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클로드와 체스의 발치에 쌓여 있는 물건들은 그 종류와 모양새가 다양했다.
어떤 것은 고철 덩어리처럼 보였고, 또 어떤 것은 금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물건들은 서로 한데 엉켜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카리나를 놀래킨 건 그 물건들의 겉모습이 아니었다.
‘……힘이 느껴져.’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에게 친숙한 힘. 즉, 마정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과는 한층 다른 힘이었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힘인 듯했다.
그래서 카리나는 마정석을 그간 숱하게 다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힘은 분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다. 이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마도구였다.
“브리튼 양이 보던 문헌에 토르스의 옛 지명이 있더군.”
클로드가 즐거운 듯 설명했다.
“혹시나 해서 체스와 함께 가 보았더니…… 땅속에서 이것들이 내 검과 감응했어.”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낯선 힘의 여파가 느껴졌다.
“이것들은…… 위험해요.”
“폭주할 것 같나?”
“아뇨.”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폭주를 할 것들이었다면, 일찌감치 폭발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힘은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행이군. 무척 오래된 것들이라, 폭주한다면 다루기가 어려울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갖고 오셨어요?”
“그 자리에 놔둘 수는 없었어.”
클로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하이에나 같은 마법사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딱히 특정한 마법사를 지칭하지 않았지만, 카리나는 그 정체를 알았다. 클로드는 버리올을 걱정하고 있었다.
“잘하셨어요.”
카리나의 시선이 클로드의 시선과 부딪쳤다.
클로드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인 듯했다.
‘…….’
하지만 카리나는 조금 심란해졌다.
저렇게 모두를 지키려 드는 남자가, 얼마 전 겨우 폭설 따위에 무너져내린 남자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봐도 돼요?”
롤랜드의 목소리였다.
아이는 어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멈춰!”
카리나가 얼른 롤랜드를 제지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롤랜드!”
롤랜드는 자그마한 손을 뻗어, 그 덩어리와 접촉했다.
당황한 체스와 클로드는 소년을 막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라도 닿은 것처럼 밀려났다.
“……!”
카리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걱정스러웠지만 롤랜드는 전혀 고통스럽거나 해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해 보여.’
롤랜드는 카리나와 멜리사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방긋 미소 지었다.
소년의 입이 움직여 몇 마디가 밖으로 나온 듯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 자리의 사람들을 더더욱 놀래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롤랜드가,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하늘을 나는 마법은 없다.
일시적으로 몸을 잠시 띄울 수는 있어도, 그마저도 금방 효력이 사라져 아무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롤랜드는 지금, 땅에서 몇 뼘은 떨어진 듯한 허공에 우뚝 서 있었다.
쾅!
굉음이 울렸다.
클로드가 붉은빛을 띠는 검을 롤랜드와 그들 사이를 막고 있는 투명한 벽에 내리친 탓이었다.
하지만 검은 벽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한 채 허공에 반쯤 박힌 상태로 멈추고 말았다.
클로드의 조각 같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카리나에겐 영원처럼 느껴진 몇 분이 지난 후.
작은 파열음과 함께 투명한 벽이 산산이 깨어졌다.
그 순간.
롤랜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을 감고 뻣뻣하게 몸이 굳은 것이, 기절이라도 한 듯했다.
‘……!’
카리나는 소스라쳤다.
쓰러진 롤랜드에게서 막대한 양의 마력이 느껴졌다.
“롤랜드!”
카리나는 롤랜드를 향해 달려갔으나, 체스가 그녀의 앞을 단호하게 막아섰다.
“기다려.”
“…….”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런 상황에선 진짜 마법사인 체스가 자신보다 훨씬 더 잘 대처할 것이다.
체스는 롤랜드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평소의 과감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겁을 조금 먹은 것 같기도 했다.
카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체스를 믿어야만 했다.
여기서 자신이 섣불리 나선다면, 본의 아니게 롤랜드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미친.”
롤랜드의 이마 위에 손을 올린 체스가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었다.
“뭐지?”
“……마력이 너무 많아요.”
카리나의 숨이 가빠졌다.
그녀 역시 마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만약, 롤랜드의 체질이 그녀처럼 바뀌었다면…….
롤랜드는 마법을 쓸 수 없다.
“브리튼 양처럼?”
클로드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좀 달라요.”
체스가 고개를 저었다.
“브리튼 양은 본디 체질이 그런 거고, 롤랜드는…….”
체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이 끌어안은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것 아니야!”
카리나의 입에서 날카로운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뭔가, 뭔가 방법이……. 여기 이렇게 마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
체스는 고개를 젓지도, 안 된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으로 모든 걸 알아버렸다.
지금, 롤랜드는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란 것을.
그때였다.
멜리사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린 건.
“방법, 있어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어린 소녀를 향했다.
멜리사는 어른들과 달리 침착하고 평온해 보였다.
“……확실하니?”
“네.”
멜리사는 손을 뻗어 흉물스러운 덩어리를 가리켰다.
“저걸 부수면 돼요.”
“……!”
카리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만 같아선 당장이라도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옛 문헌에 등장하고, 힘들게 클로드가 구해온 마도구가 아닌가.
어쩌면 토르스 전체를 지킬 수 있는 위력을 지닌 마도구일지도 모른다.
“알았다.”
카리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 고생을 하면서 가지고 온 마도구를, 멜리사의 검증 안 된 말 한마디에 없애겠다고?
하지만 눈을 뜨니, 클로드는 이미 그 덩어리로 다가가 있었다.
누군가가 말리기나 말을 얹기도 전에 그는 검 수 자루를 만들어 마도구를 내리쳤다.
쿵!
마력의 폭발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지만 카리나는 롤랜드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평온이 찾아왔다.
하지만 카리나의 마음은 정반대였다.
‘롤랜드……!’
카리나는 롤랜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히 아이를 건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바로 그때.
롤랜드가 눈을 깜박였다.
“엄마……?”
“롤랜드!”
카리나는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말도 안 돼!’
카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롤랜드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녀에 살갗에 전해져 오는 진동은…….
마정석과 정확히 같았다.
마치, 몸 전체가 마정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롤랜드, 괜찮아?”
카리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아픈 쪽은 롤랜드가 아니라 그녀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괜찮아요.”
그 말대로, 롤랜드는 정말 멀쩡해 보였다.
카리나는 체스를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은 거야?”
“…….”
체스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리나는 아주 조금은 안도했는데, 만약 롤랜드가 괜찮지 않다면 그는 여전히 절망적인 모습일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어…… 괜찮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제대로 말해. 이상하게 말 돌리지 말고.”
카리나의 날카로운 대답에, 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
그는 롤랜드에게로 다가와,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롤랜드는 여느 때와 전혀 다름없는 모습으로 체스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롤랜드도 알아야 할 일이니까…… 그냥 말할게. 지금, 롤랜드의 피가 모조리 마력 유도제로 변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