, 저녁때 집에 와서는 공들여 한 화장을 또 공들여 지우고. 이런 귀찮은 짓을 어떻게 매일 하는 건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머지 솜 하나를 들어 잘 닦던 낙원은 난관에 봉착했다.

잘 자던 은유가 몸을 틀어 얼굴을 숨겼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런 것도 모르고 깊게 잠이 들었을까 안타까워 그냥 재울까 싶었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늘 씻고 자던 아내가 생각이 나서 그는 결국 등 뒤로 손을 넣어 상체를 일으켜 앉혔다.

“은유야.”

“…….”

“은유야. 그냥 자도 괜찮겠어? 씻고 잘래?”

“……나 씻을래…….”

“씻을 거야?”

“응…….”

그렇게 대답해놓고 눈을 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서 어떻게 씻겠다는 건지.

“은유야. 혼자 씻을 수 있어?”

“아니……. 나 씻겨줘…….”

……응?

“뭐라고?”

“……씻겨줘어…….”

낙원의 얼굴에 붉은 빛이 돌았다.

잠결에 하는 말 이라기엔 너무 자극적이고 위험한 내용에 판단이 제대로 서질 않는다.

“은유야. 너 지금 씻겨달라고 한 거야?”

“……응…….”

너 진짜 이렇게 잠투정 심하게 하면, 내가 너무 고마운데.

“분명히 네가 먼저 말한 거야. 씻겨달라고.”

“…….”

“대답해야지.”

“……응.”

은유의 대답이 나온 순간 낙원은 그녀를 안고 욕실로 들어섰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만 산도 넘었겠다, 직접 요구까지 했겠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그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요청이었다.

욕실 입구에 마련된 의자 위에 은유를 앉힌 뒤 클렌징 티슈로 얼굴을 구석구석 꼼꼼히 닦아주고 폼클렌징을 짜려고 세면대 쪽으로 향하던 순간 등 뒤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낙원씨?”

……망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그가 졸린 눈을 비비며 욕실 안을 둘러보는 은유와 눈이 마주쳤다.

“왜 깼어.”

“……네?”

“더 자. 얼굴 다 닦았어.”

“네? 무슨 말이에요?”

“화장 다 지웠으니까 자도 된다고. 자, 빨리.”

“……아니 잠은 침실에서 자야죠. 그리고 화장을 다 지웠어요? 누가요?”

내가. 내가!

정성 들여서 솜으로 눈 화장도 지워주고, 피부 화장도 지워줬는데!

“낙원씨?”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걱정이 된 은유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앞으로 다가간 그녀가 낙원의 커다란 등을 반사시키고 있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눈이 커다래졌다.

“어? 화장 진짜 다 지워졌네? 혹시 낙원씨가 한 거에요?”

“그래. 내가 했어.”

“정말이요? 화장 지우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그보다 저 차에서 차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나 정신이 없으면서, 잠에서는 왜 깨가지고.

“낙원씨.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요?”

“너 잠들어서 내가 안고 왔어. 네가 화장 지우고 싶다고 해서 화장도 지워줬고. 그리고.”

“……그리고요?”

“네가 씻겨달라고 했어.”

“무, 뭐, 뭐요?”

“네가. 씻겨달라고 했다고, 나한테.”

미쳤다. 미쳤어 심은유.

너 대체 잠을 얼마나 험하게 잔 거야? 씻겨달라니. 미친 거 아니야 진짜?

“그래서.”

“뭐, 뭐가 그래서예요?”

“씻겨줄 건데, 나는.”

낙원의 굳은 의지가 담긴 눈을 마주한 순간 은유는 망연자실했다.

아. 오늘도 일찍 자기는 틀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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