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5년 전 그 날2016.10.28.
퇴근 해서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낙원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걸어볼까 싶다가도 너무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것 같아 은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제 손을 꼼지락거리다 거실로 걸어 들어가는 낙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화가 나 보인다기 보다는 뭔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오늘따라 그의 뒷모습이 작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걸음에 달려간 은유는 두 팔을 뻗어 남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백허그에 놀랐는지 낙원은 잠시 미동이 없다 제 허리에 감겨 있는 은유의 작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몸을 돌려 손을 들어 은유의 허리를 감싸자 발그레한 두 볼로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이 눈동자에 가득 들어찼다.
“괜찮아요?”
“미안해. 신경 쓰이게 해서.”
“아니에요. 난 괜찮아요. 낙원씨가 좀 힘들어 보여서, 걱정이 돼서 그래요.”
제 감정에 치우쳐 은유의 기분은 미처 헤아려주지 못한 미안함에 낙원은 붉은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작은 몸을 꽉 끌어안았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낙원씨…….”
“피곤할 텐데 씻고 나와.”
“네. 낙원씨도 얼른 씻어요.”
각자 욕실에서 씻고 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항상 뉴스를 보는 낙원을 위해 티비를 켜려고 리모컨을 들던 은유는 커다란 손에 저지되었다. 의아한 눈으로 낙원을 쳐다보자 그가 작은 손을 꼭 잡아왔다.
“할 얘기가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일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은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커다란 손 위에 자신의 다른 손 하나를 올려 감싸 쥐었다. 그가 마음 놓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야긴데……. 사실은 형이 한 명 있었어.”
“……네.”
“알고 있었어?”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 은유의 태도에 오히려 놀란 낙원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작은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체 어떻게?
“저번에 아가씨네 집에 갔을 때, 우연히 사진을 봤어요……. 낙원씨랑, 주원아가씨랑 같이 어릴 적에 찍었던 사진이요. 너무 닮아 보이는 아이가 있어서…….”
“찾아봤구나.”
“……네. 죄송해요.”
그래.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다. 이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자신들의 가족사. 유명인이니까 감수해야만 하는 세간의 관심들. 형이 죽던 날도 기자들의 끊임 없는 질문과 플래시 세례에 진절머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가늘게 떨리는 커다란 손을 보며 은유는 제 두 손에 힘을 실었다.
눈을 감았다 뜬 낙원이 은유를 쳐다보았다.
분명 너도 궁금했을 거면서. 그런데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 자신이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어쩌면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를 배려하고 사랑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래. 본 대로야. 나보다 네 살이 많은 형이었어. 맏이라서 그런지 나랑 주원이를 많이 챙겨줬고. 내가 유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에도,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을 때에도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줬어.”
“…….”
“나한테 형은 내 버팀목이었어.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자랄 수밖에 없는데 형 혼자서 우릴 막아주고, 우리보다 더 많이 세간에 자신을 비추고. 기업인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무게를 혼자 다 견뎌줄 정도로 우릴 많이 아끼고 사랑해줬어.”
늘 그랬다. 항상 제 편이 되어주고, 모든 일을 다 응원해주고 감싸주고.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었다, 형은.
“유난히도 햇빛이 좋은 날이었어. 형은 독립해서 회사 근처에서 따로 지내고 있었는데……. 공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원이한테 전화가 왔어. 형이 죽었다고.”
가을바람이 선선했던 5년 전 10월 20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한참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할 때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어 주원아.”
“[……오빠…….]”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늘 말괄량이에 기운이 넘치던 동생의 힘없는 목소리에 걱정이 앞섰다. 목이 말라 편의점으로 들어가 물 하나를 들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꺼내던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큰오빠가 죽었어.]”
“……뭐라는 거야.”
“[큰오빠가 죽었다고. 오빠 지금 어디야? 무원오빠가 죽었다고!]”
악을 쓰듯 울며 전해지는 목소리에 낙원의 손에서 툭. 지갑이 떨어졌다.
“손님?”
“……강주원.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제가 잘못 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동생이 뭔가를 잘못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목소리가 떨렸다.
“왜 대답이 없어! 강주원!”
그 어떤 대답도 없었다. 그저 휴대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주원의 울음소리가 그 어떤 말보다 더 확실한 대답이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앞에 깔린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을 지나 수술실로 올라가자 처참한 광경이 오롯이 담겼다.
아무 말도 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 아빠. 바닥에 주저 앉아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우는 엄마.
그런 엄마의 옆에 구부리고 앉아 서럽게 우는 주원이.
그리고…….
침대 위에 덮여 있는 하얀 이불.
“……형…….”
아닐 거다.
“……형……. 나 왔어…….”
내가 아는 우리 형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데.
“형……. 일어나봐. 나 왔어…….”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누워 있어. 왜 이렇게 아무 대답이 없어. 왜 이렇게 얼굴을 안 보여줘.
“강무원……. 나 왔다고……. 일어나라고!”
“……그만 해 오빠.”
“일어나 강주원. 너 왜 울어. 죽긴 누가 죽어. 누가 죽었는데!”
아니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낙원아, 우리가 잘못 안 거야. 형은 안 죽었어. 이렇게 이야기 해줘야 하는데.
아빠도, 엄마도, 주원이도. 모두가 울기만 한다.
“일어나 강무원. 형은 화도 안 나? 형이 죽었다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아!”
악을 쓰며 침대를 흔드는 낙원의 팔 옆으로 무언가 툭 닿았다.
멍이 들어 있는 커다란 손. 이건 강무원의 손이 아니어야 하는데. 그런데 형의 손이 맞다.
그럴 리가 없어야 하는데, 무원의 손이 맞다.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제 어깨를 두드려주던 그 손이 맞다.
“아니라고 해줘. 형……. 아니……. 아니잖아……. 아니라고…….”
목이 따끔거리고 자꾸만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이 덜덜 떨려왔다.
강무원이 아니어야 했는데……. 강무원이었다.
“……아니어야 했는데……. 형이었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낙원을 보며 은유의 두 눈가가 붉어졌다.
단 한번도 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혼자서 괴로워하고 아파하느라 얼마나 외로웠을까.
두 팔을 뻗어 낙원의 커다란 몸을 끌어안았다. 작은 손으로 그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 곧이어 흐느끼는 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은유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던 낙원이 따뜻한 물을 목 뒤로 넘겼다.
“여기까지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형이 죽던 그 자리에, 강지혁이 있었어.”
“……네?”
지혁이 있었다니. 대체 어떻게? 왜?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어. 형이랑 나랑 주원이랑 강지혁. 강지혁이 외동이라 항상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놀고, 자고, 여행 가고. 그 날도 형이랑 같이 밥 먹으려고 집에 있었어. 나도 공부 마치고 거기서 만나기로 했었고.”
“…….”
“형이 습격을 당했을 때, 강지혁은 방에 있었어. 형이 몸싸움을 할 때 도와주기라도 했다면……. 아니, 신고라도 해줬다면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되지는 않았을 거야.”
형이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래서 난 강지혁이 싫어.”
얼마나 널 아꼈는데.
넌 그 시퍼런 칼날에 형의 몸이 망가지는 동안 방 안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지. 너에겐 휴대폰이 있었고, 전화 한 통이면 그 누구보다 빨리 경호원들과 경찰들이 형을 구했을 텐데. 넌 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형을 위해 그 정도도 해주지 못했다, 너는.
그래서 난 네가 죽을 만큼 밉다.
“조만간 형 기일이야. 경기도에 있는 납골당에 있어.”
“……같이 가요. 인사도 못 드렸는데…….”
자꾸 눈앞이 흐려지고 목이 메어 은유는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지만 억지로 웃으며 낙원을 향해 말했다. 그 모습에 낙원은 가슴이 미어졌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은유야.”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모든 것을 위로하듯 안아주어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서.
그리고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털어놓아 준 그에게 고마워서, 그가 더 이상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비가 제법 내리는 금요일 오후. 오랜만에 찾아온 한가한 시간에 은유는 다현과 도서실 한쪽에 커피를 두고 마주앉아 비가 오는 바깥을 쳐다보았다.
“요즘 비가 자주 오네요.”
“그러게. 심선생은 비 오는 거 좋아해?”
“네! 저는 비 오는 소리도 좋고, 냄새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요.”
“캬. 분위기 있는 여자네. 강선생님은? 강선생님도 비 오는 날 좋아해?”
다현의 물음에 순간 은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낙원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조차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낙원에 대해 모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혼인 신고 때 알게 된 생일과 혈액형을 빼면 모르는 게 대부분이었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슨 색상을 좋아하는지. 비 오는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아주 간단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심선생?”
“……저 몰라요…….”
“응?”
“……전 낙원씨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네요…….”
축 처진 은유를 보며 다현이 테이블을 탕탕 두드렸다.
“그게 뭐 중요한가?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지! 원래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상대방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르는 게 대부분이야. 지극히 정상이지 뭐!”
“정말 그럴까요?”
“그럼!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걱정 안 해도 돼. 아, 그나저나 내일 주말인데 뭐 해? 데이트 안 해?”
“데이트요?”
“응. 한창 신혼이니까 좋을 때잖아. 이럴 때 즐겨야지.”
그러고 보니……. 낙원과 데이트를 한 적이 있던가?
그 때 부여에서는 아주 잠깐 산책을 했던 게 전부고…….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서 제대로 데이트를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세상에나.
“그러게요! 내일 데이트 해야겠어요!”
멍하니 있던 은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빨리 퇴근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생각만으로도 낙원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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