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54화 (54/112)

54. 꼬리 아홉 개 달린 늑대2016.11.19.

주차장에서부터 집 앞 현관까지 오는 길이 너무나도 짧게만 느껴졌다.

트렁크와 나란히 문 앞에 선 낙원은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할지, 초인종을 눌러야 할지. 그 고민만 벌써 5분 째다.

그 뒤로도 초인종과 비밀번호 키 사이로 손을 왔다 갔다 옮기며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심했다는 듯 심호흡을 하고선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심장의 떨림을 느끼는 동안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다녀 오셨어요.”

“어.”

은유가 먼저 집안으로 들어간 뒤 낙원은 캐리어를 들고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

발을 들여놓자 현관에서부터 나는 맛있는 냄새에 굳어져 있던 그의 얼굴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아직 저녁 안 먹었죠?”

“……어.”

“씻고 나오세요.”

낙원이 안방으로 들어간 사이 은유는 주방으로 들어가 찌개를 데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무언가 허전하다고.

뭔가 빠진 것 같은데…….

샤워를 마친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은유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민지는요?”

“오늘 아영이네서 자고 오겠대.”

“아……. 와서 식사 하세요.”

둘이 마주앉아 하는 식사는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민지가 오랫동안 이 집에 있던 것도 아닌데, 이제 둘뿐인 그림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는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마치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그 때처럼.

그 땐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식사가 끝이 났고 싱크대로 가는 낙원을 은유가 저지했다.

“제가 할 테니까 쉬세요.”

“됐어. 같이 해.”

“여행 다녀와서 피곤하잖아요. 앉아계세요.”

반 강제적으로 거실로 쫓겨 나온 낙원은 은유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정리했다.

입은 옷은 세탁기에 넣고 은유가 챙겨줬던 물건들은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그리고.

“이거.”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를 정리하던 은유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남편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뭐에요?”

“네 거.”

낙원과 봉투를 가만히 번갈아 보던 은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식탁 앞에 섰다. 커다란 봉투 안에는 무언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었다.

제일 커다란 첫 번째 상자에는 각종 초콜릿과 젤리, 디저트 류가 가득 차 있었다.

중간 크기의 두 번째 상자에는 각종 뷰티 용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일 작은 세 번째 상자에는 달 모양의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뭐가 예쁘다고…….”

“내가 잘못했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은유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잘못했어.”

늘 사랑스럽게 봐주던 두 눈동자가 오롯이 저를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사과를 전해왔다.

왜. 당신이 왜.

“화내서 미안해.”

“…….”

미안한 건 난데.

당신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멋대로 행동한 내가 잘못한 건데.

“미안해 은유야.”

“……왜 사과해요……. 낙원씨 잘못 아니잖아……. 내가, 내가 잘못한 거잖아…….”

“왜 울어.”

저도 모르게 터진 눈물에 낙원이 급히 그녀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뺨을 감싸 쥐었다.

그 다정함에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려 물이 되었다.

두 팔로 은유를 안아 제 품에 감싼 낙원이 작은 몸을 토닥거렸다.

“울지마.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제 품에 안겨 서럽게 우는 아내를 데리고 거실로 나온 낙원은 소파에 앉아 자신의 다리 위에 그녀를 마주보고 앉혀 안았다.

감싸 안은 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과 특유의 향기에 이제야 숨통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보였던 얼굴에 처음으로 든 생각은 ‘예쁘다’ 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3박 4일이나 혼자 두고 여행을 다녀온 것도 모자라 싸우기까지 한 상황에 들만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본능적인 것이었다.

늘 이렇게 예쁜 아내의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을 보며 낙원은 가슴이 아팠다. 저 때문에 힘들어했을 모습이 훤해서 속이 상했다.

“……말 안 들어서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화내서 미안해.”

“아니에요. 내가 너무 내 멋대로 생각했어요……. 낙원씨는 항상, 항상 나 생각해서 무슨 일이던지 내 의견부터 물어봐 줬는데…….”

제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마주친 눈이 붉게 물들어 낙원은 손을 뻗어 그 눈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나야말로.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를 전해오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은유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며 안겼다.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저도 낙원씨랑 꼭 의논할게요.”

“고마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딱 이었다.

남편과 화해해서 기분이 좋아진 은유와 달리, 낙원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처음엔 달래려고 안았는데, 하필 다리 위에 앉혀놔서 은유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제 온 몸의 감각이 다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심은유.”

“네?”

“……그만 좀 꼼지락거려.”

“왜요?”

왜긴 왜야. 너 때문에 자꾸 산을 넘고 싶으니까 그렇지.

“그만 움직이라니까.”

“……저 안 움직인 것 같은데…….”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낙원을 쳐다보던 은유가 꺅 하며 소리를 질렀다.

얇은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소파에 눕힌 낙원이 그녀를 위에서 가뒀다.

“나, 낙원씨.”

키스다운 키스를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민지가 집으로 들어오고 나선 항상 조심했기 때문에 늘 짧은 뽀뽀로 끝이 났었다.

“지금부터 키스 할건데.”

낙원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코가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거리.

“민지 안 들어와.”

그건 너무나도 달콤한 경고의 시작이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낙원은 품 안에서 잠이 든 아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안고 있어도 안고 싶으니 정말이지 중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예쁜 얼굴을 3일씩이나 못 봤다는 것이 안타까워 그 동안 못 본 것까지 몰아서 보겠다는 일념으로 빤히 들여다보던 그는 천천히 얼굴을 쓰다듬다 보드라운 뺨에 입을 맞추기도 하고, 작은 코를 조심스레 만져보기도 하며 아내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했다.

그런 낙원의 움직임에 몸을 뒤척이던 은유는 결국 그의 뽀뽀세례를 받으며 눈을 떠야만 했다.

“좋은 아침.”

“……네에. 잘 잤어요?”

“덕분에.”

어제 소파에서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눈 걸로도 모자랐는지 낙원은 침실로 들어서는 그 동선에서조차 은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침실에 들어와서는 더했다. 작은 몸을 제 안에 다 가두겠다는 듯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춰오는 바람에 새벽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잠에 들었다.

낙원은 침대에서 일어서는 은유를 뒤따라 서서 뒤에서 폭 감싸 안았다.

“저 씻으러 갈 건데…….”

“같이 씻어.”

“네?”

“세수하러 가는 거 아니야?”

“마, 맞는데요…….”

“근데 뭘 그렇게 놀라. 혹시 다른 상상했어?”

“아니요!”

아니기는.

목까지 붉어진 게 엉큼한 상상 한 게 맞는데.

등 뒤로 전해오는 심장소리에 은유는 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이렇게 백허그를 하는 건 반칙이다. 게다가 같이 씻자니. 무슨 그런 야한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그렇지 않아도 정신 없는 와중에 낙원이 슬며시 몸을 숙여 은유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는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언제까지 상상만 할 건데.”

“히이익!”

놀란 은유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낙원의 품에서 빠져 나갔다.

급하게 욕실로 향하는 은유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 그가 그 욕실 앞으로 다가갔다.

“문 좀 열어주지.”

“시, 싫은데요?”

“세수만 한다며.”

“제, 제가 알아서 씻고 나갈게요! 저리 가세요! 훠이훠이!”

무슨 닭 쫓듯 내모는 소리에 낙원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집 안을 기분 좋게 채웠다.

이렇게 귀엽게 나오니까 자꾸 놀리고 싶어지지.

똑똑.

“……왜, 왜요?”

“심은유.”

“드, 듣고 있어요.”

“마음껏 상상하고.”

“…….”

“산은 나랑 천천히 넘자.”

그 말만 남긴 채 낙원은 웃으며 침실을 나갔고, 욕실 안에 갇힌 신세가 된 은유는 거울 속에 비춰진 터질 듯한 제 얼굴을 보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남편이 점점 꼬리가 아홉 개는 달린 늑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