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7. 붉은 나라, 토르티아로 (48/69)

Chapter 47. 붉은 나라, 토르티아로

카이로스와 테바로스의 동맹이 확정되었다.

에단의 단판으로 카이로스의 원로회 승인은 생각보다도 빨리 통과되었고, 그 소식이 공포되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준비된 군사들이 차례로 도성으로 몰려들었다.

“지난번 에토르 때도 놀랐지만, 정말 카이로스의 징집 제도는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네요.”

“다 우리 폐하의 작품이죠. 황좌에 오르시자마자 바로 군사 개편부터 하신 게 다 이유가 있다고요.”

징집 보고서를 훑으며 말하는 로엘의 칭찬에 루카스는 신난 듯 답했다. 대장군으로서, 에단이 닦아놓은 카이로스의 군대 시스템은 너무도 자랑스러웠으므로.

15세 이상 35세 이하의 모든 남성은 전부 징집의 대상이나, 세대별로 반드시 남성 1인은 남아 있어야만 했다. 둘 이상의 아들이 있다면, 한 해에 최대 두 명의 남성만이 군대에 편입되어 훈련을 받았으며, 이 역시 연속해서 두 해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징집된 군사가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면세 혜택을 주었으며, 전쟁에 참전했을 시 그 시간만큼 징집 기간을 면해 주었다.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이네요.”

“그만큼 효율적이고요.”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다면 모든 병사들에게 전리품이 배급되는데, 에단은 그마저도 아주 후하게 쳐주었다. 심지어 에단 황제 즉위 이래 승리만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어찌 불만이 나올까.

“……그렇게 장기간 전쟁을 지속해도 발전이 뒤처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요. 애초에 카이로스는 끊임없이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던 겁니다.”

버리가 데릭에게 작게 속삭였다.

“이런 체계이니 이번과 같은 대규모 전쟁에도, 백성들이 아 소리 한 번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들의 하늘 같은 황제 폐하께서 정하셨고, 그들은 그저 따를 뿐. 이번만큼은 평소보다 좀 더 길고, 좀 더 험난할지 모르니 다른 때보다 긴장할지언정 그 승리를 의심하진 않는다. 그래서 백성 모두 전쟁 동원에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전쟁에 나가는 이들도. 여기 남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도. 모두 다 한 명의 카이로스의 백성으로서, 마음을 다해.

“기초를 다져 놓으니, 흔들리지 않는 거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고.”

데릭은 징병 보고서를 넘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카이로스 내부로 들어와 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것들이 어찌 한두 가지뿐이랴. 고작 며칠 머물렀음에도 배워 갈 것이 천지인데, 더 오랜 시간 보고 익힌다면 훨씬 많은 것들을 얻어 갈 수 있다.

“확실히 보고 듣겠습니다.”

데릭은 바로 그 점을 노린 거다. 카이로스의 발전을 가능케 했던 그 모든 것들.

풍요로운 여건 아래 오랜 역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그 긴 시간과 경험이 가져다준, 카이로스의 연륜을 훔쳐보고 싶은 거다.

“오늘 폐하께서 원로들과 마지막 재정 협의만 문제없이 된다면, 대략 다음 주 월요일이면 출정 준비를 완료할 수 있겠군요.”

아론은 서류를 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러 번 말했지만 가느냐 마느냐 그 결정이 어려웠을 뿐, 결정이 내려진 이상 모든 일은 일사천리였다. 그만큼 카이로스는 이미 준비되었다는 것.

문제는 테바로스였다.

“……지나치게 빠른 거 아닌가. 동맹 결정 난 지 얼마 안 되었던 것 같은데.”

이반은 벌써 원로회 승인이 나왔다는 테바로스의 공문을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카이로스야 오랫동안 북방 정벌을 준비했다고 치지만, 테바로스는 말이 다르다.

애초에 황제가 홀로 찾아와 협상을 하는데, 그 결과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심지어 먼저 온 버리에게마저도 데릭의 행차를 숨길 만큼 비밀리에 진행되어 온 이 일에 대해 이리 빠른 대처라니.

이건, 데릭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지시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빨리 나오면 좋은 거 아닙니까? 괜한 트집 잡지 마시죠.”

그러니 얼마나 영악한 자인가. 데릭 테바로스라는 자가.

“트집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버리 경.”

이반의 차가운 시선이 바로 데릭을 향하였지만, 데릭은 그 시선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오른팔 버리가 바로, 치고 나왔다.

“카이로스가 하면 당연한 거고, 테바로스가 하면 의심 간다는 그 말이 더 비합리적인 거 아닙니까? 각자 무사히 국가 승인이 났으니, 이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참으로 일관되게 건방진 버리의 태도에 이번엔 콜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엄연히 황자님의 말씀임에도 어디서 비합리를 논하는지, 정말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한 자다.

“그 승인이 제대로 된 건지 확신할 수 없으니 문제 삼는 거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통보가 오니, 제대로 검토라는 걸 했는지 의심이 가서 하는 말입니다.”

버리의 무례에 대응하는 콜린의 비아냥이 이번엔 버리의 심기를 거슬렀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요지는 너네 같이 체계가 잡히지 않은 국가가 제대로 된 일 처리를 한 게 맞냐는 일종의 조롱이었다.

“확신할 수 없다니요. 여기 테바로스의 공식 인장이 안 보이십니까?”

“인장 따위야 얼마든지 만들어 찍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한 형식이 문제 된다기보다 이 일에 대해 테바로스의 원로는 얼마나 진심으로 동의하냐 그 말입니다. 나중에라도 테바로스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건 누가 책임지죠?”

“카이로스에서는 황실 인장이 되게 쉽나 봅니다? 테바로스에서는 도용하는 즉시 일족을 멸할 텐데 말이죠. 우린 그러지 않으니,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걱정은 접어 두시죠.”

당연히 서로의 감정을 긁는 의도적인 말들.

로엘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분명 서로의 동맹국으로 이 자리에 마주 앉아 있는데, 시작부터 매우 좋지 않았다.

“계속하실 겁니까. 이 의미 없는 감정 소모를.”

그래서 결국 듣다 못한 로엘이 입을 열었다.

“테바로스의 원로 승인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감이 있지만, 그렇다 한들 그들이 보내온 공문이 거짓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정이 어떠하건 카이로스는 문제 삼을 것이 없습니다. 혹여 나중에 문제 되더라도, 지금 이 공문을 보장해 주신 테바로스 황제 폐하의 말만 신뢰하면 되니까요.”

로엘은 정확히 데릭을 직시하며 말했다. 긴 테이블 양 끝에 앉아 제법 멀리도 떨어져 있건만, 데릭을 향하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뿐만이랴. 자칫 감정싸움으로 협상 자체가 파해질 수 있는 상황도 단번에 정리했다.

“그렇다면, 두 국가의 내부 사정은 마무리된 것이고, 이제 본격적인 출정 전략을 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 전쟁을 함께할, 여기 두 국가가 함께 모여.”

그렇게 지나치게 똑 부러진 그녀 덕분에 조금 격해지려던 회의실이 다시 안정을 찾았다.

언성을 살짝 높이려던 버리와 콜린은 살짝 헛기침을 뱉었고, 로엘이 조금만 늦었어도 한마디 거들었을 루카스도 다시금 편히 의자에 기댔다.

“……프란시아라고 했던가. 지금 네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바로 그 이유가.”

한동안 잠자코 있던 데릭의 목소리가, 겨우 안정시킨 회장을 울렸다.

“예.”

엄밀히 말하자면, 소강상태를 다시금 단번에 긴장시켰다.

일단, 그 반말부터 거슬렸으며, 그가 로엘을 ‘너’라고 지칭하는 것도 심히 거슬렸다.

“프란시아라.”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고 있던 데릭은 작은 실소를 뱉었다.

참 호칭도 많고 지위도 많고 명분도 많다. 이 허례허식의 나라는.

황제 곁을 지키는 승리의 여신이라니. 얼마나 현혹하기 좋은 설정인가. 심지어 저리 이국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공주라면 더더욱 제격일 테다.

“승리의 여신이란 말이지.”

문제는 로엘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인형은 아니란 거다.

그녀는 황제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조언자. 함께 의논하고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충신. 단지 황제의 뒤를 쫓기만 하는 그런 흔하디흔한 여인이 아닌, 그의 옆에서 함께 앞을 보고 나아가는 여인. 진정한 의미의, 여신이다.

“그 순수함에 귀엽네.”

그래서 데릭은 조금 샘이 났나 보다.

“지루한 회의 중에 눈요기나 하라고, 그저 예쁘게만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녀가 이리, 이 자리에 바로 그 호칭을 달고 앉아 있다는 사실이.

“웃기지도 않은 유치한 미신이, 도움이 되기도 하나 보군.”

그 비뚤어진 마음은 참 못된 말로 나와 버렸다.

덕분에 순간 회장이 싸해졌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카이로스의 사람 모두가 울컥했다.

“방금 발언 철회해 주십시오.”

“철회? 야. 사과를 받아야지.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등신으로 아나.”

카이로스에게 프란시아는 아카시스와는 또 다른 의미였다.

그 자체로 성스럽게 여기는 카이로스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인데 다른 나라 황제의 입에서 저런 식으로 조롱을 당하다니. 카이로스의 사람이라면 발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식해도 정도가 있지. 세상 어느 황제가 타국의 비를 ‘너’라고 지칭하지? 참아 주고 있으니 끝이 없잖아, 이거!”

“말씀을 삼가세요. 루카스 경.”

“너는 빠져!”

그 한마디에 오늘만큼은 성질을 죽이자고 백 번은 다짐하고 온 루카스도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으며,

“방금 전의 발언은 프란시아님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며, 이는 카이로스 전체에 대한 모욕입니다. 우리를 조롱하는 이들과 어찌 등을 마주하며 목숨을 내거는 싸움에 나선단 말입니까?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최대한 이성을 붙잡고 있는 아론마저 움직이게 만들었다.

“결정하시죠. 사죄하시든가, 아니면 이 회의를 접든가.”

거기에 좀처럼 보기 힘든 이반의 정색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하아.”

그러니 그녀의 한숨이 절로 나올 밖에. 로엘은 정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제대로 된 토의란 걸 5분 이상 할 수가 없었다.

“할 말 있으면 해. 참는 성격, 아니잖아?”

가장 큰 원인은 지금 이 회의를 전혀 진지하게 받고 있지 않은 데릭의 저 태도 때문.

양측의 이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누구 때문인데, 데릭은 홀로 딴 세상 사람인 양 태평했다.

그저 언제나처럼 오롯이 로엘만을 바라볼 뿐.

로엘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그는 일부러 저러는 거다.

“저에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일부러 도발을 했다는 거, 카이로스의 그 누구도 모르지 않지만 알면서도 이리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사람의 빈정을 상하게 하는 아주 탁월한 재주가 있고, 그 얄팍하고 지저분한 수법은 상대로 하여금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저는 들을 말이, 아니 들어야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냉랭하기도 한 그 붉은 눈동자에 데릭의 미소가 좀 더 진해졌다.

마음에 드는 반응이라는 거다.

물론 그 미소가 로엘의 기분을 더 울컥하게 만들 테지만.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하지. 나는 이 카이로스의 프란시아님을 칭송할 의도였어.”

얄밉고도 얄미워라.

“지금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잖아?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정말 딱 한 대면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쨌거나 데릭의 입에서 ‘사과’라는 그 두 단어가 나와 버렸으니, 일은 일단락된 셈이다.

비록 카이로스 사람들의 감정이 전혀 일단락되지 않았을 지라도.

“……진짜 마음에 안 드는 새끼네.”

로엘의 옆에 있던 이반이 나지막이 말했다. 거의 비속어를 쓰지 않은 이반의 입에서마저 험한 말이 나오게 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로엘의 정색한 얼굴 역시 이반만큼이나 살벌했다.

“……말려들면 안 돼. 뭘 원해서 저러는지, 알고 있잖아.”

“알고 있으면서도 다 뒤엎어 버리고 싶을 만큼, 아주 마음에 안 들어.”

케인 몰브가 양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대로 테바로스 황제를 죽여 버리면, 내 형제가 나를 벌할까.”

“칭찬할지도 모르지. 어쩌면 테바로스가 황자님 손에 떨어질지도.”

“뭐야. 그럼 해볼 만한 거 아닌가.”

“농은 거기까지입니다, 황자님. 이제 일하세요.”

도란도란. 이반과 로엘말의 주고받는 실없는 대화들은 딱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속삭임이었다.

두 사람의 오누이 같은 관계가 이제 카이로스 참모진에게는 낯설지 않아, 이제는 콜린마저 별다른 눈치를 주지도 않고 무시로 일관했다. 그저 각자 자신의 눈앞에 있는 지도와 서류를 검토할 뿐, 두 사람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맘에 안 드는 저 건방진 분께, 한 방 먹이시라고요.”

물론, 데릭에게만큼은 여전히 조금도 익숙지 않은 그림이지만.

마지막 그녀의 말에 이반은 미소와 함께,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그럼 진짜 일이라는 걸 해 볼까.”

이반은 자리에서 일어나 긴 직사각형 테이블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처음부터 펼쳐 놓았던 북방 지도 위에는 많은 표식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회의의 목적은 두 가지.

첫 번째는 구체적인 정벌 계획을 짜는 것.

두 번째는 서로 주고받을, 이해득실의 분배를 협상하는 것.

처음이 성립되어야 두 번째가 의미 있기에, 우선은 그 처음을 결정해야 한다.

“활로는 이미 표시된 대로, 시엘을 중심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금세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결국 지도를 보게 되었다.

더 이상의 부연 설명도 없이 이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카이로스 북방 정벌을 위한 오십만 대군은 전원, 시엘을 거점으로 집결하며, 테바로스의 군사 삼십만은 테바로스 국경 요충지 코드에서 카이로스 황군을 기다립니다. 두 군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총 집결은 12일 뒤인 다다음 주 토요일 정오, 에토르 평원. 그곳이 바로 이번 동맹의 진정한 시작 지점입니다.”

그렇게 이반은 찬찬히 설명을 시작해 나갔다. 개략적인 전쟁의 루트와 카이로스와 테바로스 군사의 집결 방식, 기타 이동 동선까지.

“에토르부터는 세 군대로 나누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곳은 타르타니에서도 길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지점이므로, 속도를 내어 움직이기보다는 체력 소모가 덜 되는 방식으로 나누어 이동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이미 요르, 나르, 미르, 타르 네 군데 물자를 지원할 곳을 확보해 두었으므로, 일단은 강행하시되 이 구간을 지나는 순간 푸른 거점으로 표시된 티벌국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교체합니다.”

데릭과 버리 역시 더 이상의 의도된 가벼움 없이, 진지하게 그 말을 경청하였다.

“이때 티벌국은 반드시 필요한 중간 거점으로 지금 잠재적으로 두 가지 안을 고려해 두고 있는데, 하나는 테바로스 중앙군이 먼저 점령을 하여 항복을 받아 내거나, 나머지 하나는 요르를 확보한 시점에서 협력 요구 통지를 해서 무혈로 입성하는 방법입니다.”

이반뿐 아니라 콜린과 아론 역시 지지 않고 이반의 설명을 도왔다.

“우리는 후자를 노리고 있지요. 만일 그렇게 간다면 대략 이틀 정도의 시간과 물량, 체력 등을 비축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낯설기도 한 북방의 지명을 카이로스 참모진 모두 한 치도 틀리지 않으면서 술술 말해 나갔다. 메인은 이반이었으며, 중간중간 아론과 콜린의 첨언이 들어갔고, 루카스의 본능과도 같은 군사 조언까지 얹혀졌다. 그러니 그 계획이 얼마나 실하겠는가.

버리는 솔직히 들으면서 조금 많이 놀랐다. 그가 알기에 중부 사람들의 북방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제로 베이스에 가깝다. 북방이야 발전된 중부를 동경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어서, 되도록 수교를 활발하게 권장하므로 어깨너머라도 카이로스의 유명 지명 정도는 꿰고 있다.

그에 비해 처음부터 척박한 북방 따위, 전혀 관심 없는 중부에게 북방 국가의 수도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에단의 카이로스 토박이 참모진들은 거의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만큼 오래 준비했단 거지.”

“이제는 그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말도 되고요.”

그리고 그 준비된 칼날이 언제든 테바로스를 향할 수도 있는 것이고.

“정신, 차리겠습니다. 폐하.”

심각해진 버리와 데릭은 그렇게 쉬지 않고 카이로스의 전략을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지도상 카이로스 황군 표식이 토르티아 중앙에 다다랐다. 긴 지휘봉으로 지도 위의 황금 말을 토르티아 근처로 옮기면서, 이반은 살짝 설명을 위해 지도로 향했던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데릭을 보았다.

마치 대제국, 카이로스의 위력을 보란 듯이.

“차질 없이 진행되기만 한다면, 선봉 카이로스 황군이 토르티아 도성의 상징, 붉은 문 로자카에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27일.”

“그때부터 정확히 사흘 이내에, 카이로스는 토르티아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이 모든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가능케 한, 북방의 공주님.

“정확히 31일째 새벽. 토르티아의 붉은 성은 카이로스의 황금 깃발로 뒤덮힐 겁니다.”

토르티아 민족을 상징하는 붉은 눈동자를 빛내고 붉은 머리를 가진 채로,

“그렇게, 토르티아는 지도상에서 사라집니다.”

그렇게 붉은 나라의 공주님은 붉은 나라, 아름다운 토르티아의 종말을 예언했다.

***

붉은 휘장으로 가득한 회장 안에 정복을 갖춰 입은 이들이 가득 찼다. 하나같이 토르티아를 상징하는 문양을 가슴에 단 채로, 왼쪽은 갑옷을 입은 장군들이, 오른쪽은 관료복을 입은 고위 관료들이 대열을 맞추어 섰다.

“폐하와 황녀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시종관의 안내가 들려오자, 기다리던 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조지 황제와 에리카 황녀는 그 모든 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천천히 자리에 착석했다.

“황제 폐하와 황녀님을 뵙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장내를 울렸다. 그리고 다시금 지독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 누구 하나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테바로스가 카이로스와 동맹을 맺었다고.”

그래서 결국 조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늘이 가득 진, 어두운 얼굴. 생기 하나 없는 표정. 축 처진 어깨.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져 버릴 것만 같은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토르티아 정벌을 위한 동맹이라지.”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토르티아 장군과 관료들 역시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황제가 저러한데 무슨 말을 할까.

해 보았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무슨 말들이라도 해 보세요. 지금 카이로스와 테바로스가 손을 잡고 쳐들어온다는 거 아닙니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에리카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인가 조지 황제은 에리카를 항상 국정 논의에 대동하고 등장했다.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도 대응을 해야 할거 아니에요. 대응을!”

어찌나 화려하게 하고 나왔는지 움직일 때마다 장신구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이곳과는 참 어울리지 않은 진한 향수 냄새가 번지고 있건만, 그 누구 하나 쓴소리를 하지 않았다.

“말들 좀 해 보시라고요!”

그들에겐, 그 정도의 애정도 없는 거였다.

조지 황제는 에리카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머리만 더 아파 왔다. 아까부터 관자놀이만 꾹꾹 누른 채 눈을 감고 있는데도 좀처럼 지독히도 그를 괴롭히는 두통이 나아지질 않았다. 이제는 마약에 가까운 진통제가 아니면 몇 시간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카이로스와의 전쟁이라니.

조지 황제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대로 다 죽을 수는 없잖아요!”

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누구 하나 에리카에게 답을 하지 않는 것처럼, 조지 역시 그저 묵묵히 그녀의 짜증을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어렴풋이 이 시간 또한 그저 지나가길 바랐다.

“……에토르 전투에서도 많이 죽었습니다. 황녀님.”

그런데 그런 조지 황제의 감아 버린 눈을 기어코 깨우는 목소리가 장내를 낮게 울렸다.

대장군 벤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니블 사건 때문에, 처음 보는 테바로스의 군대에게 멸시와 조롱을 당하면서, 영문도 모른 채, 명분도 없이 그렇게 죽어 갔습니다.”

벤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중앙에 섰다.

“그 전투가 있은 지 두 달이 채 안 되었습니다. 갑자기 떠나 버린 이들을 잊을 시간도, 그곳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회복할 시간도 되지 못하지요.”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대장군 맥스가 자리하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정확히 조지와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자세. 무미건조한 시선. 감정이 없는 목소리.

“유족들에게 여전히 왜 당신의 아들이, 남편이, 아버지가 죽어 가야 했는지. 저희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어김없이 이번에도 말입니다.”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늘 그랬듯.

이제는 희끗한 머리가 더 많은 두 노장군은 많은 것들을 놓아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지금, 나한테 책임이라도 지라는 건가요?”

그래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런 거냐고!”

그래서 무서울 것도 없다.

짜증을 넘어 분노하는 에리카의 고함에도 벤과 맥스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그 태도가 에리카를 더 분노케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이야말로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당장 꿇고 사죄하지 못해!”

아니 상관은커녕, 관심조차 가지 않았다.

진작 이럴 것을. 그때도 이리 다 놓아 버리고, 그 하나만을 지킬 것을. 그랬다면, 자신들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텐데.

“그만.”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텐데.

“황녀는 이만 물러가라.”

뒤늦게 조지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기운 없는 목소리로, 그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벤과 맥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어서.”

바로 옆에서 울리는 에리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조지는 눈썹을 찌푸렸다.

워낙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이라, 에리카의 고집을 늘 꺾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카이로스가 공공연하게 그들에게로 온다는 것은 나라의 존폐가 걸린 일.

지금은 에리카가 나설 때가 아니다. 아무리 무능한 조지일지라도 그 정도는 안다.

“……두 장군, 나중에 두고 봅시다.”

아무리 아버지를 보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자, 결국 에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는 풀리지 않은 분노와 짜증이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 없었다. 그보다는 어서, 저 도움 안 되는, 아니 오히려 해가 되는 고집스러운 황녀님께서 사라져 주시길 바랄 뿐이다.

에리카가 요란스럽게 사라지고 나자,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말들 좀 해 보시게.”

조지 황제의 힘없는 말이 또 한 번 장내를 울렸다. 당장이라도 부산스럽게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하나같이 아무 의욕이 없다는 듯 그저 묵묵히 자리만을 지키고 있었다.

벤은 작은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에리카의 말처럼, 정말 손 놓고 다 같이 죽으려나 보다.

“에토르 전투 당시 저희 군은 최전방에서 카이로스 군을 상대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금, 벤이 입을 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목숨 바쳐 지킬 나라는 이 나라, 토르티아뿐이므로.

“결과는, 완패. 압도적인 수 차이에도 상대가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헌데 이번엔, 그 군사 수마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건 벤의 오랜 지기, 맥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이로스의 황군들은 하나같이 철제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그 숙련도 역시 최상급에 달합니다. 소위 정예군이라 불리는 프래카가 루카스 세버 장군을 중심으로 최전방에서 전투를 이끌고, 그 뒤로는 황군이 뒷단을 받쳐 주고, 마지막으로 징집된 훈련병들이 따릅니다.”

지옥의 개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루카스가 제일 앞서 길을 트고 그 뒤로 프래카가 한바탕 정리를 해 준 뒤에 황군이 뒷단을 받쳐 주고, 마지막에서야 일반 징집병이 머릿수를 채워 전투를 치른다. 그러니 하나같이 얼마나 자신감이 있겠는가.

“일반병이라 하나 다른 나라의 징집병과 카이로스의 징집병은 격이 다릅니다. 전 군대가 좋은 철제 무기로 무장하였고, 징집병 모두 주기적으로 최상의 훈련을 받아 온 훈련병입니다. 거기에 황군들이 자신들의 앞에서 미리 지켜 준다는 안심마저 가진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실력 발휘를 하겠지요.”

“다시 말해, 카이로스 전군이 최고의 병사가 되어 버린단 말씀입니다.”

그걸 직접 보고 느꼈다. 황금의 깃발 아래,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싸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리 불리할지라도 카이로스가 언제나 승기를 잡는 이유.

그들은 신뢰가 있는 거다. 자신의 주군에 대하여. 그분께서 지켜 주시리라고. 그렇게 이번에도 이기리라고.

한때 제이드 네아레스의 군대가 그러했듯.

“그럼 어쩝니까? 카이로스가 쳐들어온다는 것은 기정사실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먼저 화친 제의를 하는 건 어떨까요? 저희가 굽히고 들어간다면…….”

“지금도 카이로스와는 공식적인 화친 관계입니다. 그래서 로엘 공주님께서 국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인질로 쫓겨 간 셈이었지만.

벤과 맥스의 한숨이 깊어졌다. 언제부터 토르티아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항복부터 생각하는 이런 나약한 나라가 되었나.

지레 겁들을 집어먹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빼앗길라 전전긍긍하는 이런 사람들로만 국정을 채워 놓았으니, 제대로 나라가 굴러갈 리 없었다.

밴과 맥스는 자신들이 아직도 이 국정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지려 했다. 그래도 조국이라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만, 저 한심한 사람들과 그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무능한 황제를 보고 있자니 그 노력마저도 죄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 말은, 그 국혼을 이용하자 그 말씀입니다.”

“오! 묘안이군요! 카이로스 황제의 총애가 그렇게 높다는데, 몰래 공주님께 연통을 하여 카이로스 황제께 말씀드리게 하는……!”

쿵! 맥스의 검집이 강하게 바닥을 내리쳤다. 신료들의 입을 단번에 다물게 하는, 그 커다란 소리에 순간 싸한 정적이 흘렸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들 것 같은, 벤과 맥스의 싸늘한 표정에 로엘을 언급하던 신료들은 애써 두 사람의 눈을 피했다.

어디서 감히, 무슨 염치로 그 이름을 함부로 놀리는가.

그분이 이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고, 어떻게 쫓겨났는지 뻔히 보았으면서.

“……로엘 님은 더 이상 토르티아의 공주님이 아니십니다. 이제는 엄연히 카이로스의 아카시스가 된 분을 함부로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저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은……!”

“옛정이 아니라 지나간 끔찍한 악연이겠지요. 저를 포함하여,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벤의 시선이 정확히 조지를 향하였다. 어디 벤뿐이랴. 그 옆의 맥스 역시 조지를 보았다.

벤 카터와 맥스 퓨레. 제이드 네아레스의 심복 중의 심복들이었다. 둘 다 제이드가 황자 시절부터 함께해 온, 모든 전장을 함께한 전우. 제이드 가족이 황궁에만 들어서면 벤은 부인인 레아를, 맥스는 딸인 로엘을 전담 호위했으니 제이드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조지는 제이드를 암살할 때 제일 먼저 두 사람을 잡았다. 당시 벤의 부인은 몇 번의 유산 후 겨우 임신을 한 상태였고, 맥스는 눈에 넣어도 아까울 두 딸과 부인 대신 자식을 키워 주는 노모가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볼모가 되어 벤과 맥스는 조지 황제에게 목줄이 잡혀 버렸다.

그렇게 10년이 넘었다.

“로엘 님은 카이로스의 승리의 여신, 프란시아로 임명되셨습니다. 에토르 전투에서의 카이로스의 승리. 로엘 님의 군대가 큰 몫을 했지요. 마치 진짜 승리의 여신처럼.”

10년이면 저 눈빛이 바뀔 만도 하건만. 10년이면 연민이라도 들 법하건만.

두 사람이 조지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하다.

“한때, 토르티아의 승리의 여신이셨던 거처럼.”

공허한 복종 아래 숨겨 둔 경멸. 증오. 분노.

단 한 순간도 그에게 충성을 보인 적 없는 두 사람은, 고작 ‘그’의 딸 이름만으로 저리 정색을 했다. 그것이 조지로 하여금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저 둘은 평생 모르겠지.

“그 로엘 님께서, 우리가 우리 손으로 버린 토르티아의 공주님께서 앞장서 오십니다.”

벤과 맥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공주님! 또 우리가 이겼습니다! 하하!’

‘우리 공주님만 오시면 이리 쉽게 이긴다니까요. 진짜 승리의 여신인가 봐. 아이구, 예뻐라!’

그들 손으로 놓아 버린, 그 작은 손.

놓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은 순간이 없고,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금 그분이 오고 있는 거다.

“황금의 깃발 아래. 황금의 군대를 이끌고. 지금 이 순간 저희에게 오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로엘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 부모를 죄다 잃은 그 불쌍한 공주님을 외면했다.

그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하나같이 마음의 부채를 합리화시키기 바빠, 카이로스에 서둘러 보내 버렸다. 그렇게 잊고 살려 했다.

“토르티아의 장군으로서, 저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조국을 지킬 겁니다. 그것이 제가 평생을 이곳 토르티아에 몸 바친 이유이자,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기도 하지요.”

벤과 맥스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조지를 올곧게 보는 시선에 거짓도 없었다.

황제를 진심으로 따르든, 따르지 않든 저들이 목숨 바쳐 이 붉은 성을 지키리라는 것을 조지는 알고 있다. 알고 있어서, 그것에 기대어 왔다. 기대어,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만일 그분께서 제게 검을 세우신다면, 그렇게 죽으라 명하신다면, 폐하. 저는 이 한 목숨 아낌없이, 망설임 없이 드릴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속죄할 수 있다면, 그래서 훗날 그분을 뵐 때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면, 이 하찮고도 질긴 목숨이 무엇이 중하다고 연연할까.

벤과 맥스 에토르 전쟁 때, 올려다본 로엘을 생각했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말 위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그들이 그리워하던 그분의 모습을 닮았던지. 보는 순간 울컥함에 눈물을 흘린 뻔했다.

“그러니 황제 폐하. 저희를 불충으로 벌하시려거든 벌하소서.”

“달게 받겠습니다.”

벤과 맥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조지 황제 앞에 고개를 숙였다. 수군대는 관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지만, 조지는 묵묵히 그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쇠락할 대로 쇠락한 토르티아의 군대. 저 두 장군마저 없으면 정말 가을바람 아래의 낙엽과도 같을 터. 애초에 대체자 따위,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저 두 사람의 발언이 얼마나 불손하며 얼마나 불충인가.

“하.”

참 끝까지, 죽어서도 그를 비참하게 만든다.

잘난 형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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