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젠틀맨이 되었다가 짐승으로 돌변했다가.
2017.01.23.
제아는 아주 잠시 눈을 감고 떨리는 숨을 입안에 잠시 머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초인적인 인내심과 지독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포악한 야수 한 마리가.
난 네게 쉬운 남자, 넌 내게 어려운 여자.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주려는 듯, 테이블 위의 제아를 덮친 단단한 몸은 더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양손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얇은 입술의 점막 위로 느껴지는 그의 입술은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었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할 때였다. 아니, 이미 끝낸 결정을 도준에게 되돌려줄 차례였다.
그런데, 어떻게 돌려주지? 어떻게 해야 이 지독한 남자를, 제대로 무너뜨릴 수가 있지?
은근하게 밀착되어 있는 서로의 몸, 얇은 셔츠 사이로 뿜어대는 도준의 뜨거운 열기가 몸 안의 피를 뜨겁게 달구었다.
뭐든지, 얼른 저질러 버리라고 가차 없는 채찍질을 해댔다.
그러다 속사포처럼 대답이 떠올랐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너무 많이 기다렸고, 너무 많이 돌아왔다. 그리고 앞으로 더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고, 힘들 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아는 기꺼이 그의 유혹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실되는 그를 향한 감정은, 제 주인의 말을 듣지 않은지 오래였으니까.
그녀의 가녀린 팔이 도준의 목을 휘감았다.
맞닿은 입술 너머로 아주 쿨하게, 한마디 흘려주었다.
“얼마든지.”
그의 유일한 조련사인 제아의 허락이 마침내 떨어졌다. 도준은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을 지탱하던 한 손을 떼어 매끈하게 빠진 다리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탄력 있는 피부가 손바닥에 찰지게 달라붙었다. 입술이 거칠어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툭, 격하게 짓이겨진 입술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그마저도 도준의 입 안으로 흡입되었다. 거친 숨이 가냘프게 떨리는 숨을 단번에 빨아들였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두려움이 일 정도로, 도준은 격하게 탐미했다.
제아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거친 격정과 욕망을 지지 않고 완벽하게 흡입해주었다.
정중한 이성과 짐승 같은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는 도준은 젠틀맨이 되었다가 순식간에 짐승으로 돌변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미칠 정도로 좋았다. 감당이 되었다. 도준의 가슴에 짓눌리면서 제아는 마음껏 만끽했고 열중했고 받아들였다.
일방적인 것도 아닌, 우연도 아닌.
실수도 아닌, 얼떨결에도 아닌.
진짜 첫 키스가 이루어지는 이 순간을.
도준에게 모든 걸 내어 주어주고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쳐버린 것이다.
***
커다란 몸을 뒤척이기엔 공간이 비좁았다. 결국 지로는 통째로 흔들리는 뇌를 실감하며 신경질적으로 눈을 떴다.
차창 너머의 배경이 꽤 익숙했다. 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익숙한 철창 대문, 그제야 지로는 깨달았다.
“뭐야, 우리 집이잖아.”
휙 고개를 트니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차의 내부와 핸들에 박힌 영문이 알려주었다. 할매에게 빼앗긴 그의 애마보다도 이 차의 몸값이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란 것을.
차 안은 그 흔한 방향제나 장식품도 없이 지극히 간결했다. 그런데도 차 주인의 향수 냄새인지, 청량감이 배인 향이 가볍게 코끝을 스쳤다.
머리를 긁적이며 차 문을 열고 내린 지로는 단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둠에 스며든 채 등을 지고 있는 남자의 자태가 낯이 익었다.
차만큼이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남자의 뒷모습, 딱 봐도 차 주인이리라.
지로는 눈에 잔뜩 힘을 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다가섰다.
저 남자가 제발, 자신의 머릿속을 꽉 채운 그 빌어먹을 놈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때마침 인기척을 느꼈는지 남자가 서서히 돌아섰다.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 물린 담배에서 흐릿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뿌연 연기 사이로 서서히 드러나는 남자의 섬세한 이목구비를 본 순간, 지로는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또 저 새끼냐.”
한도준의 차를 타고 집까지 온 것도 모자라 그렇게 퍼질러 잤다니.
“네가 왜 여기 있어.”
다짜고짜 반말부터 찍, 내뱉었다. 담배를 구두 굽으로 짓이겨 끈 도준이 어둠속에서 몇 걸음 걸어 나왔다. 가로등 빛이 그런 도준의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주었다.
엄청난 술을 들이붓듯 마시고 무너져 내린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남자였다. 도준은 작은 결점조차 없는 완벽한 자태로 태산처럼 서 있었다.
‘진짜 드럽게 짜증나게 하는 얼굴이네.’
어차피 한번 찾아가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잘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어떤 몰골로 찾아가도 외모로는 저놈을 못 이길 테니 아무렴 어때.
갑자기 도준이 지로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무심코 그걸 손에 받아든 지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숙취 해소 음료를 왜 저 새끼가 챙겨주는 건지.
점점 더 나락으로 기분이 다운되는 지로와 달리 도준은 지극히 태연자약했다.
“제아가 부탁했으니까. 해야 할 말도 있고.”
“……안 들어.”
“한지로.”
“귓구멍 막혔어? 안 들어! 안 듣는?”
“잘 부탁한다.”
“뭐라고?”
지로는 제 귀를 의심하고 제 눈을 의심했다. 끝없이 오만하기만 한 도준이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화해라도 청하는 것처럼.
“뭐야, 갑자기 왜 이래. 하던 대로 하라고. 재수 없게, 거만하게, 잘난 척이나 하란 말이야! 그 손 안 치워?”
도준은 표정만큼이나 내면도 평온했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해야 할까. 제아의 마음을 차지한 건 한지로가 아닌 나니까. 그것만으로도 자비로움이 생겼고 여유로움이 생겼고, 평온함이 유지되었다.
짙고 깊은 키스가 끝난 후 도준은 후회했다. 선을 넘어버릴 듯한 몹쓸 손을 스스로 꽁꽁 묶어버린 채 오로지 복숭아 맛이 나는 입술만 탐닉했다.
너무 거칠게 탐해서 터져버린 연약한 아랫입술을 도준이 만지작거리자 제아가 조심히 그 손을 잡았다. 수줍게 올려다보지만 그를 담은 눈동자는 또렷하고 야무졌다.
‘부탁이 있어.’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들어주지 못할 건 없었다. 죽으라고 해도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제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부탁은 뜻밖이었다.
“한지로랑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말은 거칠어도 지로가 얼마나 착한데.”
그 한마디에 도준의 미간이 바로 일그러졌다. 그러자 제아가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질투 그만해. 지로는 내 남사친이고 오빤 내 애인이잖아. 내가 사랑하는…… 남자.’
제아가 마지막 말에 힘을 꾹 주자, 불쾌했던 그 마음이 사르륵 녹아버렸다. 그런데도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제아의 가까이에 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제아가 달래듯이 말을 이었다.
“지로, 오빠 없는 동안 나를 지켜주고 지탱해주던 몇 안 되는 친구야. 난 내 애인이랑 친구가 사이가 좋았으면 좋겠어.”
그를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순진무구했지만, 은근하게 넥타이를 끌어당기는 손짓은 요염했다. 불가항력으로 다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입술이 와 닿고 복숭아 향이 배인 숨결이 달달하게 입술 사이로 스며들었다. 맞닿은 입술 사이, 제아가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오빠가 먼저 노력해주면 안 될까? 한지로야 그렇다 쳐도, 오빠는 마음만 먹으면 남자든 여자든 오빠 편으로 만들 수 있잖아. 응?”
지금 제아는 꼬리 아홉 달린 곰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쉽게 나를 요리하다니.
도준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제아가 포상으로 내리는 달콤한 복숭아 사탕을 다시 맛보았다. 그리고 룸을 나오자마자 인사불성이 된 지로를 데리고 그의 집 앞까지 온 것이다.
어떻게든 물어뜯으려고 발악하는 하룻강아지.
그게 바로 도준의 눈에 비친 지로였다.
“제아 남자친구로서, 제아가 가장 아끼는 친구에게, 정식으로 인사하는 거야.”
길게 쭉 찢어진 지로의 눈매가 충격에 부들부들 떨리는 걸 도준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내 지로가 주먹을 움켜쥐고 덤벼들었다.
“이 미, 미친! 기어코 니가 우리 제아를! 네가 어떻게, 감히 어떻게! 이 더러운 새끼!”
퍽―.
주먹에서 찌릿하게 퍼지는 둔탁한 고통.
목표를 정확히 타격한 주먹이 서서히 허공에 툭, 떨어졌다. 지로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눈앞의 도준을 응시했다. 얼굴만큼이나 섬세한 손가락이 느릿하게 입가에 배인 피를 닦아내는 걸.
바닥에 내뱉은 침에 피가 흥건하게 배어 있었다. 제 주먹이 아플 정도로 세게 날린 주먹인데도 도준은 아프지도 않은지 표정변화가 없었다. 그저 한층 짙어진 냉랭한 눈빛으로 지로를 쏘아볼 뿐이었다.
“너 왜, 왜 피하지 않았지?”
“저 새끼 잘난 면상, 한 대만 쥐어 패보고 싶다.”
“……?”
“그게, 네 소원 아니었나?”
그걸 어떻게! 지로는 그저 하도 기가 막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사람은 때론, 눈빛에 대화를 섞기도 하거든.”
오래 전 클럽에서 내게 처음 시비를 건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나 대신 제아를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한지로 넌 항상, 그런 눈빛으로 날 보았으니까.
“그, 그런다고 내가 인정해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난 끝까지 반대할 거야! 내가 제아를 못 가져도 넌 절대 안 돼!”
지로는 다시 주먹을 쥐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지로의 주먹은 다시 도준의 얼굴을 강타하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얼굴 앞에서 날리던 주먹을 멈춘 것이다.
주먹이 눈앞까지 왔는데도 도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맞아주겠다는 듯, 피하지도 않았다.
“너 대체, 무슨 수작이야.”
“때리고 싶은 만큼 때려. 기꺼이 맞아줄 테니까. 그 대신.”
“……?”
“그 후엔 나를 인정해. 제아의 남자 친구로.”
“그 잘난 면상, 다시는 회복 불가능하게 패놓을 수도 있어.”
“그러든지.”
“어디 한군데 부러뜨려서 불구가 되고 싶어? 감방 가는 것도, 그닥 무섭지 않거든? 나 지금, 눈에 뵈는 거 없다고!”
“눈이 보일 때까지 때려. 그렇게 해서 풀린다면.”
깊게 가라앉은 도준의 눈빛은 진지했다. 마음대로 하라는, 그답지 않은 자비로움을 보였다. 그 자비로움 뒤, 제 존재를 인정해주라는 집요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독한…… 새끼.’
지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공당한 기분이었다. 남자의 진심은 통하리라 생각하고 한도준을 찾아가려 했건만, 늦장을 부리다가 오히려 당해버린 것이다.
지옥의 루시퍼보다도 오만한 저 남자가 먼저 숙이고 들어온 순간, 제아를 향한 절절한 그의 진심이 전해졌다.
‘기분, 더럽네.’
제아의 마음을 온전하게 차지하고 있는 그가 부러웠다. 동시에 제가 마음에 담은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저런 남자를 저토록 정신 못 차리게 할 정도이니, 내가 반하지 않고 버틸 수가 있나. 끝까지 포기 못하게 사랑스럽잖아, 문제아.
지로는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허공으로 털어버리며 중얼거렸다.
“돌덩이 때려봤자, 내 손만 배리지.”
하아, 문제아. 나 정말 널 이렇게 포기해야 하는 거냐?
제아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면 이미 끝나버린 일. 1%의 희망조차 없었다.
제아가 10년을 버틴 게 결국은 도준을 기다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지로는 심장이 씀뻑씀뻑 쓰려왔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선밸 때립니까.”
“…….”
“그렇게 때렸다간 제아가 두 팔 걷고 쫓아와서 나를 똑같이 만들어놓을 거 뻔한데. 됐습니다.”
피식, 도준의 입술이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못지않게 제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지로였다. 그래서 상상이 된 것이다. 노발대발하며 한지로를 똑같이 만들어놓을 마녀 문제아의 모습이 말이다.
같은 남자로서 도준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로에게 진심을 흘렸다.
“너 꽤, 괜찮은 녀석이야.”
“알량한 위로, 필요 없습니다.”
제아를 차지했다 인심 쓰겠다 이건가? 지로는 바닥에 침을 한 번 뱉곤 돌아섰다.
“괜찮은 놈이라 경계한 거야.”
그런데 이어지는 도준의 다음 말이 귀를 둔탁하게 파고들었다. 처음 마주했던 소년일 때부터 병신 취급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괜찮다니. 지로는 시니컬한 웃음을 흘렸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아직 인정한 거 아닙니다.”
그냥 지금은 내가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 그래서 물러서 있는 것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제아 눈에 눈물 나게 하거나 마음 아프게 하면.”
난 기회주의자이니까.
“그땐 완력을 써서라도 제아, 내가 데려갑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향해 걸어가며 지로는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 하늘인데 짜증나게 별이 왜 이렇게 많이 떠 있냐.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란히 봐도 예쁠 하늘마저도 마냥 미웠다. 확, 우박이나 쏟아져 내려라! 에이씨!
***
샤워를 하면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제아는 몇 번이나 얼굴을 붉혔는지 모른다. 룸에서 했던 도준과의 키스가 떠오른 것이다.
그는 키스만으로 모든 대화를 끝내버렸다. 마음속에 피어오른 실낱같은 의심조차 태워버릴 만큼 농밀한 키스로 사람 혼을 쏙, 빼놔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제아는 불현 듯 의구심이 들었다.
“키스 많이 해봤나?”
연애도 안 해봤다는 도준이 어떻게 키스는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능수능란하게 유린하는 입술이며, 치고 빠지는 혀와 숨결까지. 보통 스킬이 아니었다.
역시나 양반은 못되는지, 때마침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집 앞인데 잠깐 나올 수 있나?-
방문을 열고 나가니 거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왔다.
골목길 끝에 서 있는 익숙한 고급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 차를 보자마자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심장이 야릇한 설렘을 품었다.
제아가 바람처럼 달려가자 차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던 도준이 돌아섰다. 이제 오빠가 아닌 제 남자가,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 도착했는데도 그녀는 이상하게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질리도록 마주했던 얼굴인데, 지금은 왜 이렇게 그를 보는 게 창피하고 부끄러운지. 그녀는 그저 밑으로 맞잡은 두 손만 꼼지락 거릴 뿐이었다.
수줍은 듯 슬그머니 시선을 들자, 도준의 긴 손가락 끝에 걸린 담배가 보였다. 망설임도 잠시뿐, 제아는 살짝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버드 키스를 날렸다.
쪽―.
아쉬운지, 야릇함을 머금은 도준의 눈동자가 제아의 입술에 와 닿았다. 그 시선을 모른 척 하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새침하게 말을 했다.
“그 입술, 이제 내가 심심하지 않게 해줄게.”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도준이 피식, 웃었다.
“마지막 담배였어. 작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으니.”
마지막 담배라는 말에 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준의 붉은 입술에 물린 새하얀 담배의 가는 몸뚱이.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 모습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워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쉽다.”
“뭐가.”
“오빠 담배 피우는 모습, 엄청 섹시한 거 알아?”
“…….”
“이제 그 모습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또 아쉽네.”
제아는 도준의 눈을 마주하며 배시시 웃었다.
도준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문 후 마지막 한 모금을 길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미련 없이 담배를 끈 도준은 천천히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모습마저도 제아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단순한 동작마저도 우아하고 섹시한 이 남자가 제 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점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나른하게 퍼져가는 설렘, 열기.
오랫동안 지켜봐왔는데도 이렇게 심장이 떨릴 수가. 보는 것만으로도 볼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런 제아를 보며 도준이 보일 듯 말 듯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섬세한 눈매가 길게 늘어지며 나른한 눈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담배 끊지 말까?”
“무슨 소리! 담배는 당연히 끊어야지!”
제아가 어림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는 순간, 또다시 ‘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캉하고 서늘한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를 꾹 눌렀다가 사라졌다. 그의 숨결에 옅게 배인 담배 냄새마저도 섹시하게 느껴졌다.
할 때는 당당했는데, 당하는 건 여전히 적응이 안 됐다.
“뭐, 뭐야, 갑자기.”
“금방 피웠는데도 담배가 또 당겨서.”
제아는 달아오른 볼을 양손으로 감싸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때 도준의 팔이 자연스럽게 제아의 허리를 휘감아 끌어당겼다.
“얼마나 됐다고 또 피우고 싶어. 혹시 오빠…… 골초야?”
달달한 복숭아 향을 풍기는 사랑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를 도준은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이마를 가져다 대며 홀릴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홀려 제아의 눈이 혼몽하게 풀리는 순간, 은밀한 경고와 함께 입술이 내려왔다.
“골초야, 그것도 지독하게.”
그러니까, 책임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