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34)화 (134/145)

<134화>

카리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클로드의 의사는 분명했다.

평생을 함께하자는…… 청혼.

‘말도, 안 돼…….’

하지만 카리나가 조금 전 들은 클로드의 말과, 지금 그녀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클로드의 시선은 현실이었다.

카리나는 그 시선을 버틸 수가 없어,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바로 곁에 있는 클로드의 존재감은 너무나 커서, 몸이 펑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

카리나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건…….

지나쳤다.

그녀는 클로드를 사랑했고, 클로드 역시 기적적으로 카리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달콤한 사실과 자신이 공작부인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설령 그녀가 클로드와 결혼한다고 치자.

공작가에서 그녀까지는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이들까지 받아 줄 리가 없었다.

카리나는 후계자를 낳아야 한다는 압박에 계속 시달릴 것이며, 후계자가 태어나면 아이들은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 뻔했다.

만약, 카리나가 귀족에 대한 막연한 증오감만 있던 예전이었다면 차라리 클로드의 청혼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카리나는 귀족 사회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카리나와 아이들은 공작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지기는커녕 클로드의 오점이 될 것이다.

‘…….’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눈물이었다.

“카리나.”

클로드가 그녀의 손을 억지로 잡아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울지 마라.”

억센 손가락이 카리나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전.”

카리나는 꽉 멘 목을 간신히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냈다.

“전 지금이, 좋아요.”

“……그렇군.”

클로드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카리나가 머뭇거리는 이유도 이해한 듯했다.

클로드가 몸을 기울이고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대가 걱정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당신이 공작 각하라도 제 아이들까지 보호해주지는 못해요. 롤랜드와 멜리사는…… 제가 결혼하면 분명, 불행해질 거고요.”

“카리나.”

클로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공작인 게…… 싫나?”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클로드의 간단한 질문에 담긴 함의가,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설마, 내가 원한다면…….’

클로드 데비아탄 토르스는 여태까지 공작으로서, 훌륭한 공작이 되기 위하여 존재해 온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공작인 자신이 싫으냐고 물어온다.

“아, 아뇨.”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해줘.”

클로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나는 그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으니까.”

“…….”

카리나는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게 너무나 가당치도 않은 것이라서.

“전…….”

카리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클로드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대답해줘, 카리나.”

귓가를 간질이는 달콤한 목소리에, 카리나는 곧바로 항복하고 말았다.

“전, 당신의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어요.”

“…….”

클로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카리나를 감싼 몸에 힘을 주었다.

카리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클로드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그의 반응을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이라면, 카리나는 도저히 말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아이들 역시 행복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 그 어떤 아이들보다도 행복하고, 안전하게요.”

그녀는 클로드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제 그녀의 말들은, 소원이라기보단 고백에 가까웠다.

오랫동안 담아두기만 한 말들이 서서히 풀려나오고 있었다.

“알아요. 욕심이라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잃지 않고 무언가를 가질 수는 없으니까요.”

카리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과, 자신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고.

클로드의 아내가 되고픈 그녀의 소망과 아이들의 안전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라, 한 가지를 택하면 나머지 한 가지는 버려야 한다고.

그리고 그중 한 가지를 지금 당장 골라야 한다면…….

카리나가 골라야 할 쪽은, 정해져 있었다.

그때였다.

클로드가 그녀에게서 부드럽게 몸을 떼어낸 것은.

자연히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 얽히게 되었다.

카리나는 클로드의 집요하게만 느껴지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스스로 눈치채는 게 두려워서.

“알겠다. 결혼 얘기는 없었던 거로 하겠다.”

“…….”

카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원했던 결과이기도 했고.

하지만,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대가 안심하는 날이 올 때까지, 미뤄두도록 하겠어.”

“클로드……!”

“카리나, 나를 봐.”

클로드의 시릴 정도로 푸른 눈이 카리나를 직시했다.

카리나는 숨을 집어삼켰다.

그 눈에 일렁이는 가정에, 속절없이 끌려갈 것만 같아서.

“카리나, 지금은 그대 말이 맞아. 분명, 그대가 내 혼약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수많은 늑대들이 달라붙어 그대를 호시탐탐 노리겠지. 롤랜드와 멜리사 역시 내가 완전히 지켜줄 수는 없을 거고. 하지만…….”

클로드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졌다.

“약속하겠다. 상황이 언제까지나 이렇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그는 고개를 숙여, 카리나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연인간의 키스라기보단 친애의 표시에 가까운 키스였음에도 카리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가볍기만 한 겉보기와는 달리, 그 안에 담긴 클로드의 진심이 전달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겠어.”

카리나는 물끄러미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그건 너무나 힘든 길이라고.

카리나 브리튼은 자신을 희생하는 데 익숙하니, 괜찮다고.

하지만 카리나는 도저히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오는 저 푸른 눈에 되고 안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기다릴게요.”

카리나가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은, 오직 그 한 마디뿐이었다.

* * *

“빨리, 빨리……!”

버리올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자신의 목숨이 이 마법에 달려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펑!

버리올의 앞머리가 식은땀에 푹 젖었을 무렵, 굉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진원지로 다가가는 버리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성공했어.’

진원지에는 커다란 식탁 크기만한 균열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커먼 균열은 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이였다.

버리올은 어렵사리 구해 온 롤랜드의 머리칼을 그 균열 안에 떨어트렸다.

파사삭.

소년의 갈색 머리칼이 떨어진 순간, 시커먼 불길이 균열의 바닥부터 솟아 천장까지 치달았다.

“이번에는 너도 어쩔 수 없을 거다, 롤랜드 블로에.”

버리올은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그는 이 마법을 이미 쓴 적이 있었다.

그것도 롤랜드에게.

‘그때는 실패했지.’

하지만 당시의 롤랜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성인 마법사였고, 지금의 롤랜드는…….

‘애송이에 불과하지.’

버리올은 지옥과 지상을 잇는 가교를 만들었다.

지옥의 악마들은, 이제 영원히 롤랜드의 영혼을 노릴 것이다.

그 악마들로부터 롤랜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남부에 없다.

수도의 대마법사가 목숨을 걸면서 겨우 고아 나부랭이를 지킬 리도 없으니, 롤랜드 블로에의 영혼은 영원히 지옥으로 끌려가고 말 것이다.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는 버리올 자신이 사용하면 된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슬슬 출발해야겠어.’

버리올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쩍 갈라진 균열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내일이면 균열은 지금쯤 곤히 자고 있을 소년의 곁에 나타나 있을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