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네가 있어서2016.11.22.
짐을 대충 푸르고 호텔을 나온 낙원과 은유는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대만의 명소인 101타워로 향했다.
저녁시간인데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쇼핑몰 안에는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과 구경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은유가 좋아하는 딤섬을 먹기 위해 한 가게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잠시 망설였지만 이 시즌에, 이 기간에 고작 30분은 양호한 편이었기에 이름을 적고 밖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낙원씨도 딤섬 좋아해요?”
“어. 나 가리는 거 없어.”
“맞아요. 뭘 해줘도 다 잘 먹어주잖아요 낙원씨는.”
“네가 요리를 잘하는 거야.”
이어진 칭찬에 부끄러워진 은유가 킥킥 웃고는 자연스럽게 낙원의 팔에 팔짱을 꼈다.
이젠 이런 스킨십도 제법 익숙해졌다.
“우리 밥 먹고 뭐해요?”
“뭐 하고 싶은데?”
“음……. 여기 야경 되게 예쁜데. 근데 오늘은 좀 힘들겠죠?”
“일단 밥 먹고 보자.”
“네!”
30분을 기다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자 향긋한 음식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데 냄새까지 맡으니 더 허기가 지는 기분에 직원이 건넨 메뉴 판을 받아 든 은유의 표정이 전투적으로 변했다.
낙원은 그 모습도 귀여워 흐트러진 은유의 머리를 잘 정리해주고는 테이블 위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뭐가 맛있어?”
“낙원씨는 고기랑 해산물 중에 뭐가 좋아요?”
“골고루 시켜볼까?”
“네! 저 진짜 많이 먹을 거에요!”
“그래.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진짜 많이 먹겠다는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은유는 메뉴 판의 여러 칸에 체크를 했다.
먼저 앞접시와 따뜻한 차, 간장에 절인 생강 채가 두 사람의 테이블 위에 준비되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네에.”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에 딤섬이 담긴 바구니가 올려졌다.
뜨끈한 김이 나는 통통한 모양새를 보던 은유가 두 눈을 반짝이다 슬그머니 낙원의 눈치를 보았다.
“저기, 낙원씨…….”
“왜?”
“……우리 맥주 딱 한잔만 하면 안돼요?”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눈치를 보나 했더니 맥주가 마시고 싶은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곳에 와서 즐기지 못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었으니 낙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대만 맥주 한 병과 잔을 건네주자 낙원이 빈 잔에 맥주를 가득 따랐다.
“자.”
“우와아!”
낙원의 손에 있던 맥주병을 제 손으로 옮긴 은유가 그의 앞에 놓인 빈 잔에도 맥주를 가득 채워주고는 잔을 들었다.
“이렇게 좋은 데에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같이 와줘서 고마워.”
“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킨 은유가 싱글벙글 웃으며 딤섬 하나를 집었다.
“안에 국물이 들어 있어서 뜨거우니까 잘 식혀서 먹어요 낙원씨.”
“알았어.”
딤섬을 수저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톡 터트리자 그 안에 있던 육즙이 흘러 나왔다.
뜨거운 육즙을 호호 불어 딤섬과 함께 한 입에 넣자 특유의 고소함과 달달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아 어떡해. 너무 맛있어요!”
그렇게 좋을까.
눈이 휘어지도록 웃는 모습이 예뻐 낙원은 또 한번 아내에게 반했다.
“진짜 맛있어요. 대박.”
두 번째 통새우 딤섬이 나오고, 그 뒤로 몇 가지의 음식이 더 나왔다.
은유는 특히 빨간 국물의 우육면을 제일 좋아했다.
“잘 먹네.”
“저 면요리 되게 좋아해요.”
몰랐던 사실을 이렇게 또 하나 알게 되어서 낙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입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었다.
“아……. 하핫.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요즘 잘 안 먹어서 걱정했는데.”
“요즘 살이 좀 찌는 것 같아서요.”
면을 호로록 먹으며 얘기하는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낙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좀 찌면 어때.”
“안돼요! 설마 저 쪘어요?”
“안 쪘어. 그리고 쪄도 상관 없어. 밥 굶고 그러지 마.”
“그래도……. 힘들게 다이어트 했는데, 다시 찌면 너무 속상하잖아요. 예쁜 옷도 못 입고.”
‘다이어트’란 말을 하며 다시 시무룩해진 은유를 보며 낙원이 맥주 한잔을 들이키고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입을 열었다.
“네가 입으면 뭐든 다 예뻐. 건강 위해서 운동하는 건 뭐라고 안 하겠는데, 다이어트 한다고 굶지마. 진짜 화낸다.”
“……넵. 알았어요.”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선생님이라니까 정말.
그래도 사람 설레게 하는 스킬은 점점 느는 것 같다.
‘네가 입으면 뭐든 다 예뻐’라니.
그런 말이라곤 절대 못할 것 같았던 남자인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던져오는 저 말들에 자신이 얼마나 설레고 행복한지 알고는 있을까?
“안 먹고 뭐해.”
“아, 먹어요!”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자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물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낙원은 은유의 손을 꼭 잡아 끌어당겨 어깨를 감싸고 보호하듯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늦기 전에 표 사러 가자.”
“네!”
101타워 전망대에서 보는 야경은 정말로 예쁜데 다들 그걸 아는지 평소보다 사람이 곱절은 많아 보였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서 기다린 시간만 해도 30분.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줄은 어마어마하게 길었지만 낙원과 은유 그 누구 한 사람도 짜증난 기색이 없었다.
“다리 안 아파?”
“네! 저 괜찮아요.”
은유가 힘들까 싶어 걱정스러웠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다행히도 들떠 있어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행복해 보였다.
줄이 줄어들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탈 수가 있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89층 전망대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경을 볼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낙원은 은유를 데리고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자, 잠시만요 낙원씨.”
그런데 창가로 향하는 낙원을 은유가 붙잡았다.
의아한 얼굴로 은유를 쳐다보던 낙원은 잔뜩 얼어 있는 얼굴에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왜 그래.”
“……저 사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전망대에 올라오고 싶다고 할 땐 언제고,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여자임에 틀림 없었다.
“우, 웃지 마세요…….”
“높은 곳은 무섭고. 야경은 보고 싶고?”
“뭐, 그렇죠…….”
웅얼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낙원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녀의 손을 약하게 잡아 끌었다.
“내가 잘 잡고 있을 테니까 가까이 와.”
“그, 그래도…….”
“안 보면 후회할 텐데.”
낙원의 말에 은유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창가로 천천히 다가갔다.
“장모님이랑도 왔었다며.”
“말도 마요. 그 때 엄마랑 저랑 둘 다 무서워서 창가에 기대지도 못하고, 손 잡고 덜덜 떨면서 봤어요.”
은유의 설명에 그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예나 지금이나 귀여운 건 여전하구나 싶었다.
“……그래도, 다시 봐도 여전히 너무 예뻐요.”
탁 트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타이페이 시내의 야경은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였다.
작년에 엄마와 왔던 기억이 나 기분이 이상했다.
그 때에는 자신이 결혼을 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 결혼을 하고,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이 곳을 다시 찾았다.
“그러게. 올라오길 잘했네.”
새카만 밤을 수놓은 불빛들이 사방에 흩뿌려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등 뒤로는 저를 감싸고 있는 남편의 든든한 품이 느껴져 그 때처럼 무섭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전망대 안을 천천히 돌며 구경을 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대박. 진짜 잘생겼어.”
“그니까. 엄청 잘 어울려 둘이.”
특히 한국인 관광객이 굉장히 많아서 한국말이 더 잘 들려왔다.
여전히 낙원의 외모를 찬양하는 소리에 은유는 어색하면서도 뿌듯했다.
이 남자가 바로 제 남편이에요 여러분!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전망대 내부를 요리조리 둘러보던 은유의 눈이 반짝였다.
“어! 망고 아이스크림!”
“저거 먹을까?”
“네!”
전망대 내부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본 은유가 아이처럼 좋아했고, 낙원은 그런 은유를 데리고 카운터로 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구입했다.
잠시 후 제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보며 감격한 그녀는 사진을 찍고는 낙원에게 내밀었다.
“먹어봐요 낙원씨!”
아이스크림을 잘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주는 거였으니 낙원은 군말 없이 입을 벌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그죠? 망고가 진짜 맛있어요.”
야경 구경하랴, 아이스크림 먹으랴. 정신 없는 은유를 낙원은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때로는 이렇게 순수한 아이 같고, 때로는 자신보다 더 어른스럽고, 때로는 귀엽고, 또 때로는 사랑스럽고.
은유는 매력이 많은 여자였다.
웃는 건 또 어찌나 예쁜지. 저렇게 세상 모르고 웃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지금 천국에 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분까지 들곤 한다.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네가 있어서 참 행복하다.
“낙원씨! 저기 좀 봐요!”
그러니까 우리 행복하자. 지금처럼.
내 옆에 와줘서 고마워, 은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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