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19)화 (119/145)

<119화>

“…….”

카리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력 유도제. 겨우 두 마디일 뿐인 단어가, 가슴을 콱 옥죄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클로드가 딱딱한 목소리로 체스를 캐물었다.

체스는 대답 직전 조금 망설였다.

“……사람의 마력은 일정합니다. 천천히 형성되는 것이기에 갑자기 폭발적으로 많아지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롤랜드는…… 롤랜드의 마력은…….”

“많아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체스의 말을, 멜리사가 완성했다.

“많다니?”

새파랗게 질린 어른들과 반대로, 멜리사는 전혀 긴장하거나 겁에 질린 것 같지 않았다.

“많아요. 저보다 훨씬, 훨씬 더……. 지금도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요. 신기해요.”

체스가 고통스럽게 정리했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마정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 롤랜드의 상태가요.”

카리나는 비틀거렸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체스의 입으로 다시 한번 확인받으니 더욱더 충격이 컸다.

“엄마.”

롤랜드가 불안한 눈으로 카리나를 올려다보았다.

“나, 괜찮아요.”

“…….”

카리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롤랜드는 지금 이런 순간에서조차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애들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이다니. 한심해.’

카리나는 롤랜드의 손을 잡았다.

“당연히 괜찮지, 우리 롤랜드는.”

그때, 멜리사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럽다. 이제 마정석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겠네.”

“멜……!”

카리나는 깜짝 놀라 멜리사를 소리쳐 부르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멜리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게 롤랜드에게도 나았다.

게다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러게. 이제 마정석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겠구나.”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어요.”

롤랜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연습하면 되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진짜로 괜찮아요.”

“…….”

카리나는 지그시 롤랜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책 속에서, 몸 전체의 피가 마력 유도제로 변한 롤랜드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기억했다.

그녀는 롤랜드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안 아파?”

“안 아파요.”

“참고 있을 필요는 없어. 아니, 참고 있으면 안 돼.”

“참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롤랜드가 고집스럽게 얘기했다.

“진짜, 괜찮아요. 오히려 훨씬 낫다니까요. 보세요, 제가 아프면 이렇게 멀쩡할 수 있겠어요?”

카리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렝케 경의 계획에 의해 롤랜드의 피가 마력 유도제로 변한 게 아니야. 고대 마도구에 의한 거니까 뭔가 다른 원리가 있겠지.’

체스가 롤랜드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롤랜드, 마법을 한번 써 볼래?”

“네.”

롤랜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

사방에서 놀라움에 찬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 걱정하던 시선들에서 완전히 바뀐, 경외감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외침이었다.

카리나 역시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롤랜드…….’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롤랜드는 무언가 거창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작은 마력구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처음엔 주먹만한 크기로 보이던 마력구가 순식간에 집채만 하게 부풀어 올랐다.

카리나는 롤랜드가 어느 수준의 마력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순수한 마력의 집약체인 마력구는, 롤랜드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성인 머리 크기를 벗어나지 않았다.

‘…….’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체스는 결코 과장하지 않았다.

지금의 롤랜드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마정석이었다.

롤랜드 자신도 놀란 듯,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마력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어는 가능한가?”

클로드가 심각한 목소리로 체스를 향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체스는 자신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당분간 롤랜드는 마법을 쓰지 않는 게 좋겠어.”

“…….”

체스의 말에 멜리사가 그를 잠시 노려보더니, 롤랜드에게 다가갔다.

“제어, 못해?”

“……모르겠어.”

롤랜드는 체스만큼이나 자신이 없어 보였다.

“해 봐.”

멜리사의 말에 롤랜드는 눈을 감고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력구는 순식간에 주먹 크기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마력구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다시금 거대하게 변했다.

롤랜드가 울상을 지었다.

“못해, 못하겠어…….”

“할 수 있어.”

멜리사는 롤랜드의 두 손을 나란히 잡았다.

롤랜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마력구의 제어를 시도했다.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누구도 아이들에게 끼어들지 못했다.

잠시 후.

카리나는 긴장이 털썩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력구가 모조리 사라졌다.

롤랜드가 자신의 넘쳐 흐르는 마력의 제어에 성공한 것이다.

멜리사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거봐, 할 수 있댔잖아?”

* * *

엘리제 이스터는 공작저의 하녀라는 새로운 직장에 만족했다.

가장 큰 장점은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공작저에선 최근 새로운 종류의 사용인들을 뽑기 시작했는데, 바로 일반 상점의 점원들처럼 출퇴근을 하는 사용인들이었다.

일도 크게 어렵지 않아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역시 그랬다.

엘리제가 맡은 일은 시장에 가서 각종 상인과 품목의 종류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야 쉽지.’

잔뜩 들뜬 엘리제의 눈에 웬 아이가 들어왔다.

평소라면 엘리제는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엘리제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고, 적선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저기, 얘야?”

비쩍 마른 아이는 고개를 들어 엘리제를 올려다보았다.

한 일곱 살쯤 되었을까.

어린 사내아이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는 작은 동물처럼 유약하고 불쌍해 보였다.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납작한 배에선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뭐라도 좀 사 먹으렴.”

엘리제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지만, 소년은 도리질을 쳤다.

“받을 수 없어요.”

“왜 그러니?”

엘리제는 호기심이 생겼다.

잘 보니, 더럽긴 했지만 잘 씻기고 먹이면 웬만한 귀공자 못지않은 모습인 듯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데…… 이런 걸 받을 순 없어요.”

귀여운 아이의 어른 같은 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럼 친구 하는 건 어때?”

“친구요?”

“그래. 나는 엘리제야. 너는?”

“……리버.”

“그래, 리버.”

엘리제는 싱긋 웃었다.

“우린 이제 친구다? 그러니 여기 이 돈으로 어서 빵을 사 먹으러 가.”

“네!”

엘리제는 아이의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아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저 아이는 오늘 하루 정도는 배를 곪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 그 불쌍하고 나약하게만 보이는 아이에게 뒤를 밟히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바보 같기는.’

버리올은 속으로 멍청한 하녀를 비웃었다.

곧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사람을 동정하다니.

최근 들어 삼엄해진 공작저를 통과하기 위해선 이미 출입 중인 사람의 신분이 필요했다.

출퇴근하는 신참 하녀는 그가 빼앗기에 최적의 신분이었다.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니, 젊은 여성이라는 점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롤랜드에게 접근할 때는 이 모습이 낫겠군.’

버리올은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마법을 쓰면서, 나이도 기존의 열 살 보다 몇 살 어리게 바꾸었다.

처음에는 단지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서였지만, 롤랜드와 멜리사 남매의 연령대를 생각하니 그들에게 접근할 때도 이 모습을 쓰는 게 옳은 듯했다.

결국 그가 남부까지 온 이유는 순전히 롤랜드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였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