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10)화 (110/145)

<110화>

“잠자는 마정석?”

카리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제 그녀는 아이들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지금 역시 그랬다.

평범한 집 부모였다면 멜리사가 그 나이다운 천진한 공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리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지난 경험들이, 멜리사의 말을 허투루 넘길 수 없게 해 주었으니까.

“네. 땅속에 있어요. 요정들이 숨겨두었나 봐요.”

멜리사가 고집스레 말을 되풀이했다. 순간, 그녀의 말을 이해한 카리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땅속에 있는 마정석들이라니.’

카리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단 하나였다.

마정석 광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멜리사를 향해 물었다.

“마정석이 얼마나 있니?”

“많아요. 엄청 많아요. 대신 다 잠자고 있어요.”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을 잔다는 말은 원석을 의미할 것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 사용인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체스를 불러 주세요.”

“엄마……!”

멜리사는 물론 롤랜드의 얼굴까지 환해졌다.

아이들은 그녀가 이렇게 바로 멜리사의 말을 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수십 분 후.

“브리튼 양?”

체스가 얼떨떨한 얼굴로 방에 들어왔다.

낮잠을 자고 있었는지 눈이 반쯤 접혀 있었다.

그 모습에 조금 미안해졌다.

“자고 있었으면 오지 말지.”

“어떻게 안 와. 브리튼 양이 돌아왔다는데.”

카리나가 그의 대답에 감동하려고 할 때, 체스가 사족을 덧붙였다.

“보나마나 무슨 귀찮은 일을 시키려는 거겠지만. 이번에는 뭐야?”

“……멜리사, 아까 엄마에게 해 준 얘기를 체스에게 들려주겠니?”

“네!”

멜리사는 체스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체스는 순식간에 잠이 깨인 듯,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멜리사를 바라보았다.

카리나는 체스를 향해 캐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거, 맞지?”

“맞을 거야.”

그는 허리를 굽혀 멜리사와 눈을 맞추었다.

“멜리사, 계속 뜨거운 강에 데려다 달라고 한 게 그것 때문이었어?”

“네.”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말을 해야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

“엄마가 마정석을 만들잖아요. 그것들이 발견되면…….”

멜리사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카리나의 눈이 촉촉해졌다.

더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날 생각한 거구나.’

아이들은 남부에 마정석 광산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카리나가 마정석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그 두 가지 사실은 카리나의 독보적인 위치를 생성했다.

멜리사는 그 위치를 깨트리기 싫었던 것이다.

물론 남부에서의 카리나는 단순히 마정석 생산자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그런 복잡한 사실까지 알기는 어려웠으리라.

“상관없어.”

카리나가 고개를 힘껏 저으며 말하자, 멜리사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래도요.”

체스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마정석 광산은 한시라도 빨리 개발해야 해. 당장 각하께 보고를 올려야겠어.”

“믿어?”

카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하지.”

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사와 롤랜드의 말이라면, 믿을 수밖에.”

* * *

마정석 광산 개발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포드 상단의 성공으로 인해 남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한 덕이었다.

아이들은 광산 개발 현장에 직접 가 보고 싶어했지만 클로드의 반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는 마력 감응이 뛰어난 카리나와 아이들이 있기에는 마정석 광산 개발 현장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카리나도 그 사실에 동의했다.

“개발이 다 끝나면 가자. 참을 수 있지?”

“네.”

롤랜드와 멜리사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카리나는 내심 온천이 아이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거리에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거리가 얼마 멀지 않았더라면, 롤랜드와 멜리사는 어른들 몰래 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 달 후.

마침내 마정석 광산이 완성되었다.

카리나는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 당황했는데, 새로운 마정석 광산의 발견에 흥분한 클로드가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한 결과였다.

남부의 재정이 걱정된 카리나가 공사 도중 따로 치체스터 경에게 물어보기 까지 할 정도로.

‘치체스터 경,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치체스터 경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기까지 했다.

카리나는 남부가 통째로 미쳐버린 게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치체스터 경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예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은 포드 상단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일어나는 손실은, 광산에서 캐낸 마정석을 수출하기만 하면 그 수십 배 이익으로 돌아올 겁니다.’

‘……!’

가문에 충성하는 상단의 존재가 그렇게나 중요하다는 점을, 카리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 빨리 가요!”

롤랜드가 카리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이는 동생의 활약에 질투하기는커녕 매우 기뻐 보였다.

체스의 귀띔에 따르면, 롤랜드는 혼자 칭찬을 받을 때보다 같이 칭찬을 받을 때 훨씬 기뻐한다고 했다.

얼핏 보면 우애 좋은 오누이였지만 그 이유를 아는 카리나는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카리나는 마음 놓고 기뻐하기로 했다. 클로드의 오랜 근심이 드디어 해결되는 날이었으니까.

“브리튼 양.”

현장에 도착하자 클로드가 그들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카리나는 그와 반갑게 인사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체스와 와일더는 물론, 베리티와 에이드리안까지…….

‘어?’

베리티와 에이드리안은 함께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둘 중 누구도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려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제법 화기애애해 보이기까지 했다.

카리나가 북부로 떠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둘의 사이는 끔찍했기에 그사이 화해한 모양이었다.

“이미 들어가서 점검했어. 부인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보증하지.”

그는 카리나의 감사 인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자신의 측근들을 향해 손짓했다.

‘아서는 없네?’

모든 측근들이 모였건만, 기사단장인 아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황태자의 호위를 맡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금방 돌아가리라는 예상과 달리, 황태자는 남부에 아주 이주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카리나는 내심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클로드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이디 먼저.”

클로드는 카리나의 등을 슬쩍 밀어주었다.

그 의미를 알았기에, 카리나는 미소로 응답했다.

‘멜리사의 공을 인정해 주는 거야.’

클로드는 이제 겨우 일곱 살에 불과한 꼬마 아이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잠시 후.

카리나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마정석 광산에 발을 들였다.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광산 안에선 크게 특이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직 원석들을 본격적으로 파내기엔 시기상조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리사와 롤랜드는 잔뜩 흥분한 듯했다.

사실, 카리나도 광산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으므로 가슴이 뛰었다.

“멋지지?”

체스가 마치 자신이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으쓱거렸다.

“그냥 동굴 같은데요.”

베리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건강에 영 좋지 않은, 인공적인 동굴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대체 누가 솔베타인 선생을 데려온 거야? 잔소리만 할 게 뻔한데.”

와일더가 툴툴거렸다.

최근 들어 기력이 쇠해진 그는 베리티에게서 진찰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베리티가 잔소리를 한가득 쏟아 낸 모양이었다.

“잔소리가 아니라, 와일더 씨의 수명을 십 년은 늘려줄 충고이니 잘 들으시는 게 좋을 걸요.”

베리티는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와일더는 무어라 대답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입을 가만히 닫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에이드리안이 잔뜩 흥분하며 벽면에 코를 바싹 붙이며 외쳤기 때문이었다.

“이끼다!”

이끼라니?

카리나는 호기심이 돋아 에이드리안의 곁으로 다가갔다.

동굴 형태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광산이다.

서늘하고 습기에 차 있으니 이끼가 생긴다 한들 이상할 게 없으나,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끼가 생긴다는 건 이상했다.

“어디 있어요?”

카리나는 질문과 동시에 이끼들을 발견했다.

벽면 전체와 바닥 일부를 이끼가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드리안은 이끼로부터 눈을 떼더니 카리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에이드리안 경……?”

수 초 후.

에이드리안의 또렷한 음성이 광산 안에서 울렸다.

“브리튼 양, 여기서 마정석을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