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나 지금, 오빠 유혹하는 거야.
2017.03.09.
닿을 듯 말 듯 제아의 입술 바로 위에서 도준의 입술이 정지했다. 입술이 닿는 순간, 스스로 제어를 할 자신이 없었다. 한 가닥 남은 이성의 힘이었다.
눈을 뜬 순간, 샤워를 막 하고 와서인지 제아에게서 나는 향긋한 복숭아향이 먼저 스며들었다.
이성이 흐려질 정도로 농밀하고, 참을 수 없게 만드는 향기의 유혹.
그는 의지가 나약한 짐승이었다. 향기를 맡고 눈앞의 존재가 시야를 채우는 순간, 제아의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기 전까지 지켜주겠다는 결심은 증발해버렸다.
제아 때문에 살게 된 20년, 제아만을 생각하며 버텨온 10년.
제아만을 생각하며 달려왔고, 제아의 꿈을 위해 사들이고 지은 집이었다.
이 집, 그리고 이 침대에서 날마다 제아와 같이 잠이 들고 또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마지막 기회야.”
온몸을 들끓게 하는 열기에도 제아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도준의 엄지손가락은 차분했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제아는 생각했다. 그런데도 도망칠 수가 없다. 기회를 주었는데도.
그녀는 꿀꺽, 침을 삼켰다. 데일 듯 뜨거운 도준의 시선이 입술에 머물러 있는 게 느껴졌다.
―내가 널 너무 사랑해서, 미칠 것 같아.
몇 시간 전에 도준이 했던 고백이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다. 몸을 주면 마음을 더 주는 게 여자라고 누가 처음에 그랬을까. 그런데 여기서 더 줄 마음이 있을까.
지금보다 더 도준을 사랑한다면, 훗날에 있을지도 모를 헤어짐을 감당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아는 겁쟁이가 아니다. 무섭다고 발을 뺄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이 남자를 사랑하는데…….
오로지 그녀만을 바라보고 마음에 담고 원하는 남자가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녀도 원한다. 이 남자를…….
더 이상의 망설임은 부질 없는 것이다.
“내가 왜.”
“…….”
“나 절대, 도망 안 가.”
떨리는 손끝이 수줍게 도준의 목을 서서히 감아왔다. 무언의 허락에 도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입술도 내려앉았다.
거칠게 입술이 부딪히고, 몸이 부딪혔다. 가빠지는 호흡과 격한 호흡이 끈적이게 얽혀들었다. 서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열기와 뜨거운 온기가 뒤섞여 에워싼 공기가 점차 달아올랐다.
감당 못할 야릇한 감각에 제아의 몸이 막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그런데도 도준은 더욱더 옥죄어 왔다. 입술과 손짓으로, 온몸으로.
위에서 내리누르는 남자의 묵직한 무게감이 이렇게나 아찔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무자비하게 온몸을 지배하는 생경한 감각에 그저 덜덜 떨면서 눈만 감고 있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허전함에 눈을 뜨자, 거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등진 도준이 보였다.
타는 듯한 시선을 제아에게 고정한 채,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어 내렸다. 느릿하게, 천천히, 도발적으로.
지극히 단순한 손가락의 움직임이 이렇게 섹시하게 보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꿀꺽,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그저 홀린 듯이 바라보았고,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몸을 누르는 묵직한 무게감은 움직임이 없다.
“멈출까.”
쉰 듯이 잠긴 허스키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마음이 온전하게 느껴지는. 그 짧은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도준이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를.
제아는 불현 듯깨달았다. 도준을 처음 만났을 때도 저 눈빛이었다는 걸.
시선을 사로잡는 저 눈동자, 영혼까지 빨아들이는 흡입력 있는 고독한 눈빛에 반해버린 것 같아.
고독한 왕자님을 발견했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되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첫사랑이 되었고, 내 남자가 되어가는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녀가 온전하게 품어주어야 할 남자였다.
젠틀맨이든 포악한 야수든, 얼마든지 내가 품에 안아줄 거야. 내 몸이 찢기고 내 영혼이 빨리는 한이 있더라도.
“멈추지 마.”
항상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떨리는 손길이 도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단정한 이마, 날카로운 콧날, 섬세한 입술까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매혹적인 입술 선을 더듬는 손끝.
“나 지금, 오빠 유혹하는 거야.”
날렵한 턱에서 흘러내린 과감한 손이 도준의 목을 휘어 감았다.
“오늘 밤, 내가 오빠를 가질 거라고.”
내려온 그의 입술에 도발적인 선전포고를 야릇하게 흘리는 순간, 도준은 젠틀맨의 허울을 벗어던졌다.
마, 맙소사.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찔한 감각들이 몸의 곳곳에서 아우성쳤다. 어둠 속인데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니, 온몸이 달아올랐다.
강렬하면서도 거친 그의 사랑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간간이 내뱉는 호흡마저 도준의 입술로 온전하게 빨려 들어갔다.
“오빠 수, 숨 좀…….”
숨은 쉬게 해주려는지 입술이 떨어졌지만 제아는 이내 숨을 격하게 들이셨다.
“넌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몰라.”
파르르 떨리는 제아의 속눈썹 위로 도준이 자잘한 입맞춤을 쏟아부었다.
“널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이런 상상을 했는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철부지 동생을 여자로 인식했던 그 순간부터 그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했다. 나쁜 놈, 더러운 놈, 추악한 놈. 어떻게 감히, 고마우신 분들의 딸을…….
“끊임없이.”
영혼까지 빨아들일 듯한 깊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하고 또 했지.”
경계 없이 자유롭게, 거침없이 넘나드는 과감함에.
“스스로에게 욕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꼴딱꼴딱, 숨이 넘어갔다.
“멈출 수가 없었어.”
붉은 입술에서 자조적인 독백이 흘러나올 때마다 몸은 지독한 감각에 젖어들었다.
“그래야만 숨이 쉬어지니까.”
도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농밀한 복숭아향에, 부스러질 듯 연약하고 부드러운 피부에, 온몸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에 거친 욕망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난 괴물이었어.”
누구보다도 지켜줘야 하는 소중한 존재를 상상 속에서 탐해야 한다는 죄책감.
그런 스스로가 괴물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 뭐든지 부수고 피를 봐야만 들끓던 더러운 욕망이 그나마 가라앉았다.
철저한 이중생활을 하면서, 제 모습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을 비웃었다. 그게 바로 문이준이었다.
“오빠인 척, 가족을 가장한 채.”
포악한 야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감각들을 쏟아부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을 탐한 더러운 괴물.”
벌어진 제아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토해졌다. 그 숨결을 도준이 온전하게 다시 빨아들였다.
“그게 나야.”
그 마지막 말에 반응하듯이, 제아가 도준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았다. 매혹적인 제 남자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이 남자를 이렇게 내려다보지는 못하겠지. 오직 그녀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리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오빠는 내 거였어.”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소년이었던 남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소유하려 했던 건 자신이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을 뿐.
“내가 먼저, 오빨 사랑한 거야.”
얼굴을 내린 제아는 도준에게 배운 대로 착실하게 돌려주었다.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그를 소유하고 싶었으니까, 온전하게. 이렇게나 치명적이고 아찔한 남자는 없을 테니까.
“괴물을 유혹한 건, 나라구.”
되돌아온 치명적인 고백, 주도권은 다시 도준에게 돌아갔다. 제 몸 아래 눌린 제아는 더 이상 순진했던 문제아가 아니었다. 미세한 손짓과 몸짓마저도 왜 이렇게 미치도록 자극이 되는지.
도준은 새삼 느꼈다. 작은 소녀였던 이 여자를, 동생이었던 이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씨익, 잘생긴 입꼬리가 섹시하게 비틀리고.
“겁도 없이 괴물을 유혹하다니.”
지독한 속삭임이 나른한 온몸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래서 널 사랑해.”
지독한 속삭임만큼, 지독한 고백이었다.
“미치도록,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포악한 야수의 이빨과 발톱이 거침없이 먹잇감을 물어뜯었다. 아파 죽을 것 같은데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눈물이 나면서도 심장이 설렌다.
야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새하얀 들판을 내달리며 포식하는 야수는 너무도 아름다웠으니까.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탄탄한 근육, 흐르는 땀과 솟아나는 힘줄, 온전한 제 여자만을 담고 있는 난폭한 눈동자까지.
팔딱거리는 생명이 서서히 몸에서 빠져나가듯이, 깊은 바닷속에 몸이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른했고 헤어 나올 수 없는 묵직한 감각에 온몸이 서서히 잠식되고 있었다. 지금 죽어도 억울함이 없을 만큼, 온전한 감각이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면서까지, 제아는 도준의 세세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심장에 새겼다. 그를 꼭 끌어안은 채 그의 귓가에 기꺼이 속삭여주었다.
“나도, 그런 오빨 사랑해.”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가장 행복하고 황홀한 이 순간, 바보같이.
짭짜름한 눈물마저도 도준의 입술로 스며들었다. 깍지 낀 서로의 손을 통해 믿음이 굳건해졌고, 빈틈없이 맞물린 서로의 몸을 통해 영혼이 묶여버렸다.
심신을 벅차오르게 하는 건, 서로를 향한 절절한 사랑.
죽지 않고서는 이 사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이 말해준다.
다정한 도준의 눈길이 사랑을 담아 제아의 눈을 파고들고, 따스한 손길이 사랑을 담아 제아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도준이 온 마음과 몸을 다해 그녀에게 고백하는 중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 밤이 끝이 나고 새벽의 미명이 다가올 때까지.
***
물 먹은 솜처럼 나른하게 늘어진 몸의 상태를 만끽하며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잠깐 잠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기절을 했던 걸까. 처음 느껴보는 지독할 만큼 아찔한 감각에 정신줄을 놓았던 것 같기도 하고.
제아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벽시계를 보았다. 마지막 보았을 때보다 겨우 20분이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으으으으…….”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몸뚱이가 성한 곳이 없는 것처럼 손끝조차 움직일 힘이 없었다. 맨살에 와 닿는 새벽의 공기는 꽤 서늘했지만, 온몸을 감도는 몸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금방 식어버리기에는 너무 뜨겁고 너무 격렬했으니까.
몇 라운드까지 뛰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한 라운드를 장기 마라톤으로 뛰어본다면, 그건 자연스럽게 깨닫는 진리였다.
제아는 도준의 인내심과 끈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급하다고 한 입에 꿀꺽 해버리는 게 아니었다. 지극히 느릿하고 섬세하게, 미세한 부분까지 맛보고 음미하는 미식가.
그는 단순히 맛을 보고 끝내는 게 아닌, 그 음식에 대한 것까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파헤쳤다. 미세한 반응만 보이면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파고들었다. 실습, 복습, 예습의 반복.
지독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도준 때문에 숨이 몇 번이나 꼴딱꼴딱 넘어갔는지 모른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아가 잠깐 잠이 든 사이 도준은 샤워를 했나 보다. 침대가 가볍게 출렁이며 도준이 뒤에서 바짝 안아왔다.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도준의 맨 가슴이 열기를 머금은 등의 맨살에 닿자 기분 좋은 신음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으음…….”
도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꼭 껴안고만 있을 뿐이었다. 제아도 굳이 어떤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의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한 이 침묵을 깨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도준 씨, 사랑해.”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 몸으로 사랑을 확인한 후,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남자에게 사랑도 확인하고 싶지만, 그 남자에게 사랑을 먼저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사랑을 확인해줘야 사랑을 해주겠다는 조건적인 게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아, 넌 너무 급해.”
선수를 빼앗겨 버린 게 조금은 분한지, 도준이 벌을 주려는 듯 가볍게 목덜미를 깨물었다. 아프라고 깨문 게 아니니 자극만 될 뿐이었다.
“좀 기다려 주면 안 되나.”
그답지 않게 투정을 부리는 말투였다.
“내가 먼저 말하도록.”
도준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제 품으로 제아를 더욱더 끌어당겼다. 그리고 제아도 더 깊숙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도준도, 그리고 제아도.
서로의 맨살이 서로에게 밀착되는 느낌이 미치도록 좋았다. 목덜미에서 타고 오른 도준의 입술이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내가 더 사랑해.”
뜨거운 숨이 귓속으로 은밀하게 스며들고.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사랑 고백에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제아는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지만 영원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 말도 안 되게 떠오른 건 바로 오늘이 도준의 집 청소를 해야 하는 날이라는 것. 도준이 집에 가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
냉정한 현실을 깨달은 제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오빠, 나 이제 가봐야 해. 집에도 들러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하지만 도준이 몸을 감싸고 있는 시트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일어날 수 없었다. 제아는 당황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며 시트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 시트가 벗겨지면, 알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모습이 귀여운지 도준의 나른한 눈매에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왜, 왜 이래? 가야 된다니까, 정말.”
짙어진 그 눈빛에 어떤 기억이 머릿속을 채우고, 어떤 감각들이 스멀스멀 몸에서 피어올랐다.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진 격렬하면서도 강렬했던 기억.
제아는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려 했다. 지금의 도준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머리보다 솔직한 몸이었다.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좋았던 건 좋았던 거니까.
“제아야, 나 오늘 집에 안 갈 거야.”
“……?”
“그러니까 서두르지 말라고.”
그녀가 왜 급하게 가려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도준의 말에 제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내가 헬퍼라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불현듯 스치는 불안감에 그녀의 몸이 경직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돈 많은 애인 놔두고 왜 그러냐고.
하지만 제아는 도준이 돈 많은 애인이라서 이러는 거다. 돈 많은 남편이 아닌 애인이라서.
합법적인 남편의 돈을 쓰는 건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애인이라면 보는 관점과 상황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준이 주는 선물은 당연하다는 듯 쿨하게 받겠지만, 직접적으로 돈으로 받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바보 같다고 해도 좋아. 흙 수저의 마지막 자존심이니까.
생각에 잠겨 무방비해진 제아를 도준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반쯤 일으켜진 제아의 몸을 그가 다시 품으로 낚아챘다.
“꺄악!”
긴장하지 말라는 듯 도준의 손이 느릿하게 맨 등을 쓸어내렸다.
“문제아, 겨울 아침은 길어.”
도준은 제아를 향한 배려를 거두기로 했다. 청소하러 갈 만큼 체력이 남아돌게 하려고 배려를 해준 건 아니었으니.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처음이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뜨겁게 용솟음치는 욕망을 누르고 또 누르며. 몇 번이고 탐하고 싶은 걸 지독한 인내로 감내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이었던 어젯밤, 제아는 그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본능의 최고 끝까지 몰아갔다. 그녀의 영혼은 순수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눈빛은 수줍었지만 몸짓은 도발적이었다. 어젯밤의 제아는 솔직했고, 대담했고, 요염했다.
순식간에 도준이 제아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의 몸에 눌려 올려다보고 있는 제아는 여전히 미치게 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떠오르는 기억에 순식간에 짙어지는 눈빛, 뜨거워지는 몸.
도준은 홀린 듯이 입술을 내렸다. 그리고 아주 짧고 가볍게 입술을 머금었다가 떼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자 당혹스러운 눈빛의 제아가 보였다. 왜 하다 마냐고 묻는 것 같은.
솔직하고 대담한 그 눈빛에 도준의 입 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1년만 기다려.”
연희와 남은 계약 기간은 1년.
“한도준이란 이름만 남기고.”
제일 그룹과 관련된 모든 걸 끝맺음 짓고.
“다 버린 후에.”
자유로워진 몸으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너랑 결혼할 거야.”
난 너만 있으면 되니까.
그 말뜻을 이해하려는 듯 제아는 느릿하게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앙큼한 반대를 할 입술은 어느새 거칠게 틀어 막혔다. 그의 입술에 의해. 그 말뜻을 이해하면 분명히 반대할 게 뻔할 테니.
제아가 버둥거릴수록 그의 입술이 더욱 격렬하게 파고들었다. 어차피 그 말을 하려고 뗀 입술이었니, 다시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