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32)화 (132/145)

<132화>

“기존 광산의 인부들을 감량해야…….”

“아니, 새로 모집을…….”

“그럼 임금이…….”

카리나는 멍하니 흘러가는 대화를 듣기만 했다.

그녀가 발언해야 할 안건은 모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카리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클로드와 그녀가 말을 섞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일까.

그 사실마저도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건.

마침내 회의가 모두 끝났다.

카리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에게 와닿는 클로드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더욱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카리나.”

중저음의 목소리에 카리나는 뒤를 둘러보았다.

급하게 뛰쳐나왔는데도 클로드는 그녀를 손쉬운 사냥감처럼 바로 따라잡았다.

그녀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클로드의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이시죠?”

“왜 나를 피하지?”

카리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클로드는 말을 돌리지도, 그녀의 상태를 살펴서 배려해주지도 않았다.

이건…….

클로드답지 않았다.

‘화난 걸까?’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하지 않았어요.”

정말로 카리나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그녀가 이미 저지른 일과 정면으로 마주쳐야 한다.

클로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로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클로드의 어조는 평소의 그와 같았다. 느리고, 부드럽고, 사람을 배려하면서도 어딘가 열정이 엿보이는 말투.

‘아니.’

카리나는 깨달았다.

본디 그녀가 처음 만났던 당시의 클로드는 이렇지 않았다.

무뚝뚝하고 성급했으며, 엉뚱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말을 툭툭 던져댔다.

하지만 지금의 클로드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마치, 그녀와 아이들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않을 사람처럼.

“거짓말은 그대와 어울리지 않아, 카리나.”

“…….”

카리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어라 말을 했다간 진실을 그대로 토해낼 것 같았기에.

클로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떨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대를 추궁하러 온 게 아니니.”

그제야 카리나는 자신이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자문했다.

카리나는 당연히 클로드 데비아탄 토르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카리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몸이 떨린다는 건…….

‘아.’

카리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클로드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이미 실망한 듯했지만.

그래도 더더욱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오해를 풀고 싶어서 온 거야.”

“무, 무슨 오해 말씀이신가요?”

카리나는 간신히 입을 움직였다. 만약, 클로드가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면 당장 풀어야 했다.

자신의 터무니없는 감정을 떠나서, 클로드는 현재 그녀와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다.

클로드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대가 내게 하고 있는 듯한, 말도 안 되는 오해.”

“네……?”

카리나는 순간, ‘그 반대가 아니라요?’ 라고 외칠 뻔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하고 있잖아. 분명…… 롤랜드와 한 대화와 관련이 있겠지. 그 이후로 그대가 이상해졌으니까.”

“…….”

정곡을 찔린 카리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짚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더군.”

카리나는 초조하게 클로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정말 정답이 나온다면…… 앞으로 그의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대가 아이들을 내 가신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사실에……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나?”

“……!”

정답이었다.

카리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지만,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이라니.”

클로드가 기가 막혀 죽겠다는 듯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떨리는 목소리가 카리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땐, 제가…… 아무것도 몰라서. 일단 경계하기 바빴거든요. 그래서 각하께서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모르고…….”

“잠깐.”

클로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그대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데.”

“……네?”

카리나의 눈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클로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대는 애초에, 내 가신이 되는 것도 탐탁지 않은 게 눈에 보였어. 그러니 아이들이 내 가신이 되는 건 더더욱 꺼리겠지. 그리고…….”

클로드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떠나간 가신들이 입증하듯, 당시의 난 그다지 좋은 군주가 아니지 않았는가.”

“그건…….”

카리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클로드가 한 발 더 빨랐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군. 그건 거짓말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카리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동시에 안도감이 그녀를 감쌌다.

클로드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화가 났다면, 그건 그녀가 그를 이런 사소한 문제로 피해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전, 당연히 화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왜지?”

“멋대로 판단했잖아요. 클로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는데…….”

“상대에 대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잘 알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불러야겠지.”

클로드가 부드럽게 말했다.

“블로에 부인은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걸 나쁘게 보지는 않았어.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카리나를 들여다보았다.

카리나의 또다시 붉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클로드의 시선이 집요하게 느껴졌다.

“카리나 브리튼은 조금 다르다고 믿고 싶은데.”

“그럼요.”

카리나는 바로 대답했다.

“완전히 달라요. 이제 저는…… 클로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요. 그리고 클로드만큼 좋은 주군이 없다는 사실도요.”

“…….”

클로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어……?’

카리나는 자신이 클로드의 심기를 거슬렀나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만 클로드의 안색을 살핀 순간, 카리나는 자신이 다시금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클로드의 얼굴 역시 자신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칭찬에 약하구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카리나는 푸스스 웃었다.

“클로드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에요. 제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

“……그런 거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은데.”

무뚝뚝한 목소리.

하지만 기분 좋은 기색 역시 숨기지는 못하는 목소리였다.

카리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었다.

아무리 클로드가 자신에게 잘 대해주며, 이름마저도 서로 부르도록 허락하였다 한들 그는 공작이었다.

언제 자신이 클로드에게 칭찬을 할 기회를 다시 얻겠는가?

‘이번이, 진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야.’

카리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저와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난 토르스 사람들은 한결같이 저희를 쫓아내려고만 했어요. 그때 유일하게 받아주신 게 와일더 씨고요.”

그때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토르스는…… 그냥, 도피처였을 뿐이었어요. 렝케 경으로부터 몸을 피할 곳. 그게 전부였죠. 하지만…….”

카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이제 토르스는 제 집이에요. 다른 곳에 가서 살 생각도 없고요. 전에 제가 수도에 대해 무슨 말을 했든, 그건 다 잊어버리세요. 저와 아이들은 평생 토르스에서 살 테니까요.”

“…….”

클로드의 푸른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카리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자칫했다간, 클로드에 대한 마음마저도 모조리 실타래처럼 풀려 적나라하게 보여질까 싶어서.

“그 이유가 바로 클로드예요. 클로드가 좋으……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군주니까 제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게 되었고요. 그러니까…….”

카리나의 마지막 말은 속삭임과 비슷했다.

“클로드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은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요. 클로드에게서 직접 듣는 건, 더더욱 싫고요.”

“…….”

침묵이 흘렀다.

‘너무, 지나쳤나?’

카리나의 심장이 다시금 덜컹거렸다.

‘혹시, 지나친 말이 있었다면……!’

하지만 카리나의 생각은 끊기고 말았다.

클로드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기에.

놀람과 흥분 탓에 얼어붙은 카리나는 다음 순간, 경악에 질리고 말았다.

클로드가 그녀의 귀에 불어넣은, 믿을 수 없는 한마디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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