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44)화 (144/145)

<특별 외전 2화>

세 아이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고마워, 카리나!”

특히 아스트리드는 카리나를 거의 얼싸안을 기세였다.

‘이런 걸로 고마워할 필요는 없는데.’

카리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롤랜드를 위한 파티다. 그러니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처음부터 맞았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어.’

가슴 한편이 쿡쿡 쑤셨다. 아이들과 함께 지낸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실수를 하게 되니, 부모로서 처량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뭐, 더 큰 실수를 하기 전에 막았으니까 됐어.’

카리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처럼 기쁜 날을 울적해져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카리나는 아이들을 향해 밝게 입을 열었다.

“이제 디저트 고르러 갈 사람?”

* * *

롤랜드의 축하 파티는 카리나가 원했던 것처럼 성대했고, 아이들이 원했던 것처럼 유쾌했다.

한마디로 번잡스러운 분위기였지만 참석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사실 토를 달 이유가 없을 정도로 조촐한 수이기도 했고.

“축하한다, 롤랜드.”

클로드가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카데미 수석 입학이라니, 토르스의 모두가 자랑스러워 할 거야.”

“가, 감사합니다.”

롤랜드가 고개를 숙였다. 클로드의 얼굴에 잠깐 슬픈 낯빛이 스치는 걸 카리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롤랜드는 아직 클로드를 어려워했다.

물론 진전된 관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빠! 나도 11살이 되면 수도로 갈래요.”

“아카데미?”

클로드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멜리사, 넌 마탑으로 가겠다고…….”

“당연히 구경하러 가는 거죠. 엄마 말로는 저도 수도로 갈 수 있댔어요.”

“수도야 11살이 되지 않아도 갈 수 있지.”

카리나는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원하면 롤랜드가 입학할 때 따라가도 돼.”

“진짜로요?”

“그럼. 다같이 여행하는 거, 어떻니?”

“좋아요…….”

롤랜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리나는 그제야 자신이 클로드나 멜리사, 아스트리드의 의향을 묻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녀는 서둘러 다른 이들을 향해 물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니? 그리고 클로드 당신도요.”

클로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가고는 싶지. 하지만 자리를 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꼭 수도까지 같이 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카리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클로드에게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 정도만 외곽까지 따라오셔도 되고요.”

“그럼 나머지 이동은?”

“당연히 기사들을 붙여 주실 거, 아닌가요?”

“그야 그렇지.”

클로드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좋아, 며칠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

“멜리사와 아스트리드는?”

“저흰 좋아요!”

아스트리드가 재빨리 대답했다. 멜리사 역시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카리나가 안도하면서 맛있는 고기 파이를 한 조각 크게 가져갈 때였다.

“롤랜드 축하 파티에 날 초대를 안 해? 이거 섭섭한걸.”

“체스!”

롤랜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야 나는 너희 꼬맹이들처럼 한가하지 않으니까.”

체스가 롤랜드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앉았다. 아이들과 체스는 지난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어느덧 체스는 아이들에게 큰형, 큰오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스트리드에게도 클로드가 해 주지 못하는 편한 손윗형제 느낌인 모양이었다.

“초대할까 싶었는데…… 바쁠 거 같아서.”

“아무리 바빠도 오지.”

체스가 씩 웃으며 카리나의 접시를 그대로 들고 갔다.

“이야, 음식이 엄청 호화로운데? 그리고 이 고기는 뭐야? 마법은 멜리사가 걸었어?”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체스는 분명 도시의 반대편에 있었으므로 전혀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왔다는 건…….

“제가 불렀어요.”

롤랜드가 서둘러 말을 꺼냈다.

“체스는 있었으면 해서요.”

카리나는 체스와 롤랜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롤랜드가 체스만 불렀을까? 아마도 롤랜드 혼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리사, 아스트리드.”

카리나는 엄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는 누굴 불렀니?”

아스트리드는 대놓고 딴청을 피웠지만, 카리나의 손에 계속 커 온 멜리사는 그러지 못했다.

“그…… 베리티 선생님이요.”

카리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 ‘가족만의’ 단촐한 축하 파티는 점점 더 그녀가 초반에 기획했던 공식적인 자리로 변해 가고 있었다.

‘베리티가 오면 에이드리안도 오겠지.’

카리나는 아스트리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스트리드는?”

“……치체스터 경도 초대 안 하는 건 너무하잖아! 클로드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치체스터가 롤랜드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카리나는 생각했다.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불과 십여 분 만에 가족만의 단촐한 식사 자리여야 할 롤랜드의 축하 파티는 토르스의 가신 전체로 뒤덮이게 되었으니까.

* * *

“많이 피곤하지?”

“전혀요.”

모두가 돌아가고, 아이들마저 잠자리에 든 이후 카리나는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옷차림의 클로드는 정장과는 또 다른 멋을 풍겼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더군.”

“……제가 다 망칠 뻔했지만요.”

“그럴 리가.”

클로드가 가볍게 웃었다.

“그대는 너무 걱정이 많아, 카리나. 오늘 아이들은 근래 들어 가장 즐거워 보이던걸.”

“그야 즐거울 만한 일이 있었으니까…… 아! 롤랜드 말인데요.”

카리나는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한 사실이 생각난 탓이었다.

“아카데미 수석 입학자는 입학 선서도 하지 않아요?”

“하지.”

“롤랜드가 잘할지 모르겠네요.”

“잘 못 하면 어때?”

“……네?”

카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열한 살짜리 아이야. 누구도 엄청난 걸 기대하지 않을 테지.”

정말 그럴까. 카리나는 현실을 잘 알았다. 아스트리드는 겨우 열두 살일 때에도 주변 어른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압력을 받았다. 그 대가로 이른 사춘기를 맞이했고.

지금은 잘 지나서, 의젓한 후계자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알려 줘야겠어요. 네가 못 해도 아무 상관없다고. 하지만 잘한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좋은 생각이야.”

클로드가 카리나의 허리를 붙잡고 몸을 빙글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대에게 이걸 알려 주고 싶은걸.”

“뭘요?”

“그대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

카리나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클로드의 목소리가 불현듯 진지해졌다.

“가만 보면 그대는 모든 문제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설마요.”

카리나는 가볍게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클로드의 말이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클로드와 결혼한 지 벌써 3년.

그 사이 아이들은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카리나 역시 어엿한 공작 부인으로 존경받고 있었으나, 가슴 한편엔 항상 그녀를 괴롭히는 문제가 자리했다.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 아이들을 키우기에 적임자가 맞을까.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오늘 한 내 선택이 맞았을까, 하는.

카리나는 그동안 자신이 제법 잘 숨겨 왔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조차 속일 만큼.

하지만 클로드 데비아탄 토르스가 그녀를 투명한 호수 바닥을 보듯 꿰뚫어 보고 만 것이다.

“……클로드, 저는.”

“쉿.”

클로드가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더 말하지 마.”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에는 뜻 모를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대를 바꿀 생각은 없어. 그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도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을 타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그대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어떤 문제가 있든 간에…… 나는 그대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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