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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113)화 (113/145)

<113화>

카리나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아스트리드는 자신이 그녀의 생일을 몰랐다는 사실에 무척 섭섭해했다.

아스트리드는 그렇다고 카리나나 클로드를 원망하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그녀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지극히 간단했다.

바로 카리나가 일에 바쁜 틈을 타 깜짝 선물을 하는 것이었다.

‘좋아하겠지? 그렇지?’

아스트리드의 하얀 두 볼에 발그레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는 카리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카리나는 그녀가 준비한 이 희대의 역작에 즐거워할 것이다.

‘왔다!’

아스트리드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녁에는 사용인들도 복도를 잘 다니지 않으므로, 이 발걸음 소리는 분명히 카리나였다.

‘어?’

아스트리드의 눈이 커졌다.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지?’

그녀는 더욱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발걸음 소리는 카리나의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아스트리드가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클로드의 목소리였다.

“오늘 고생했다. 푹 쉬도록.”

“……!”

아스트리드는 깜짝 놀랐다.

클로드가 카리나를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바래다 줄 정도인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카리나 브리튼은 남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재였다.

클로드는 아스트리드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카리나의 능력을 몇 번이나 칭찬하곤 했다.

하지만 클로드는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에서 가신을 방까지 데려다주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어리둥절하던 아스트리드는 바로 그다음 들린 말에 소스라쳤다.

“클로드도요.”

아스트리드는 귀를 몇 번이고 의심했지만 확실했다. 카리나는 클로드를 이름으로 불렀다.

잠시 후.

아쉬운 듯한 클로드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몸조심해라.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그러다가 쓰러지면 큰일이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시네요.”

카리나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스트리드는 클로드와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럴 때 클로드의 반응이 어떠한지는 알았다.

‘자기와 남은 다르다고 하겠지.’

하지만, 클로드의 대답은 아스트리드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고맙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의 이름을 부르듯 한 마디 덧붙였다.

“카리나.”

아스트리드는 두 손을 꼭 잡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말도 안 돼!’

그녀는 어렸지만 알 건 다 알았다.

신분이 높은 남성이, 신분이 낮은 여성에게 자신의 이름을 허락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말도 안 돼. 어떻게 브리튼 양과 각하가…….’

우습게도, 아스트리드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질투였다.

아스트리드는 언제나 자신이 공작가에서 카리나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클로드는 순식간에 아스트리드를 앞질러버렸다.

침울한 감정도 잠시, 아스트리드는 눈을 반짝 빛냈다.

‘각하와 혼인하면, 브리튼 양은 여기를 떠나지 않을 거야!’

카리나의 5년짜리 가신 계약은 제법 기밀 사항에 들어갔지만, 평소 그녀가 워낙 당당하게 얘기를 하고 다녔기에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스트리드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카리나는 모를 것이다.

‘……그래도, 어려울 텐데.’

아스트리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카리나가 능력이 출중하다고는 하나 평민이다.

클로드와 그녀의 사랑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모든 비난은 카리나가 받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카리나는 클로드의 정부로 머물러야 할 지도 모른다.

‘그건 브리튼 양이 거부하겠지.’

아스트리드는 카리나를 잘 알았다.

카리나는 롤랜드와 멜리사를 정부의 자식으로 키울 사람이 아니었다.

‘정부로 사느니 브리튼 양은 토르스를 떠날 거야!’

아스트리드는 결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사람이 결혼까지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몇 분 후.

아쉽게 클로드를 보내고 나서 카리나는 문을 열었다.

‘……?’

카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다가 간 느낌이 났다.

‘청소했나?’

하지만 청소를 했다기엔 방은 여전히 어수선한 상태였다.

‘롤랜드나 멜리사겠지.’

카리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늘상 쉬는 소파로 다가갔다.

그리고, 평소 보지 못했던 물건을 발견했다.

‘아스트리드 님이네.’

카리나는 웃으면서 아름다운 항아리를 집어 들었다.

아스트리드가 자신이 일하는 사이 선물을 놓고 간 모양이었다.

‘그림이…… 안에 있네?’

카리나의 눈이 빛났다.

아스트리드는 항아리의 안쪽 면에 그림을 붙이고 마정석을 넣었다.

그 결과, 그림이 은은하게 빛나는 항아리가 완성되었다.

“아스트리드 님?”

카리나는 혹시나 싶어 아스트리드를 불러보았다.

평소 직접 선물을 건네주기 좋아하는 아스트리드의 성정이 생각나, 혹시 어딘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나 보네.’

카리나는 미소 지으며 항아리를 잘 보이는 테이블 위에다가 올려 두었다. 내일, 아스트리드를 만나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한편, 자신의 방에 도착한 아스트리드는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카리나는 잘 모르는 듯 했지만 그녀의 방과 자신의 방 사이에는 작은 통로가 나 있었다.

아스트리드는 당장 책상으로 달려가, 클로드와 카리나를 도와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낙엽이 바닥에 무성하게 쌓인 어느 가을날.

마침내 카리나는 공개 모집 제도를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다.

이제 클로드에게 알려, 정식으로 모집을 시작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만 하면 되었다.

카리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클로드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클로드는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지만 다행히도 자신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눌 시간 정도는 있어 보였다.

만약 그가 정말로 바빠 보였더라면 카리나는 망설임 없이 별일 아니라며 자리를 빠져나왔을 것이다.

“……카리나.”

클로드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카리나는 조금 민망해져, 그에게 서둘러 서류를 건넸다.

“완성했어요.”

카리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어쩔 수 없었다.

클로드는 서류를 처음부터 끝까지세심하게 읽어보았다.

“인력도 다 보충했고, 이제 시행만 하면 돼요. 결재를 해 주신다면 당장 내일부터 모집을 시작할게요. 곧 겨울이니까요.”

카리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제 그녀는 보고 하나 할 때마다 잔뜩 긴장하지 않았다.

클로드는 좋은 상사였고, 그 어떤 사소한 일이든 세심하게 처리했다.

수 분 후.

클로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결재는 지금 해 놓겠다. 하지만 시행은 겨울 이후로 미루는 게 좋겠군. 시기가 좋지 않아.”

“네……?”

순간, 카리나의 머리가 멍해졌다.

여태까지 자신은 공개 모집 제도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겨울 이후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다니.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흥분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클로드에게도 이유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목소리는 자꾸만 바들바들 떨렸고, 눈가는 붉게 달아올랐다.

“……시기가 좋지 않아.”

클로드가 한숨과 함께, 조금 전 한 말을 다시 한번 토해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카리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가늠하는 것처럼.

“지금은……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

카리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는 근래 들어 이렇게까지 놀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버리올에 대해서 알아차렸을 때보다도 더……!

항상 남부는 카리나에게 안전한 곳이었다.

비록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자유와 안전이 있는 곳.

그게 남부였다.

하지만 그 토르스가, 내전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니.

카리나에게 그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클로드는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단지 가능성일 뿐이니, 실제로 내전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인재 모집을 할 수는 없지. 미안하다, 카리나.”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카리나는 황급히 눈물을 훔쳤지만 이미 클로드에게 들킨 이후였다.

“죄, 죄송합니다.”

카리나는 정신없이 말을 시작했다.

“그, 그으…… 그런 상황인 줄 전혀 몰랐거든요. 조용히, 몸 사리면서 있을게요. 아이들에게도 단단히 주의시키고요. 죄송합니다.”

쾅.

카리나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사과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사과하더니, 밖으로 서둘러 뛰쳐나갔다.

‘…….’

클로드는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했다.

가슴이 꽉 조여왔다.

‘숨겼어야 하는데.’

사실, 클로드는 카리나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말을 심각하게 생각할지 몰랐기 때문에 크게 당황한 터였다.

상황은 카리나가 받아들인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설령 내전이 일어난다고 한들 승기는 황태자와 손을 잡은 남부에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황태자의 동생이 반역을 일으킬 확률은 희박했다.

그럼에도 클로드가 공개 모집을 막은 이유는 일말의 불확실성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체 왜…….

당연히 옳은 결정을 했는데도, 카리나의 눈물을 보는 순간 그 결정을 뒤엎고 싶다는 말인가?

‘내가 미쳤군.’

클로드는 한 손으로 이마를 대충 짚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즉각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미쳤구나, 미쳤어…….”

클로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여태까지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회피하려 애썼던 감정이, 불쑥 커져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가 지나가는 봄바람도 아니었고, 열렬하게 불타올랐다가 이내 식고 마는 여름의 열기도 아니었다.

클로드는 카리나를 사랑했다.

어떠한 것으로도 가릴 수 없는 저 드높은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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