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미치게 하는 그대-40화 (40/104)

40. 그러니까, 키스해줄래?

2017.01.19.

그런데도 그 눈빛에 긁혀버린 심장이 강한 떨림을 머금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가 나타나준 것이다. 질투에 눈이 멀어, 모든 걸 갖춘 여자를 버리고서 말이다.

잡아먹을 듯 포악한 기세로 다가온 도준이 그녀의 손목을 확 끌어당겼다.

확 안겨오는 나긋나긋한 몸에선 여전히 달콤한 복숭아향이 났다. 이 향기를, 이 부드러운 몸을, 다른 남자가 넘보려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준은 온몸이 타들어갈 듯이 끓어올랐다.

밀착된 몸처럼 도준의 입술이 제아의 귓가에 바짝 달라붙었다.

“이번 자극, 아주 제대로 먹혔어.”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넘어갈 생각, 그는 조금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잘 생각해놔.”

너란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아.

“나를 미치게 한 네 속마음, 기꺼이 들어줄 테니까.”

그래서 다시는 이런 발칙한 자극 따위, 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옭아매줄 테니까.

틀어잡힌 손목이 자유를 찾자 제아는 멍한 시선으로 빠르게 도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시 계단을 오른 도준은 룸이 아닌 테라스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상층에서 지켜보던 그 여자가 도준의 뒤를 따라가는 게 보였다.

더 이상 도준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걸 제아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딱 봐도 느껴지는 도준의 한계치.

그렇다고 얌전하게 앉아서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자극은 안 하겠지만, 이왕 용기를 낸 거, 끝까지 내기로 했다. 그것도 저 여자 앞에서, 꼭.

제아는 바로 향했다.

“제일 독한 거 두 잔 주세요.”

바텐더에게 받은 술잔을 연거푸 두 잔이나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불덩이가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가녀린 몸이 앞으로 거칠게 꺾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손등으로 입술에 방울 맺힌 술을 스윽 닦아낸 제아는 도준이 사라진 테라스로 향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구!’

잘못한 건 그녀가 아닌 도준이었다.

출장에서 돌아왔는데도 연락은커녕 이런 데서 술파티를 벌인 건 그녀가 아니니까. 재력이 없이 평범하게 태어난 건 죄가 아니니까. 끝까지 거부하던 그녈 뒤흔들어놓은 건 바로 한도준이니까.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드는 테라스 밖, 새하얀 셔츠만을 걸친 길고 유려한 뒤태가 눈이 부셨다.

새하얀 셔츠처럼 새하얀 담배 연기가 시꺼먼 하늘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그 여자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도준의 옆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할 그 여자. 뒷 배경 빵빵하고, 외모 빵빵한 그 여자.

제아가 차지할 수 없는, 도준의 옆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는 여자의 손에 작은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파우더 룸에서 들었던 대화가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이제 보니 한 사장님이 회사 방문하고 나서 이사님이 급하게 리미티드 반지 한 쌍 직접 세공했잖아. 딱 봐도 프러포즈용이던데!

제아의 눈매가 앙칼지게 곤두섰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폈다. 오늘 아니면 절대 낼 수 없는 용기로 절대 넘봐서는 안 되는 남자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거칠게 넥타이를 잡아당긴 도준은 담배부터 찾았다. 독한 담배 연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자 제어되지 않는 광기가 조금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문제아.’

유일하게 그를 미치게 하고, 미치게 만드는 존재.

이번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도발을 한 건지, 꼭 듣고야 말리라.

“제이드.”

바로 뒤까지 다가온 일리안이 불렀지만, 도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나 무시하면, 이거 그냥 던져버린다?”

그제야 도준은 삐딱하게 몸을 틀어 난간에 몸을 기댔다. 나른하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 사이로 비치는 도준의 모습을 몽롱하게 바라보던 일리안이 갑자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섹시하게 날 쳐다보실까. 독특한 내 취향, 바꾸고 싶게.”

“그 취향, 변하지 마라.”

“……뭐?”

“변하면, 친구 사이도 끝이니까.”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우정이야?”

“그 정도 우정이라서, 시답잖은 거래에도 맞장구 쳐줬어.”

그제야 이해가 된 듯 생긋, 웃음을 흘린 일리안이 도준에게 케이스를 내밀었다.

“굳이 어려운 사랑을 하시겠다니, 나라도 응원해줘야지 어쩌겠어.”

도준은 리미티드 일리니라고 새겨진 고급스러운 반지 케이스를 선뜻 받지 않았다. 부탁을 흔쾌히 들어줘놓고 심술궂게 거래를 제안하며 반지를 내주지 않던 일리안이었으니까.

“원하는 걸 말해.”

“처음부터 원하는 건 없었어. 제이드도 나처럼 사랑 같은 거 영영 못 하는 인간인 줄 알았거든.”

“…….”

“왠지 배신당한 느낌이라서 심술 부려본 것뿐이야.”

도준의 손이 일리안이 내민 반지 케이스를 받으려는 그때였다.

“받기만 해봐!”

불쑥 끼어든 앙칼진 음성이 반지 케이스를 받으려는 도준의 손을 멈추게 했다. 테라스 입구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제아를 보자마자 도준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문제아는 정말 단 한순간도 그의 말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었다.

담배 한 대 피우며 분노를 식힐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이번엔 또 어떤 상상력을 품고 쫓아왔는지.

그런데 제아는 도준이 아닌 일리안의 앞에 꼿꼿하게 마주섰다.

“저 누군지 아시죠?”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일리안은 흥미롭다는 듯 제아와 눈을 마주쳤다. 자신의 취향을 저격한 여자의 미모도 미모였지만, 한도준을 사로잡은 여자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여자의 자신감 있는 눈빛에도 제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쥐뿔도 없다고 제 남자를 지킬 권리조차 없는 건 아니니까. 가까이서 본 여자의 미모는 더 눈이 부셨지만,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리안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래도 조금은 안심했다.

한도준은 거짓말 따위, 꾸며내는 말 따위도 안 하니까.

적어도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라고는 했을 것이다.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챘을 테고.

도준에 대한 지고지순했던 마음, 사실 그녀는 둔할 정도로 심각하게 몰랐었다. 조금씩 깨닫고 있을 때조차도 악착같이 버텨냈다. 하나밖에 볼 줄 모르는 제 성격을 스스로도 잘 알기에.

그런데 그 성격을 알면서도 흔들어서 무너뜨려 봇물 터지듯이 터지게 한 건 바로 도준이었다.

그러니까, 책임을 져야지. 모든 행동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나는 세컨드 따위, 절대 안 해.”

제아의 눈은 일리안을 보고 있지만, 그녀가 한 말은 도준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니까 선택해.”

뻗은 손끝에 그답지 않게 흐트러진 넥타이가 걸렸다.

“이 여자인지.”

그 넥타이를 휘어잡아 제게로 확 잡아당겼다.

“나인지.”

선택은 도준의 몫이었다. 보란 듯이, 각인해줄 테다.

제아는 몸을 홱 틀며 한쪽 발꿈치를 바닥에서 뗐다. 얼굴과 어깨의 경계선인 목 사이로 비스듬히 각도를 틀어 오차 없이 파고들어 확, 깨물어버렸다.

입술 각인이 한도준의 방식이라면 목에 잇자국을 남긴 건 그녀만의 방식이었다.

일리안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내 남자라고 각인을 해놓은 것이다. 지극히 동물적인 방법을 쓰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란 여자인데.

물린 목에 손을 얹은 채 조금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녈 바라보는 도준에게 달콤 살벌한 속삭임을 흘렸다.

“나 화나게 하면 내가 또 어디를 물지 몰라, 달링.”

부산 출장에서 여자들이 두려워 숨었을 때 도준은 분명 그랬다. 너답지 않다고. 그래서 나다운 걸 보여주는 것뿐이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타이른 제아는 일리안을 향해 핑그르르 몸을 돌렸다.

“이 남자, 내가 실컷 여기저기 깨물어놓았거든요. 그러니까 이 남자 갖고 싶으면.”

“……?”

“세컨드는 그쪽이 해요.”

생긋 웃음까지 날린 제아는 빠른 걸음으로 테라스를 빠져나왔다.

쾅―!

테라스의 문을 닫은 그녀는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든 심장에 지그시 손을 올렸다.

이게 문제였다. 막상 저지를 땐 눈에 뵈는 게 없는데, 꼭 저지르고 나면 감당 못 하겠다. 한숨을 내쉬던 제아는 갑자기 꽥, 소리를 질렀다.

“아휴, 바보야! 그냥 나오면 어떻게 해?”

당당한 척, 자신 있는 척 선택하라고 큰 소리 빵빵 쳐놓고, 대답도 듣지 않고 나와 버린 것이다.

***

“네 여자, 앙칼진데? 보통이 아니야. 성격도 마음에 들어.”

일리안이 감탄 어린 눈빛으로 사라지는 제아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습 공격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도준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제 수컷을 지키려는 앙칼진 암컷의 기세.

그렇지 않아도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미쳐 있는데, 다시 한 번 제대로 홀딱 반하게 해버렸다. 어느 여자도 그에게 하지 못할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는 여자는 제아뿐이니까.

“그나저나, 대체 어디어디를 깨물린 거야? 궁금한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일리안이 물었지만, 도준은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꽤 많이 물렸던 건 인정하지만 그건 모두 어렸을 때의 일이니까.

웬만해선 당황하지 않는 그였지만 제아만은 항상 예외였다. 언제나 그가 계산할 수 있는 범위를 항상 벗어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치기 바빴던 제아였지만, 뭔가를 결정을 한 후에는 무서우리만치 돌격하는 성격이었다. 지금처럼.

얼마나 세게 물렸는지 물린 부위가 후끈후끈, 얼얼했다. 일리안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자꾸만 웃음을 흘렸다.

“제이드를 쩔쩔 매게 하다니. 더 마음에 드는걸?”

“반지나 내놔.”

“앙칼진 고양이한테 프러포즈하러 가게?”

“신경 끄시지. 프러포즈를 하든, 잡아먹든.”

반지를 받은 도준은 서둘러 테라스를 벗어났다.

엉뚱한 상상력이 풍부한 제아가 더 엉뚱한 짓을 저지르기 전에, 오해란 걸 풀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대로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들을 생각이었다.

복도 끝, 매끈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걸어가는 제아의 가녀린 실루엣이 도준의 눈에 포착이 되었다.

야무지게 자극할 땐 언제고, 이렇게 어설퍼서야.

그런데도 그 모습마저도 도준은 사랑스러웠다.

“휴…… 내가 미쳤지, 미쳤어.”

제아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내렸다. 오랜만에 신어보는 킬 힐에 가는 발목이 자꾸만 꺾였다.

11센티 이상의 킬 힐을 고집하는 지연의 스틸레토 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느껴졌다. 변신이고 뭐고, 이제 본모습으로 돌아갈 때였다.

힐을 벗어 양손에 들고 덜렁덜렁 흔들며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 위로 새하얀 맨발을 내딛는 그때, 그녀의 몸이 홱 돌려졌다.

“문제아.”

눈앞에, 도준이 있었다.

“정말 다양하게 나를 미치게 하는군.”

다양하게? 어떻게 다양하게?

제아는 도준의 말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모르겠다. 그를 안달 나게 한다는 건지, 그게 아니면 중요한 사업을 망쳐버려서 곤란하게 한다는 건지.

하지만 꽤 부드럽게 풀린 눈빛으로 보건대 화가 그렇게 많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걸 보면, 설마 그 여자가 내 존재를 받아들인 건가? 그렇게 자존심 세 보이던 여자가? 뭐가 아쉽다고?

“다신, 이런 옷 입고 그딴 야한 춤 추지 마. 아니, 이런 곳 자체도 다니지 마.”

짙게 풍겨오는 소유욕에 제아는 흠칫했지만 지지 않고 받아쳤다.

“이런 곳 자체를 먼저 온 건 오빠잖아. 그것도 여자까지 끼고 술판이나 벌이고. 난 오빠를 봤다는 제보를 받았을 뿐이야.”

야무지게 따져드는 말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 난 절대 나쁜 짓 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라고. 그걸 도준이 알아주었으면 했다.

“오빠는 4층에 있다는데 4층은 통과해야겠고.”

“…….”

“그래서 지연이한테 도움 좀 받아서 변신 좀 했어. 출장에서 돌아온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오빠가 여자랑 있다고 하니까…….”

“계속해봐.”

결국 제아는 깊은 한숨과 함께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토해냈다.

“그 여자 프러포즈, 오케이 했어? 그게 아니면, 그 여자가 세컨드라도 하겠대? 내 존재 눈감아주겠다고 그래?”

미묘한 눈빛으로 제아를 응시하던 도준이 갑자기 제아를 번쩍 안아들었다. 얼떨결에 그의 목에 팔을 두른 채 얌전하게 안겼다. 또다시 그 여자가 아닌 제게로 와준 도준이 고마워서. 그런데도 남아 있는 서운함에 그녀는 툭, 쏘아붙였다.

“그 여자 보면 어쩌려고. 내려줘. 내 발로 걸어갈 수 있으니까.”

“미국에서 사귄 친구야. 사업 파트너이자, 오랜 친구.”

도준은 선을 긋고 있었지만, 그게 또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결혼은 곧 사업이라는 건가?

“어디 가는지라도 말해줘.”

“너와 내가, 마음껏 묻고 대답할 수 있는 곳.”

도준은 좀 전에 들어갔던 프라이빗 룸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술판이 벌어졌었던 룸 안은 어느새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소파가 아닌 테이블 위에 제아를 앉힌 후, 도준은 그 앞에 긴 다리로 딱 버티고 섰다. 절대 도망치지 못하도록 완전 차단을 한 것이다.

제아를 테이블 위에 앉힌 도준이 갑자기 어깨를 감싸주었던 재킷을 단 한 번의 손짓으로 걷어갔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제아를 도준이 야릇한 눈빛으로 음미하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 내렸다.

너무도 뜨거운 그 시선에 제아는 얼른 시선을 내리깔았다. 고개를 숙였는데도 뜨겁게 피부에 와 닿는 노골적인 그의 시선에 솜털까지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세컨드 따위 안 해! 그 여자보다 나한테 더 사랑을 많이 줘도, 돈을 많이 줘도 난 절 대?”

“세컨드 따위, 안 시켜.”

폭발할 듯 이글거리는 눈빛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꽤 부드러웠다. 떨어진 시야로 한 걸음 다가선 도준의 매끈한 구두굽이 보였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란 말도 하지 마. 어쩔 수 없다는 말도 하지 마. 재벌가들의 사랑법 따위, 나한테는 변명밖에 안 되니까.”

“변명 같은 거 할 생각 없어.

도준이 잠시 말을 멈추자 제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마음이 바뀌었어. 둘 다 너랑 안 할 거야.’ 이러는 거 아니야?

미칠 듯이 폭주하는 무한 상상력에 심장이 바짝 조여드는 순간 도준이 끊었던 말을 이었다.

“연애도, 그리고 결혼도, 다 너랑 할 거니까.”

아, 하고 자그맣게 제아의 입이 벌어졌다. 결……혼이라니. 그 단어만으로도 머릿속이 새하얘져버렸다.

도준이 한걸음 더 다가서자 슈트에 감싸인 단단한 허벅지가 맨 살이 드러난 무릎에 와 닿았다. 그 순간,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판자촌에서 네가 날 구해주었던 그때 이후로.”

내리깐 시야에 그녀를 가두듯이 테이블 위를 짚고 있는 도준의 손이 보였다.

“단 한 번도 다른 여자 따위, 생각해본 적 없어.”

좀 더 숙여진 상체, 섹시하게 풀어헤쳐진 넥타이와 그의 목울대가 눈에 들어왔다. 꼴깍,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내 눈도, 내 마음도, 내 심장도, 오로지 너란 여자한테만 반응하거든.”

분명 닿지 않았다. 그런데도 은밀하게 파고드는 그의 시야 공격에 제아는 점점 아찔하기만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도준의 짙은 눈빛, 숨결, 체향.

“난 너밖에 없어.”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제아는 몸을 틀어 피하려 했다. 그때 비스듬히 틀어 내려온 도준의 얼굴이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쳤다.

“문제아, 나 출장 끝내고 돌아왔어.”

고막까지 녹여버릴 듯 끝내주는 목소리에, 내리깐 속눈썹마저 파들파들 떨려왔다. 볼을 스쳐 다시 다가온 얼굴이 코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대답해봐.”

도준의 손끝에 잡힌 턱이 고정되었다. 턱을 잡고 눈을 마주하길 요구해왔다. 데일 듯이 뜨거운 그 눈빛에 시선이 틀어 잡혔다. 노골적으로 치고 들어온 짙은 눈빛이 서슴없이 대답을 요구해왔다.

“나란 남자, 사랑하나?”

입술이 아닌 심장에게 묻는 말이었다. 자극당한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뛰며 대답을 토해내고 있었다.

테이블의 끝을 쥐고 있는 양손에 힘을 주면서, 제아는 도준이 그토록 바라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사랑해.”

그러니까 그 여자한테 가지 마.

뒤늦게 깨달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랐다.

“내 심장이, 미칠 정도로.”

그에게 미쳐버린 심장은 이제 제어도 되지 않았다.

아직 그에게 들어야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짙어진 도준의 눈빛 속에 배여 있는 뜨거운 진심이 심장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해봐.”

믿어지지 않는 걸까. 도준이 다시 한 번 대답을 요구했다.

“사랑해.”

“다시.”

“사랑한다구.”

도준이 좀 더 상체를 기울여왔다. 그가 기울인 만큼 제아는 등이 테이블에 닿는 게 느껴졌다.

“한 번 더.”

“엄청 사랑해.”

도준에게 몰릴 대로 몰려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 제아는 테이블 위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했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토해져 나왔다. 기대감 어린 묘한 흥분이, 도준의 와이셔츠가 닿은 몸 이곳저곳에서 피어올랐다.

“오빠는 여동생에게 키스하지 않아.”

10년 만에 처음 재회했던 날, 도준이 했던 말이었다. 그가 왜 이제 와서 다시 그 말을 하는지 제아는 알 것 같았다. 철저하게 되짚어서, 그 맹세를 깨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데 난 이제 네 오빠가 아니야.”

유혹하듯이 도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바로 위에서 멈추었다. 입술 사이로 훅 파고드는 아찔한 숨결.

뭐 같이 말해도 이젠 찰떡같이 알아듣는 서로의 바람.

“난 이제, 오빠 동생 아니야.”

제아는 수줍게 눈을 내리깔며, 도준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난 네게, 남자지.”

야릇한 떨림을 머금은 입술이 맞닿았지만, 도준은 집어삼키지는 않았다.

숨 막힐 정도로 섹시하고, 치명적인 유혹.

세상에서 유일한, 하나뿐인 제 여자에게 당한 만큼, 돌려줄 차례였다.

“그러니까 키스, 해줄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