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클로드는 그날, 마도구를 본 사람들을 모두 단단히 입단속 했다.
파괴된 마도구는 조각조각 부스러져 땅에 파묻혔다.
달라진 건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롤랜드의 실력이었다.
“마탑에 보고해야겠어.”
체스가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카리나를 찾아온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마탑이라니.”
카리나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체스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체스야말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마법사였으니까.
“너무 어려.”
카리나는 아이들이 마탑에 들어가기에 너무 어리다고는 말하지는 않았다.
마탑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성인이어야 했지만, 체스가 말한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롤랜드를 마탑에 보고해서…… 조치를 취하겠다는 거야.’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카리나도, 체스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체스는 롤랜드가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탑에 보고하겠다는 것도, 그들이라면 마도구의 작용을 없던 일로 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리니까 빨리 보고해야지.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영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게 옳은 것일지도 몰라.’
롤랜드의 힘은 멜리사가 함께 있을 때만 제어가 가능했다.
아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두 아이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마탑에서 해결을 해준다 치자.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롤랜드의 재능을 알아버린 마탑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꼭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까?”
“……브리튼 양.”
체스가 딱딱하게 그녀를 불렀다.
“나는 더는 아이들을 제어할 수 없어. 예전이라면 폭주할 때마다 제어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해.”
“각하도 있잖아.”
“각하도 한계가 있어.”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마탑에 일찍 알려지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언젠가는 가게 될 마탑이었다.
그녀의 어두워진 표정을 눈치챈 체스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꼭 마탑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야. 이곳에 상주할 마법사를 보내올 수도 있고……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수도에서 살 수도 있잖아. 원래는 수도에서 살고 싶어 했다면서?”
상황에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히스테릭한 웃음이 치밀어올랐다.
수도에서 살고 싶었다는 말은 카리나가 남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했던 거짓말이었다.
그 거짓말이, 지금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은 아니야.”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체스는 순순히 수긍했다.
“이미 마음이 바뀌었지 않나, 싶었어. 티가 났거든.”
카리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이 그렇게 쉽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일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당사자는 롤랜드와 멜리사니까.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볼래.”
카리나는 결심했다.
저택에서 도망친 이후, 자신은 아이들에게 의사를 물은 적이 거의 없었다.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바뀐 미래와 상황은 카리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좋은 생각이야.”
의외로 체스는 카리나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
“왜, 내가 반대할 줄 알았어?”
그는 깜짝 놀란 카리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카리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수긍했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아이들에게 물으면, 마탑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애들 의견이 제일 중요하지. 걔들이 어떤 애들인데, 마탑에서 사람이 와봤자 마음에 안 들면 도망칠걸?”
“그 정도야?”
카리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아이들은 자신에겐 항상 순종적이었다.
만약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거부한다면, 그땐 무언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호문쿨루스를 생각해봐.”
“……아.”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이들은 자신에게 말도 없이 호문쿨루스를 가져갔다.
훔친 것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자신은 아이들에게 호문쿨루스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으니까.
“이제 알겠지? 네 아이들은 호문쿨루스는 귀여워 보일 정도의 일들을 하고 있다니까.”
체스의 툴툴거림에, 카리나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롤랜드와 멜리사가 기행을 일으키고 있다면 당연히 엄마인 자신에게 말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내 카리나는 그가 말을 할 수 없을 만한 이유를 떠올리고 말았다.
‘내가 계속 바빴으니까. 체스도 그렇고.’
서로 바쁘다 보니 만날 기회조차 적었던 것이다.
심지어 어렵사리 만날 때마다 옆에 클로드가 자리해 있었으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곤란했을 것이다.
카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탑, 빨리 결정하면 결정할수록 좋은 거지?”
“잘 아네.”
“그럼, 지금 물어보러 가자.”
최근, 체스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있었다.
남는 시간에 아이들은 자유롭게 공작저를 돌아다니며 노는 듯했다.
그래서 카리나는 아이들을 찾으려면 제법 헤맬 수밖에 없었다.
“연락할 방법은 없어?”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네.”
체스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야 할 경우가 많지 않아서…… 보통은 브리튼 양과 함께 있기도 하고.”
그들은 사용인들에게 묻고 물은 다음에야 아이들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
카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아이들이 들고 있는 장난감을 보면 노는 중인 듯한데, 경계심이 역력한 것이 마치 적이라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거기, 누구냐!”
체스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그제야 카리나는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던 인영을 한 명 발견했다.
잠시 후.
그 인영이 수줍은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저…… 저 말씀이신가요?”
카리나는 안도했다.
‘뭐야, 애였네.’
나이는 멜리사쯤 되었을까.
잘 먹지 못해 바싹 마른 것이, 가난한 사용인의 아이로 보였다.
아이들은 낯선 아이의 출현에 긴장한 것뿐이리라.
‘부모를 따라왔다가 넓은 공작저에서 길을 잃었겠지.’
카리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친절하게 물었다.
“가까이 와보렴. 이름이 뭐니?”
“……리버요.”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리버. 부모님 성함은? 부모님을 찾아줄게.”
그때였다.
롤랜드와 멜리사가 그들 사이로 끼어든 것은.
“롤랜드, 멜리사……?”
카리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멜리사가 무어라 롤랜드에게 지시했고, 롤랜드에게서 강한 흐름의 힘이 터져 나왔다.
“롤랜드!”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카리나는 눈을 의심했다.
불쌍하게만 보이던 일곱 살짜리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자리엔 롤랜드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이가 롤랜드와 멜리사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바로, 올리버 라크포드였다.
올리버는 카리나에게 자신의 정체가 들켰다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뭐, 뭐냐……!’
버리올은 본디의 모습을 되찾은 후, 가쁘게 뛰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조금 전 느낀 긴장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자신은 이미 붙잡혔을 것이다.
전체적인 공작저의 수준을 생각해보았을 때,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만 공작이 진정으로 자신을 죽이려 달려들면 그땐 위험해진다.
무엇보다도 겨우 어린아이에게 마법을 간파당했다는 점에 속이 쓰렸다.
‘내 마법은 완벽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하녀를 죽이고 그녀의 모습을 빌려 공작저에 잠입한 것까진 쉬웠다.
외부인을 막는 공작저의 결계는 하녀의 손을 잘라서 가지고 다니는 것만으로 쉽게 통과했다.
하녀와 제법 친밀해 보이던 사용인들 중 그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당대 제일가는 마법사들도 속인 그의 마법을, 어찌 평범한 이들이 간파한다는 말인가?
당연히 훗날엔 위대한 대마법사가 될지 몰라도 지금은 평범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롤랜드 블로에도 그의 마법에 껌벅 속아 넘어갔다.
그런데…….
‘너, 왜 어린 척해?’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존재감의 여동생이, 자신을 똑바로 가리키며 물었다.
‘원래 모습은 그거 아니잖아. 그런데 왜 모습 바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