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43)화 (143/145)

<특별 외전 1화>

두근두근.

롤랜드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한 순간이었다.

올해로 열한 살이 되어 한층 의젓해진 아이는 작은 페이퍼 나이프로 고풍스러운 편지 봉투를 뜯기 시작했다.

카리나는 수도 아카데미 합격 여부를 알리는 두터운 안내장이 나오기도 전에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합격이에요!”

롤랜드가 환호성을 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카리나는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정말 잘했어, 롤랜드!”

“붙을 줄은 몰랐어요…….”

카리나는 아이의 떨리는 손에서 안내장을 건네받았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상투적인 문구 밑에 금색 글귀가 보였다.

“수석 입학인데 붙을 줄 몰랐다고, 롤랜드?”

놀리는 듯한 말투에 롤랜드의 얼굴이 빨개졌다.

“……수석일 줄은 몰랐어요.”

“나는 알았어.”

아스트리드가 툭 말을 내던졌다.

“다 고만고만한 애들인데, 롤랜드 말곤 누가 수석을 해?”

십 대 소녀의 가시 돋친 말투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

아스트리드는 아카데미에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 공작가의 후계자가 멀리 수도에서 교육받는다는 사실을 가신들이 소리 높여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클로드가 중재에 나서 아스트리드에게 아카데미 출신 유명 가정교사들을 붙여 주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알았다. 아스트리드는 자유롭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벌써부터 마탑과 교류하기 시작하는 롤랜드와 멜리사를 아직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학은 가을이지? 겨울옷을 미리 준비해야겠네.”

카리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수도는 여기보다 추우니까, 제대로 준비해 가야 해.”

아스트리드가 끼어들었다.

“너희들은 몰라도 나는 여러 번 가 봤거든.”

“아스 님, 수도는 어때요?”

롤랜드가 눈을 반짝거렸다.

아이들은 결국 끝까지 ‘님’이라는 존칭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스트리드를 줄여 부를 정도로는 친해졌다.

“좋아.”

아스트리드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화려하고 복잡한 곳이지만, 한 번쯤 살아 볼 가치는 있어.”

카리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아스트리드는 언제 수도에 살아 보았을까? 도시적이고 세련된 공녀의 몸가짐 역시 수도에서 배운 걸까?

“나도 수도에 가고 싶어.”

멜리사가 입을 삐죽거렸다. 카리나는 빙그레 웃었다. 근래 멜리사는 롤랜드가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하고 싶어 했다.

단, 아카데미는 제외하곤.

수도 아카데미는 마탑과 경쟁 관계였기에 멜리사처럼 향후 마탑에 들어가는 게 꿈인 어린 학도들은 아카데미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스트리드는 멜리사를 더욱 예뻐했다.

“수도는 얼마든지 갈 기회가 있을 거야. 어쨌든 오늘은 롤랜드 축하 파티를 열어야겠네?”

“파티요? 파티까지는…….”

롤랜드는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을 했지만 잔뜩 상기된 얼굴은 감추지 못했다.

“파티까지는 필요 없기는.”

카리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곧 롤랜드는 자신의 품을 떠나갈 것이다.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풍족하게 보내고 싶었다.

“오늘 저녁에 파티를 열 거야. 그러니까 다들 참석해야 한다, 알겠지?”

“선물은?”

아스트리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오늘 합격 통지가 올 줄 몰라서 축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즐겁게 노는 파티에 선물이 뭐가 필요 있겠어.”

“그래도, 롤랜드를 위해 준비해 주고 싶었어.”

아스트리드의 표정이 침울해지자, 롤랜드가 서둘러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선물은 제가 입학할 때 주세요! 아직 입학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요.”

“그럴까?”

“네!”

롤랜드가 밝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면 아카데미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거였으면 좋겠어요.”

“아, 선생님들께 물어봐야겠네.”

아스트리드가 고민에 빠진 사이, 카리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성대한 파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몇 시간 이내에 구색을 갖추려면 바삐 움직여야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이제 자신들끼리도 잘 지냈으니 카리나가 계속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

“엄마, 어디 가요?”

“파티 준비하러.”

롤랜드와 멜리사는 물론이고 아스트리드까지도 아우성을 쳤다.

“저도 갈래요.”

“저도요!”

“나도 갈래.”

카리나는 아이들을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요?”

아스트리드는 팔짱까지 꼈다.

“왜 안 되는데?”

그야, 다들 방해되니까……!

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마음에 걸렸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 방해하면 안 돼, 알겠지?”

“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나는 아스트리드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아스트리드는?”

“……보고만 있을게.”

만약 이 세 명이 무슨 일을 벌일지 카리나가 알았다면 절대, 절대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카리나는 아직 셋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고, 파티 준비에 대동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결과…….

“엄마, 이거 보세요! 롤랜드가 쿠키를 천장에 달아 놓았어요! 진짜 예쁘죠?”

“……내려놓으렴, 롤랜드.”

“멜리사는 아까 저절로 썰리는 돼지구이를 만들던데요?”

“멜리사!”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아스트리드는 얌전했다. 하기야 아이들처럼 천방지축 사고를 치는 건 어엿한 공작가의 후계자와 어울리지 않긴 했다.

‘아스트리드가 있어서 다행이야.’

카리나는 아스트리드에게 아이들을 좀 제지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아스트리드, 애들이 네 말은 잘 들으니까…… 아스트리드?”

분명 카리나의 곁에 침착하고 얌전하게 서 있던 아스트리드가 사라졌다.

“그래, 거기야. 아주 잘했어.”

카리나는 눈을 의심했다. 아스트리드는 아이들을 말리기는커녕 허무맹랑한 곳에 장식을 붙이는 걸 도와주고 있었다.

“샹들리에 좀 왼쪽으로 옮겨 봐, 멜.”

샹들리에가 기우뚱, 하며 왼쪽 벽면으로 붙여졌다. 빈 공간엔 뭘 하나 싶었더니…….

“잘 들어, 롤랜드. 나중에 내 신호에 맞춰서 폭죽을 터뜨리는 거야. 알겠지? 크게는 말고, 적당히 머리 위에 터질 정도만.”

“……아스트리드.”

아스트리드가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왜, 카리나?”

“지금 뭘 하는지, 말해 줄 수 있어?”

“당연히 파티 준비를 돕고 있었지.”

아스트리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범죄 현장을 들킨 것처럼은 절대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아니라, 애들을 부추기고 있잖니.”

음식을 준비하고 연회장을 세팅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이 삼남매가 저지른 일도 수습해야 하다니.

벌써부터 피곤감이 밀려왔다.

아스트리드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 카리나가 싫어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

“아는데도…….”

“그래도 롤랜드 파티니까, 롤랜드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거든.”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건 롤랜드의 취향이었다.

이상한 장식들도, 화려한 폭죽도, 소소한 데서 빛을 발하는 마법들도…….

롤랜드는 멜리사와 달리 거대한 마법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타고난 재능 덕에 실생활에서 숨을 쉬듯 마법을 사용했지만, 저번 생처럼 대마법사로 이름을 떨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롤랜드가 마법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마법을 좋아했고, 오늘 파티 준비에 쓰고 있는 마법들은 하나같이 그런 것들이었다.

말이 없자 아스트리드가 카리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러니까…… 어차피 오늘은 귀빈도 없고, 우리 가족끼리, 아니야?”

실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가신들도 불러 모으고, 롤랜드의 성장을 정식으로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 눈치를 살피는 아스트리드를 보니,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네.”

카리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늘은 가족끼리니까, 마음대로 해도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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