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내가 너한테 미쳐 있어. 그것도 아주 제대로.
2017.05.22.
24시간 운영하는 백반 식당, 식사를 하는 동안 제아는 좌불안석이었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 듯이 뒤적이며 조심히 물었다.
“중국 해킹이랑 내 복직, 우연의 일치로 맞아떨어진 거지?”
“내 사전에 우연은 없어. 우연 믿다가, 일이 틀어지면 안 되니.”
결국 해킹까지 도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말이었다. 제아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일을 이렇게 크게 키우다니. 수습은 어떻게 하려고.
“고작 나 하나 때문에 그렇게 일을 키웠다구?”
“고작 나라니.”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도준이 드물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나한텐 네가 고작이 아니라, 전부야.”
감정 표현이 메마른 도준이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민망할 정도로 훅 치고 들어왔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일을 크게 벌이면 어떻게 해?”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난 너만 지키면 돼.”
“오빠, 내 일은 내가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이번에 오빠가 주는 기횔 잡긴 했지만, 자꾸 이러면 나 자립심 떨어져.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진다구. 오빤 그렇게 무능력한 여자가 좋아? 아니잖아.”
“문제아.”
“…….”
“난 기회를 줬을 뿐 그 자릴 지키는 건 철저하게 네 능력에 달려 있어. 증명하지 못하면, 그만둬야 해. 이 정도면 자립심에 책임감까지 얹어준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무조건적으로 기회를 준 건 아니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제 손으로 사표를 내야 한다.
도준을 본 순간 잊고 있었는데 떠올라 버렸다. 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능력 갖추기, 무지 힘들다.”
“제아 너, 능력 있는 여자야.”
무슨 소리냐는 듯 제아가 도준을 응시했다. 혹시 이거, 위로?
“난 어떤 기회든 네게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도준의 짙은 동공이 깊숙이 부딪혀 왔다.
“그런 내가 너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
“그 정도로, 내가 너한테 미쳐 있어. 그것도 아주 제대로. 그게 진짜 능력이지. 아무나 갖지 못하는. 너만 가지고 있는.”
“오빠.”
“식사해. 이런 이야기는 식사 자리에 맞지 않아.”
마음 편하게 밥을 먹으라는 뜻이었다. 곧이어 대화가 끊겼다.
의자 등받이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채 제아가 식사하는 걸 빤히 지켜보는 도준 때문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도준이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제아를 마음껏 눈에 담으려는 마음이지만, 그 시선을 받는 당사자는 아니었다.
‘밥을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차라리 일 이야기를 하고 말지!’
딱 도준만 보자면 고가의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포즈였다. 식당 안의 사람들, 식당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준에게 쏠렸다. 물론 본인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지만.
“오빠, 나 입맛이 없어서…….”
“다 먹기 전까지 못 일어나.”
양보는 없다는 듯 도준의 음성은 단호했다. 도저히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다는 걸 알기에 꾸역꾸역 밥을 넘겼다. 결국 위에서 또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제아는 내색하지 않았다. 신물이 넘어왔지만 공기를 깨끗하게 비운 후 태연하게 화장실로 들어왔다.
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먹은 음식을 그대로 게워냈다. 속이 비워지자, 정신이 좀 맑아졌다. 어떻게든 밥 한 공기는 비웠는데, 이젠 그다음이 걱정되었다.
“어떻게, 나가지?”
한 시간 전에 도준이 했던 말이 귓바퀴를 끈적이게 훑고 지나갔다.
“그런 말을 왜 해서는!”
괜히, 기대되잖아. 제아는 혼잣말로 신경질을 내뱉었다. 도준의 유혹은 환영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날이 아니라는 게 결론이었다.
제아는 찬물로 뺨을 탁탁 두드리며 화장실을 나갔다. 때마침 도준이 계산을 마치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식당을 같이 나왔다. 도준이 매너 있게 주차되어 있는 차의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오빠, 나도 오빠가 무지 그립고 보고 싶고 오늘 밤 같이 있고 싶지만?”
비스듬히 고개를 튼 도준의 새하얀 얼굴이 시야를 확 덮치자, 겨우 열었던 입이 꾹 다물어지고 말았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유혹적으로 생긴 거야.
질끈 눈을 감은 제아는 스스로 감정 컨트롤에 들어갔다. 문제아, 남자의 유혹 따위 거뜬히 이겨내는 거야!
도준을 바라볼 자신은 없기에 정면에 시선을 말뚝 박았다.
“오늘은 아무래도 그냥 집에 가야 될 것 같아. 샤워도 못 했고, 내일 일찍 출근도 해야 하고, 컨디션 관리도 해야 하고 그리고 오빠도 시차 적응을?”
“제아야.”
도준이 차분하게 제아의 이름을 불렀다.
“아픈 환자까지 잡아먹을 만큼, 짐승 같은 놈은 아니야.”
“……!”
“그 정도는 컨트롤 해.”
다정하게 뻗은 손이 제아의 머리를 쓰담쓰담해주었다.
“그러니까, 내 눈 보고 이야기해.”
잡아먹힐 것 같아서 못 보는 게 아닌데. 오히려 그 반대인데.
“일분일초라도, 난 네 얼굴 보고 싶으니까.”
부드럽게 눈매를 휜 채 다정하게 속삭여버리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이런데, 어떻게 눈을 보고 거절하라구. 매력이 터져도 문제다, 문제.
갑자기 도준이 몸을 숙여왔다. 그렇지 않아도 몸에 힘이 없는데 훅 스며드는 짙은 도준의 체향에 머리까지 어질어질했다.
안 보면 뭐하나, 냄새마저도 이렇게 유혹적인데. 찰칵 벨트가 채워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작은 복숭아 사탕은 금방 입 안에서 사라지지. 씹어도, 빨아도, 성에 차지 않아.”
제아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비유하는 복숭아 사탕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왕 먹을 거, 난 제대로 된 사탕을 먹어야겠어.”
도준의 눈이 마주하고 있던 제아의 눈에서 찬찬히 흘러내렸다.
“천천히, 마음껏, 음미하면서.”
지분거리는 손길처럼 은밀하게. 모르면 몰랐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눈빛만으로도 바르작바르작, 몸이 미세하게 반응을 했다. 제아는 메말라버린 아랫입술을 본능적으로 혀로 축였다.
“그 버릇, 꽤 위험해.”
“……?”
“환자고 뭐고 다 무시하고, 하고 싶어지잖아.”
“오빠아!”
노골적인 표현에 새빨개진 얼굴로 꽥 소리를 지르는 제아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린 도준이 드디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운전하는 내내 도준은 핸들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제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차가 동네 입구에 다다랐다.
“운전 조심히 하고 내일 봐.”
차에서 내려 돌아서는 제아의 몸이 갑자기 확 돌려졌다. 등 뒤로 차가운 차의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제아의 마른 입술 위로 젖어 있는 입술이 덮치듯이 비벼지며 파고들었다.
무방비하게 당했지만 이내 불꽃은 타올랐다. 한 달이라는 헤어짐의 시간이 폭발하듯이 발화점을 낮추었다.
도준이 입술을 떼자 제아의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토해져 나왔다. 촉촉이 습기를 머금은 입술이 귓바퀴로 옮겨갔다.
“좋은 소식 하나 물고 돌아왔어. 1년까진, 걸리지 않을 것 같아.”
1년? 무슨 1년? 그러다 떠올랐다. 서로가 서로의 소중한 첫 상대가 되었던 그날 밤, 도준이 했던 말이.
‘1년만 기다려. 한도준이란 이름만 남기고 다 버린 후에, 너랑 결혼할 거야.’
1년의 의미를 헤아리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졌다. 몽롱해진 정신 너머, 달콤한 도준의 음성이 귓가로 아득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내 복숭아 사탕.”
***
복직은 했지만 제아의 자리는 비서팀에 마련이 되었다. 지금으로선 비서 업무보다 전략팀 업무가 더 급하고 많았지만 사장의 지시이니 어느 누구도 태클을 걸 순 없었다.
정각 8시 30분이 되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아는 정말 오랜만에 비서들과 함께 도준을 맞이하기 위해 나란히 섰다.
곧이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구두굽 소리가 로비 바닥을 산뜻하게 울렸다.
“우리 비서 아가씨들, 잘들 지냈습니까?”
인호의 해맑은 음성이 먼저 들려오고, 곧이어…….
“문 비서, 복직을 축하합니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무방비한 시야로 색색의 눈꽃들이 터지면서 밀려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안개꽃이었다. 제아는 놀란 눈으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알레르기가 있어 생화를 가까이 하지 못하는 제아를 위해 드라이플라워 다발을 들고 있는 도준이 보였다. 꽃 같은 남자가 들고 있는 꽃은 더욱더 환상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생각지 못한 꽃선물이었다. 그것도 다른 비서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민망한데도 심장은 쿵쾅거린다.
무심한 듯하지만 가만히 보면 도준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꽃다발을 받기 위해 제아는 조심히 손을 내밀었다. 꽃다발을 건네면서 도준의 손끝이 은근하게 제아의 손을 어루만졌다.
지극히 미세한 터치에도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움찔하는 제아의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가 돌았다.
꽃이, 마음에 드나 보군.
집무실에 들어온 도준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다시 저 문만 열면, 언제든지 제아를 볼 수 있다.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도준은 인호가 건넨 USB를 PC에 연결해서 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한 사장이 생각하기엔 어때?”
도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중용이 한 부회장과의 거래를 언급한 건, 조선 호텔에서 식사를 같이했을 때 이미 녹음을 해두었다.
수면제 때문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재킷 안주머니에 있는 볼펜 녹음기를 누르는 걸 잊지 않은 것이다.
중용이 한 부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을 막으려 할 때 요긴하게 쓰일 증거.
중용은 너무 거물이라 건드리는 순간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고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결론은 한 부회장을 공격하려면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
“거액의 비자금 조성 건은 만족스러워. 그런데 정치계 로비도 꼭 같이 터뜨려야 해. 그래야만 민심이 우리 쪽으로 움직여.”
한 부회장과 협조하고 있는 윗선들이나 그 측근들은 어차피 재력이나 권력에 의한 이득이 없지 않는 한, 절대 협조를 할 리 없었다.
그런 이들을 제 쪽으로 끌어들이려면 똑같은 부류가 되어야만 하지만 도준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부류에게 환멸감을 느끼고 있었다.
잘못 들쑤셔서 한 부회장에게 들키느니 차라리 단순하게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중간층을 파고드는 게 나았다.
결정은 윗선이 내려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건 중간급들이니. 측근들과 달리 꽤 많은 머릿수의 중간급들을 제대로 관리하긴 힘들다는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아직 접선해 보지 않은 이들이 꽤 남았어. 그 사람들 다 만나보라고 할게.”
의외로 인호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자, 유 실장.”
처음에 가능성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킨 게 바로 도준이었다. 그런 도준을 믿기에 인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제아는 전략팀과 오전 중 회의를 가졌다. 다행히도 팀원들 모두 제아를 격렬하게 반겼다.
그런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제아는 꼭 이번 프로젝트 건을 제대로 성공시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졸고 있는 지로의 정강이를 테이블 밑으로 걷어차는 걸 마지막으로 회의를 끝마치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제아는 자리가 비서팀에 있는 만큼, 복직이후 첫 점심시간은 비서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식사를 한 후 느긋하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수다를 떨었다.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역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권고사직 대상에 언니 이름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사장님이 승인해서 더 놀랐다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는 여자인데 그렇게 냉정하게 나 몰라라 할 줄 몰랐어요!”
“맞아, 그래서 우리가 사장님 욕 엄청 했어요! 사장님이랑 언니가 헤어진 줄 알았어요. 사장님이 언니 가지고 놀다 질려서…… 버린 거라고.”
“입방정들 그만! 제아 씨 다시 스카우트 되어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둘 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제아는 그저 웃는다. 새삼 도준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자신을 복직시킨 걸 보면 말이다.
“근데 우리 사장님이 꽃을 선물하는 로맨틱함까지 있을 줄은 몰랐어요. 핑계야 복직 축하지만, 엄연히 따지면 이벤트잖아요. 사장님 그 성격에. 사장님이 언니 진짜 좋아하나 봐요.”
“꽃만 줬음 다행이게? 사장님 손이 은근히 언니 손 어루만지는 거 내가 다 봤어요.”
봐, 봤단 말이야? 당혹스러움에 제아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꽃다발 받으면서 우연히 스친 거야!”
“스치기는, 나도 만지는 거 봤는데?”
어림도 없다는 듯, 신 비서가 묘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휴 이런 거 부러우면 지는 건데. 사내 연애 해보고 싶네.”
“저두요!”
“저두요!”
티타임이 끝난 후 제아를 제외한 비서들은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마침 도준이 집무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장님,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도준은 대답 대신 유일하게 비어 있는 자리에 시선을 고정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복숭아 사탕이, 없군.”
귀가 밝은지 신 비서는 용케도 도준의 그 중얼거림을 알아들었다.
“복숭아 사탕이요? 사장님, 단 거 싫어하지 않으세요?”
“금단 현상이, 꽤 심각해서.”
도준의 말에 신 비서가 그제야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이 담배를 끊었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사장님 같은 남자는, 은단보다는 그래도 사탕이 더 잘 어울리니까.
“힘드시면, 제가 지금 당장 나가서 복숭아 사탕 사올까요?”
능력 있는 비서답게 신 비서는 도준의 지극히 작은 요구마저도 즉각 처리할 태세였다.
“됐습니다.”
“혹시 제가 사탕 심부름을 기분 나쁘게 생각할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
“신 비서, 내가 말하는 사탕은 문.”
‘비서만이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끝맺으려는 찰나, 그가 그토록 찾았던 복숭아 사탕이 눈앞에 나타났다.
“제가 사 오겠습니다!”
전략팀에 들렸다가 온 제아는 복숭아 사탕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한 것이다.
설마, 비서들에게 벌써 어제 정한 애칭을 밝히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도준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사람 일은 모르니.
“제가 사 올 테니까, 사장님은 집무실에 들어가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둘을 지켜보는 비서들은 심장이 바짝 오그라들었다. 아무리 연인이라고 해도 하늘같은 사장님인데. 그리고 우리 사장님이 어떤 분인데.
“그럼, 부탁합니다.”
아주 얌전하게 복귀하는 도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비서들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우리 사장님이 정말 문 비서를 사랑하는구나, 진심이었어. 가지고 노는 게 아니었어.
모두 한결 같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하는 중이었다.
20여 분 후, 제아는 편의점에서 산 복숭아 사탕을 들고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 집무실 책상까지 바짝 다가갔다. 사탕을 주는 대신, 제아는 가슴에 단단히 팔짱을 낀 채 가늘게 뜬 눈으로 도준을 내려다보았다. 바른대로 말하라는 듯.
“진짜 사탕이 먹고 싶었던 거 아니잖아. 그치?”
“진심으로.”
길고 새하얀 손가락에 든 펜으로 결제안에 멋지게 사인을 휘갈긴 도준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사탕이 먹고 싶었어.”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제아는 도준을 향해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미친 듯이 바쁜데도 그 입을 막으려고 사탕 심부름까지 해줬다.
‘내가 말하는 사탕은 바로 문 비서입니다.’
라고 말해버릴 줄 알고 얼마나 심장을 졸였는데! 어제 분명 나한테 복숭아 사탕이라고 불러놓고 웬 시치미? 해보자 이건가?
괜히 놀림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흥, 내가 그런다고 반응할 줄 알고? 절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테다! 제아는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도준이 아무리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도 밀당은 연애의 기본이다. 인정 안 하겠다면야, 나도 뭐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제아는 사탕 봉지를 뜯어 도준에게 한 개 내밀었다.
“먹고 싶은 복숭아 사탕 아주 많이! 사 왔으니 실컷 드셔요, 사장님. 전 할 일이 많아서 나가보겠습니다.”
태연하게 몸을 트는 순간 도준이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매끄럽게 파고든 손이 제아의 양쪽 허리에 안착이 되었다.
도준이 제아를 번쩍 들어 올려 책상 위에 앉혔다.
“뭐, 뭐 하는 거야?”
제아는 다리 사이로 정확히 파고든 도준의 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서 도준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 남자를 내려다보는 것. 한도준이라는 남자가 주는 특혜.
도준이 사탕의 포장을 벗겨서 내밀었다. 손끝에 들린 짙은 갈색의 동그란 사탕을 제아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걸 왜, 나를 주지?
“한 달째 참았어. 담배도, 그리고 너도.”
“……?”
“내가 지금, 지독한 금단 현상을 느끼고 있거든.”
이번엔 사탕이 제아의 입술 가까이 다가왔다.
“뭐 해, 사탕 안 먹고.”
그제야 확 깨달음을 얻은 제아의 얼굴이 열꽃이 피듯, 붉어졌다. 입술이 닿고 서로의 숨을 섞은 게 이젠 셀 수 없는데도 도준이 이럴 때면 심장이 발악을 한다. 첫 키스도 안 해본 것처럼.
“나, 나는 사탕이 먹고 싶지 않아.”
“그럼 넌 입술에 물고만 있어. 내가 알아서…….”
발그레한 얼굴로 뒤로 상체를 빼는 제아의 허리를 바짝 당겨 안으며 도준이 나직하게 웃는다.
“천천히, 마음껏, 음미하면서 먹을 테니까.”
입술이 다가온 순간, 주도권이 제대로 넘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