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황태자는, 신데렐라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2017.08.31.
4년 후.
가끔씩 쌍둥이들에게 동생을 낳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제아와 달리 도준은 더 이상 아이를 바라지 않았다.
쌍둥이들을 1시간 반 만에 순산했지만 그래도 산통에 힘들어하는 제아를 본 게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살짝 힘 줬더니 아기가 나왔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순산이었다. 환상적인 골반을 가졌다고 의사도 놀랄 만큼.
하지만 아무리 순산이라도 룰루랄라 노래 부르며 아기를 낳을 순 없는 법.
무서울 정도로 비명을 내지르고 욕도 조금 하면서 엉엉 울었던 것도 같다.
―오빠, 모두 다 그렇게 아기를 낳아. 그래서 엄마는 위대하다고 하잖아.
그래도 건강하게 태어난 쌍둥이들을 품에 안은 채 농담까지 던졌지만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새하얗게 질린 낯빛을 한 도준의 눈가와 뺨이 축축하게 젖어 있던 모습이.
처음이었다, 그가 우는 걸 본 건.
그 후 가끔씩 그에게 물었었다. 우리 쌍둥이들에게 동생은 안 만들어줄 거냐고.
―난 너와 쌍둥이들만 있으면 돼.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준은 밤마다 뜨겁게 그녀를 안을 때마다 마지막은 항상 조심했다.
그런 밤을 보낸 게 꼬박 4년이고, 결국 셋째 생각은 접었다.
그런데 이렇게 덜컥 임신이 될 줄이야.
날짜를 따져 보니 두 달 전 3일간의 출장을 끝낸 도준이 급하게 그녀를 안았을 때였다. 단 한 번의 방심이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준 것이었다.
미국 출장을 간 도준은 내일 밤이 되어서야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4주년 결혼기념일 선물로 도준의 손에 초음파 사진을 쥐여주리라.
―내가 안아주지 않았다고 설마 잠 못 자고 있다가 확 안겨드는 건 아니겠지?
출장을 가기 전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귓가에 속삭이던 도준에게 그녀도 호언장담을 했다. 날마다 지치지 않고 그녈 품은 도준에게 들으라는 듯.
―오랜만에 푹 잘 거거든요? 꿈 깨시죠, 한도준 씨.
그런데 보기 좋게 어긋났다. 푹 자기는커녕 그가 곁에 없으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겹게 붙어 있었는데도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른하게 여린 살갗을 훑어 내리는 감각은 지독한 습관이었다.
***
오늘은 재롱잔치가 있는 날, 새희망 어린이집은 학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자 한 명 때문에 어린이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닌 것 같고 아이들의 이모나 되려나?
그런데도 관심이 가는 이유는 도도한 이미지에 온몸에서 철철 흐르는 부티 때문이었다.
학부모 중에서 용기를 낸 여자가 제아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보시는 분인데 누구 엄마예요? 아니면 이모?”
처음 보는 쌍둥이들의 재롱에 제아는 지금 가슴이 벅차오르는 중이었다.
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지 못한 게 미안하면서도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그래서 쌍둥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녀는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이모가 아니라 학부모예요.”
그러다가 불현듯 항상 그녀를 대신해서 어린이집을 쫓아다닌 윤영과 연희의 말이 떠올랐다.
어린이집 학부모들과도 잘 지내야 아이들이 잘 지낸다는 것을 말이다.
그제야 제아는 고개를 틀어 말을 건 여자에게 생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 원빈이 현빈이 쌍둥이 엄마예요.”
건성인 대답에 심기가 불편했던 여자의 귀가 번쩍했다. 특히나 딸 가진 학부모들은 더더욱.
“어머, 잘생긴 그 쌍둥이들? 항상 할머니가 와서 부모가 맞벌이인가 보다 했는데. 이렇게 보니 반가워요”
“맞벌이 맞아요.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통 와보지를 못했어요.”
싹싹하게 대답을 하는 제아를 여자가 빤히 들여다본다.
예쁘장한 얼굴도 얼굴이지만 아기 엄마라고 하기엔 늘씬하게 쫙 빠진 모델 같은 몸매가 아주 예술이었다.
“반가워요 저는 쌍둥이들 옆에서 율동하는 현지 엄마예요. 쌍둥이들이 이 어린이집에서 인기 최고인 거 아세요? 여자애들이 쌍둥이들 때문에 난리가 났어요, 호호! 그런데 아이들이 아빠를 닮아서 저렇게 잘생겼나 봐요?”
귀여운 쌍둥이들의 율동에 잊고 있었던 도준이 떠오르자 제아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잘생겼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몰라요.”
“네?”
“아, 죄송해요. 제 눈엔 저희 남편이 정말 잘생겼거든요.”
꽤 앙칼져 보이는 눈꼬리가 휘어지고 부드럽게 풀리는 얼굴을 보건대 남편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 보였다.
결혼 생활 4년 정도면 남편과 꽤 데면데면해졌을 텐데, 저런 미소가 나오는 걸 보면 아직도 사이가 좋나 보구나.
우월한 외모에 똑똑한 쌍둥이들도 쌍둥이들이었지만 이런 여자를 미소 짓게 하는 쌍둥이 아빠들의 존재가 여자들은 더욱더 궁금해졌다.
재롱잔치가 끝나자 학부모들은 항상 그렇듯이 집에 가기 전 어린이집 앞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그녀들의 수다가 갑자기 뚝, 멈추고 시선이 한데 집중되었다.
차에 대해 문외한인 여자들도 알 만한 ‘억’ 소리 나는 차에서 내린 멋진 남자에게 말이다.
장신의 키에 쭉 뻗은 팔다리의 비율도 예술이지만 마스크가 영혼이 녹아내릴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몸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거친 수컷이었다.
오로지 한곳에 시선을 고정한 남자는 거침없는 걸음으로 누군가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그러곤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제 여자의 허리에 팔을 감고 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걸 본 여자들의 입에서 다양한 단말마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어머어머머!”
“대박!”
이 순간 당혹스러운 건 제아였다.
늦은 밤에 도착한다는 도준이 왜 이 시간에 어린이집에 나타났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주변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이놈의 직진 본능 때문에 민망함은 오로지 그녀의 몫일 뿐.
“오빠, 여기 쌍둥이들 어린이집이란 말이야! 제발 좀 자제해! 그리고 쌍둥이들한테 관심도 좀 가져주고!”
“내 아내 먼저 챙기고. 쌍둥이들은 그 후에.”
그럼에도 어림없다는 듯 도준은 요리조리 피하는 제아의 얼굴을 큰 손으로 고정한 후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몸이 달달 떨릴 만큼 지독히도 섹시한 음성을 귓가에 흘렸다.
“다녀왔어, 문제아.”
그 후에야 도준은 쌍둥이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제아에게 했던 다정함과는 전혀 다른 엄격한 눈빛과 말투에 쌍둥이들은 바짝 긴장을 하며 느꼈다.
아빠가 또 엄마를 뺏으려 하는구나.
그럼에도 아빠는 엄청 무서운 존재였다.
쌍둥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을 배꼽에 올린 채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올렸다.
“아부지, 다녀오셔떠요.”
“아부지, 다녀오셔떠요.”
허리를 그렇게 숙이는데 무릎은 또 왜 구부리는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지만 그럼에도 아들은 엄격히 키워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 도준이었다.
그는 인사를 받고 나서야 양팔로 쌍둥이들을 번쩍 안아 올렸다.
“아부지 더더더! 좀만 더요! 하늘에 닿을래요!”
187센티미터의 장신 때문에 하늘로 쑥 치솟자 쌍둥이들은 그저 신이 났다.
“아빠한테 뽀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도준의 양 볼에 쌍둥이들의 입술이 쑥 파고들었다.
쪽쪽쪽.
참새처럼 쪼아대는 입술 모양새에 웬만해선 꿈쩍 않는 도준마저도 살살 녹아내린다.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는 입술이 느슨하게 벌어지며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했다.
애틋한 부자 상봉을 지켜보는 제아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어렸다.
쌍둥이들을 차에 태운 도준이 조수석의 문을 매너 있게 열어줄 때까지 여자들은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불현듯 생각났는지 제아가 돌아서서 학부모들을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쌍둥이들 아빠예요. 오빠, 인사해.”
그 다음 흘러나온 제아의 은밀한 속삭임은 도준만 들을 수 있었다.
“상냥하게 웃어주면서.”
‘내가 왜 다른 여자들한테 웃어줘야 하는데.’라는 항의라도 하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도준은 마지못한 듯 아주 희미하게 입술만 웃어 보였다.
“원빈이, 현빈이 아빠입니다.”
그런데 그 미약한 미소 아닌 미소에도 여자들의 눈은 몽롱하게 풀렸다.
“우리 조만간 시간 내서 제가 한턱 쏘러 오겠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제아는 학부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번호를 교환했고 눈웃음까지 사르르 흘렸다.
우월한 유전자 가족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저 남자 분명 어디서 봤는데. 연예인인가?
그러다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고, 이구동성으로 그 이름을 외쳤다.
“제일 그룹 황태자 한도준!”
“맙소사! 그럼 그 여자가 그 현대판 신데렐라?”
부회장의 비리로 곤두박질친 제일 그룹을 국민 기업이란 타이틀로 1위에 올려놓은 능력 좋은 젊은 부사장을 사로잡은 평범한 집안의 여식.
아직까지도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존재가 바로 제일 그룹 황태자를 사로잡은 신데렐라였다.
연예인보다 더 핫한 여자는 오로지 언론의 뉴스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었다.
제일 그룹 신데렐라 패션.
제일 그룹 신데렐라가 자주 찾는 음식점.
제일 그룹 신데렐라가 목격되었다…… 등등.
제일 그룹 자제들이 이런 평범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꿈에도 상상 못 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제 여자밖에 모르는 남자를 본 순간 그녀들은 동시에 느꼈다.
황태자는, 신데렐라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언론에 노출을 시키지 않은 건 오히려 공격 대상이 될지 모르는 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그의 배려라는 것까지.
결국 그녀들도 한국의 현대판 신데렐라를 보호해주기로 결심했다.
싹싹한 제아도 마음에 들었지만 신상이 공개되면 그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걸 아니까.
그래서 이 어린이집에 제일가의 자제들이 다니는 것도 쉬쉬했고, 재롱잔치 후 같이 찍은 단체 사진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공개되는 순간 이 어린이집 입소대기는 미친 듯이 넘쳐날 테니까.
***
종종 늦게 퇴근하는 제아를 대신해서 연희와 윤영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연희가 나타났다.
“할머니!”
연희를 보고 차에서 쪼로록 내리려는 쌍둥이들에게 도준이 말했다.
“들어가자마자 손 깨끗이 씻고. 엄마 아빠는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잠깐만 더 있다 내릴 거야.”
집에 들어가는 순간 둘이 아닌 넷이라는 걸 알기에 도준은 일부러 늦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차에서 내린 순간 둘만의 시간은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릴 테니.
연희와 쌍둥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도준이 안전벨트를 푼 후 자연스럽게 제아에게 몸을 숙여왔다.
능숙하게 고개의 각도를 비틀며 다가오는 도준의 입술을 제아는 피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도준의 따스한 품과 달콤한 키스가 미치도록 그리웠으니까.
길고 단단한 손이 보드라운 뺨을 감싸 끌어당기고 달콤하게 입술을 머금었다.
키스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자 맞물린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과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차 내부 공기가 끈적하게 달아오르고 정신은 몽롱해졌다.
혼몽해진 정신을 차린 제아는 어느새 좌석을 넘어가 도준의 다리를 타고 올라 넥타이를 손에 움켜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그시 올려다보는 도준의 눈빛이 매끈하게 반들거리는 제 입술에 닿는 순간 온몸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내가 오빠한테 졌어.”
휴,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도 도준의 예언은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내가 먼저 안기게 될 거라고 했잖아. 습관이 무섭긴 무섭나 봐.”
대담하게 다리를 타고 오를 땐 언제고 체념한 듯 투정부리는 제아가 귀여운지 도준이 목 깊숙한 곳에서 섹시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너라는 무서운 습관을 나한테 들인 게 누군데 그래.”
아휴, 말이라도 못 하면.
“5일이나 떨어져 있으려니 참을 수가 없었어. 제아 네가 곁에 없으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게 바로 나잖아. 그렇게 만든 게 너고.”
그래서 결국은 유 실장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몇 시간이라도 빨리 비행기 티켓 시간을 당긴 도준이었다.
“그러니 얼른 키스해줘. 우리 쌍둥이들이 엄마 찾으러 오기 전에.”
고혹적으로 눈꺼풀을 사르르 떨며 넥타이를 제게로 당기는 제아를 나른한 눈빛으로 보던 도준의 동공이 순간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순간, 제아의 눈도 쏟아질 듯 휘둥그레졌다.
짙게 선팅이 된 차 안이 보이지 않는지, 차의 창문에 바짝 붙어 두 손으로 시야를 확보한 채 안을 염탐하는 원빈과 눈이 딱 마주쳐버린 것이다.
“혀엉! 엄마 아빠 보여? 응? 현빈이 허리 아파!”
기묘한 자세로 아들과 눈이 마주쳐버린 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이를 어쩐다? 이 자세를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도준의 넥타이를 매만져주며 제아가 옆 좌석으로 옮겨가자 도준도 그제야 창문을 내렸다.
창문까지 키가 닿지 않으니 현빈이 바닥에 엎드리고 그 위를 원빈이 밟고 올라서 있었다.
하아, 이 애물단지들을 귀엽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럼에도 자꾸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건 뭔지.
***
쌍둥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켰다. 제아가 책을 읽어주고 도준이 지치도록 몸으로 놀아주었다.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까지 모두 들어준 후에야 쌍둥이들과의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지금 2층 쌍둥이들의 방에선 연희가 아이들이 자는 걸 도와주고 있었다.
드디어 둘만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도준은 차의 트렁크에 실어놓았던 커다란 드라이플라워 바구니를 뒤늦게 제아에게 내밀었다.
“결혼 4주년 축하해, 문제아.”
드라이플라워 바구니와 함께 도준이 그녀에게 내민 건 서류봉투였다.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응시하자 도준이 덤덤히 말했다.
“4주년 결혼 기념 선물. 열어봐.”
봉투 안에 든 서류를 확인한 순간 제아는 제 눈을 의심했다. 서류를 몇 번이나 뒤져봐도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미국 내에 그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건물의 명의가 자신의 이름으로 변경이 되어 있었다.
건물의 값어치를 돈으로 환산하려니, 머리가 뱅글뱅글 돌 정도이다.
“오빠 미쳤어?”
“미친 거야 진작 미쳤지, 너한테.”
아니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비스듬히 침대에 누워 팔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도준은 지극히 여유로울 뿐이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나한테 전 재산을 거의 다 넘겨? 혹시라도 내가 재산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싸울까 봐 선수 쳐서 미리 주는 거야?”
“그게 뭐라고 싸워. 그냥 너 다주면 되지.”
“……?”
“제일 그룹까지 다 너한테 줄 테니 더 기다려봐.”
이 말을 들으면 연희는 섭섭해 할 테고 한 회장은 팔불출이라고 지팡이를 휘두르겠지.
도준이 살그머니 손을 뻗어 제아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돈 같은 거 필요 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 문제아.”
“우리 쌍둥이들 좀 빼지 마. 난 그것도 서운하단 말이야.”
남자는 절대 모른다. 아빠가 너무 아이들만 챙겨도 여자들은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너무 무심해도 또 서운한 게 여자라는 걸.
“그래, 난 너와 우리 쌍둥이들만 있으면 돼.”
제아의 살결에 묻어나는 달달한 복숭아향을 음미하며 도준이 자잘한 입맞춤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나른한 감각을 즐기던 순간 제아의 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
맞다, 나도 결혼 선물!
“나도 결혼 선물 있어!”
긴장한 눈빛으로 도준에게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걸 응시하는 도준은 의외로 무반응이었다.
“이 사진을 왜 주는 거지?”
깜빡했다. 이런 것엔 이 똑똑한 남자가 둔하다는 걸.
“밑에 날짜 확인해봐.”
그제야 날짜를 확인한 도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9월 13일이면…… 제아 너, 임신한 거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도준을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날린 제아는 최종 통보를 했다.
“이번에도 쌍둥이래. 능력자, 한도준 씨.”
이렇다 할 반응은 없지만 초음파 사진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끝에 묻어나는 건 기쁨과 소중함이었다.
내심 싫어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의 반응에 제아는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아들 쌍둥이면 미워할 거야?”
“미워하는 게 아니야. 다만 수컷들끼리는 서열 정리를 해야 널 차지할 수 있으니 엄하게 하는 거지.”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노크도 없이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쌍둥이들이 난입했다.
“아부지! 원빈이랑 현빈이 구구단 다 외어쪄요! 그니까 오늘은 엄마랑 같이 코해도 되죠?”
자꾸만 침실로 난입하는 쌍둥이들에게 도준은 항상 미션을 주고 그 마지막 미션이 바로 구구단이었다.
이건 분명 몇 달 걸릴 거라 자부했는데. 그를 닮아 똑똑한 쌍둥이들은 구구단 미션마저 5일 만에 클리어한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쌍둥이들은 차렷 자세로 서더니 어설픈 발음으로 구구단을 읊었다.
“헤헤헤헤!”
“헤헤헤헤!”
구구단을 완벽하게 읊은 쌍둥이들은 아주 얄밉게 침대로 다이빙해서 뛰어들었다.
“아빠가 침대로 다이빙하지 말라고 했지.”
애꿎은 트집을 잡아보지만 쌍둥이들은 이미 제아의 품을 양쪽으로 떡하니 차지했다.
결국 오늘밤도 쌍둥이들에게 밀려난 그는 오늘도 침대 맡에 걸터앉으며 간절하게 빌었다.
이번 쌍둥이들은 꼭 공주님이기를.
그래서 제아도 자신처럼 똑같이 질투심을 느껴 악동 같은 쌍둥이들을 한번쯤은 먼저 쫓아내주고 제 품에 안겨들기를.
그의 널찍한 어깨가 축 처지는 순간…….
“구구단 클리어했으니까 오늘은 특별히 터닝메카드 1시간 보는 거 허락해줄게. 그러니까 우리 아들들, 할머니한테 달렷!”
“우와아아! 엄마 짱!”
잠 잘 시간이 1시간 뒤로 늘어난 것도 모자라 자기 전 보는 터닝메카드라니!
신이 난 쌍둥이들이 다시 우르르, 침대에서 뛰어내려 침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의아한 눈빛으로 그가 고개를 틀자 목욕 가운을 벗고 실크 슬립만을 걸친 제아가 고혹적인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한도준 씨, 뭐 해?”
“……?”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 유혹하는데 침대로 다이빙 안 하……, 꺄악!”
제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준이 장신의 몸을 침대로 날렸다.
다이빙하지 말라고 엄히 아들들에게 경고하던 도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쌍둥이처럼 제아의 품으로 덮치듯이 다이빙한 것이다.
곧이어 침대가 격하게 출렁이면서 달짝지근하게 얽힌 뜨거운 숨이 얽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