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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121)화 (121/145)

<121화>

멜리사와 롤랜드는 카리나와 체스에게 지금,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체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진작 사람을 불렀어야지!”

“……체스.”

카리나는 그러지 말라는 듯 체스를 붙잡았다.

아이들을 다그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은 순식간에 간파한 버리올의 눈속임을 그들은 눈치 못 채지 않았는가.

“잘했어.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구나.”

“……잡지는 못했잖아요.”

롤랜드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자는 굉장한 실력의 마법사야. 정체를 간파한 것만 해도 대단해.”

“진짜요?”

“그럼.”

카리나는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버리올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단지 아이들을 노리는 렝케 경의 공범이라고만 이야기해 주었을 뿐이었다.

‘……다 알려 줄 수는 없어.’

클로드에게조차 숨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알아야 하는 사실들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아이가 바로, 너희를 노리고 있는 렝케 경의 동료야.”

“……!”

멜리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반면, 롤랜드는 단순히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강해.”

멜리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너무 강해서…… 그 모습조차, 거짓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강하니까…….”

“그래.”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사는 한참 잘못 짚은 셈이었지만 결론은 옳았다.

버리올은 결코 열 살이 아니었다.

그의 속에는,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는 속 시커먼 어른이 들어 있을 것이다.

“분명 너희보다 훨씬 마법을 잘 아는 어른일 거야. 어쩌면 렝케 경보다 더더욱.”

“……!”

롤랜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람도, 저를 데려가서…… 대마법사로 만들려고 하는 걸까요?”

“정확해.”

카리나는 멜리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젠 멜리사의 실력도 확인했을 테니, 멜리사도 노리겠지.”

“…….”

사방이 조용해졌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줄 차례였다.

마탑의 보호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마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지, 롤랜드?”

롤랜드가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렝케 경은 마탑의 마법사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마탑을 폄하하곤 했다.

“네…… 새로운 힘을 마탑에 보고할 수 있어.”

“그럼, 없어지는 건가요?”

“그렇겠지.”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체스처럼 마탑이 아이의 새로운 힘을 이용하기보다는, 없애주려고 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탑이 선해서가 아니었다.

마탑 역시 감당할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었다.

“싫어요!”

롤랜드가 평소 얌전했던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큰소리를 내었다.

“싫어요. 이 힘, 없어지는 거 저는 싫어요…….”

“롤랜드.”

카리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멜리사의 도움을 받으면 잘 제어할 수 있다고는 하나, 롤랜드는 종종 새로운 힘을 버거워하곤 했다.

그래서 당연히 반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이 저랑 멜리사를 노린다면…… 저희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하잖아요.”

아.

카리나는 깨달았다.

자신은 롤랜드에게 선택권을 준다고 생각했으나, 그 반대였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선택지를 내민 셈이었으니까.

버리올과 같은 강력한 마법사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카리나와 멜리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한 롤랜드라면 당연히 힘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지켜야 하는 건 맞아.”

건조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눈시울은 자꾸만 붉어졌다.

“엄마…….”

멜리사가 카리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울지 마세요.”

“……응.”

하지만 카리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어린아이 둘도 지켜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냐고.

“미안해.”

롤랜드가 차분하게 카리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엄마가 왜 미안해요? 나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건 그렇네.”

카리나는 미소 지었다.

정말로, 이 아이들이 없는 자신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 더 열심히 연습할게요. 멜리사도 더 노력할 거고요. 저희가 엄마를 지킬 테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어.”

“알아요. 그래도, 조금만 걱정하라는 뜻이에요.”

“…….”

그때, 체스가 그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있지, 나도 노력할게.”

“……고마워.”

카리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체스는 장난기가 많고 이따금 거짓말을 하곤 했지만, 결코 빈말은 하지 않았다.

분명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사람이었다.

“……여기 다 있었군.”

“각하!”

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카리나는 물끄러미 위를 올려다보았다.

클로드가 심각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녀가 살해당했다.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 빨리 방으로 돌아가라.”

“……!”

카리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클로드에게 자세한 사항을 듣고 싶었지만,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잔혹한 사건 얘기를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챘는지, 클로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아이들을 방으로 데려다주고 나와.”

“저희도 들을래요.”

롤랜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클로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이 알 일이 아니야.”

“알아야 할걸요.”

멜리사가 끼어들었다.

“그 아이, 소매에 피가 묻어 있었거든요.”

“……무슨 소리지?”

멜리사와 롤랜드는 조금 전 마주친 이상한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체스와 카리나도 한 마디씩 얹었다.

모두의 설명이 끝나자, 클로드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군.”

“어…… 어떻게요?”

“내 결계가 뚫렸어. 죽은 하녀의 팔이 하나 잘려 있더군. 그걸 가지고 통과한 거야. 내 결계는…… 신체에 걸려 있으니까.”

“…….”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에 카리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버리올은 겨우 롤랜드와 멜리사를 꾀어내기 위하여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했다.

‘렝케 경보다 더욱더 잔인해.’

렝케는 카리나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버리올은 그의 목적을 위해 무슨 짓까지 할지 도저히 예상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카리나에겐 전생에 읽은 책의 기억이 있음에도.

클로드와의 대화가 끝난 후, 카리나는 아이들을 서둘러 방으로 데려다주었다.

버리올이 해결될 때까지, 아이들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을 생각이었다.

설령 그것이 평생이라도.

‘당분간은 좀 쉬어야겠어.’

카리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은 단 하루도 못 되어 깨지고 말았다.

카리나를 찾아온 두 방문객에 의해서.

“브리튼 양!”

카리나는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여인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많이 말랐지만 생기발랄한 모습의 여인은, 그녀가 아는 그 어떤 사람과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카리나는 북부에서 만난, 창백한 여인을 떠올렸다.

“……텟사 씨?”

“네.”

텟사가 밝게 대답했다.

뒤에서 베리티가 툴툴거렸다.

“너무 어려운 환자를 맡기셨어요, 브리튼 양.”

“……미안해요.”

카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자신이 토르스의 가신이라고 하더라도, 본디는 공작가의 일원만 쓸 수 있는 치료 시설에 텟사를 맡긴 게 잘못이긴 했다.

자신의 억지에 베리티가 따라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미안해하지는 말아요. 이 까다로운 환자 덕분에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았으니까.”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뇨……?”

어리둥절해하는 카리나를 향해, 베리티가 선언하듯 대답했다.

“각하께 평민들을 위한 치료소를 요청드릴 겁니다. 그러니 브리튼 양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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