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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2. 수아 켈트 (67/69)

Epilogue 2. 수아 켈트

“수아. 그만 울어.”

“너무 감격스럽지 않아?”

오열에 가깝에 눈물을 흘리는 수아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리암은 웃고 말았다. 얼마나 벅차오르는지, 수아는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눈물이 그렁거렸다.

“정말, 너무 감격스러워…… 드디어 로엘 님이 칼라리엔이 되셨어.”

그 많은 원로원 사이에서 제일 먼저 칼라리엔으로 추대하였으면서도, 수아는 이리도 로엘의 칼라리엔 등극이 기쁜가 보다. 로엘에 대한 수아의 사랑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 리암은 여전히 훌쩍이는 수아의 어깨를 토닥토닥하며, 못 말리는 자신의 아가씨를 달랬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 좀 더 가까이에서 보지 그랬어. 마마께서도 그걸 더 바라셨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 담긴 리암의 목소리가 두 사람만이 있는 탑을 울렸다. 아까부터 계속 로엘만을 바라보던 수아의 눈이 그제야 리암을 향했다. 어찌나 눈물을 흘렸는지 벌써 퉁퉁 부어 버린 그녀의 눈가를 쓸어 주며 리암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엄연히 아카시스의 신분으로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칼라리엔의 등극을 볼 수 있음에도 그녀는 이 아무도 없는 외진 탑에 올라 리암과 함께했다.

“말했잖아. 난 리암과 함께 보고 싶었다고.”

오로지, 그와 함께하겠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정말 참석하지 않을 거야?’

‘응. 거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걸. 로엘 님은, 폐하의 유일한 여인이 되어야만 해.’

‘하지만…….’

‘그리고, 그 순간을 난 리암과 함께하고 싶어. 그건, 우리의 새로운 시작과도 같으니까.’

리암은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수아를 꼭 껴안았다.

로엘 님이 칼라리엔이 된다는 것.

수아는 그 조건으로 폐위를 약속받았다. 직접 마주하기도 무서운 그분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가히 목숨을 걸고 받은 약속이다.

수아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리암은 그 소리를 들은 밤 홀로 참 많이도 울었다.

자신이 무어라고, 이 귀하디귀한 사람이 그 정도까지 하나 싶어서.

그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는 것을. 해 주기는커녕 늘 그녀 인생에 없어도 되는 시련만 되었는 것을.

수아는 자신을 안아 주는 리암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들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리암을 보았다. 항상 그녀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 온화한 미소가 사라진 채, 조금은 서글프고 많이 미안해하는 눈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아는 작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이거 또, 이 남자가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나 보다.

“리암.”

“응.”

그러면서도 그녀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자신이 미안해하는 걸 그녀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남자는 수아 켈트가 아파하는 것을 단 하나도 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니까.

“사랑해.”

그래서 이토록 사랑하는 거다. 그녀의 모든 인생을 걸 만큼.

“아주 많이 사랑해, 리암.”

환한 미소와 함께 들려오는, 그 예쁜 사랑 고백은 오늘도 어김없이 나왔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 때부터 수아의 이러한 사랑 고백은 만날 때마다 이어졌다. 마치 그날의 숙제를 하듯, 그녀는 시시때때로 리암에게 마음을 전했다.

처음 리암은 그저 수아의 저 한 마디가 너무 좋아서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에게 수아 켈트를 사랑한다는 이 마음은 입에 올리기도 감격스러운 그런 너무도 벅차고 감사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에도, 리암은 늘 아가씨를 사랑하는 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 아프기도 했던 생이별.

수아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게 했던 비극을 낳았다.

“사랑해, 나도.”

그래서 이제는 리암도 아낌없이, 그리고 거리낌 없이 수아를 보며 사랑한다 말했다. 점점 더 서로를 닮아 가는 것만 같은 갈색의 눈동자에 그녀를 가득 담고, 품에 꼭 안은 채, 내일은 불가능할지 모를, 그래서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사랑을 속삭였다.

“나도 많이 사랑해, 수아야.”

다시금 생긴 리암의 부드러운 미소에 따라 수아 역시 환히 미소 지었다.

수아는 이 모습만 보고 싶다. 리암이 자신에 대해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오로지 서로만을 사랑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 그녀의 위치가 어떻고, 그녀의 출신이 어떠한지 그런 아무런 쓸모없는 것들을 생각하다 이리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허비한 시간은, 두 사람에게 이미 너무도 충분했으니.

수아는 편히 리암에게 기대며, 다시금 한창 취임식이 진행 중인 회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 행복한 시간을 그녀에게 다시 돌려준, 바로 그분만을 바라보며.

그녀가 세심하게 준비한 드레스가 어찌나 예쁘게 잘 어울리는지, 이 먼 곳에서도 그녀가 얼마나 예쁜지 알 것만 같았다. 새하얀 드레스 위를 가득 메운 황금의 자수와, 베일에 싸여도 눈에 띄는 그 태양처럼 붉은 머리칼은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었다. 날마저 어찌나 좋은지, 혹여 비가 온다거나 구름이 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말 기우였다. 하늘도 그녀의 칼라리엔 등극을 축복해 주려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화창한 태양이 그녀의 가는 걸음걸음을 비춰 주었다. 그러니 그 모습이 가히 여신의 강림과도 같았다.

“나에겐 아주 오래전부터 여신님이지.”

나의 인생을 구원하러 와 주신, 그런 너무도 사랑스럽고 어여쁘신 여신님.

“불가능한 것들을 다 이루어 주셨는걸.”

죽어 가던 그녀를 살리고,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리암을 만나게 해 줏고.

희망이 없던 리암과의 삶을 다시 가능케 만드셨으며, 이리 지금 리암의 품에 있게 하시니.

어떻게 수아 켈트에게 로엘 네아레스가 여신이 아니랴.

그 어떠한 여신이 오더라도, 그녀의 1번은 오로지 로엘이다.

“우리에게 이런 순간이 오리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러게.”

“정말…… 기적 같잖아?”

또다시 수아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마치 에단처럼 차가워,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으면서 리암 앞에서만큼은 이리도 울보가 되어 버렸다. 리암을 보며, 또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려는 그녀는 분명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리암 역시 행복했다. 언제나 그렇듯 리암의 가장 큰 행복은 수아의 행복이므로.

“기적이지, 이건. 그래서 나에게도 저분은 여신이야. 내가 평생을 꿈꿔 왔던 것을 이루어 준 그런 여신님.”

리암은 로엘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말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해 본 적 없지만,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프래카. 이름이 뭔가요?’

‘아카시스 로엘 마마를 뵙습니다. 프래카 리암 고든. 인사드립니다.’

리암은 처음 만남부터 알고 있었다. 이분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프래카 리암. 저 대신 수아 님을 안으로 모셔 주겠어요?’

그래서 두 사람에게 그 누구도 주지 않았던 시간을, 바로 그 소중한 기회를 주려 한다는 것을. 저 순간 리암의 심장이 어찌나 뛰던지. 수아의 소식을 듣고 죽어라 노력해 프래카에 들어와도 수아를 마주할 일은 전혀 없었다. 한 번쯤은 기회가 있겠거니 싶었지만, 그 기회가 어쩌면 평생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날이 늘어 가던 그런 때였다.

그래서, 루카스 님을 따라 들어간 그날이 수아를 볼 수 있는 처음이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저 멀리서라도 괜찮은지만 보고 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그 이상, 감히 리암은 상상도 하지 못할 그런 기회를 준 거다.

“너를 다시 만난 그날. 나는 정말 순간 저분이 빛나 보이더라.”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온화한 미소. 그러니 둘만의 시간을 갖고 회포를 풀라는, 마치 요정이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준 것만 같은 선물 같은 시간. 그래. 그때서부터 리암도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빛났지. 너무도 빛나서, 눈이 다 부셨어.”

그런 리암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수아 역시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로엘에게 진 빚은 평생을 들여도 절대 갚지 못한다. 그래서 곁에서 두고두고 갚고 싶으나, 그분의 곁에서는 두 사람은 함께하지 못하니 어쩌겠는가.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날밖에.

‘죄송해요, 로엘 님. 평생을 마마께 갚아도 부족한데…….’

‘무슨 그런 말을. 수아 님. 내가 서운한 건 소중한 친구를 이제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치만, 그 하나뿐인 친구가 이제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작은 서운함 따위가 무어겠어요. 저는 서운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주 많이 기뻐하고 있어요.’

칼라리엔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게 절대 아니다. 분명 그녀를 견제하는 세력은 더 늘 테고 그럴수록 이 카이로스 황실에서, 그리고 귀족 사회에서 그녀를 든든히 지켜 줄 이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가장 잘 해 줄 일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수아였다. 그래서 수아를 잠시라도 좋으니 붙잡을 법도 하건만, 그녀는 떠나겠다는 수아의 말에 아 소리도 없이 바로 수아의 두 손을 꼭 쥐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어렵사리 꺼낸 말에 돌아온 그 반응에, 그날도 수아가 얼마나 울었던가.

리암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수아를 보며, 피식 작은 웃음을 삼켰다.

절절하기도 하여라. 이거, 리암이 오히려 두 사람을 생이별시키는 그런 기분이다.

계획대로라면, 그래. 수아는 오늘 리암과 함께 떠나야 한다.

뒷수습은 황제 폐하와 로엘 님의 몫. 그렇게 약속을 받았고, 수아는 단 하루도 지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이번엔 리암 쪽에서 달라지려나 보다.

“수아야.”

“응.”

“나는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어.”

언제나, 리암 고든은 수아의 모든 부탁을 들어주는 그런 사람이니.

그 모든 부탁에는 하지 않은 부탁도 포함되어 있는 법이다.

리암은 잠시 수아를 돌려 제대로 마주 보았다. 바로 리암의 말을 알아들은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불안함에서가 아니라 감동해서, 그러면서도 미안해서.

“좀 더 로엘 님 곁에 있고 싶으면 그래도 돼.”

“하지만…….”

“나는, 평생을 너를 홀로 기다렸어. 근데 이제는 함께 기다리는 거잖아? 그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리암…….”

차마 말하지 못한 그 속마음을 리암이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이토록 좋아할 거면서 조금만 더 남겠다는 그 말을 왜 못 하는지. 리암은 다시 뚝뚝 눈물을 흘리는 수아의 눈가를 훔쳐 주며, 여느 때처럼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좀 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우리는 언제든 함께할 수 있어.”

결국 이리될 것을, 리암은 진즉 알고 있었다.

“고마워, 리암. 너무 사랑해.”

자신의 아가씨는 제멋대로의 투정쟁이니까. 예전에도, 지금도.

“응. 나도, 사랑해. 수아야.”

바로 그 사랑스러운 아가씨께 온 마음을 빼앗겨 버린 거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리 품에 안고 있는 이 순간까지.

“사랑해.”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순간과, 마지막을 고하며 눈을 감게 될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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