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30)화 (130/145)

<130화>

“어…….”

롤랜드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카리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숨 막히는 공기가 훈련장에 흐르고 있었다.

‘롤랜드…….’

풀 죽은 아이의 모습을 보니, 이제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이 전혀 없어졌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서 롤랜드를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다 괜찮다고.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엄마는 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카리나는 숨죽인 채 롤랜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롤랜드를 위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제가 마법을 지나치게 잘할까 봐 두려워하셔요.”

카리나의 눈이 흔들렸다.

‘말도, 안 돼…….’

롤랜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브리튼 양이?”

클로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롤랜드, 브리튼 양은 네가 마법을 잘 해낼 때마다 기뻐 보이던데.”

“그거야…… 엄마는 숨기려고 하니까요.”

롤랜드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멜리사가 마법을 잘하면 정말로 기뻐해요. 하지만 제가 잘하는 건……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걱정하기도 해요. 어떨 땐 엄청 더 많이 걱정하고요. 그리고 저는…….”

아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카리나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엄마가 뭘 무서워하는지 알고 있어요.”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롤랜드가 만약 아이다운 오해를 하고 있다면 풀어주면 된다.

문제는 롤랜드가 오해를 하고 있지 않을 때였다.

“엄마는…… 제가 공작님의 마법사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카리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나갈 것 같았기에.

한 가지 절망적인 사실은, 지금 카리나가 롤랜드에게로 간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떻게든 숨겨야만 했던 속내를 모조리 들켜버린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

잠시, 클로드는 말없이 롤랜드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카리나는 한 가지 달갑지 않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롤랜드만 그녀가 숨겨 왔던 사실을 알아차린 게 아니었다.

클로드 역시, 카리나가 그동안 대체 무엇을 필사적으로 막아왔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아이들은 수도에서 키워야 한다는 둥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로 가려왔던 진실을……!

“롤랜드.”

클로드가 기묘할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마법사가 되고 싶어?”

놀랍게도 롤랜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뇨.”

카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브리튼 양 때문이라면…….”

“엄마는 제가 마법사가 되는 걸 바라세요. 그런데, 공작님의 마법사가 되는 게 싫은 거예요.”

롤랜드의 또랑또랑한 말에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졌다.

“……진작 제게 좀 잘 대해주시지 그랬습니까, 각하.”

체스의 농담 역시 심각한 분위기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근데요.”

롤랜드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전, 누구의 마법사든 마법사는 별로 되고 싶지 않아요. 공작님, 죄송해요.”

“롤랜드, 마법 자체가 싫은 거야?”

체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동안 롤랜드를 전심전력을 다해 가르쳐 왔다.

그것이 롤랜드도, 멜리사도, 카리나도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저, 전…….”

롤랜드의 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전혀 몰랐어.’

죄책감이 밀려 들어왔다.

그동안 카리나는 자신이 아이들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해 왔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아이들에게 좋은지.

하지만 그 모든 자신감이 송두리째 깨어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전…… 제 마법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건 좋아요.”

아이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마법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특히 강한 마법들은 너무, 너무 무서워서요…….”

아이의 마지막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는 듯한 크기였다.

“전 제 마법이 남을 다치게 할까 봐 무서워요.”

아.

카리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롤랜드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드디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롤랜드가 마법을 꺼려한 건, 렝케 경이나 카리나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조금 영향이야 주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롤랜드는…… 너무 착해.’

롤랜드는 카리나와도, 멜리사와도 달랐다.

카리나에게 마법은 무력하지 않을 수단이었다.

멜리사에게 마법은 끝없는 호기심의 원천이었고.

롤랜드에게 마법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니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아할 수밖에.

‘소설 속의 롤랜드 역시 그랬겠구나.’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설 속의 롤랜드에겐 마법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할 기회가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 속 롤랜드는 마법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전 세계를 구할, 대마법사가.

카리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보고만,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롤랜드에게 가서 마법 따윈 때려치워도 얼마든지 괜찮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카리나가 발걸음을 옮기려는 바로 그 순간.

클로드의 한마디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롤랜드,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제가…… 원하는 것이요?”

“그래. 그 무엇이든 좋다. 다 들어주마.”

클로드는 무릎을 굽혀 롤랜드와 눈높이를 마주했다.

“전…….”

롤랜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 *

옥구마로 인한 각기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들었다.

사실, 옥구마만이 아닌 다른 음식도 함께 먹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걸 베리티가 알게 되자마자 대다수의 환자는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 수확된, 그리고 수확되고 있는 옥구마에 거는 마법을 푸는 문제도 시급했다.

그리고 바로 그 마법을 푸는 역마법을 롤랜드가 만들어냈다는 건, 공작가에서 기밀로 취급되었다.

그 때문에 해결의 공은 모두 베리티와 에이드리안, 그리고 클로드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버리올은 속지 않았다.

‘역시 롤랜드 블로에야.’

옥구마에 건 마법이 완벽하게 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는 진심으로 기뻤다.

롤랜드의 실력이 정확히 그가 예측한 만큼으로만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계집애는 위험하니 빨리 죽여야겠어. 하지만 롤랜드 블로에는…….’

공작저에 남겨 두어 교육을 받게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죽으면 롤랜드를 구슬릴 기회는 얼마든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 세상은 버리올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마법사의 위력은 그렇게나 강력했기에.

‘……?’

손가락 끝에서 순간적으로 느껴진 고통에 버리올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뭐지?’

그는 자신의 뼈대만 기다란, 볼품없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이런 착각을 다 하는군.”

그는 애써 코웃음을 쳤다.

위력이 강한 마법을 약한 마법사가 애써 썼을 때 반작용으로 느끼는 환상통인 모양이었다.

나약한 자들이나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자신이 어린아이의 몸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억……!”

고통에 겨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발이었다.

환상통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한 고통에 버리올은 허겁지겁 신발을 벗었다.

“……!”

버리올의 눈이 경악에 질렸다.

그의 발은, 시커멓게 변해 부패의 첫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버리올은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부패.

그는 이것의 원인을 알았다.

불완전한 마법으로 자연을 거스르려 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

‘분명, 내 마법은 완벽했을 터인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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