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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선생님-31화 (31/112)

31. 너 나 시험하지2016.11.01.

은유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낙원의 두 눈은 오롯이 진실을 담고 있었다.

신혼여행 이라니.

말도 안돼. 신혼여행 이라니!

“진짜요? 정말이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신이 나 하는 은유를 보며 낙원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혹시 전부터 바라고 있던 것일까?

“그렇게 좋아?”

“네! 사실 얼마 전에, 소희가 남자친구랑 여행 간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너무 부러웠어요.”

멍청한 강낙원.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가 원하는 것 하나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얘기 하지. 여행은 금방 다녀와도 돼.”

“정말요? 우리 그럼 국내여행부터 하면 안돼요? 네?”

두 눈을 반짝이고, 양 손을 마주잡고 기대에 부푼 얼굴로 조르는 모습이 귀여워 낙원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원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

낙원의 질문에 은유는 한반도 전체 도시의 이름을 쏟아내다시피 읊었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가릴 것 없이 다 터져 나왔다.

“아! 가을이라 막 축제 하는 곳도 많을 텐데! 단풍도 너무 예쁠 거에요.”

“바로는 조금 힘들고, 수능 끝나고 가자.”

“진짜요?”

서점이라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함과 행복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먼저 알아차려주지 못한 미안함, 웃는 얼굴로 느껴지는 행복함. 전부 다 아내인 은유가 주는 소중한 감정들이었다.

서점을 나서서 집으로 향하는 내내 은유는 여행 이야기에 들떠 있었다. 낙원의 옆에 착 달라붙어 당장 어디부터 가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띵동.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오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은유 대신 인터폰을 확인한 낙원이 ‘열림’버튼을 눌렀고, 몇 분 지나 남자 두 명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기존에 있는 침대부터 수거하겠습니다.”

오전에 침대를 구입하자마자 낙원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백화점 사장인 작은 고모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방금 침대 샀더라, 조카?]’

‘뭐가 그렇게 빨라.’

‘[김실장이 매장 돌다가 너 봤대! 듣자 하니 사이즈가 어마어마 하다던데?]’

‘내 결혼생활에 너무 큰 관심이라고는 생각 안 해?’

‘[어머? 섭섭하게. 기존에 있던 침대 뺄 거지?]’

‘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고모가 사람 보내서 침대 옮겨줄게.]’

‘뭘 그렇게까지.’

‘[야. 우리 가족들이 너희 부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지극한데. 이 정도쯤이야. 오후에 가면 되지?]’

‘어. 고마워 고모.’

‘[알면 하루 빨리 예쁜 아이를 보여주겠니?]’

‘앞서나가네 또. 끊어.’

어떻게 온 집안 사람들이 다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는지 참.

장정 둘이서 순식간에 침대 두 개를 해제하고 옮기는 동안 은유는 시원한 주스 두 잔을 내어 왔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새로운 침대를 들이기 위해 두 남자가 다시 내려간 사이, 은유는 대한민국의 빠른 일 처리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진짜 빠르지 않아요? 어떻게 오늘 다 되지? 기존에 있던 것도 다 옮겨주시고…….”

이게 다 고모의 계략임을 알고 있는 낙원은 사실대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괜히 은유가 들으면 더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새로 산 침대가 침실 중앙에 놓여졌고, 두 남자를 배웅하고 난 부부는 주방으로 향했다.

“으으, 배고프다.”

잘 끓인 삼계탕을 뚝배기에 담아 각자의 앞에 놓아두고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은 늦은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야들야들하게 삶아진 닭의 다리 한쪽을 뜯어 접시에 내려 놓은 낙원이 고개를 들어 은유를 빤히 쳐다보았다.

“심은유.”

“네?”

은유는 여전히 닭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살을 잘 발라 작은 입 안으로 쏙 넣고 있는 중이었다.

“요즘 왜 자꾸 몸보신 시켜.”

“네?”

입 안에 고기를 가득 널고 우물거리며 먹던 은유가 힐끔 낙원을 쳐다보았다.

잘 먹다 말고 무슨 소리래.

“저번엔 해물 탕이더니, 이번엔 닭백숙.”

“환절기라 자칫하면 감기 걸리기 쉽잖아요. 몸이 건강해야 뭐든 다 잘하죠.”

“내가 뭘 잘해야 하는데?”

아 정말. 열심히 뜯고 있는데 왜 자꾸 말을 시키는 거야.

이번엔 날개에 붙은 살을 발라먹던 은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낙원을 쳐다보자 아예 젓가락을 내려놓고 턱을 괸 채로 저를 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 왜 안 드세요? 혹시 입에 안 맞으세요?”

또.

그렇게 순진하게 ‘난 아무것도 몰라요’하고 쳐다보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대체.

“너 나 시험하지.”

“네? 시험이라뇨?”

“……아니다. 마저 먹어.”

그래.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쳐다보는데, 그런 흑심을 품는 내가 미친 놈이지. 내가 미친놈이야.

반 자포자기한 상태로 한숨을 내쉰 그가 수저를 들어 뜨거운 국물을 입 속으로 넣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게 정말로 맛있었다. 요리는 또 왜 이렇게 잘해.

“잘 먹었어.”

식사를 마치고 은유를 도와 테이블을 정리한 그가 싱크대에 그릇을 넣고는 익숙하게 고무장갑을 꼈다. 이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식사를 마친 뒤에 은유와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는 게 이제 하루 일과가 되었다.

은유가 스펀지에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으면 낙원은 깨끗한 물로 씻어내 건조대 위에 올렸다.

“내일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음, 아뇨. 딱히 없어요. 낙원씨는요?”

일요일인 내일까지 오로지 둘만의 시간이었기에 낙원은 은유가 하고 싶다는 것을 같이 할 생각이었다.

“데이트 또 안 해도 돼?”

“해야죠! 근데 낙원씨도 좀 쉬어야죠. 우리 내일은 집에서 쉬면서 책 볼까요?”

“그래, 그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설거지를 마친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소파에 나란히 앉아 티비를 켰다.

뉴스는 이미 끝이 났고, 연예 프로그램이 막 방영되고 있었다.

“우와!”

옆에서 들려오는 탄성에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낙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즘 사극 드라마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젊은 남자 배우의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쟤 팬이야?”

“팬까지는 아니에요. 근데 잘생겼고, 연기도 잘하고, 키도 크고, 심지어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춰요!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어떻게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지? 진짜 연예인 하려고 타고났나 봐요!”

제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남자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는 은유를 보며 낙원은 기가 찼다. 남자 배우는 생글생글 잘도 웃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생긴 건 뭐, 좀 생겼네. 키도 뭐, 좀 큰 것 같고. 근데 기분 나쁘네, 이거.

질투심이 일은 낙원이 은유의 가까이로 다가가 앉았다. 그런데도 반응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젠 좀 쳐다 보겠지.

“어머 세상에. 말하는 것 좀 봐. 말도 너무 예쁘게 하지 않아요?”

……점점 기분이 더 나쁜데.

어깨를 바짝 끌어당겨 품에 안았지만 아내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

“어머 어머! 웃는 것 좀 봐! 어려서 그런가 엄청 상큼하네. 윤주쌤이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네가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에이~ 아니에요. 저는 팬까지는 아니라니까요?”

팬도 아닌데 이렇게 좋아해? 입이 아주 귀에 걸렸는데?

“그럼 넌 누가 좋은데.”

“저는 빅시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흘러나온 두 글자에 낙원의 팔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다시 말해봐.”

“빅시요! 낙원씨 몰라요? 요즘 완전 핫한 아이돌이에요!”

은유는 여전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그것도 여전히 웃는 채로.

“다시.”

“에이, 왜 있잖아요~ 빅시라고 막 컨셉돌로 유명…….”

까르르 웃으며 고개를 돌리던 은유가 낙원의 눈과 마주쳤다. 그런데 눈빛이 좀……. 이상한데.

“……낙원씨?”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네?”

“뭐가 그렇게 좋아.”

지금 이거……. 질투하는 것 같은데…….

“낙원씨. 혹시 질투해요?”

“뭐?”

“아니, 좀 화가 나신 것 같은데…….”

이 여자가 진짜. 그걸 지금 말이라고.

“팬도 아닌 저 어린 애도 이 정돈데, 팬인 빅시는 더 좋아하나 봐.”

“아……. 아하하. 에이, 연예인이잖아요! 그냥 뭐, 우상 같은 거죠!”

“우상?”

나 지금 말 잘못한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거 진짜 질투 아니야?

“지금 질투하는 거 맞죠? 그죠?”

“누가 누굴 질투해.”

“에이~ 맞잖아요!”

키득거리며 낙원을 쳐다보던 은유의 몸이 순식간에 소파에 눕혀졌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낙원이 은유의 얼굴 위로 제 얼굴을 내렸다.

“나, 낙원씨.”

“심은유.”

너무 놀란 나머지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은유의 귓가로 입술을 내린 낙원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 자꾸 나 시험하지.”

잔뜩 잠겨 있는 목소리에 심장이 가늘게 떨려왔다. 귓가에 내려앉은 목소리는 정말이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섹시했다. 은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낙원의 볼에 쪽 입을 맞추었다.

그 반응에 놀란 그가 고개를 돌리자 발그레한 두 뺨을 감싼 아내가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심은유.”

낮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은유가 두 팔을 뻗어 낙원의 목을 감쌌고, 그녀가 던진 한마디에 낙원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내일도 주말이에요, 강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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