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벗은 내 상체는 지겹게 봤을 텐데.
2016.12.15.
기울어진 몸보다 당겨진 손이 도준의 맨 가슴에 먼저 닿았다. 손바닥으로 스며드는 피부가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뜨겁다.
코끝이 닿을 듯 가까이 있는 도준의 가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제아는 눈을 감아버렸다. 가슴을 뚫고 나올 듯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고막을 울리는 순간…….
드르륵 탁―.
붙박이장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눈 떠.”
흔들림 없는 일정한 톤의 음성에 눈을 뜨자, 숨 막히도록 당겨졌던 거리에 여유가 생겨 있었다.
그의 맨 가슴에 잠깐 닿았던 손은 다시 자유를 찾았지만, 제멋대로 엉켜버린 심장 박동 소리가 주책없이 날뛰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정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도준이 보였다. 젖어서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칼 밑으로 나른하게 풀어진 눈동자가 그녀를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잠깐 사이, 도준은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색 슈트 바지까지 입고 있었다. 그런데 주름 하나 없는 새하얀 와이셔츠의 단추는 채워져 있지 않았다.
벌어진 와이셔츠 틈으로 반쯤 드러난 탄탄한 상체 나신이 눈이 부시다. 그래서인지 지금 도준의 모습은 치명적인 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집보다도 넓은 이 공간이 갑자기 미칠 듯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느릿하게 제아에게서 시선을 뗀 도준이 태연하게 와이셔츠 소매의 커프스단추부터 먼저 채웠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거 아닌가?”
“당연한 거 아냐? 버, 벗고 있었잖아!”
“벗은 내 상체는 지겹게 봤을 텐데, 그새 잊었나 보지?”
물론 지겹도록 보기는 했지만 그건 옛날 일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슈트 안에 감춰진 몸이 이럴 줄은, 호리호리한 소년의 몸이 이렇게 변했을 줄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그때는 소년이었고! 지, 지금은 남자 몸이잖아!”
미동조차 없는 침묵이 둘 사이를 채우고, 단추를 잠그던 그의 손길이 우뚝, 멈추었다.
가늘어진 눈이 제아의 얼굴에 꽂혔다. 순간 ‘내가 뭘, 잘못 말했나?’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남자 몸……이라.”
나른한 만족감이 배인 그 음성에 제아는 그제야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그런 제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도준이 배꼽 밑에서부터 단추를 채웠다. 서두르지 않은 차분하고 정적인 손가락의 우아한 움직임.
별거 아닌 그의 움직임에도 제멋대로 심장이 어택을 당한다.
“나가 있을게!”
도망치듯이 드레스룸에서 뛰쳐나온 제아는 가죽 소파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아직까지도 쿵쾅거리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심장이, 미쳤나 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 슈트를 갖춰 입은 도준이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아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완벽한 모습으로.
“유 실장이 너를 번거롭게 했어. 데려다줄 테니 일어나.”
“유 실장님이 오빠 오늘 푹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할 일이 많아.”
“유 실장님이 스케줄도 다 조정해놨다고 했어.”
“어차피 해야 할 일, 미뤄서 좋을 건 없어. 다시 조정하라고 유 실장과 통화도 이미 끝냈고.”
알짤 없이 단호했다. 역시나 들어먹지 않은 고집불통. 제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제발 동생 말 좀 들으면 안 돼?”
“말하지 않았나?”
“……?”
“넌 이제 동생이 아니라, 나한테 여자라고.”
무방비한 사이 도준이 또다시 서슴없이 노골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너도 방금 전까지 나를 남자로 의식한 걸로 아는데. 아닌가?”
제아는 빠르게 숨을 헐떡였다. 본능이 인정을 했고, 스스로의 입으로 그에게 시인까지 해버린 게 떠올라서. 그리고 도준의 존재가, 미치도록 의식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도준이 헤집어 놔버렸다. 부드럽지도, 다정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고백으로 말이다.
“아니라곤…… 말 못 해.”
거짓말할 줄 모르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겠지만 피할 수가 없다. 그에게,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근데 버틸 거야. 끝까지.”
그녀밖에 없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꼭. 제아는 턱을 꼿꼿하게 세우고 어깨를 쭉 폈다. 그리고 도준의 눈을 직시했다. 심장이 떨리든 말든.
“그러니까 자극할 테면 해봐.”
선전포고 같은 그의 고백에 선전포고 같은 대답으로 돌려주었다.
도준은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제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피식, 흐릿한 미소가 섬세한 입 꼬리에 묻어났다. 기분 나빠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도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부드럽게 제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이제야 나의 제아답군.”
“……?”
“당당한 이 모습, 다시는 잃지 마.”
나른한 눈매에 옅게 번지는 웃음이 아찔하다. 맙소사, 또다시 심장 어택……을 당해버렸다.
제아는 갑자기 짜증이 치솟았다.
도준의 저 눈빛, 저 미소, 저 얼굴, 저 외모가 문제였다.
어떤 여자의 심장이 버텨낼 수 있을까. 10년 만에 봐서인지 면역력이 사라져버린 게 분명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흐트러지고 심장이 흔들리는 걸 보니.
인호에게 미안하지만 도무지 눈앞의 고집불통을 꺾을 자신도, 같이 있을 자신도 없다.
-실장님, 죄송해요. 그 부탁, 들어드릴 수가…….-
인호에게 메시지를 보내던 제아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서류 가방을 챙기던 그가 머리가 아픈지 눈을 감고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는 게 보였다.
그제야 멀쩡한 척 연기하는 도준의 완벽한 거짓이 보였다.
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 총기를 읽은 흐릿한 동공, 창백하게 질린 새하얀 얼굴.
그는…… 아프다. 모른 척할래야 모른 척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인호의 말대로 먹이사슬 최상위 층에 있는 야수는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얼어붙은 심장을 가진 채 아프다는 표현조차 하지 못한 채. 도준은 몸이 아프지만 제아는 마음이 아팠다. 안타까웠다.
왜 저렇게 변해버렸을까.
적어도 옛날의 이준은 아플 때는 아프다고 표현할 줄 아는 남자였는데.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찌르듯이 파고들어 마음속 깊숙이 숨겨진 모성애를 자극했다. 여자들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다는, 본능 말이다.
그녀 스스로 인정한다. 생긴 것만 여우 고양이 과지, 하는 생각이 나 행동은 둔한 곰인걸.
하지만 원하는 게 있을 때, 이루어야 하는 게 있을 때는 스스로의 매력을 이용할 줄 아는 걸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제아는 천천히 도준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커다란 눈으로 빤히 올려다보며 차분하게 말을 했다.
“오빤 오늘 쉬어야 해.”
그러면서도 제아는 자신이 없었다. 최하위층에 속한 내가 정말, 고집불통 야수를 길들일 수 있을까?
“열도 나고, 머리는 어지럽고. 몸의 컨디션이 최악이잖아.”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지!
제아의 서늘한 손끝이 관자놀이에 닿자 도준이 움찔, 했다. 그리고 제아는 마음이 움찔했다. 작은 손짓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도준. 나는 왜 몰랐을까?
뭔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잔뜩 굳어진 얼굴. 그런데도 반항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 지금 많이 아파. 아니야?”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까지 항상 갑은 도준, 을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휘둘려왔는데.
“내가 오빠 아프지 않게 해줄게.”
그 관계를 이제 뒤바꿀 수 있을까? 오빠가 날 정말 좋아한다면.
관자놀이를 섬세하게 어루만지던 제아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커다란 고양이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도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깨에 머물렀던 그녀의 손이 다시 한 번 흘러내려 그가 들고 있는 서류 가방에 닿았다.
“그러니까 오늘 남은 하루,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돼?”
툭―.
급기야 그의 손에서 서류 가방이 떨어졌다.
“문제아, 봐주는 건 이번만이야.”
도준은 지금 컨디션이 최악인데도 새로운 열기가 스멀스멀 몸에서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눈앞의, 앙큼한 고양이 때문에. 작정하고 덤벼드니 도무지 버텨낼 수가 없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눈빛으로 제아가 천진난만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극해보라고, 버텨보겠다고 한 건 제아인데, 지금 자극을 당한 것도, 버텨야 하는 것도 그였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함부로 유혹하지 마.”
침범해달라는 그런 눈빛도. 유혹적인 그 손길도. 나는 견디기 힘드니까.
“그때는 확, 덮쳐버릴 테니까.”
야수가 포효하듯, 그의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나직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겁을 먹은 듯 움찔하며 그에게서 손을 떼는 제아의 손을 움켜잡았다.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제아가 먼저 그에게 손을 뻗은 건.
관심 어린 손길. 그 작은 손길마저도 그는 굶주려 있었다. 그래서 그 손이 다시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걸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깟 하루 일정 틀어지는 게 뭐가 대수일까.
내가 이렇게 지독하게 일을 하는 것도 다 널 위한 건데.
도준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문제아, 말해봐.”
“……?”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지?”
이 손을 놓지 않으려면, 말이야.
도준은 체념하듯 물었다. 워커홀릭 ‘한독종’이 드디어 제아에게 백기를 선언한 것이다.
제아는 아주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를 향해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도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아주 정확하게 첫 번째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먼저 유 실장님한테 다시 연락해. 오늘 하루 쉰다고.”
***
도준이 스케줄을 포기하는 바람에 인호가 다시 그의 집으로 왔다. 필요한 자료가 담긴 USB와 그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는 결재안을 다시 가지러 온 것이다.
그런데 제아는 도준의 서류 가방을 통째로 인호에게 건네주었다. 태블릿 PC까지 완전히 집에서 없애버려야 그가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한 사장, 태블릿 PC없으면 상당히 불안해할 건데.”
“그래서 드리는 거예요. 이거 있으면 또 일하려고 덤벼들 것 같아서요.”
“문 비서 정말 대단합니다. 한 사장을 길들이다니.”
그래도 설마설마했던 인호였다. 그런데 제대로 된 조련사를 고른 자신의 선견지명에 스스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제가 길들인 게 아니라 오빠가 몸이 정말 안 좋아서 쉬는 거예요.”
배시시 웃는 제아에게서 시선을 뗀 인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분명 특별하게 변한 건 없는데 뭔가가 달라 보인다. 뭔가 더 깨끗하고 정리 정돈된 느낌? 아닌가? 착각인가?
“뭐가 달라진 것 같은데.”
인호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제아가 생긋 웃었다.
“청소 좀 했어요. 깨끗하긴 한데 그래도 먼지도 좀 있고 정리 안 된 곳도 있어서. 작은 것도 틀어지는 꼴을 못 보는 오빠라서. 집이 깨끗해야 푹 쉴 것 같아서요.”
제아의 야무진 손에 감탄하던 인호는 불현 듯 뭔가가 머리를 스쳤다. 제아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또 다른 무언가가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우선 이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사장은요?”
“침실이요.”
“아하, 그럼 오늘 하루만 고생해줘요, 문 비서.”
현관문까지 쪼르르 따라나온 제아가 인호에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오빠 쉬면 실장님이 식사도 못 챙겨 드실 정도로 더 바쁘실 거 아니에요. 즉석 밥으로 하긴 했지만 주먹밥 좀 만들었으니 가시면서 요기라도 하세요.”
생각지 못한 제아의 세심한 배려에 인호는 꽤 감동받았다.
얼굴 청순하지, 몸매 죽이지, 살림 손끝 야무지지. 게다가 세심한 배려까지 갖춘 제아는 지금 그의 눈에 아주 괜찮은 여자로 비추어졌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뇌리를 가득 채우는 무시무시한 어떤 존재에 인호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털어버렸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한 사장 동생을.
인호가 가고 제아는 밖에서 사온 죽을 도준의 입맛에 맞게 다시 끓였다. 트레이를 들고 거실로 나왔는데 아직까지 도준이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도준 오빠?”
침실의 문을 두드리면서 기다려보지만 대답이 없다. 문을 열어보고 싶지만 망설여졌다.
설마 또, 다 벗고 있거나 그러진 않겠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조심히 문을 연 순간, 제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도준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어 있었다.
“진짜 몸이 안 좋았나 보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침대로 다가섰다.
자는 모습을 말없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데 땀에 젖은 이마가 보였다. 좀 더 시선을 내리니 목에 닿는 셔츠의 하얀 칼라도 젖어 있었다. 아니, 온몸이 흠뻑 젖어 있는 것 같았다.
깜짝 놀라 이마에 손을 올리자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미치겠네!”
제아는 난감함에 눈살을 구겼다. 아까는 너무 벗고 있어서 문제였는데 지금은 옷을 너무 껴입고 있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 놔두면 땀 때문에 체온이 더 내려갈 건데, 어쩌지?
가만히 보니 붉은빛을 잃은 도준의 입술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우선 땀에 젖은 저 옷 먼저 벗겨야 한다.
재킷까지는 어떻게 벗겼는데 문제는 와이셔츠였다. 흠뻑 젖은 와이셔츠가 달라붙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의 상체, 드레스 룸에서 보았던 다비드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제아는 냉정하게 마음을 먹었다.
‘문제아, 이건 오빠를 위한 거야.’
도준의 와이셔츠 단추를 푸는가는 손가락이 덜덜 떨려온다. 단추가 풀어질수록 드러나는 아찔한 다비드상에 시야가 어지러웠지만 잠깐뿐이었다.
끙끙거리며 상의를 모두 벗겨내긴 했지만.
‘바지는 도저히 못 벗기겠어!’
그의 온기를 뺏어가는 땀을 따스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몇 번이고 꼼꼼하게 닦아냈다. 그런 후에야 도톰하고 부드러운 배스 가운을 입히려 했다. 하지만 도준의 몸을 이리저리 뒤집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오빠 제발 상체 좀 살짝 들어보자, 응?”
자신도 모르게 사정하는 소리를 흘린 제아는 피식,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소리를 어떻게 듣는다고.
제아는 이를 앙 다물고 도준에게 배스 가운 입히기에 들어갔다. 두 다리 사이에 도준을 둔 채 타고 올라 그의 팔 밑에 팔을 찡겨 넣어 들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말라 보이는데 근육이라서 그런지 무게가 꽤 나가나 보다. 그게 아니면 축 늘어져서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겨우 상체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얼마나 힘을 줬는지 제아의 이마에 식은땀이 나면서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목욕 가운에 도준의 한쪽 팔을 끼우고 등까지 두르는 데 성공했다.
가장 어려운 걸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한쪽 팔만 넣으면……?
“꺄악!”
갑자기 도준이 뒤척이며 몸을 옆으로 틀어버리는 바람에 고지를 눈앞에 둔 제아는 그의 밑에 깔려버렸다.
도준의 가슴에 제아의 가슴이 민망할 정도로 무참히 짓눌렸다. 제아의 목 사이에 안착된 도준의 얼굴, 고르지 않게 흘러나온 숨결이 얇은 피부를 간질였다.
깜짝 놀라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온 팔을 버둥거려보지만 온기가 절실한 도준이 따스하고 보드라운 제아의 몸을 놔줄 리가 없었다.
그의 밑에 깔린 건 우연이었지만, 끌어안는 건 살고자 하는 그의 본능이었다. 급기야 긴 팔다리로 제아의 온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빈틈없이 맞닿은 몸, 단단한 그의 몸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온몸의 오감을 곤두세우는 도준의 본능적인 공격에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이 미칠 듯이 박동하며 그녀에게 경고를 했다.
살고 싶으면 어떻게든, 품에서 벗어나라고.
온 힘을 팔에 잔뜩 모아 어깨를 휘감은 도준의 팔을 밀어내려는 그 순간…….
“추워…….”
탁하게 흐려진 음성이 도준의 창백한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입술이 떨리는 간절한 그 중얼거림에 팔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제아의 입술 사이로 짙은 한숨이 어린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딱 오늘만이야. 내가, 따뜻하게 해주는 거.”
그녀에만큼은 쉬운 남자라고 허락해준 도준이니까.
“그 대신, 절대 깨어나서도, 기억해서도 안 돼.”
이제 우린, 그래선 안 되는 사이니까.
제아는 그를 밀어내려던 팔로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도준의 밑에 깔려서 도준을 안고 있으려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중학생이 된 이후로, 왜 윤영이 그토록 같은 침대에서 자지 말라고 했는지.
얇은 블라우스만을 사이에 둔 채 살과 살이 닿았다. 단단한 몸과 보드라운 몸이 빈틈없이 딱 맞게 맞물렸다.
따뜻해져라, 따뜻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