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강선생님-28화 (28/112)

28. 내일 주말이야2016.10.29.

“강선생님!”

보충수업을 마친 후 교무실로 돌아온 낙원은 맞은편 책상에서 조심스레 저를 부르는 은유를 쳐다보았다. 눈을 요리조리 돌리는 게 남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무슨 일인가 싶어 몸을 기울이자 화들짝 놀라며 되려 몸을 뒤로 뺐다.

“……뭐 해.”

“너, 너무 가깝길래……. 일 다 끝나셨어요?”

“어. 일찍 내려왔네.”

“네! 그럼 지금 퇴근해도 되는 거에요?”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환해지는 게 평소의 은유와는 조금 달랐다. 이렇게까지 퇴근을 바라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가방을 챙기는 낙원을 보며 은유도 재빠르게 책상 위를 정리하고는 그를 따라 나섰다.

교무실을 나서서는 학생들의 눈이 있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아야만 했다. 이미 받고 있는 이 시선들도 따가울 지경인데 더 말이라도 했다가는 입에 오르내릴 게 분명했다.

주차장으로 와 차에 오르자마자 은유는 안전벨트도 매지 않은 채로 낙원의 팔을 꼭 붙들었다.

“낙원씨!”

다급하게 제 팔을 잡는 아내의 손길에 낙원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예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게 딱 그녀답게 사랑스러운 모습이어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왜 그래.”

“저희 내일 데이트 해요!”

“데이트?”

낙원의 물음에 은유가 격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뜨린 낙원은 은유 쪽으로 몸을 돌려 팔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밀착에 당황한 은유가 눈을 커다랗게 떴고, 그게 또 귀여워 낙원은 작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안전벨트를 직접 매주었다.

“뭘 그렇게 놀래.”

“하, 하, 학교잖아요!”

“그래서. 싫었어?”

“……아뇨…….”

부끄러움으로 인해 잔뜩 붉어진 얼굴이 귀여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입 꼬리를 매만지며 낙원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뭐 하고 싶은데.”

“네?”

“내일 데이트 하자며.”

“아!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저희 데이트 제대로 한 적이 한번도 없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데이트를 한 적이 없다. 평일엔 학교 다니기가 바빴고, 주말에는 계속 일이 있었으니까.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고 부드럽게 정지 선에 멈춰선 후 낙원은 은유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저를 보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뭐 할지는 오늘 생각해 볼래요! 낙원씨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글쎄. 나도 생각해 볼게.”

“히히. 벌써부터 기대 된다.”

어쩌자고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집으로 향하는 내내 은유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쉬지 않고 그에게 들려주었다. 대부분이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현에게 들은 바로는 요즘 들어 도서실을 찾는 학생들이 많은데, 특히 은유를 보러 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자신과의 결혼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도 성격이 좋아 따르는 아이들이 있었다는데 결혼 후에는 아예 대놓고 놀러 가서 두 사람에 관해 질문을 쏟아낸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낙원의 팔에 팔짱을 쏙 낀 은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 그래서 제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세요? 막 저희 처음에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보는데 할말이 없는 거에요!”

“선 봤다고 하지.”

“고민하다가 그렇게 얘기하기는 했어요. 사실은 사실이니까 뭐……. 아무튼, 학생들이 관심이 진짜 엄청나다니까요?”

집으로 들어서면서도 강준이와 아영이에 대한 이야기로 열변을 토하는 은유를 보던 낙원이 천천히 뒤로 돌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막 강준이는 도망 다니고, 아영이는 또 쫓아가고! 어휴. 말도 마세요. 완전 무슨 술래잡기 인 줄 알았……. 왜, 왜 그렇게 보세요?”

현관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으려던 은유는 저를 빤히 쳐다보는 낙원의 시선에 움찔했다.

뭐지. 또 뭘 잘못했나?

뭔가 실수를 한 게 있나 생각하는 사이, 낙원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

“심은유.”

“네, 네?”

아닌데. 나 오늘 잘못한 거 없는데? 근데 얼굴은 왜 이렇게 무서워?

“내일 주말이야.”

“네……. 내일 주말인데……. 그게 왜요?”

그게 왜요? 이 여자 봐라.

괘씸한 마음에 낙원은 은유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은유의 등에 차가운 현관 문이 닿았고, 귀여운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평일엔 키스 못하게 했잖아.”

“……네?”

“출근해야 하니까, 입술 부어서 안 된다며.”

“……아……. 아하하…….”

두 사람이 처음 키스를 한 이후로 은유는 먼저 입술을 붙였다가도 낙원이 조금만 진하게 키스를 해오는 기색이 보이면 바로 멈췄다.

은유의 입장에서는 저를 잡고 놔주지 않는 낙원 때문에 입술이 퉁퉁 부어서 아이들의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지만 낙원은 아니었다.

모든 모습이 다 사랑스러워 제 옆에만 꼭 붙여놓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볼 때가 허다하고,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내일 출근해야 하니 자제해야 한다고 하고. 애들도 아니고, 자제는 무슨 자제. 키스도 엄청 자제하는 중이라는 걸 아내는 정말 몰라서 그런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에 은유는 슬그머니 눈을 내리 깔았다. 저 잘생긴 얼굴을 계속 마주하기가 왠지 부끄러워서.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낙원의 손이 은유의 턱을 잡고 살짝 들어 눈을 마주보게 했다.

“피하지 마.”

예고 없이 하는 키스도 아닌데 오히려 더 떨린다. 조용한 집 안에 제 심장소리만 크게 들릴까 봐 걱정이 앞선 것도 잠시, 부드럽게 마주쳐오는 낙원의 입술에 은유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며 감겼다.

촉. 촉.

한 번, 두 번. 그렇게 여러 번 짧고 부드럽게 입을 맞춰오던 낙원이 점점 더 진하게, 길게 은유의 입술에 머물렀다.

그리고 현관문에 기대어 있는 은유의 몸을 번쩍 들어 안았다. 놀란 은유가 본능적으로 두 다리로 낙원의 허리를 감쌌고, 두 팔로 그의 목을 꼭 껴안았다.

“나, 낙원씨!”

“잘 잡아. 안 떨어지게.”

그 말을 끝으로 낙원은 은유의 입술을 머금으며 그녀를 안은 채로 거실을 지나고, 안방 안으로 들어가 부드러운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드름마냥 차갑고 딱딱하기만 했던 남편인데, 이제는 허울뿐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의 모습으로 부딪혀오는 입술에 황홀할 지경이었다.

단단한 두 팔에 저를 가두고, 소중한 보석을 다루는 것처럼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낙원의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천천히 눈을 뜨자 제법 눈이 풀린 그의 모습이 보여 은유는 다시 한 번 ‘심장폭행’의 의미를 절실히 깨달았다. 무슨 남자가 이렇게 섹시하지.

“……낙원씨.”

“지금 되게 위험해, 너.”

“……네?”

“그런 목소리로.

“…….”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내가 좀 곤란한데.”

낙원의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은유의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올 때마다 부끄러워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눈만 깜빡이곤 했다.

“그, 죄송해요…….”

“그래. 네가 너무 사랑스러운 죄야.”

작게 웃으며 은유를 침대에서 일으켜준 낙원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해주고는 안방에 딸린 욕실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씻고 나와.”

“아, 네. 낙원씨도 얼른 씻어요.”

씻고 나오라는 말이 원래 이렇게 야한 말이었나? 오늘따라 유난히 저 미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 같아 은유는 도망치듯 욕실로 들어섰다.

옷을 벗어 한쪽에 잘 놓고 샤워기를 틀고 따뜻한 물 아래 서니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과는 다르게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낙원과의 키스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을 받는다는 기분이 절실하게 느껴져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거구나, 하며 내심 깨달은 은유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섰다.

화장대 앞에 앉아 기초화장품을 바르고 머리까지 말렸는데도 낙원은 욕실에서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아직도 물소리가 들리는 게 샤워가 길어지는 모양이다.

의자에 앉아 있다 몸을 돌린 은유의 눈에 두 개의 침대가 들어왔다. 왼편엔 자신의 침대, 오른편엔 남편인 낙원의 침대.

호텔에서의 이후로 낙원은 자신을 같은 침대에서 데리고 자곤 했다. 덕분에 뜨겁게 키스를 나누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 아침까지 그의 품 안에 안겨 있을 수 있었다.

“……나 어디 누워야 되지…….”

자신의 침대에 눕자니 또 한 소리 할 것 같고. 그렇다고 낙원의 침대에 눕자니 너무 앞서가는 것 같고……. 대체 이게 뭐라고.

혼자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고민을 하던 은유가 몸을 일으켜 향한 곳은 결국 자신의 침대였다.

인형이 누워있는 침대로 들어가 그 인형을 꼭 껴안고 누운 은유는 얼굴만 내놓은 채로 낙원의 빈 침대를 한없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인데. 그 전까지는 단 한번도 낙원의 쪽으로 몸을 눕히고 자본 적이 없는데. 이젠 저 빈자리가 휑하게만 느껴진다.

그가 덮던 이불, 그가 베던 베개를 가만히 쳐다보던 은유의 눈이 점점 감겼다.

안 되는데. 낙원씨 아직 안 왔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머리와는 달리, 샤워까지 해서 나른해진 몸은 은유를 결국 재우고야 말았다.

샤워를 마친 후 방으로 들어선 낙원은 뜻밖의 광경에 웃음이 났다. 오늘 유난히 더 예쁜 아내 때문에 제 욕구를 참느라 다른 때보다 샤워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날 두고 잠이 오냐.”

그렇게 읊조리며 낙원은 은유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뽀얀 얼굴로 커다란 인형을 꼭 안고 자는 걸 보니 어린아이 같았다. 근데 왜 이 침대야. 하긴 뭐, 어디든 다 좁지.

“은유야.”

작게 불러보아도 잠에 푹 빠진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낙원은 이불을 들춰 은유의 팔에 감겨 있는 인형을 빼서 제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다시 그녀의 침대로 돌아와 그 좁은 자리에 제 몸을 뉘였다.

조심스레 머리를 들어 제 팔 위에 올려놓자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가슴에 안겨오는데 함께 안겨오는 향긋한 바디워시 향기에 차가웠던 몸이 다시 달았다.

“심은유. 왜 자.”

“…….”

귀에 낮게 속삭이자 간지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는 게 귀여워 낙원의 입가가 씰룩였다.

“아……. 진짜 너 때문에 미치겠다.”

그렇게 낙원은 꽤 오랫동안 잠든 아내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며 행복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깨워 키스를 해주고 싶었지만 곤히 잠든 얼굴에 그저 허리를 감싸 안고 작은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촉.

“…….”

촉.

“으응…….”

촉.

“…하지마아…….”

잠결에 입술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몸을 뒤척이며 인상을 찌푸리는 은유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입맞춤이 날아들었다.

촉.

“심은유.”

“…….”

촉.

“은유야.”

부드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은유가 고개를 묻고 누군가의 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 품의 주인인 낙원의 입가에 부드러운 곡선이 그려졌다.

하루 중 낙원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보이는 아내의 얼굴과, 귀여운 잠투정. 그리고 그 투정 중 하나인 제 품으로 안겨오는 행동.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딱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은유야.”

몇 번이고 저를 찾는 입맞춤과 목소리에 결국 은유가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고개를 들자 꽤 진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찾아온 입술은 그녀의 여린 속을 몇 번이고 헤집고 나서야, 제법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떨어졌다.

“낙원씨이…….”

“정신 좀 차렸어?”

못 차릴 리가 있나. 이렇게 진하게 아침을 시작하게 해줬으면서.

수줍음으로 물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은유에게 낙원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데이트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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