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아주버님과의 만남2016.11.05.
드레스 룸 한편에 마련된 거울 앞에 선 낙원의 표정은 깊은 바다 속처럼 잔잔하고 어두웠다.
하얀 와이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넥타이를 둘러 매고 조이는 손길엔 흐트러짐이라곤 없었다. 검정색의 자켓을 꺼내 입고 옷 매무새를 만지던 그의 손길이 멈칫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날씨는 한없이 맑기만 했다. 마치 그 날처럼.
똑똑.
“낙원씨. 들어가도 돼요?”
“어.”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검정 색의 단정한 원피스 차림을 한 은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댁 어르신들은 바로 그쪽으로 가신대요.”
“그래.”
“……저 나가있을 테니까 준비 마치면 나오세요.”
등을 보이는 은유에게로 손을 뻗은 그가 작은 몸을 제 품에 꽉 안았다.
허리를 감싼 손 위로 포개어오는 작은 손의 온기가 성난 파도를 달래듯 잔잔했다.
“……괜찮아요?”
“벌써 몇 번짼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
“적응 안 되는 게 당연해요. 괜찮아요.”
출발 전, 항상 혼자 방에 틀어박혀 울던 날들과 달리 오늘은 은유가 옆에 있다. 그래서 마음껏 끌어안고 제 속을 달랠 수가 있어 얼마나 고맙고 또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도 출발하자.”
납골당은 경기도의 한적한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그 곳으로 가는 내내 은유는 낙원의 커다란 손을 그저 말없이 꼭 잡아주었다.
“어, 애들 왔네.”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이 두 사람을 반겼다.
지체할 것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가족들의 얼굴은 익숙한 발걸음과는 달리 어둠으로 가득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자 양 옆으로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첫 번째, 두 번째를 지나 세 번째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함들이 보였다.
낙원의 아빠인 준원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선 할머니는 무원이 있는 공간을 보자마자 눈물을 토해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 내 예쁜 아기.
누구보다 총명하고, 배려심 많고, 제게도 잘했던 예쁜 첫 번째 손자.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잘해주는 건데. 조금 더 예뻐해 주는 건데.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들어봐 주는 건데.
이미 흘러간 시간들을 후회하며 노진희 여사는 그렇게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차례대로 인사를 마친 후, 부모님과 주원은 할머니를 모시고 먼저 내려갔고 방 안에는 낙원과 은유 두 사람만이 남았다.
“형. 나 왔어.”
처음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나 결혼한 거 알지. 앞으로는 같이 올 거야.”
낙원의 커다란 손이 은유의 작은 손을 꼭 잡아왔다. 늘 든든할 것만 같았던 남편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아주버님 안녕하세요. 인사가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낙원씨랑 결혼한 심 은유에요.”
사진 속 무원은 낙원과 많이도 닮아 있었다. 닮았지만 형제는 서로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낙원이 차가운 인상이라면 사진 속의 무원은 한없이 따뜻하기만 했다. 마치 저를 보고 웃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가 낙원씨 옆에서 잘 내조하면서 살게요. 아주버님이 마음 놓고 편히 쉬실 수 있게, 할머님한테도……. 아버님 어머님, 아가씨. 그리고 낙원씨한테도 잘 할게요.”
제 가족들을 잘 지켜주겠노라고 다짐하듯 전하는 은유가 예뻐 눈앞이 흐려졌다.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따끔거리고 코 끝이 매워져 낙원은 입을 열지 못했다.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던 은유가 천천히 힘을 빼고 낙원의 팔을 어루만졌다.
“저는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낙원이 오랜만에 만나는 형과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은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뒤로 돌아서서 화장실로 향하는 은유의 눈가에도 매달려 있던 눈물이 떨어져 소리내지 않고 훔치고선 여자 화장실로 향하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옆으로 난 계단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낯이 익었다.
“……도련님…….”
지혁이었다.
계단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저 남자는, 지혁이었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손으로 제 눈을 가리고 우는 모습이 보고 있는 것조차 미안할 만큼 괴로워 보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어린 나이에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형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얼마나 자책하고 또 미워했을까.
티 내지 않아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아픔에 은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제 울음소리가 지혁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혁의 뒷모습을 보며 같이 울어준 은유는 몸을 돌려 남편이 있을 곳으로 향했다. 지혁이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고요한 납골당 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안으로 들어선 지혁의 눈가는 이미 잔뜩 붉어진 채였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그 곳에는,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무원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저를 반겨주고 있었다.
“……웃지마.”
“…….”
“나 보고, 그렇게 웃어주지마 형…….”
내가 형한테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데. 형은 날 저주하고 미워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그렇게 예쁘게 웃어. 나한테 왜 그렇게 웃어줘.
“……이제 와서 미안해……. 형을 마주할 용기가 안 났어……. 오늘 아침까지도 고민 많이 했어……. 올까, 오지 말까.”
옷을 다 차려 입고서도 침대 위에서 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감히 여길 와도 되는 걸까. 내가 감히 형을 보러 와도 되는 걸까. 그 고민에 함부로 발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근데 형수가 그러더라. 보고 싶지 않았냐고……. 보고 싶으면 가도 된다고……. 가족이니까…….”
‘가족’이란 단어를 내뱉는 지혁의 얼굴엔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소중한 단어를 내가 형한테 뱉어도 되는 건가,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는 건가 하며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용기 내서 왔어……. 사실은 형이 너무 보고 싶어서…….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 나도 아는데……. 그래도 형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입을 열지 못한 지혁이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곳에서 지혁은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로 그렇게 울었다.
“낙원씨. 정말 괜찮겠어요?”
“어. 괜찮아.”
그렇게 대답하는 말과는 달리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고, 얼굴은 열로 인해 불그스름했다.
어제 납골당에 다녀온 뒤로 시름시름 앓더니 밤새 열에 시달리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서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더 심해졌으니 큰일이다.
“오늘 운전하지 말고 택시 타고 가요. 네?”
“괜찮아.”
자주 아픈 편은 아니지만 한 번 감기에 걸렸다 하면 심하게 앓아서 가족들의 걱정을 시키고는 했는데, 이젠 그 대상이 은유가 되어버려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괜찮다고 우기고 우겨서 결국 운전을 하고 학교에 도착하니 상태는 더 나빠졌다. 아이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머리와는 달리 몸은 축 늘어져 무겁기만 했다.
“아니, 강선생 상태가 왜 이래?”
아침조회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낙원의 모습을 발견한 교감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꼭 1년에 한번씩 아플 때가 있는데, 어김없이 그 시기가 돌아온 모양이다.
“강선생 그래서 수업 들어가겠어?”
“괜찮습니다.”
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가는 복도에서도 은유는 발만 동동 굴렀다.
“정말 수업 들어갈 수 있겠어요?”
“괜찮대도.”
웬만해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낙원의 옆에 잘 있지 않으려고 하는 은유가 오늘따라 딱 붙어 있는 게 신기했는지 학생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쏠려 있었다.
“애들 본다.”
“지금 그게 문제에요?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데.”
평소 같았으면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게 펄쩍 뛰었을 거면서, 아프다니까 옆에 착 붙어서 제 걱정을 해주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이 나와요?”
“살만 하다는 거지. 걱정 말고 올라가.”
교실 앞에 도착해서도 은유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예 문 밖으로 얼굴을 내놓고 구경하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아픈 남편 걱정에 그녀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수업 조심해서 잘 해요.”
“알았어. 수고해.”
먼저 교실로 들어가는 낙원을 보고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 억지로 옮겨 도서실로 오자 다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강선생님은? 수업 들어가셨어?”
“네…….”
“얼굴 진짜 안 좋으시던데. 1년에 한번씩은 꼭 아프시대. 그러고 보니까 매년 이때쯤이라고 하던데.”
그러게요. 아주버님 일 때문에 속상해서 더 그런 것 같은데…….
항상 밝기만 하던 은유도 오늘은 낙원 걱정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일을 집중하려 애썼다.
하필 이런 날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전부 다 수업이 있었다. 낙원은 쉬는 시간에 잠깐씩밖에 쉬지 못했다. 그런 남편을 걱정하며 도서실에서 업무를 보던 은유는 입구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힐끔 시선을 돌렸다.
타다다닥.
누가 뛰어 오는 소리 같은데…….
“선생님!”
“어? 강준아! 수업시간인데 왜 올라왔어?”
“선생님 좀 내려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낙원이 많이 아픈 것 같다는 이어진 말에 은유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강준을 따라 간 곳은 3학년 2반 교실이었다.
점심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약 15분 정도.
오늘 낙원이 아프다는 소문이 이미 학교에 퍼져서 아이들이 걱정했지만, 낙원은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정신력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다행히 진도는 나갔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그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걸 발견한 학생이 반장인 강준을 불렀다.
가까이 가보니 불러도 대답도 없고, 이마는 불덩이가 되어 있는 낙원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은유였다.
앞문을 열고 등장한 은유의 모습에 아이들이 놀란 것도 잠시, 다들 낙원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그녀에게 전했다.
“선생님. 강쌤 많이 편찮으시대요.”
“아까부터 계속 안 좋으셨어요.”
“병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교탁을 지나쳐 한쪽에 마련된 책상 앞으로 다가가 낙원의 이마에 손을 댄 은유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열이 굉장히 심했다.
“낙원씨. 낙원씨 정신 좀 차려봐요.”
“…….”
침착해야 하는데, 손이 떨리며 머리 속이 백지장이 된 것 마냥 하얘졌다.
일단, 일단 병원으로 가야 한다.
“심선생님!”
앞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뛰어왔는지 머리가 흩날려 있는 은혁이 보였다.
“강선생님 아프다면서요. 혼자는 힘드니까 일단 같이 부축해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키가 큰데다가 몸에 힘까지 없어 늘어진 낙원을 부축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현의 말을 듣고 다행히 수업이 없던 은혁이 와준 덕분에 낙원을 옮길 수가 있었다.
“뭡니까 지금.”
교실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지혁이 세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 이사장님. 강선생님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혁의 시선은 대답을 하는 은혁이 아닌, 오른 쪽에서 낙원을 부축하고 있는 은유에게로 향해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혁이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낙원의 앞에 등을 보이고 무릎을 굽혔다.
“……이사장님, 뭐 하세요?”
“업히세요.”
“네?”
놀란 건 은혁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놀라 가만히 서 있는 은유를 올려다본 지혁이 그녀의 작은 어깨에 걸쳐진 낙원의 팔을 빼 제 어깨 위로 얹었다.
“심은유 선생님 따라오세요.”
낙원을 업고 성큼성큼 앞서가던 지혁을 멍하니 쳐다보던 은유가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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