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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5.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지요 (26/69)

Chapter 25.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지요

“이렇게 두 분이 함께 다 계시고……. 별일이네요.”

“별일이라니요? 아카시스께서 폐하의 옆에 계신 게 별일은 아니지요. 몰브 경.”

모여든 켈트와 몰브의 기 싸움이 팽팽했다. 수아와 함께 있는 모습에 아리스의 눈에서는 불이 나올 것 같았고, 남의 집안 일이라 에리카는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로엘뿐이었으므로 나머지 여자들은 솔직히 관심 없었다.

그저 둘 중 누구라도 좋으니 저 대단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로엘을 찬밥 신세로 만들어 주면 그만일 뿐. 로엘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할 수 있다면 그게 누가 되었든 정말 상관없었다.

“폐하. 아리스 마마께서 이번 무도회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셨습니다. 대 카이로스의 안주인으로서 토르티아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셨지요.”

“예. 폐하. 정말 성심을 다하였습니다.”

그렇게 냉대를 받고도 여전히 에단만 보면 저리 설레하니. 아리스도 참 딱하기도 했다.

아리스는 혹여 자신의 노고가 에단의 관심을 끌까 싶어 한 걸음 그에게로 다가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자 그 황금의 눈이 웬일인지 정확히 아리스를 향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리스의 턱을 잡아 들었다.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길이었음에도, 아리스는 그저 황제께서 자신을 봐 주고 있다는 사실에 금세 얼굴을 붉혔다.

“이 카이로스를 위해서, 성심을 다하였다, 라.”

“예. 폐하. 오로지 폐하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하. 그는 짧게 웃음이 나왔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이 얼굴과 이 표정으로 감히 누굴 기만하려 드는가.

에단은 당장이라도 아리스의 목을 꺾어 버리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았다. 어찌 아리스뿐이랴. 자신의 옆에서 쉴 새 없이 아첨을 늘어놓는 몰브와 토르티아의 사신 전부의 목을 당장에라도 쳐 버리고 싶었다. 세상 충직한 얼굴로. 오로지 카이로스를 위한다는 말을 떠들면서, 뒤로는 카이로스를 좀 먹고 썩게 만들다니. 가증스럽고 역겨웠다.

“그 말. 꼭 책임져야 할 거다. 몰브.”

“예?”

에단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아리스가 다시 되묻기도 전에 그는 아리스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더니 그 시선이 자연히 저 멀리, 세상 무섭게 걸어오는 로엘을 향했다.

“아카시스님?”

붉은 머리가 너무 눈에 띄어 모든 이들이 바로 로엘을 알아보았다. 전투적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아하니, 에단은 그녀가 무슨 일을 벌이려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로엘 뒤에 있던 이반은 그런 에단을 보며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 아카시……!”

“시에라.”

그녀의 부름에 바로 시에라는 그녀의 손에 검을 건넸고,

“꺄악!!”

그 검은 정확히 아리스의 시녀를 향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꾼 토르티아의 시녀겠지.

“이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건 지금부터 보시면 알겠지요?”

시에라가 붙잡힌 시녀의 뒷무릎을 차 제압하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드레스 치맛단을 뜯었다. 그러자 하얀 가루가 공중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이, 이게 무슨……!”

“세상에……. 저 하얀 가루, 마약 아닌가요?”

예상대로, 잘 누벼진 치마 아래엔 밀봉이 완벽한 가루 뭉텅이가 나왔다.

영문을 모르는 다른 귀족들의 소란스러움이 걷잡을수 없이 커지고, 몰브가 사람들과 토르티아의 사신단들은 바로 창백해졌다. 물론, 그중 가장 사색이 된 사람은 당연히 에리카와 아리스.

“이, 이건…….”

“폐하. 저는,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 에리카보다도 먼저, 아리스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로 에단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니블입니다.”

이미 약속된 대로 나머지 키로스들은 다른 토르티아의 시녀들을 찾아 체포하였고, 그들은 키로스의 손에 끌려 한자리에 모였다. 기다렸다는 듯 아론은 밀봉된 가루를 뜯어 모두를 향해 말했다.

“몰브가 토르티아와 내통하여 니블을 밀매하고 했다는 증좌입니다.”

“모함입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몰랐던 일입니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몰브가 아니다. 이 엄청난 일을 들키고도 본능적으로 거짓말부터 하는 그들은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에단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눈물로 호소하였다.

에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을 가리던 가면을 신경질적으로 벗었다.

“닥쳐.”

아까부터 그 황금의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알고 있어도, 이리 눈으로 보니 겨우 참고 있던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들이 카이로스의 백성으로부터 받은 녹이 얼마인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데.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그가 제일 잘 아는데 감히 이런 일을 꾸미다니.

“반역이다. 전부 추포해.”

기다렸던 루카스와 프래카는 바로 몰브 전원을 체포해 무릎을 꿇렸다.

“토르티아 사신단도 전부 추포하세요.”

“아카시스의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로엘 역시 자신을 가리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싸늘하게 말했다.

“고, 공주님!”

언제부터 공주로 대접했다고, 이제 와 공주라니.

로엘은 자신을 간절히 쳐다보는 토르티아의 사신들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놔!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거야!”

“입 닥쳐.”

프래카가 에리카를 제압하려 하자 거칠게 저항하는 그녀에게 로엘은 바로 검을 겨눴다.

서슬 퍼런 검이 에리카의 목에 닿자, 에리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토르티아의 황녀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 아무리 무능하고 아무리 생각이 없기로서니 다른 나라에 마약을 팔아? 토르티아의 선대가 하늘에서 땅을 치고 통한할 일이다. 에리카 네아레스. 너는 오늘 토르티아 민족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줬어. 우리의 긍지를. 우리의 자존감을. 황녀라는 네가 네 손으로 짓밟았다고. 알아?”

진심으로 분노하는 로엘의 눈에 에리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게 더 분했다. 더 분해서 아까부터 계속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거. 치욕스러운 상황이라는 거. 에리카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껄이지 마. 네년은 나라를 버리고 카이로스로 도망쳐 버렸지?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네 잘난 아버지가 그렇게 죽어 버리고 토르티아가 어느 정도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도. 내 아버지를 죽인 것도 전부 네 아버지가 한 짓이야. 그걸 동조하고 그걸 부추긴 것도 바로 너, 에리카 네아레스지. 그러면서 이제 와 그렇게 지껄여?”

보는 눈이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로엘은 거칠게 에리카의 멱살을 쥐었다. 흥분하지 않으려고, 정말 끊임없이 다짐했음에도 이리 뻔뻔히 나오는 에리카에게 도저히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아카…….”

“냅 둬.”

그녀를 말리려던 루카스를 이반이 막아 세웠다. 에단 역시 아무 말 없이, 조금만 건드려도 울어 버릴 같은, 에리카만큼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 보는 사람도 아슬아슬한 로엘을 지켜보았다. 그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럴 거면 내 아버지를 죽이지 말지 그랬니? 그럴 거면 나 대신 이곳 카이로스에 오지 그랬어? 황위에 눈이 멀어서. 자격지심에 미쳐서 자기 손으로 그렇게 망쳐 놨으면서 감히 누굴 탓해……!”

참 오랫동안 터트리지 못했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 한을 이렇게라도 풀길. 그렇게 해서라도 그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덜어 내길 바랐으니까.

“토르티아가 그 지경이 된 것도, 네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전부 다 너와 네 아버지 탓이야. 조지 네아레스. 에리카 네아레스. 너희 부녀 때문이라고!!”

결국 그녀의 입에서 큰 목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한 마디 대꾸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저 로엘을 노려보기만 하는 에리카를 로엘은 그만 놔주었다.

“네가 한 짓에 대한 그 죗값. 네가 한 만큼 받아.”

당장이라도 에리카를 죽일 것 같은 서슬 퍼런 눈으로 로엘은 에리카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그렇게 그만 에리카에게서 뒤돌아섰다.

“아카시스.”

그런 로엘을 그제야 에단이 불렀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부른 그에게 로엘은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휴식이 절실했다.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화친으로 시작된 무도회는 엉망이 되었다.

귀족들은 여태 본 적 없는 풍경들에 자기들끼리 모여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있는 로엘에 대해 말하느라 수군거렸으며, 몰브는 꼬여 버린 계획에 머리를 조아리기 바빴고, 켈트는 그런 몰브에 대해 대놓고 비난하였으며, 토르티아 사신들은 남의 나라에 와 터져 버린 이 사태를 어떻게 할지 몰라 자기들끼리 우왕좌왕이었다.

로엘은 그 모든 것이 다 짜증났다.

“그만 돌아갈래요.”

“그래.”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제가 한 거 맞아요.”

에리카 네아레스는 아직 끝낼 생각이 없나 보다.

“카이로스에 니블 밀수. 제가 주도해서, 제가 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렇게 울고만 있다가 온갖 신경질을 낼 줄 알았던 에리카의 반격.

에리카는 눈물을 닦고, 똑바로 로엘과 에단을 보았다. 그리고 또박또박, 모두가 듣게끔 큰 소리로 말하였다.

“모두 다, 나의 친애하는 사촌이자, 토르티아의 공주이며, 이 카이로스의 아카시스인 로엘 네아레스의 명을 받고 했습니다!”

“……!”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 반격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너무도 허술하고, 그러면서도 치명적인 한 방.

로엘 네아레스는 ‘토르티아 사람’, 즉 이방인이라는 사실.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로엘을 보낸 겁니다. 카이로스의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정확히 알기 위해. 그렇게 토르티아와 내통하기 위해.”

“너……!”

“애초에 첩자였습니다. 로엘 네아레스는.”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로엘을 향하고 귀족들의 수군거림은 한층 더 심해졌다. 로엘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에리카는 굳어 버린 로엘의 모습에, 득의양양한 얼굴로 목소리를 더 높였다.

“하늘 같은 카이로스의 황제시여. 이 일이 이미 발각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저희를 배신하였습니다. 그게 너무 억울하여 이리 진실을 고하여 드립니다. 처음부터 니블은 로엘의 계획이었고, 오늘의 밀매도 전부 로엘이 기획하였습니다. 제가 어찌 홀로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 카이로스에서 이렇게 큰일을 꾸미겠나이까.”

“에리카……!”

니블을 먼저 발견한 것도. 그 니블을 수습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것도. 함께한 모든 이들이 안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에리카의 저 뻔뻔한 모함에 몸이 떨려 왔다. 제 발 저린 도둑인 양 정신이 멍하고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폐하.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다른 것도 아닌 니블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 아카시스님이 그러셨다면……!”

“케인 몰브!”

기회는 이때다 싶어 로엘을 끌고 들어가려는 케인의 말을 이반이 바로 끊어 버렸다.

뻔히 저들의 짓임을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로엘을 모함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진실이 무엇이 되었든, 그들은 로엘을 끌어내릴 기회를 잡았고, 그걸 절대 놓치지 않을 테지.

이 얼마나 간사한 이들인가. 이반은 뻔뻔스러운 그들에게 치가 떨렸다.

“케인 몰브의 방에서 몰브와 토르티아가 니블을 거래한 계약서를 제 손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때 폐하의 명을 받고 동행해 주신 분이 아카시스님입니다. 그런데도 아카시스님이 내통을 했다고요? 하늘이 웃을 일입니다.”

“배후에 계셨다면 그때부터 연기를 하셨을 수 있지요. 애초에 숨겨 놓은 계약서를 찾으신 것도 아카시스님 아니십니까? 처음부터 알고 가신 거 아니냐고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세상천지 어떤 아카시스님이 황자와 단둘이 잠행을 나간다고 합니까. 아무리 폐하께서 명하셨다 하지만, 전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이상한 겁니까? 황자와 아카시스님도 엄연한 남자와 여자인데.”

“케인……!”

이미 추포되어 있던 케인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는지 정말 거르지 않고 멋대로 지껄였다.

묘하게 로엘과 이반을 남자와 여자로 묶어 단둘이라 강조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그 두 사람에게로 몰리게 하였다. 심지어 아까부터 두 사람은 함께 있지 않았던가.

“폐하. 아무래도 이는 조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일일수록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일단 아카시스님부터 격리시키시지요. 다른 일도 아닌, 토르티아와의 내통입니다. 이는 역모로 다스릴 일이잖습니까?”

거기에 원로원들까지 가세했다.

고지식한 늙은이들. 그러지 않아도 토르티아에서 온 공주가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못마땅하던 차다. 얼핏 황궁에서 마주쳐도 그들에게 한 번을 숙이지 않은 그 고고한 태도에 뒷말이 많았는데, 이리 기회가 오다니, 이를 놓칠 리가. 이번 기회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어린 황제의 자존심도 한 번쯤 눌러 줄 필요가 있다.

“황군은 뭐 하는가? 얼른 아카시스님을 추포하시게.”

“카이로스가 어디 야만국인가? 국법대로 해야…….”

“입 닫아.”

이제껏 아무 말 없던 에단에게서 결국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 큰 홀을 울리는 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원로원뿐 아니라 수군거리는 모든 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입만 닫게 했으랴. 저도 모르게 모든 이들의 고개가 숙여졌다. 혹여, 지극히 심기가 안 좋으신 그들의 주군과 눈이라도 맞을까 두려워서.

그만큼, 지금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카시스는 결백하다.”

딱 한마디. 더는 그 어떠한 말도 필요 없는, 그의 명령.

에단은 떨고 있는 그녀의 가는 어깨를 단단히 안았다.

“아카시스를 모함하는 자. 모욕하는 자. 나의 대한 반역이다. 목숨으로 갚을 각오 없으면 입 놀리지 마.”

로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절대 이 상황에서 울면 안 된다. 울면 그를 더 곤란하게 할 뿐이다.

지금 그녀가 그를 얼마나 제멋대로인 폭군으로 만들고 있는가.

원로들과 귀족들의 불만이 보이지 않아도 보였고, 들리지 않아도 들렸다.

로엘은 그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얼굴 들어. 넌 아무 잘못한 거 없어.”

그러함에도 그는 그녀의 곁에 있다. 그 곁에서 그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무리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도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곁에 있는 것뿐.

“가자. 로엘.”

“……네. 폐하.”

수많은 사람들의 조아림을 뒤로하고, 그 많은 이들의 불만을 무시한 채 그녀는 그와 함께 뒤돌아섰다. 그렇게 홀을 빠져나간 후에야, 참고 참았던 눈물을 떨어트렸다.

“괜찮아.”

끝까지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잡아 주는 그의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걸어가면서 그렇게 쉼 없이 울었다.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해서.

무엇보다도,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는 그에게 너무도 미안해서.

***

“폐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데릭은 버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무장한 그는 당장이라도 출정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아니, 데릭뿐 아니라 테바로스 정예군 전부가 모두 출정 준비를 끝내 그들의 주군께서 명을 내리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빛이 너무 밝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구름이 많이 가려 주는군요. 하늘이 저희를 돕나 봅니다.”

“하늘 따위 필요 없어. 내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절대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버리의 말에 데릭은 냉소적으로 답했다. 지극히 경험에서 나온 그의 진심이었다.

하늘이니, 신이니 하는 거. 그는 절대 믿지 않는다.

그가 이룬 모든 것들은 그가 그의 손으로,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쟁취한 것들이다. 그것들을 그가 힘들 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하늘 덕으로 돌릴 마음, 데릭은 정말 추호도 없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버리는 수긍했다. 하늘을 찾고 빌기엔, 확실히 그의 주군이 걸어온 길지 않은 인생이 너무도 험난했다. 그 험난함을 넘고 넘어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제 와 하늘을 찾을 리가 있나.

“그러니 이번 결정도 부디 폐하의 선택이 옳으셨길 빌겠습니다. 제가 폐하 대신해서요.”

그러니 그 하늘에 비는 것은 주군 대신 자신이 하면 된다. 은근히 고집 있는 버리라 데릭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어두운 숲속, 타르타니의 끝자락에서 테바로스의 수만 군사는 숨을 죽였다. 데릭이 즉위한 이후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만큼 승리 또한 끊이지 않았던 테바로스의 군사들이다. 그러니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사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런 그들이 오늘 밤, 지금까지 북방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 한다.

데릭은 안장에 편히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멀리, 카이로스의 국경 성벽이 보이고, 카이로스를 상징하는 깃발이 흩날렸다. 저 깃발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떨었던가.

그 아성을 오늘 밤 북방의 테바로스가 깨려 한다.

“역사를 새로 쓰자. 테바로스여.”

“우워어어어어!”

데릭의 진격 신호와 함께, 수만의 테바로스 군사들의 함성이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니블에 온 신경이 쏠린 지금. 가장 평화롭다고 착각하고 있을 바로 이 순간, 태양의 황제 에단 카이로스는 즉위 사상 처음으로 기습을 당할 거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은둔의 적에게.

알고 보면 참 묘한 인연이 있는 북방의 또 다른 태양, 데릭 테바로스에게.

***

“원로원들은 병신이야? 뻔히 자기 눈으로 로엘 님이 범인을 잡은 걸 봤으면서도 어떻게 로엘 님을 의심하냐고!”

“로엘 님이 결백하다는 거, 아무도 의심 안 해. 단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할 뿐이지.”

루카스의 불같은 화에 아론은 짜증스럽게 답했다. 모두가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잇속에 따라 외면하는 꼴이라니. 그런 것들도 이 나라의 귀족이니 원로니 하면서 떠받들어야 하니 얼마나 웃긴 노릇인지 모른다.

“제기랄! 니블 때문에 로엘 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이제야 다 잡는가 했더니 이게 뭐냔 말이야!”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것은 루카스뿐이 아니었다. 다만 루카스처럼 소리치며 화내지 않을 뿐, 다들 속에서 열불이 끓었다.

니블이 터지고 나서 그들이 고생할 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처럼 호의호식만 한 이들이 정작 다 잡아 해결해 놓은 사람을 이리 취급하다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나.

에리카 네아레스가 던져 버린 폭탄에 정말 멍청하다 할 만치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고 말았다.

“그냥 무시해. 무시해 버리자고. 어디 상대할 가치가 있어야 상대하지.”

“원로원들이 그렇게 만만할 줄 알아? 자칫했다간 폐하에 대해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트릴 수도 있어. 마치…….”

“여자에 홀린 폭군이라도 되겠네요.”

눈치를 보는 아론 대신 로엘이 말했다. 그녀의 적나라한 표현에 회의실엔 침묵이 깔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화나고 가장 억울할 이. 당연히 로엘이다.

그런데도 정작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차분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렇게 제가 걸려 들어간다고 해도 몰브는 피할 수 없다는 정도네요.”

그녀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담담해지는 자신이 웃겼다.

이 역시 세월이 준 교훈이려나. 하도 어이없는 일을 많이 당해 본 인생인지라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녀는 생각보다도 괜찮았다.

처음에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에리카의 모함에 정신이 아득했지만, 그래서 그 앞에서 울어 버리고 말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성을 찾았다.

“마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감히 마마를 걸고넘어지겠냐고요! 이렇게 모든 상황이 명백한데!”

“최악은 그럴 수도 있지요. 원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잖아요? 이 황궁이라는 곳이.”

그저 에리카에게 당한 자신을 탓할 뿐, 그 누구도 탓해선 안 된다.

이런 곳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

눈엣가시로 여기는 인물 하나쯤 끌어내리는 일, 그렇게 죽이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곳인 줄 뻔히 알면서 그녀가 안일했던 거다.

“걱정 마. 절대 너 혼자 뒤집어쓰게 안 해.”

이반은 로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평소와 다른 단호한 말투와 차가운 눈매에 로엘은 이반도 꽤나 화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안 둬.”

이렇게 모두가 있음에도 평소의 반말을 해 버리는 그에게 로엘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행히 눈치 없는 아론을 제외하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이라 별로 놀라 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따질 때가 아니기도 하였고.

만일 이대로 그녀가 첩자로 몰린다면, 정말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녀의 목숨뿐이랴. 그녀를 싸고돈 그 역시 매우 난처해진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들이 그렇게 밀고 나가면 어쩔 수 없다는 거, 너도 알고 나도 알아.”

“웃기지 말라 그래. 억지를 써도 정도껏 써야지. 증거 하나 없이 내통하였다고 주장만 하면, 그게 내통이 돼? 그런 게 모함이고, 그런 게 반역이야.”

카이로스의 황제가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만큼, 그의 여인들도 신 급의 추앙을 받는다. 그런 아카시스를 첩자로 몬다는 것은 말 그대로 황제에 대한 반역. 절대 용서될 수 없는 대역죄. 그들은 지금 그런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거다.

하필이면 가장 총애받는 이가, 그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을, 힘없는 ‘이방인’이라서.

“그럼 증좌라도 만들어 오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거 같은데.”

로엘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상하리만치 덤덤한 그녀의 반응에 이반은 오히려 울컥했다. 지금 울며불며 억울함을 호소해도 모자랄 판에 이분은 뭐가 그렇게도 고고한지 아쉬운 소리 한 번이 없다.

그 많은 귀족들이 그녀를 어떻게 보는지.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들의 눈 한 번을 피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이반의 눈엔 그저 안쓰러워 보였다.

그건 일종의 습관 같은 거다. 험난한 인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터득한 오기.

마치 이반이 항상 웃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마음이 아플 수밖에.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나도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로엘은 자신의 어깨에 놓인 이반의 손을 잡아 내려 놓더니, 씩 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딱 맞아 버린 그 붉은 눈동자는 또렷하다 못해 반짝였다. 평소의 그녀처럼.

“그럴 성격이 아닌 거. 잘 아시잖아요? 황자님.”

그녀에게 괜찮다고, 자신이 반드시 지켜 주겠다고 말하려던 이반은 그 흔들림 없는 붉은 눈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게 무슨…….”

“죽을 수도 있다는 거지. 죽을 마음은 전혀 없어요. 그러니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로엘의 시선은 다시 모두에게로 돌아갔다. 침묵하던 아까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

그녀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끝낸 거 같다.

“여러분. 저는 누명을 쓸 마음도. 이렇게 당하고만 있다 물러설 마음도. 그리하여 폐하께 누가 될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반격을 해 오면, 또다시 반격하면 그만. 저는 절대 에리카 네아레스에게 지지 않아요.”

씩 웃는, 그 급격한 태도 변화에 다들 당황했지만, 이내 그들 역시 웃고 말았다.

그래. 이래야 그들이 아는, 그들이 주군께서 마음을 주신 여명의 공주답지.

“크. 멋지다. 우리 로엘 님.”

“맞는 말씀입니다. 불평만 늘어놓아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루카스와 아론은 바로 동조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콜린 역시 같은 생각인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님이 아닌 건 알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이렇게 굳건할 줄은 몰라 콜린은 제법 놀랐다. 에단이 없는 이 회의에서도 그녀는 그들을 이끌어 갔다. 위기에 더 빛나는 그녀의 영민함이 확실히 눈에 띄었다.

여전히 그녀를 보는 눈에 애정이 지나치게 넘치는 자신의 주군, 이반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되려 했다.

왜 이반 님께서 그토록 저분에게 집착하시는지.

이분은 누가 보아도 반짝반짝 빛나는, 멋있는 분이다.

“에리카의 이 말도 안 되는 불장난이 몰브와 토르티아의 반역으로 끝날 일을, 엄한 데로 흘러가게 만들었어요. 이는 얼핏 보기에 제가 목적인 듯하지만 실상은 제가 아닌 폐하를 노리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원로회의에 끌려가, 홀로 원로들을 상대하고 있을 그는 로엘을 추포하라는 그들의 요구에 혼자 싸우고 있을 거다. 그 생각만 하면, 로엘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 사람에게 지우지 말아야 할 짐까지 지운 거 같다.

그녀가 결백하다는 것을 원로원들이 알 듯, 원로원들의 목적이 로엘이 아닌 에단이라는 것 역시 이들도 안다.

전혀 틈이 없는 완벽한 황제 폐하께 처음으로 생긴 빌미.

쉽게 말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젊은 황제를 길들일 기회를 그 늙은이들이 드디어 잡은 거다.

“정확하십니다. 지금 원로의 주된 목표는 마마가 아닌 폐하시지요.”

“그러니 더더욱 저희는 이 사건에 대해 조금도 물러서면 안 됩니다.”

즉위 이후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그다. 하는 전쟁마다 승리로 이끌었고, 두 배 가까운 경제 부흥을 일으켰으며, 백성들의 삶도 눈에 띄게 윤택해졌다.

그러니 그 누구도 감히 에단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던 거다.

그런데 그 빌미가 결국 그녀가 되다니.

그녀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다.

‘폐하. 저는 당신께 그러한 천덕꾸러기가 되고 싶지 않아요.’

로엘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궁지에 몰린 에리카의 이 얼토당토않은 모함도 기가 막히지만, 그걸 기회로 여겨 에단을 옥죄는 원로원과 귀족들도 로엘은 용서되지가 않았다.

그들에겐, 그가 그토록 분노하고 걱정하던 니블은, 그로 인해 파탄 날 백성들의 안위는 전혀 보이지 않나 보다.

“그런 것들도 귀족이라고…….”

로엘의 주먹에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가 평생을 바라 오던 북방 정벌이 코앞인데, 자칫하면 그녀와 그녀의 나라로 인해 그 모든 것들이 틀어지는 최악의 결말이 올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그녀의 손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우선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하죠. 일단 몰브부터 시작해 볼까요.”

로엘은 모두를 또렷이 응시하며 말했다. 믿음직스럽기도 한, 그녀의 이 굳건한 태도는 다른 이들의 흔들리는 마음마저 잡아 주었다. 그가 괜히 프란시스로 임명한 게 아니다.

“어떻게 되든 절대 케인 몰브는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계약서라는 너무 확실한 증좌가 케인 몰브의 침실에서 나온 덕분이죠.”

“그거 목숨 걸고 가져온 보람이 있네요.”

로엘은 슬쩍 이반을 보며 말했다. 이반은 역시 피식 웃었다.

참 쉽게도 말한다. 정말 엄청난 일을 벌였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반은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한동안 지켰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케인 몰브는 빠져나가지 못해도, 그 아버지 피어 몰브는 꼬리를 자르겠지. 처음부터 전혀 몰랐다고. 아들의 제멋대로인 일탈이었다고. 그러니 몰브는 억울하다고.”

너무도 뻔한 전개다. 이미 원로원들을 장악한 피어라면 로엘의 폐위도 충분히 운운할 수 있다.

“그럼 깔끔히 피어는 포기하죠.”

“포기하자구요?”

“예. 이건 시간을 끌어서 절대 득 될 게 없거든요.”

이반은 단호한 로엘의 결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정확한 판단이다.

“어쨌건 지금 원로의 실세는 몰브야. 그런 몰브의 수장을 확실한 증거도 없이 끌어내릴 순 없어. 그 자체를 귀족에 대한 탄압으로 몰고 갈 테지. 그렇게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는 북방을 칠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되고, 덩달아 귀족과 싸움 자체를 하는 황제 폐하의 권력도 떨어질 테지.”

“그럴 바엔 깔끔히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게 중요합니다.”

괜한 욕심에 있는 것까지 어그러질 판에 그편이 훨 낫다.

“전 몰브의 유일한 적통 후계자인 케인 몰브를 도려내는 것만으로도 꽤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아쉽지만. 그리고 너무 분하지만 확실한 증좌가 있는 케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야 합니다.”

루카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지만 나머지 참모들은 깊은 공감을 표했다.

목이 터져라 그녀의 추포를 주장했던 피어 몰브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녀에게 참 미안하지만 확실히 그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마저 감사하게도 그 똑똑한 공주님은 이해하시나 보다.

“피어는 놓치더라도 적어도 케인 몰브는 확실히 하도록 해요. 영구 추방, 뭐 그 정도?”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벌은 사형 그 바로 아랫 단계의 중징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는 물론, 그 직계까지도 감히 카이로스의 도성 문 안에 못 들어온다. 영영 외곽에서 늙어 죽어야 하는, 귀족으로서는 사형만한 형벌. 결코 이리 가볍게 말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몰브가 거기까지 물러서진 않을 겁니다. 아무리 케인 몰브라 하더라도…….”

“그러니 물러나게 만들어야지요.”

그녀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저 한 걸음 물러나,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이반은 작은 웃음을 삼켰다.

위기에 닥칠수록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 정확히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자, 이제 우리가 반격할 차례예요.”

되로 받은 것을 말로 갚아 주려는 이 막무가내.

그녀는 정말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너무도 그가 아는 ‘네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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