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미치게 하는 그대-80화 (80/104)

80. 너만 보면 식욕이 확 당겨.

2017.06.08.

촉촉하게 젖은 제아의 입술이 멍해져버린 도준을 보며 싱그럽게 웃는다.

“나 지금 오빠 유혹하는 건데.”

수줍어하면서도 대담한 그 말, 분명 들어본 적이 있었다. 도준의 뇌가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내리자, 귓바퀴를 맴도는 제아의 은밀한 유혹이 떠올랐다.

‘나 지금 오빠 유혹하는 거야. 오늘 밤 내가 오빠를 가질 거라고.’

서로가 서로를 처음으로 소유했던 그날이었다. 그날을 떠올리자 다시 올라간 눈꺼풀 밑으로 드러난 도준의 동공이 기묘한 빛으로 어두워졌다.

“방금 네가 한 말, 남자가 착각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야.”

착각하면 절대 뿌리치지 못할. 그 전에 경고해야 한다.

“그러니까 멈춰. 더 이상은 안 돼.”

도준은 경계하듯 뒤로 물러섰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착각 아닌데?”

틀어 잡힌 넥타이가 다시 잡아당겨졌다. 좀 더 바짝, 깊숙이.

“여자라고 먼저 그러지 말란 법 있어?”

그만큼 가까이 다가온 입술이, 애틋하게 시험하듯이 멈추어 섰다. 이제 선택하라는 듯.

“오늘밤 오빠랑 같이 자고 싶어.”

둔탁한 무언가에 심장이 세차게 후려쳐진 느낌, 도준은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제아 너 지금.”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항상 그를 당황하게 하는 유일한 존재. 그 존재가 또다시 그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자고 싶어.’란 그 한마디로 새하얗게 만들어버렸다.

살그머니 넥타이를 놔준 제아가 눈을 내리깔았다.

“오빠가 자꾸 금욕적으로 나오니까.”

대담한 유혹과 달리 내리깐 속눈썹 끝에 맺힌 자잘한 떨림들.

“더 유혹하고 싶잖아.”

그게 그렇게 서운했나. 이렇게 대담해질 정도로.

“엄마한테 손끝 하나 안 되겠다고 덜컥 약속이나 하고.”

흘러내린 가느다란 손끝이 도준의 얇은 와이셔츠를 미세하게 두드린다. 내가 괜한 말을 했나, 고민하는 것처럼.

그 미세한 진동이 와이셔츠 밑의 단단한 살결을 자꾸만 예민하게 건드렸다.

입술로 쏟아내는 대담한 유혹보다 이런 무의식적인 버릇이나 움직임이 더 유혹적이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넌 남자를 아직 몰라.”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순진무구한 제아를 보자 미세한 열기가 도준의 몸 안에서 급격히 몸집을 키워갔다.

그 순진무구함 대신 진득한 감각에 달아오른 표정을 미치도록 보고 싶다. 바르작바르작, 꿈틀거리는 그의 욕망이 제아를 집어삼키라 유혹한다.

“어머니와 약속.”

복숭아향이 은은히 배인 검지가 도준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그 약속 이제 그만 생각해. 그거 아니어도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너무 많잖아. 그런 거 다 생각하면 오빠랑 나 함께하지 못해. 안 그래?”

치켜뜬 발칙한 눈매가, 요망한 입술이, 야한 손짓이.

“그러니까 오빠랑 나만 생각해.”

다시 은밀하고 대담해졌다.

“수능을 앞둔 예비 고3을 위해 우리 엄마한테 한 번 더 소심한 반항을 해봐.”

까치발을 들어 제아가 입술을 부딪혀왔다.

“그래도 그 약속 지키고 싶다면.”

매끄럽게 파고드는 작은 혀의 움직임에 마지막 남은 도준의 이성이 툭 끊겨버렸다.

“나한테도 반항 한번 해보든지, 한도준 씨.”

그의 입술 사이로 스며드는 야릇한 숨결과 속삭임에 승리를 자축하는 웃음기가 묻어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기특한 학생이었다.

***

평창동 본가, 저녁 식사를 하는 한 회장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움직이는 수저질도 느려졌다.

고 집사가 굳이 식사 후에 보고를 올리겠다고 했지만, 기어코 식사를 하며 듣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급기야 늘어진 한 회장의 눈꺼풀이 씰룩이더니 숟가락을 던져버렸다.

“에잇, 못난 놈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건만!”

제일 그룹 후계자 자리를 도준에게 주려고 결심한 지 오래인 한 회장이었다.

연희가 불쑥 데리고 온 손자 놈이 아주 영특한 놈이란 걸 알자마자. 늘그막에 핏줄에 연연하게 된다는 걸 느끼자마자.

물론 고생한 한태영 부자에게는 섭섭하지 않게 한몫 챙겨주고 자리도 만들어주려는 생각이다.

기업은 한 명에 의해 운영이 되기엔 몸집이 거대하니까. 허울뿐이라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조력자가 절실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 회장 자신이었다. 제일 어패럴에서 제일 물산으로, 제일 백화점으로. 제일 그룹이 창립되었고 한국 서열 2위 그룹까지 올라왔다.

이런저런 핏줄이라도 있었으면 1위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회장은 혈혈단신이다. 뒤늦게 얻은 딸마저도 도준을 낳은 이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외도한 태영의 아들인 강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혈육이라곤 말 안 듣는 딸 하나, 통제 안 되는 손자 하나. 그게 전부였다.

‘내가 자손 복이 없는 게야. 그러지 않고서야!’

한 회장의 입술 사이로 씨근거림이 새어 나왔다.

“그 미국 부동산 재벌 상속녀는, 그리고 조선 호텔 딸내미는!”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 사이로 판단이 됩니다. 그 이상은 아닌 듯합니다.”

“하아!”

한 회장은 도준에게 제대로 속은 기분이었다. 스캔들까지도 철저히 관리하던 녀석이 이상하게 기사를 그냥 내보내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스캔들 터진 상대가 나름 괜찮은 집안이라 모른 척 눈감아주고 있었건만, 뒤에서 그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니.

“사내 식당에서 도준이에게 꼴사나운 짓을 하게 한 그 상대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한 회장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런 한 회장을 대신해 친절한 고 집사가 정확히 말을 이어주었다.

“10년 동안 이복동생으로 지냈던 문제아라는 여자입니다. 지금은 특별 전략팀 팀장으로 있구요.”

“얼씨구! 투명 경영 어쩌고 노래 부르더니 하는 짓 하고는! 이런 몹쓸 것들!”

격한 숨을 고른 한 회장이 주제를 돌렸다.

“한 부회장은?”

“한 부회장님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습니다. 한강훈 이사님만 손자분을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한 부회장은 느긋하다 이건가?”

“뒷배가 든든하니 서두르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한 회장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가 반대하고 자시고, 모든 주식을 도준에게 물려주면 제일 그룹 후계자 자리는 다툼 없이 서열이 정리가 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도움 없이 유지할 수 없는 게 바로 한국의 대기업이다.

정치 자금을 대주고 기업 이득을 취하도록 도움을 받고 눈감아주고. 그런 일련의 과정은 기업의 필수 성장 과정이었다.

후계자 자질이야 이미 입증이 되었지만, 투명 경영에 비리 근절을 외치는 도준을 측근들과 정치인들이 반길 리 없었다.

그들이 압력을 행사한다면 아무리 한 회장이라도 버티기는 무리수였다. 하나 지키자고 모든 걸 잃을 순 없었다.

“의원들과 만나는 자리는…….”

“손자분께서 일정을 뺄 수 없다고 이번에도 거절하셨습니다.”

“에잇! 쯧!”

이러니 속이 타들어가지 않을 수 있나. 정치인들과 단단히 결속을 하고 있는 한 부회장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고위급 정계 인사들에게 안면은 터야 할 것 아닌가!

자리를 어렵게 마련해주는데도 도준은 매번 가차 없이 거절했다.

제 여자 뒤꽁무니 쫓아다닐 시간은 있고, 의원들과 장관들 만날 시간은 없다 이거지?

“이천 제일 아울렛 오픈이 언제라고 했지?”

“이번 주말입니다.”

“다음 주중으로 아울렛 오픈 축하 명목으로 소규모 파티 하나 열게. 참가자 명단은 혼기 찬 자제들이 있는 재계나 정계 집안으로 작성해서 나한테 올리고.”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고삐 풀린 그 녀석을 휘어잡아야 한다.

하지만 도준은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딸도 모자라 이젠 손자 녀석까지도 그렇다니.

다른 건 몰라도 이복동생과 사랑이라는 게 말이 되나! 정계와 재계에 소문이라도 퍼지는 날엔……. 그 생각을 하니 한 회장은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왔다.

“도준이 녀석이 알면 안 되니 은밀하게 진행하도록. 절대 새어 나가선 안 돼.”

잠자코 있던 고 집사가 조심히 물었다.

“회장님 혹시 손자분 맞선을 그 파티에서 진행하시려는 겁니까?”

“그걸 꼭 물어봐야 아는 겐가!”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정확히 해야 저도 차질 없이 파티 진행을 할 수 있습니다.”

“박 의원 손녀딸은 무조건 참석시켜야 해! 내가 그 자리에서 확 못을 박을 게야! 여기서 네 놈 약혼녀 당장 안 고르면 제일 그룹은커녕 어패럴 사장직에서도 쫓아내겠다고 말이야! 협박이라도 해야 이 녀석이 눈썹이라도 까딱할 거 아니야!”

소문이 커지기 전에 막을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단단한 뒷배경이 되어줄 손자며느리까지 동시에 맞이할 생각이다.

이제 도준을 가만히 두고 봐줄 생각은 싹 사라진 한 회장이었다.

“회장님이 그러신다고 사장직에서 사퇴하라고 할 순 없습니다.”

한 회장의 성난 눈이 이제 막 50대를 넘어선 고 집사에게 꽂혔다. 가만 보면 이놈도 도준이처럼 꼬장꼬장하다니까? 맞장구를 쳐줄 줄 모른다. 도무지 융통성이라고는 없다.

그런데 또 시키는 일은 기가 막히게 척척 잘해낸다. 묻지도 않고 대답만 하고는 쓱쓱 해치워버린다. 도준이 그 녀석처럼.

“제일 어패럴 주주들 다 내 옛 회사 동료들일세! 내 말 한마디면 그네들이 도준이 당장 끌어내릴 거라고! 제 어미처럼 돈 한 푼 없이 쫄쫄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고 나한테 꿈뻑 죽지!”

“손자분이 돈 한 푼 없는 건 아닙니다. 그 전에 박재경 군이 물려준 돈이 있지 않습니까?”

“그깟 10억 가지고는 요즘 세상 살아가기엔 어림도 없네. 그 녀석 하고 다니는 거 봐. 아닌 듯하면서 다 비싼 것들만 휘두르고 다니더만 다 쓰고도 남았지!”

이 말까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 집사는 고민 중이었다.

그 10억이 사라지기는커녕 몇 년 사이 홍수 나듯 불어나 추정되는 재산만 무려 백억 대라는 것을. 그 정도로 손자분 돈 불리는 능력이 타고나다는 것을.

하지만 슬핏 스치며 도준이 했던 한마디를 떠올리곤 입을 꾹 다물었다.

‘고 집사님, 좀 더 길게 보세요. 회장님을 등지고 내 편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적당히 평행을 유지하라는 겁니다. 선견지명으로 미리 보험을 들어놓는 것도 꽤 괜찮은 노후 아닙니까?’

***

도준은 제아를 위해 마련한 그 집 식탁에 앉아 양파를 손질 중이었다. 주방을 왔다 갔다 하는 제아를 응시하면서.

부드럽게 하나로 대충 묶어 올린 머리, 앞치마를 질끈 동여맨 가는 허리.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제아는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왜 양파를 까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찔하게 유혹해놓고 양파 까기나 시키다니. 이러려고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고 합치고 미룬 게 아닌데.

‘금강산도 식후경이야. 우리 밥 먹고 자자.’

‘난 밥보다 네가 먼저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잔뜩 신이 난 제아를 보니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싶은 도준이다. 양파를 까든, 마늘을 까든, 뭐든지.

프라이팬에 버섯을 볶으면서 도준을 힐끔 돌아보는 시선이 따사로웠다.

식탁 위에 그럴듯하게 한 상 차려졌다. 앞치마를 풀지 않고 식탁에 앉은 제아는 도준에게 얼른 먹으라는 듯 눈빛으로 재촉했다. 국물이 개운한  바지락 콩나물국을 먼저 한 숟갈 떠먹었다.

“맛있어.”

“맛있어? 다행이다!”

기대감 어린 앙큼한 눈꼬리가 흐뭇한지 가늘게 휘었다. 국은 정말 맛이 있었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음식 냄새마저도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제아 앞에는 밥이 없다. 차려진 상은 딱 1인분.

“제아 넌.”

“원래 요리사는 간 보면서 질리잖아. 그래서 자기 요리 안 먹는 거 몰라?”

웃음으로 넘겨보려 하지만, 도준에겐 어림도 없었다.

“아직까지 입맛이 돌진 않아. 내 성격 알지? 입맛 없는데 먹으면 탈나. 그러니까 얼른 먹어. 난 오빠 먹는 것만 봐도 흐뭇해.”

도준의 시선이 꼼꼼하게 제아의 얼굴을 살폈다. 핼쑥해진 뺨의 젖살은 더 이상 차오르지 않았다.

그가 없는 한 달 사이,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던 걸까. 이 마음을 회복시켜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너무 제아를 몰아붙이는 건 아닐까.

갖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론은 변함없었다. 그럼에도 제아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

“그런 눈빛 하지 마, 오빠.”

묵직하게 내려앉은 도준의 눈빛. 그 눈빛만 봐도 이제 찰떡같이 알아듣는 각별한 사이.

그래서 제아는 그를 향해 정말 행복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하거든.”

철판 깔면서까지 도준을 유혹했던 이유는…….

갖은 구박과 눈치에도 윤영이 차려주던 저녁을 맛있게 먹던 도준의 모습이 아직까지 선연하다.

평범한 집 밥이 그리웠었을까. 그런 도준을 위해 따스한 밥 한 끼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배가 든든해야 잠도 잘 오는 법이니. 따스한 밥도 먹이고, 편하게 잠도 자게 해주고 싶다. 항상 숨 가쁘게 혼자 달리는 도준을 위해서 말이다.

“이 행복함 날마다 느끼고 싶어.”

제아가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가 집기 힘들어하는 메추리알을 하나 집어 하얀 밥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힘내.”

힘낼 사람은 도준 자신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독하고 못된 놈이니, 이런 일 따위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넌 아니잖아. 힘을 내고 위로를 받고 보호를 받아야 할 건 그가 아닌 제아였다.

“오빠가 무리하게 일하는 거, 다 나한테 빨리 오기 위한 과정이잖아. 맞지?”

제아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괜찮다고 토닥이며 힘내라고 격려만 해줄 뿐. 여자가 남자를 위로하는 진짜 방법을 제아는 아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내가 오빠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밥밖에 없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들어주고, 그저 감싸주는.

“재벌이든 거지든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밥심이야. 밥 안 먹고 사는 사람 봤어? 없어, 밥 안 먹음 사람은 죽거든. 그러니까 오빤 내가 해주는 따스한 밥 먹고 힘내서 일해. 그래서 얼른 나한테 와.”

제아가 눈을 마주치며 따사롭게 웃었다.

“날마다 아침도 차려주고 와이셔츠도 다려주고 퇴근하는 오빨 기다리고 잘 자라고 밤마다 곁에서 안아주고. 그 모든 거 다해줄 테니까.”

그 미소에 담긴 지극한 사랑이 스며들어 도준의 차가운 심장을 급격하게 데워버렸다.

“오빠가 말한 대로 제자리에 서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기다릴……?”

제아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도준의 상체가 테이블 위를 넘어왔다. 큰 손이 다가와 뒷머리를 움켜잡고 끌어당겼다.

곧이어 입술이 먹혔다. 젖은 입술과 뜨거운 숨이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키스는 당황스러웠지만 제아는 얌전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엔 그저 잠깐이겠지, 생각하며.

그런데 이 자세가 불편할 법한데도 도준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입 안에 복숭아 사탕이라도 있는 것처럼, 키스가 섬세해지고 집요해졌다. 데일 듯 뜨겁고 숨 막히도록 거칠었다. 다음 단계를 요하는 것처럼, 격렬해졌다.

‘여, 여긴 주방이고 식탁인데.’

그런데도 제 남자를 알아본 몸은 정직하게 반응을 한다. 뭔가를 더 바라고 기대하게 된다. 버티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왔다.

키스가 길어질수록 찌개가 식어가고 밥이 굳어간다. 후다닥 만들었지만 정성들여 만든 반찬마저 온기를 잃고 있었다. 도준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채.

집요하게 쫓아오는 입술에서 겨우 헤어나 고개를 뒤로 뺀 제아가 가쁜 숨과 함께 미약한 불만을 토해냈다.

“오빠 그만. 밥 먹여야지……. 다 식고 있어.”

도준이 멀어졌다. 이제 얌전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려나 보다 했는데, 손목은 언제 잡힌 걸까.

도준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만큼, 제아 자신의 몸이 자석처럼 끌어당겨졌다. 급기야 의자에서 일어나 도준의 옆까지 끌려와버렸다.

라스트 손짓. 잡힌 손목이 확 끌어당겨지자 기울어지는 제아의 몸을 도준이 받아냈다. 얼떨결에 그의 목에 팔을 두른 채 무릎 위에 앉아버렸다.

“오빠라고 다시 불러봐.”

“……?”

“듣기 좋아. 보기도 좋고.”

입술을 떠난 길쭉한 손이 지분거리듯 가냘픈 허리선을 지나 등줄기를 훑자 소름이 확 돋아났다.

“오빠라고 발음하는 네 목소리, 움직이는 네 입술 모양.”

제아의 허리에 감긴 손이 바짝 쪼여왔다. 놔줄 생각 없다는 듯.

“그래서 너만 보면 식욕이 확 당겨.”

뒷목의 살결을 느릿하게 훑어 내리는 도준의 검지엔 어울리지 않게 굳은살이 있었다. 거친 그 느낌이 제아의 연약한 살결에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몸이 움찔, 떨렸다.

“식욕이 당길 때 얼른 식사해야지!”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도준의 색기 어린 눈빛과 속삭이듯 나직한 음성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제아는 얼른 무릎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도준은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기, 나 좀 내려가면 안 될까?”

급기야 허락을 구하는 상황. 이대로 있다가는 제아 자신이 식탁에서 질식사하게 생겼다.

“식사하라면서.”

어. 그러니까 내가 내려가야 오빠가 편하게 식사를……?

“문제아, 아직도 모르겠어?”

웃음기 어린 눈빛에 홀리는 순간, 뜨거운 숨을 토해내는 입술이 그녀의 귓가에 바짝 다가왔다.

“네가 내 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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