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40화 (40/112)

40. 그렇게 예쁜 여자2016.11.10.

먼저 식사를 마친 낙원은 잠시 어딜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고 두 여자가 식사를 마칠 때쯤 돌아온 그의 손에는 약 봉투와 새로 포장된 죽이 들려 있었다.

“자.”

“……이게 뭐에요?”

“약 꼭 챙겨먹어. 죽은 내일 또 먹고.”

“……선생님…….”

“몸 아프면 서러워.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가게에서 나와 차에 오른 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101동 앞에 차를 댄 낙원이 뒤를 돌아 민지를 쳐다보았다.

“집에 가서 꼭 약 먹어.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얼른 들어가 봐.”

“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봉투와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린 민지는 두 사람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등을 돌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오늘 유난히 더 무거운 것 같다.

집에 오는 내내 두 사람은 민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우연히 발견한 멍 자국도 그렇고,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얼굴도 그렇고.

“민지 정말 괜찮은 걸까요?”

“그러게. 신경 쓰이네.”

화장품을 손에 덜어 낙원이 누운 침대 쪽으로 돌아 앉은 은유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에 크림을 문질렀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선생님 다 됐네, 심은유.”

“네?”

“지금 딱 학생 걱정하는 선생님 얼굴이야.”

따지고 보면 제가 맡은 반 학생들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은유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특유의 서글서글한 성격도 그렇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그렇고. 정말 교사가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걱정 그만하고 이리와.”

“죄송해요. 자꾸 신경이 쓰여서…….”

침대로 들어가 낙원의 품에 안기면서도 은유는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작은 미간 사이에 진 주름을 제 손가락으로 아프지 않게 누른 낙원이 동그란 이마 위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고마워.”

“네? 뭐가요?”

“민지 데려다 주자고 한 거. 밥도 사주고.”

“아……. 혼자 저녁을 안 먹길래 신경 쓰였거든요.”

“어. 민지는 석식 신청 안 했어.”

“애들 말로는 다이어트 한다고 했다던데……. 그 마른 몸에 더 뺄 데가 어디 있다고.”

제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마냥 잔뜩 굳어진 목소리에 낙원이 부드럽게 웃으며 은유의 허리 위로 손을 올렸다.

“내가 더 잘 신경 쓸게. 너무 걱정 말고 자.”

“네. 낙원씨 좋은 선생님이니까 마음 놓을게요.”

오로지 저를 믿어주는 아내가 고마워 낙원은 몸을 감싼 팔에 힘을 주었다.

네가 믿어주는 만큼 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그러니 지켜봐 달라는 듯이.

“말씀하셨던 CCTV확보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역시. 너무 늦었나 보군요.”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알아보니 당시 강전무님 댁 앞에 주차되어 있던 택배 차가 한대 있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옆집에 택배가 왔었는데, 조사 당시 기사 말로는 수상한 자들을 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바꿨답니다. 한 사람의 소행이었다고.”

김비서에게서 건네 받은 자료를 넘기는 지혁의 손이 무거웠다. 수상한 자’들’에서 한 사람의 소행이라……. 제 예상대로였다.

“이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게……. 지금 호주에 이민을 가 있다고 합니다.”

“호주요?”

“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한달 뒤쯤인가,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 되어서 가족 모두가 이민을 갔답니다.”

“……참 신기하네요.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바로. 목격자가 갑자기 로또 당첨이라니.”

“예. 좀 수상합니다.”

“주말에 호주행 비행기 티켓 좀 마련해주세요.”

“직접 가시려고요?”

“제 눈으로 직접 봐야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 사건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투성이였다. 말도 안 되는 피해자와 말도 안 되는 피의자. 말도 안 되는 목격자에 말도 안 되는 범행 동기. 하나같이 전부 다 이상하다.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지혁의 표정은 어두움 그 자체였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마치 짜인 것처럼 너무 잘 들어맞는 정황들이 되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이건 단순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잔뜩 얼어있던 지혁의 눈동자가 책상 위에 놓인 액자로 향했다.

웃고 있는 네 명의 꼬마 아이들.

“기다려 형. 이제 진짜 시작이야.”

내가 잡을 거야. 꼭 내 손으로 잡을 거야. 형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질 수 있게 난 뭐든 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어느새 달력이 한 장 넘어가고 찬바람이 불며 낙엽이 바닥을 적시는 11월이 되었다. 수능을 단 이틀 남겨둔 오늘, 낙원은 손수 준비한 음료수와 간식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며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너무 긴장들 하지 말고. 우리 이틀만 더 힘내자.”

항상 자신들의 편에 서서 응원해주는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마음이 따뜻해져 옴을 느끼며 저마다 결의를 다졌다.

다른 날보다 일찍 수업을 마친 덕분에 퇴근 시간도 빨랐다. 가방을 챙겨 주차장이 아닌 도서실로 올라간 낙원은 업무를 보고 있는 은유의 앞으로 가 책상을 똑똑 두드렸다.

“어? 낙원씨!”

“송선생님은?”

“잠깐 교무실에요. 이제 퇴근하는 거에요?”

“어. 마치고 데리러 올게.”

“아니에요! 오늘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니까. 너 마칠 시간 맞춰서 올게.”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만나요.”

서로 괜찮다며 고집을 부리다 교무실에 갔던 다현이 돌아와 은유와 저녁 약속을 함으로써 입씨름은 끝이 났다.

“강선생님도 참 지극정성이야. 심선생 결혼 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핫.”

“그나저나 저녁에 뭐 먹을까? 고기? 파스타?”

“저 다 잘 먹어요!”

그렇게 은유가 다현과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사이, 퇴근한 낙원이 향한 곳은 얼마 전 지혁에게 업혀 왔었던 병원 근처의 식당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원식의 얼굴이 보였다. 저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은 여전하다.

“많이 기다렸어?”

“조금? 얌마. 너 내 시간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오늘 오프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밥부터 먹자. 배고프다.”

남자 둘이서 대낮에 만난 곳은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다. 각자 파스타를 하나씩 시키고 거기에 피자까지 추가로 주문을 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봤다.

“몸은 좀 괜찮고?”

“어. 덕분에. 은유한테 얘기 들었어.”

“어우 야. 네 입에서 여자이름 나오니까 이상하다.”

처음 낙원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제 귀를 의심했다. 제가 아는 그 강낙원이 맞는지 몇 번이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부터 인기는 많았지만 자기 좋다는 여자한테도 관심이 없고 심지어 먼저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해온 결혼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미국에서 열린 학회 때문에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은유의 얼굴을 직접 본 것도 얼마 전 병원에서였다.

“제수씨 인상 좋더라. 성격도 착한 것 같고.”

“착해.”

“참 의외야. 결혼 절대 안 할 것 같던 놈이.”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할머니의 강요에 의해 이뤄진 결혼이지만 지금은 그런 할머니께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 맛있는 음식이 놓였고, 허기로 인한 배를 달래며 원식이 낙원을 쳐다보았다.

“너 지혁이랑은 아직이냐?”

“뭘 물어.”

그 이름만 나왔다 하면 이렇게 얼굴부터 굳으니.

친형제나 다름 없던 두 사람이 이렇게 되고 나서, 자주 어울리던 원식도 두 사람을 따로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지혁은 그 일이 있고 나서 바로 영국으로 떠났고, 낙원은 미친 사람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근 5년 동안 두 사람을 만난 건 손에 꼽았다. 특히 그 사건 이후로 같은 공간에서 본 건 그 때 병원에서가 처음이었다.

“지혁이라고 편하겠냐.”

“그럼 나는. 나라고 편해? 걔랑 얼굴 마주하는 걸로도 속이 뒤집어져.”

쌓이기 시작한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서로 끈끈하게 붙어 절대 녹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원식은 더 마음이 불편했다. 낙원의 입장도 알고, 지혁의 입장도 알고 있는 그로서는 사실대로 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지만 이건 두 사람이 풀어야 할 문제였다.

“그래. 근데 시간 지날수록 더 힘들어. 알지?”

“……형 말 알아들었어.”

“근데 제수씨는 언제 소개시켜줄 거야? 너 결혼하고 병원에서 그렇게 본 게 다야 임마.”

“수능 끝나고 시간 맞춰보자.”

“진짜 내일 모레면 벌써 수능이네. 애들 예민하겠다?”

“어. 요즘은 나도 눈치 본다.”

학생들 눈치 보는 강낙원이라니. 남들이 눈치를 봤으면 봤지, 앞에 앉은 동생이 눈치를 본다는 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어릴 적부터 워낙 낯을 가리고 무뚝뚝해서 교사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장난인줄로만 알았다.

“여전히 재미있어?”

“뭐가. 일?”

“그래. 너 사범대 간다고 했을 때 정신 나간 줄 알았잖아.”

한바탕 난리가 나서 할아버지한테 쫓겨났던 낙원이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 정도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어린 줄만 알았는데, 이젠 저도 안간 장가를 갔다니. 시간 참 빠르다.

“재미 있지. 애들도 예쁘고.”

“네 입에서 애들 예쁘다는 소리 나올 때가 제일 신기한 거 알아?”

“뭘 또 신기할 것 까지야.”

“진짜 그렇게 안 생겨서 애들 참 좋아해.”

낙원의 첫인상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무섭다’라는 느낌을 받는 게 대부분인지라 그가 어린 아이만 보면 함박웃음을 짓는 걸 보면 크게 놀라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잘 웃는 성격도 아니고, 웃는 모습도 남들에게 보이기는커녕 고개를 숙여 숨기기 때문에 그 환상적인 미소를 왜 그렇게 드러내지 않는 건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긴 게 왜 나와, 여기서.”

“거울도 안 보냐? 안 웃으면 너 엄청 무서워.”

“잘 모르겠는데.”

“그니까. 그걸 너만 몰라, 너만.”

내가 그렇게까지 무서운가, 하며 휴대폰을 들어 비춰진 제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던 낙원은 ‘아닌데’하고 테이블 위에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넌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 그나저나 애기 낳으면 자식바보 되겠다, 너.”

“……뭐?”

낙원이 잘못 들은 것 같다는 얼굴로 원식을 쳐다보았고, 그런 낙원의 모습에 원식은 피식 웃으며 뭘 놀라냐는 듯한 표정으로 마주보았다.

“아기 가질 거 아니야.”

“……어. 그렇지…….”

“뭐냐, 이 반응은. 생각 안 해봤어?”

결혼을 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아이’. 그런데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다 되어가고, 마음을 확인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관계를 하기도 전이었기에 그것 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표정 보니까 진짜네. 혹시 제수씨가 아기 싫어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저기요, 강낙원씨. 그걸 남편이 모르면 어떡합니까?”

“결혼한 지 두 달밖에 안됐어. 우리가 남들처럼 연애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아직은 좀 먼 얘기다.”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낙원은 벌써부터 심장이 뛰었다.

‘아이’라니. 자신과 사랑하는 아내를 쏙 빼 닮은 아이라면 얼마나 예쁠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그런데 은유는 아이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으니까.

“하긴. 아직 한참 좋을 때겠다.”

“형은 연애 안 해?”

“시간이 없다, 시간이.”

“이렇게 쉬는 날 만나면 되잖아.”

“그게 뭐 나 혼자 되냐?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주위에 사람도 없고.”

“나보다야 없을까.”

“넌 할머니께서 점 찍어 주셨잖아. 근데 진짜 할머니는 제수씨 어떻게 아신 거래?”

그러게. 듣고 보니 할머니가 마음에 뒀으니 만나보라는 말씀만 하셨지, 어떻게 은유를 알게 되셨는지는 말씀해주신 적이 없다.

“나도 궁금하네. 어떻게 아셨는지.”

다음에 뵈러 가면 꼭 여쭤봐야겠다. 어디서 그렇게 예쁜 여자를 찾으셨냐고. 숨겨진 보석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전해야겠다고, 낙원은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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