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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111)화 (111/145)

<111화>

카리나는 느닷없는 요청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이드리안이 자신에게 이런 요청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카리나움을 키워내기 위해서.

“여기서요?”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선 빛과 토양이 필요하다.

카리나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예, 부탁드립니다.”

에이드리안은 답지 않게 깍듯이 대답했다.

그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마정석을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문제는 없지.”

클로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대가 하고 싶은대로 해.”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에이드리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곧 익숙한 고양감이 느껴졌다.

이제 마정석을 만드는 건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것만큼 익숙하고 손쉽게 느껴졌다.

클로드와 함께한 훈련 덕분이었다.

수십 초만에 마정석 세 개가 이끼 위에 툭, 하고 떨어졌다.

“……!”

카리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도저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정석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싹이 움트더니, 순식간에 자라 꽃을 피웠다.

마치 카리나가 씨앗을 거대한 성체 식물로 성장시키는 마법을 썼을 때처럼.

하지만 겨우 꽃 몇 포기가 순식간에 성장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카리나는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어난 꽃들은 금세 시들어 열매를 맺었고, 열매는 이끼 위에 떨어져 다시 싹을 움텄다.

순식간에 이끼만 있던 영역에 노란 꽃들이 퍼져 나갔다.

“이래도…… 되는 건가요?”

카리나는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에이드리안이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괜찮은 것 이상이죠. 이건 기적입니다!”

“기적은 기적이지만은……. 이 이끼들도 중요해 보이는데…….”

“그 무엇도 카리나움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카리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카리나움’이 정식 명칭이 된 이후로 반 포기하고 그 이름을 평범하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에이드리안이 카리나움을 입에 담을 때마다 느껴지는 집요한 기색에 소름이 끼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들 좀 보십시오.”

카리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향기가 훅 끼쳐 왔다.

“향도, 색도, 모습도 훨씬 진하지 않습니까? 분명 평범한 카리나움보다 훨씬 뛰어난 효능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그때, 베리티가 카리나를 제치고 훅 다가와 바닥에 반 주저앉았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봉투와 주머니칼을 꺼내 카리나움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에이드리안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놀란 얼굴로 그녀와 에이드리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베리티가 선뜻 에이드리안의 의견에 동의한 것과, 에이드리안이 그녀의 채집을 내버려 두는 것 중 무엇에 더 놀라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십 여 분 후.

광산 구경이 모두 끝났다.

카리나는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공작저로 돌아왔다.

“많이 피곤하지?”

“네에…….”

롤랜드가 크게 하품했다.

아이들은 수십 분 정도 걸었다고 이렇게 피곤해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높아진 강도의 훈련 때문에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아이들은 이렇게 힘들어하는 데도, 정작 카리나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꽃을 피워 내는 정도였다.

“엄마, 무슨 생각해요?”

멜리사가 그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카리나는 자신의 생각을 들킨 것 같아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무 것도.”

롤랜드가 불쑥 끼어들었다.

“엄마, 오늘 되게 멋졌어요.”

“으응?”

카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마정석이랑, 꽃이요!”

롤랜드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꼭 마법 같았어요.”

카리나는 쿡쿡 웃었다.

미래, 제국에서 제일가는 대마법사가 될 아이가 겨우 꽃을 틔우는 정도에 열광하다니.

카리나는 롤랜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론, 롤랜드 바로 옆에서 기대하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는 멜리사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우울해져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리나는 내일은 마정석을 만드는 것에 더더욱 집중해보자고 결심하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아침.

카리나는 바로 혼자서 훈련을 시작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바로 방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산더미처럼 쌓인 상자들 때문이었다.

“……?”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포장지가 제법 고급스러운 것이,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되는 물건들인 듯했다.

쌓아 놓은 위치가 하필 자신의 방문 바로 앞인 게 이상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방문 앞에 쌓아 두면 위험할 테고 감히 공녀의 방문 앞에 쌓아 두진 못할 테니 납득이 갔다.

그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마침 청소를 위해 복도를 지나치던 사용인에게 물었다.

“이것들은 뭔가요?”

사용인은 그녀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어…… 브리튼 양의 생일 선물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제 생일 선물이요?”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생일을 깜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카리나는 당연히 그녀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리나에게 생일은 단순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일 뿐, 축하받는 날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젯밤, 그 어떤 기대나 설렘도 없이 잠들었고, 하고많은 평범한 날처럼 오늘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카리나는 천천히 선물 더미로 다가갔다.

공작가의 문양이 눈에 띄었다.

‘……역시.’

그때, 롤랜드와 멜리사를 정식으로 입양하는 과정에서 생일을 기록했다.

아마 클로드가 그 사소한 숫자들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따스한 기운이 쿵쿵거리는 심장부터 시작되어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내, 생일이구나.’

처음이었다.

축하받는 생일은.

‘어……?’

카리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장 큰 상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카리나는 황급히 상자의 포장을 풀었다.

클로드가 그렇게 생각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동물이라도 이 안에 갇혀 있으면 큰일이었다.

상자를 연 바로 그 순간.

“엄마!”

카리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롤랜드와 멜리사가 뛰쳐나왔다.

아이들은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지만 갑갑해 보이지는 않았다.

“저희가 선물이에요!”

카리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상태로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파닥거렸다.

“너희들, 알고 있었니?”

“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생일이잖아요.”

“…….”

목이 꽉 멨다.

카리나는 정식 입양 서류를 제출하던 바로 그날까지도 아이들에게 생일을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롤랜드와 멜리사는 한 번 지나가듯 들었던 카리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나머지 상자도 열어 봐요, 얼른요!”

카리나의 감동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롤랜드가 카리나에게 보챘다.

카리나는 웃으며 포장을 하나씩 뜯었다.

아마 아이들도 클로드의 선물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

카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옷……?’

카리나는 신분이 들통나 상복을 벗은 이후에도 어둡고 장식이 없는 옷들을 입었다.

딱히 그런 옷들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더러운 게 묻어도 티가 잘 나지 않고, 어느 상황에서나 결례가 아닐 옷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일 선물’은 평소 입던 옷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였다.

하늘하늘한 소매에 나풀거리는 치맛단, 은하수를 옮겨 놓은 것처럼 고급스럽게 반짝이는 연보라색 옷감은 어딜 보나 귀족 영애들이나 입을 듯한 옷이었다.

‘예쁘다…….’

카리나는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멜리사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예뻐요!”

“엄마, 얼른 다른 것도 풀어 봐요.”

롤랜드는 계속해서 카리나를 재촉했다.

카리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른 선물들도 하나씩 풀어 보았다.

부피가 작은 상자들만 몇 개 남아 있었다.

‘……!’

카리나는 남은 선물들을 모조리 풀어보자마자 롤랜드가 왜 그렇게 자신을 재촉하였는지 깨달았다.

아름답게 세공된 귀걸이, 목걸이, 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짙푸른 색이 얼핏 보아선 사파이어 같았지만 카리나는 이것들의 정체를 잘 알았다.

‘마정석이야.’

그녀는 롤랜드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고마워, 준비하느라 정말 고생했겠어.”

롤랜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신이 나서 한 개씩 가리키며 종알거렸다.

“이건 치료 마법이고요, 이건 방어 마법, 이건 공격 마법. 가장 단단하고 좋은 마정석만 골라서 마법들을 한계까지 새겼으니 각각 세 번은 쓸 수 있어요.”

카리나는 액세서리들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아이들은 그녀의 생일을 위해 이렇게나 열심히 준비해 주었다.

“정말 고마워. 여태까지 생일 중에서 제일…… 놀랍구나.”

당황스럽게도, 목이 꽉 멘 소리가 나왔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을 이어가려 했다.

아이들의 정성을 단순히 ‘놀랍다’라는 말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카리나는 지금 그녀의 심장에 아롱거리는 낱말들을 아이들에게 천천히 일러 주었다.

“행복해. 정말로. 너희들이 있어서…… 너무나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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