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 잠버릇, 앞으로도 꽤 유용하겠어.
2016.10.13.
거칠게 남자를 일으켜 세운 도준은 남자의 뒷덜미를 한 손에 움켜쥐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몇 명 되지 않는 승객들의 시선이 두 남자에게 쏠렸다.
덩치가 큰 험악한 남자가 오히려 호리호리한 체격의 잘생긴 남자에게 꼼짝도 못 하다니.
“기사님,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무심하면서도 깍듯한 도준의 부탁에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정류장이 아닌 곳에 버스를 세웠다.
그리고 앞문이 열리자마자 도준은 남자에게서 빼앗은 핸드폰을 먼저 집어던졌다.
자신이 운 좋게 살아났다는 것도 모른 채 남자는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최신 핸드폰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새하얗게 질린 남자의 얼굴은 이내 길바닥 위에 산산조각 난 핸드폰 위로 고꾸라졌다.
저 호리호리한 몸에서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오나 승객들과 운전기사는 신기한 눈으로 도준을 조심히 바라보았지만, 어는 누구도 입을 열진 않았다.
박수라도 보내주고 싶은 눈치였지만, 눈이 번쩍 할 정도로 잘생긴 남자의 외모와 달리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싸늘한 냉기에 감히 입을 열 엄두를 못낸 것이다.
다시 버스가 조용히 출발을 하고, 도준은 그제야 제아의 옆에 조심히 앉았다.
방금 전에 몰카를 당할 뻔한 것도 모른 채 제아는 여전히 창문에 머리로 노크를 하며 입맛까지 쩝쩝 다시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니 살짝 벌어진 제아의 다리가 보였다.
옅은 한숨을 내쉰 도준은 다시 재킷을 벗어 제아의 다리를 덮어주며 중얼거렸다.
“도무지, 조용할 날이 없군.”
이러니 불안해서 어디 혼자 다니게 하겠는가. 그가 없던 10년은 어떻게 지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곤히 잠이 든 채 창문에 머리를 박는 제아를 향해 상체를 기울인 도준이 제아의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문제아, 어깨 빌려줄까?”
“음…….”
제아는 잠결에 또 대답을 했다.
도준은 소리 없이 웃으며 제아의 머리를 조심히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잠결인데도 편안했는지 제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너무 변해버린 자신과 달리 작은 버릇조차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제아.
이 잠버릇, 앞으로도 꽤 유용하겠어.
버스가 종점에 다다르기 몇 정류장 전, 도준은 너무 곤히 자는 제아를 깨우기 싫었지만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어깨를 약하게 흔들었다.
“문제아, 내려야지.”
“음…….”
제아는 또다시 잠결에 대답은 했지만 눈을 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금 거칠게 어깨를 흔들자 그제야 나른하게 올라가는 제아의 눈꺼풀.
잠에서 깨어난 제아는 눈앞의 현실에 적응하려는 듯 도준에게 머리를 기댄 채 몽롱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러더니 스윽, 고개를 들었다.
도준과 눈이 딱 마주치자, 몽롱했던 제아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지면서 내려갔던 눈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원래의 고양이 눈이 되고 나니, 점점 빨개지는 얼굴.
도준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아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헉!”
격하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열린 버스의 뒷문으로 제아는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문제아!”
도준은 얼른 따라 내려서 제아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가녀린 실루엣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불러볼까 했지만, 늦은 시간임을 감안한 그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미친 듯이 전력질주 하고 있을 제아가 전화를 받을 리는 만무했다.
꽤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둑해진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하는 도준의 입술 사이로 시니컬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문제아, 정말 다양하게 나를 미치게 하는군.”
진짜 못 말리는 말썽쟁이 같으니라고.
지갑을 가져가 버리면 어쩌라는 건지.
그런데도 도준은 피식,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핸드폰까지 가지고 가지 않은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는 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호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통화를 끝낸 도준은 10년 만에 마주하는 정겨운 동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좋은 추억부터 아픈 추억까지 그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
한참 후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추자 도준은 차문을 열고 올라탔다.
자다가 나왔는지 인호의 눈엔 졸음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도 입은 살았는지 그는 도준을 보자마자 투덜거렸다.
“매너 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몇 시간 후에 일어나야 하는 나한테 전화하고 싶어?”
“오늘 출장, 인호 너 혼자 가야겠어.”
뭔 소리냐는 듯 도준을 응시하는 인호의 눈에선 이제 졸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독할 정도로 일밖에 모르고,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는 녀석이 지금, 스케줄을 펑크 내겠다고?
인호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한 사장, 너…… 뭐 잘못 먹었냐? 출장을 어떻게 나 혼자 가. 이번 계약 건은 네가 가야 체결이 되는 건데.”
“내 친구에게 그 정도 능력은 있을 거라고 보는데. 체결이 힘들 것 같으면 뒤로 미루어놓든지.”
‘내 친구’라는 도준의 살가운 호칭에 인호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그 호칭을 쓸 때마다 매번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으니까.
한국에 오기 며칠 전날도 도준은, 내 친구라는 호칭을 썼으니까.
그런데도 이상한 건 도준이 ‘내 친구’라는 호칭을 쓸 때다 어느 순간 그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인호는 자꾸만 이렇게 조종당하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그런 도준이 괘씸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동네 근처에 있는 영화관으로 티켓 두 장 예매해줘. 가장 빠른 시간대로.”
“한 사장, 설마, 나한테 일 시켜놓고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건 아니지?”
“영화도 볼 겸, 오랜만에 편히 잠도 잘 겸.”
‘영화’, 그리고 ‘잠’이라면?
그 두 단어만으로도 인호의 비상한 머리가 쉭쉭, 눈동자도 빠르게 돌아갔다.
남자랑 영화를 보고 잠을 잘 리는 없으니, 상대는 분명 여자렷다!
여자가 생겼으면 절친인 나한테 적어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도준을 향한 괘씸 게이지가 수직으로 팍팍 상승했다.
절친인 자신에게 소개도 안 해준 여자랑 그가 잘되는 꼴, 인호는 절대 얌전하게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영화 보면서 골탕도 좀 먹일 겸, 편히 편한 잠을 위해 몸도 후끈 달아오르게 할 겸.
너도 한번 당해보라고, 한 사장.
“오케이, 나만 믿어.”
***
“문제아, 그만 자고 얼른 일어나!”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윤영의 고함에 잠에서 깬 제아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갑자기 이불을 뒤집어쓰고 온갖 몸부림을 다쳤다.
“으아아악! 창피해! 미쳤어! 바보 같아! 이 멍청이!”
혼자 가겠다고 큰 소리라도 안 쳤으면 될 것을, 결국은 그가 아니었으면 종점까지 갈 뻔했다.
게다가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잔 건 쪽팔림의 덤일 뿐.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도준의 무심한 얼굴을 본 순간 제아는 머릿속이 새하얘져버렸다.
그녀의 성격상 태연한 척할 수도, 그렇다고 그 상황을 매끄럽게 넘길 말재주도 없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 질주했다.
“휴…….”
입술 사이로 나오는 건 한숨이요, 제아의 시야로 들어오는 건…… 윤영이었다.
윤영의 등장에 제아는 용수철처럼 튕기듯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 일어났으니까 때리기만 해봐!”
“누가 보면 내가 자식 때리는 엄만 줄 알겠다.”
“자주 때리긴 하지 뭐.”
잠시 딸을 노려본 윤영은 이내 코를 킁킁거리더니 의자 위에 던져 놓은 코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 고기를 얼마나 먹었길래 냄새가 이렇게 지독해? 드라이 맡기게 내놔. 주머니 잘 뒤지고.”
“예써!”
야무진 딸의 대답에 윤영은 생긋 웃더니 방에서 나갔다.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쉰 제아는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코트를 집어 들었다.
지극히 예의상 코트 주머니를 뒤졌을 뿐인데, 손에 잡히는 이건 뭐지?
촉촉하고 부드러운 이 가죽 질감은…….
순간 등골을 스치는 이 싸한 느낌은?
제아는 코트 주머니에서 꺼낸 그 무언가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지갑이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지갑은 남자 지갑이었고, 남자 중에서도 바로…… 한도준 지갑이었다.
“꺄악! 난 몰라!”
제아는 그제야 어젯밤 도준에게서 빼앗은 지갑을 돌려주지 않은 게 떠올랐다.
왜 자꾸 이런 일들만 일어나는지!
파르르 떨리는 시선이 침대 위에 놓인 핸드폰에 꽂히자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 액정에 메시지가 떴다.
“흡!”
액정에 선명하게 뜨는 발신인은 바로…… ‘한 사장님’!
-집 근처야. 일어났으면 연락해.-
설마, 집에 못 간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지갑 없다고 마냥 기다리는 바보 같은 남자는 절대 아니니까.
특히나 오빠라면 더더욱 말이다.
“휴, 진짜 내가 싫다. 이 요망한 손 같으니라구!”
수표를 내든 말든, 상관 말았어야 했는데. 이 지랄 맞은 자린고비 성격이 도준이 수표를 꺼내려는 순간, 고개를 치켜든 것이다.
한숨을 몇 번이고 내쉬었지만, 그렇다고 손에 들린 지갑이 짠하고 도준에게 순간 이동될 리는 없고.
우물거리는 손놀림으로 제아는 핸드폰에 메시지를 입력했다.
-지금 바로 나갈게.-
하지만 제아는 메시지를 지우고 다시 입력했다.
-20분 안에 나갈게.-
이보다 더한 모습도 도준에게 많이 보였지만 그건 옛날 일, 샤워는 하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후다닥 샤워를 마친 제아는 서랍에서 즐겨 먹던 복숭아 사탕을 꺼내서 입 안에 쏘옥 넣었다.
달달 상큼한 복숭아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우자, 몸의 긴장도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집을 나서자마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도준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공원 주차장으로 와. 바닥 상태가 좋지 않으니 뛰어오다 넘어지지 말고.-
어릴 적 이준의 손을 잡고 자주 나왔던 공원이었다.
그때마다 항상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지려는 제아를 잡아주는 건 그의 몫이었다.
“치, 별걸 다 기억하네.”
그런데도 그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또다시 얼어붙어 있던 마음의 한쪽 귀퉁이가 스르륵, 녹아내렸다.
만남이 반복될 때마다 자꾸만 녹아내리는 마음.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리니 제아는 지금까지 그와의 일들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리고 도준은 도와줬을 뿐이고.
물론 철저하게 그걸 계산해서 받아내려는 게 문이준이긴 했지만.
공원 주차장에 도착한 제아는 쌔끈한 스포츠카에 몸을 기대고 있는 도준을 발견했다.
딱딱한 슈트를 벗어던지고 올블랙의 세미 캐주얼로 쫙 빼입은 도준은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붉은 입술에 물린 하얀 담배를 물었다가 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뿜는 그의 옆모습을 제아는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담배를 피우는 그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 흡연을 유혹하는 광고 같았다. 담배를 저렇게 멋있게 피우면 어쩌란 말인지.
제아는 파릇파릇한 청소년들이 저 모습을 보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그나저나 도준에게 가기는 해야겠는데…….
제아는 본능적으로 점퍼에 후드가 달린 간편한 트레이닝 차림에 런닝화를 신은 자신의 모습을 쭉, 훑어 내렸다.
잠옷 차림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 앞에 나가는데 꾸미고 나가는 것도 웃기고.
그래도 나름 보일 듯 말 듯 신경 써서 나온 건데, 멋진 스포츠카와 함께 있는 멋진 도준을 보자 감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그의 근처에 투명한 막을 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제아는 그에게서 지독한 이질감을 느꼈다.
‘용돈 모아서 피자 사주던 우리 오빠는 대체 어디 간 거야?’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도준의 근처는 어느새 젊은 여자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었다.
그녀들도 제아와 마찬가지로 차마 다가갈 용기는 나지 않는지 멀찍이 서서 곁눈질로 도준을 훔쳐보느라 바빴다.
다행히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 어디 한번 다가가 볼까?
“후아! 주눅 들지 말자! 지갑만 주고 오면 되잖아?”
후드를 머리에 푹 뒤집어쓰고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도준이 갑자기 고개를 틀었다.
정면으로 마주쳐버린 둘이 시선.
흠칫하는 제아와 달리 도준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꾹 다물려 입술과 달리 가늘어지는 그의 눈은 분명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그 눈이 보내는 매혹적인 미소에 제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만 이준이 보여주었던 미소에 홀린 제아는 도준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줄도 몰랐다.
“이준 오빠…….”
도준은 꿈을 꾸듯 자신을 바라보는 제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준이 되는 순간 제아에겐 남자가 될 수 없기에 도준은 제아에게 한도준임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애틋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제아를 보고 있으려니…….
오늘 하루쯤은 행복했었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스스럼없이 바라보고 웃을 수 있는, 서로밖에 몰랐던 그때 그 시절로.
제아의 오빠라는 과거는 싫지만, 제아와 함께했던 과거는 그에게도 소중했다.
이곳에서 제아를 기다리는 동안, 도준도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시험 기간 내내 잠 한숨 자지 않고 공부를 한 그는 항상 시험이 끝나는 마지막 날, 제아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그곳에서 제아는 진지하게 영화를 봤고, 그는 제아의 어깨에 기대어 손을 꼭 잡은 채 잠을 잤다.
그동안 고생했던 자신에게 상을 내리는 기분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답지 않게 일정을 변경하고 인호에게 일까지 미루어버렸다.
물론 인호가 그 대신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느라 지금까지 잠 한숨 자지 않고 일을 하다 오긴 했지만.
꼬박 이틀을 지새운 몸이 시큰해지면서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의 가슴은 눈앞의 제아를 본 순간 은근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달콤한 잠을 잘 수 있다는 기대감 말이다.
지금 그는 오래전 그때처럼 그에게 깊은 잠을 선물해줄 제아만의 따스한 체온과 달콤한 체취가 간절했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도준에게 ‘이준’라고 부른 걸 뒤늦게 깨달은 제아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틀었다.
민망했는지 주변을 헤매던 제아의 시선이 도준의 손에 들린 담배에 꽂혔다.
생각해보니 도준을 볼 때마다 그의 손엔 항상 담배가 들려 있었던 것 같다.
담배, 싫어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담배, 많이 피우나 봐.”
“피고 싶을 때 피우는 것뿐이야.”
너란 존재가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마다,
네 입술의 달콤함이 그리울 때마다,
내 눈앞에 있는 널 보는 것만으론 참기 힘들 때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습관처럼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넌, 내가 담배를 왜 피우는지 모르겠지.
도준을 바라보는 제아의 눈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담배, 끊으면 안 돼?”
“담배, 끊었으면 좋겠어?”
“당연한 거 아냐? 오빠 담배 냄새 싫어했잖아. 그리고 건강에도 안 좋지, 냄새도 안 좋지. 담배 피워서 좋은 게 하나도 없잖아.”
“이게 없으면 입이 꽤 심심해. 그리고 당분간은, 끊지 못할 것 같은데.”
도준은 비스듬히 시선을 틀며 옅게 웃자 제아의 시선이 저절로 그 입술로 향했다.
피처럼 붉은색을 머금은 입술과 그린 듯 섬세하고 부드러운 입술선은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유혹적인 그 입술을 만지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이 나가려고 한다.
요망한 그 손을 막기 위해 제아는 주먹을 꽉 쥐어 등 뒤로 숨기면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힘겹게 내리깔았다.
“다른 걸 찾아. 그래도 담배는 안 좋아.”
“그렇게 끊길 원하면 네가 해주든가.”
“……?”
“내 입이 심심하지 않게 말이야.”
나른하게 휘어지는 눈매와 입꼬리, 제아의 눈을 마주하고 있던 그가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
묘한 열기를 담은 그의 시선이, 입술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