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을 사랑하라
5화
두바이의 위험한 밤
두 입술이 물크러질 정도로 맞붙었다.
그녀의 허리에 있던 그의 손이 어느새 등까지 올라왔다.
그 손은 그녀를 당겨 그의 몸에 더 밀착시켰다.
서로의 상체가 닿자 이서의 움찔거림이 느껴졌다.
시작은 네가 했지만 멈추는 것은 자신의 권한이라는 듯 그는 더욱 세게 그녀를 당겼다.
이서의 입술 사이를 헤집는 혀끝.
그 작은 자극에도 배 속이 뭉근해지고 숨이 뜨거워졌다.
결국 숨이 찬 이서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 사이로 넘치는 숨을 그는 제 것처럼 마셔 버렸다.
그리곤 씁쓸하고도 독한 제 숨을 이서 안에 불어 넣었다.
한 번 마신 달콤한 술을 멈출 수 없듯, 달콤함에 혀까지 얼얼해지는 키스를 끊을 수 없었다.
이서는 자신이 이 시간이 멈추길 바란다는 걸 느꼈다.
머리를 녹아 없앨 것 같은 이 키스가 밤새 이어진다면…….
또 이보다 더한 쾌락이 있다면 그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떨어질 줄 몰랐던 두 사람의 입술이 겨우 떨어졌다.
“하…….”
입술이 떨어지자 이서가 제 안에 가득 찬 그의 숨결을 내뱉었다.
술과 키스에 취한 이서의 눈이 흐리멍덩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 뒤 귓바퀴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느긋하고 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갈까?”
이서 역시 이대로 헤어지긴 싫었다.
이렇게 간다면 밤새 여운이 남을 것 같았다.
이서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바에서 나온 두 사람은 밤길을 날 듯이 걸었다.
쭉 무채색이었던 도시가 그의 손을 잡으니 색색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소음 같았던 캐럴도 영화 속에 흐르는 로맨틱한 음악 같았다.
이 모든 것들이 이서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불빛들과 캐럴이 눈앞에서 차츰 사라지고.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객실 문이 닫혔다.
그가 이서를 벽으로 밀쳤다.
그리곤 그녀에게 거칠게 키스했다.
“으읍…….”
눈에 보이는 거라곤 어둠.
손에 잡히는 거라곤 남자의 단단한 몸뿐이었다.
방금과 달리 그의 움직임 또한 더는 부드럽지 않았다.
이서는 그대로 그 안으로 삼켜질 것 같아 겁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잠시의 틈도 없이 그는 이서의 턱을 잡고 위로 치켜 올렸다.
깊은 곳까지 벌어진 그녀 안으로 차츰 저를 불어넣었다.
이서가 본능적으로 어깨를 밀어내자 그가 입술을 뗐다.
어느새 짙어진 눈매가 이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와 머뭇거리는 이서가 못마땅한 듯.
잠시 두 사람의 눈빛이 오고가던 사이.
“앗!”
그가 번쩍 그녀를 들어올렸다.
이번엔 그녀가 그를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그의 어깨 위에도 흘러내렸다.
얼굴만 봐도 컨트롤할 수 없는 욕구가 툭툭 커졌다.
남자는 더 따질 것 없이 이서를 침대 위에 올렸다.
그녀의 목덜미에 그가 얼굴을 묻었다.
더운 숨결이 목 위에 닿자 이서의 발가락이 오므라질 정도였다.
롤러코스터에 탄 듯 자꾸만 심장이 쿵 튕겨 올랐다.
까딱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이서는 그의 어깨를 안전 바처럼 세게 붙들었다.
이서를 태운 그는 밤새 그녀를 내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뽀얀 목 위에서부터 시작해 블라우스 옷깃 사이까지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흐읏.”
그녀의 신음에 그도 마뜩한지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그는 입술로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단추를 풀고 그녀의 숨겨진 살결이 드러날 때마다 무화과 향기가 짙게 났다.
달달하고 떫은 과실 향기에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베어 물었다.
“하앗!”
찌릿한 흥분에 그녀의 허리가 튀어 오를 정도였다.
그의 입술이 브래지어 위에 닿자 이서가 그의 어깨를 밀었다.
그리고 숨소리 사이로 미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할래.”
흥분에 사로잡혀 있던 그가 움찔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물을 머금고 있는 그녀의 눈이 보였다.
“……무서워.”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볼 때까지 직진하는 그였지만.
그녀의 말 한 마디에 그는 옴짝달싹 못했다.
거기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자 그 역시 침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신음소리가 가득했던 방엔 어느새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가라앉은 분위기에도 아직까지 뻐근한 아래가 민망할 정도였다.
침대 앞에 한참 서 있던 그는 결국 대신 이불을 덮어주고 물러났다.
그가 들어간 욕실에선 물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몸에 붙은 불을 끄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듯했지만.
정작 그의 몸에 불을 붙인 이서는 무고한 듯 조용히 잠에 빠져 있었다.
* * *
지이잉, 지이잉-.
고요한 방 안. 핸드폰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핸드폰은 벌써 수차례 몸을 떨었지만 이서는 죽은 듯 잠을 잤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진동이 울렸을까.
영영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이서의 손가락이 꿈지럭거렸다.
그녀는 침대 위를 더듬으며 핸드폰을 찾는데 집중했다.
머리맡에서 핸드백으로 추정되는 것이 잡혔다.
한참 핸드백 안을 뒤적거리던 이서가 겨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
-야, 정이서! 미쳤어?
불호령에 이서가 몸을 크게 움찔거리다 눈을 떴다.
쨍한 햇빛이 이서의 눈을 따갑게 찌르며 들어왔다.
두통 때문에 머리가 둔하게 굴러가는 것 같았다.
-사람 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어?
“아…… 대표님. 제가 늦잠을 자서,”
-늦잠? 너 밖에서 잤지?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이재영의 호들갑에 더 정신이 없었다.
이서는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햇빛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눈을 깜빡이던 이서는…….
“헉! 뭐야!”
그제야 큰일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왜? 뭐 어디 길바닥이야?
차라리 길바닥이었으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낯선 호텔 객실 안.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없는데.
이서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지만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데! 내가 데리러 가?
“아, 아뇨! 저…….”
천천히 하나하나 생각하자.
당장 비명부터 지르고 싶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움직여야 했다.
“저…… 제 호텔 방 안이에요.”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정말이에요. 어제…… 방에서 와인 한 잔 마시다가 잠든 것 같아요.”
-내가 문을 얼마나 두드렸는데. 그래도 안 일어났다고?
평소답지 않게 오늘따라 왜 이리도 집요한지.
제가 방 안에서 일어나든 길바닥에서 일어나든 무슨 상관이라고.
평소엔 관심조차 없었으면서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건가 싶었다.
이서는 이재영에게 자그마한 꼬투리라도 잡히기 싫었다.
그걸 이용해 얼마나 달달 볶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피곤했었나 봐요. 지금 바로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대표님!”
더 길게 말할 여유가 없었다.
곧장 종료 버튼을 누른 이서는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내가 여기 왜 있는…….”
그 말과 함께 어젯밤의 낯 뜨거운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바 안에서 처음 본 남자와 입술을 맞춘 것도 모자라 이 방 안에서…….
“꺅!”
이서는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설마 끝까지 간 건 아니겠지?
그녀는 요동치는 동공으로 제 몸을 확인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옷은 그대로 입혀져 있었다.
분명 기억 속에서 그 남자와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는데…….
어떻게 떨어지게 된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 우선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여기서 나가자. 빨리.”
이서는 허둥거리며 핸드백과 휴대폰을 챙겼다.
남자는 잠시 나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좋은 꼴은 못 보리라.
어차피 앞으로 영영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이번 사고는 제 마음속에 묻으면 될 일.
“아, 왜 이렇게 안 들어가. 이건.”
구두와 잠시 고전 중이던 때.
문 뒤에서 발걸음이 뚝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도어 록이 해제되는 소리에 이서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이제껏 그렇게 빠르게 움직였던 순간이 있었을까?
백지장처럼 새하얘진 머릿속에는 당장 숨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조급함은 이서를 초능력자로 만들어 놓은 듯했다.
이서는 곧장 옆에 있던 커다란 슬라이딩 옷장에 몸을 숨겼다.
문에 난 빗금 진 틈.
그 사이로 어젯밤 입을 맞췄던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서는 숨소리라도 새어 나갈까봐 손으로 입과 코를 꼭 막았다.
운동을 다녀온 모양인지 남자의 차림새는 가벼웠다.
그는 이서가 떠난 걸 눈치 챘는지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문만 사이에 뒀을 뿐. 손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예민하다면 옷장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텐데.
제발…… 빨리 움직여주길.
이러다 질식으로 기절해서 들킬 것 같았다.
점점 한계가 느껴질 무렵, 남자는 때맞춰 걸음을 옮겨 주었다.
그가 침실 쪽으로 가자 이서는 그제야 조용히 숨을 돌렸다.
“인사도 없이 갔네.”
침실 쪽에서 들린 남자의 말에 기가 막혔다.
사이좋게 아침 인사라도 나눌 생각이었던 거야?
어젯밤 일은 만취해 저지른 사고였을 뿐. 저 남자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한참 침실에서 어슬렁거리던 남자는 조용히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서는 조심히 옷장 문을 열었다.
그리곤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이내 잦아들었다.
욕실 문 앞에 서 있던 그는 입을 씰룩거리다 소리 내어 웃었다.
이렇게 창피해 하면 어쩌나.
“앞으로 자주 볼 텐데.”
그땐 오늘처럼 도망도 못 갈 텐데.
당황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오히려 빨리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