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06)화 (106/145)

<106화>

「비에 흠뻑 젖은 롤랜드는 음울한 얼굴로 저택의 문을 열었다.

마물의 사체가 썩는 악취가 훅하고 느껴졌다.

‘이런 곳에 숨어 있었다니.’

버리올이 은신처로 선택한 곳은 소박하고 음침한, 다 쓰러져 가는 저택이었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숨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롤랜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버리올이 이 근방을 완전히 빠져나간 건 확실했지만, 이 집엔 다양한 공격 마법들이 걸려 있을 것이다.

‘역시.’

롤랜드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덮쳐 오는 사악한 기운의 마법을 부수었다. 어떤 원리인지 확인해 볼 겨를도 없었다.

연이어 다른 마법들이 덮쳐 왔으니.

전투에는 잔뼈가 굵은 롤랜드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다른 이가 들어왔다간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버리올이 깔아 놓은 공격 마법들을 모조리 파괴한 이후.

롤랜드는 버리올이 실험실로 삼았을 만한 장소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또 무슨 기괴한 마법을 개발하고 있었을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버리올은 마치 살육과 파괴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온갖 잔혹한 마법을 개발했다.

이곳에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롤랜드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꼭두각시 마법이라니.’

살아있는 사람을, 버리올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마법.

당연히 정신 자체를 부수는 선행 마법부터 개발해야 했기에, 두 개의 사악한 마법식이 서로 그물처럼 엉켜 있었다.

저택의 나머지 방들을 수색하는 덴 꼬박 하루가 걸렸다.

마침내 버리올의 마법과 행방에 대한 단서를 모두 그러모은 롤랜드는 낡아빠진 소파 위에 엎어졌다.

‘피곤해.’

이대로 잠이 든다면 소원이 없을 듯했지만, 증거들을 안전한 곳에 모아 둬야 했다.

피곤에 지쳐 다크서클이 내려온 롤랜드가 무거운 발걸음을 하나 둘 옮길 때였다.

‘……!’

목덜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함정이야!’

롤랜드는 몸을 날리고 굴렸다.

당연히 열심히 그러모은 단서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이 저택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

그의 오랜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쾅!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연이어 그의 머리 위로, 발치로, 그리고 정면으로 온갖 공격들이 날아드는 동시에 발 닿는 곳마다 바닥이 푹푹 꺼졌다.

저택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건…….’

롤랜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버리올의 계획을 드디어 알아차린 탓이었다.

‘완전히 착각했어!’

저택을 들어왔을 때.

자신은 공격 마법들을 해제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대였어.’

버리올이 깔아 놓은 공격 마법들은, 저택 전체를 자폭시키는 거대한 마법의 잠금쇠들이었던 것이다.」

카리나의 눈이 공포에 질려 번쩍 떠졌다.

글씨를 읽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나가야 해!’

아서의 단단한 손이 카리나를 사정없이 흔들다가, 그녀의 눈이 떠진 순간 멈추었다.

카리나는 즉각 그를 잡아당겼다.

“경!”

카리나는 무어라 말하려 하는 아서를 제지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다.

“여기서 당장 나가야 해요.”

침입자를 막는 것처럼 보였던 실험실 입구의 마법들을, 아서는 손쉽게 해지했다.

저택 전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마법의 잠금쇠들을 직접 풀어버린 것이다.

마치, 롤랜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서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조금 전 쓰러진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함정이에요. 일단 나가요!”

다행히 아서는 더는 묻지 않았다.

당황한 에보슨이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카리나와 아서가 뛰기 시작하자 따라오기 시작했다.

쾅!

카리나는 자신들이 아주 조금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그들의 뒤편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

겁에 질린 에보슨은 누구보다도 빨리 줄행랑을 쳤지만, 조금 전 쓰러진 여파가 남아 있는 카리나는 두 남자만큼 빨리 달리기 힘들었다.

“허어억…….”

카리나는 비틀거리면서도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앞으로 달려나갔다.

바로 그때.

아서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고 뛰기 시작했다.

카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정말, 이런 순간마저 짐 덩어리일 뿐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저택의 입구까지 단 한 발자국만을 남겨 놓은 순간.

우레와 같은 굉음과 함께 수 층짜리 저택 전체가 그들 위로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

온갖 목재와 석재가 그들 머리 위를 덮치기 일보 직전.

카리나는 롤랜드가 건네 준 마정석들을 손에 한가득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금색 찬란한 빛이 시야를 한가득 메우더니,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재들을 박살 내는 동시에 세 사람을 보호하고도 충분히 남을 듯한 보호막을 쳤다.

아서는 한 손으론 여전히 그녀를 끌어안은 채, 그리고 다른 손으론 에보슨의 목덜미를 쥐고 잔디밭으로 뛰어들었다.

“흐아아악……!”

에보슨이 여태까지 참았던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카리나는 멍하니 무너져 가는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저택의 창문들은 산산이 부서지며 땅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수백 여년 간 브리튼 남작가의 터전이 되어 준 골조가 크게 뒤틀리며 땅으로 꺾어져 내렸다.

화염 마법까지 걸어놓았는지, 시뻘건 불길들이 무너져 가는 저택 위에서 넘실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 분만에 남작저는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연기만을 흩날렸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아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촉망받는 기사인 그조차도 이런 상황은 처음인 듯했다.

카리나는 한 이름을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버리올.

어쩌면 그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 그녀는 완전히 확신했다.

적은 버리올이었다.

이제 겨우 열 살에 불과할!

갑자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서가 얼굴을 찡그렸다.

“또, 비라니……. 다들 일어서. 잿물을 뒤집어쓰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카리나는 주춤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거대한 잿더미가 되어 버린 저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

녹안이 휘둥그레졌다.

비에 젖어 점점 무너져 가는 시커먼 잿더미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카리나는 홀린 듯 잿더미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

카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한 번에 소진해버린 롤랜드의 마법은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들이 완전히 저택을 빠져나간 지금도 방어막을 형성하며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다 무너져 버린 전쟁터에 남은 한 줄기 희망처럼.

아서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발걸음을 재촉하기는커녕 우뚝 멈춰 선 채 찬란한 방어막을 고요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답군.”

카리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 * *

남부로 돌아오는 길 내내 카리나의 머릿속은 온통 버리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버리올이 쓰던 마법, 버리올이 쓰던 수법, 그리고 때마침 떠오른 글자까지.

모든 정황은 적이 버리올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 살……. 올리버 라크포드도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어.’

올리버와 버리올.

서로 닮은 이름마저 우연일 것 같지 않았다.

카리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렝케 경과 함께 있던 바로 그 초라하고 학대받은 소년이 버리올이 맞다면…….

‘너무 이상해.’

아무리 천성이 사악하다 한들 겨우 열 살이다.

카리나는 천재라 불리는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나이대 아이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알았다.

하지만 버리올은, 그 한계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가뿐히 무시해버렸다.

갑자기, 소름이 카리나의 등줄기를 타고 내달렸다.

렝케 경을 죽인 마법을 보았을 때, 그녀는 버리올은 너무 어리니 자신처럼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버리올이야. 버리올이 전생의 기억까지 가지고 태어난 거야!’

그렇다면 많은 의문점들이 설명이 된다.

물론, 카리나가 올리버로 태어났다면 그녀는 결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렝케 경과 같은 성정의 사람이, 버리올로 환생했다면?

세계를 무너뜨리고도 남을 만한 힘과 정보를 손에 넣었는데 그저 평범한 고아 출신 마법사로 사는 데 만족할까?

절대 아닐 것이다.

카리나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상대해야 할 적의 위압감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 탓이었다.

이내 카리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도움을…… 요청하자.’

버리올이 자신과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

그녀 혼자의 힘으로 아이들을 지키기엔 역부족이니,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클로드에게.

카리나는 나지막하게 신음했다.

자신은 정말로 클로드에게 지금 이상의 부담을 얹어 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많은 걸 등에 지고 있는 남자가 아닌가.

하지만 카리나는 이기적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살고 싶어.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는 걸 보고 싶어. 토르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고 싶어…….’

카리나는 어느새 자신의 눈가가 축축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황급히 눈물 몇 방울을 훔쳐 내고, 애써 마차의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일이면 토르스에 도착할 것이다. 감상에 젖을 여유 따윈 없었다.

다음날 정오.

카리나는 당연히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클로드에게 상황을 보고할 생각이었다.

물론, 자신을 마중나온 아이들을 안아주고 나서.

하지만 카리나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공작저는 카리나가 보아온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심지어 아스트리드가 티파티를 열었을 때보다 더더욱.

“엄마!”

아이들이 인파를 제치고 카리나를 향해 달려왔다.

주위의 시선이 모조리 그들을 향했지만, 카리나는 개의치 않고 두 팔 크게 벌려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보고 싶었어요…….”

롤랜드와 멜리사가 카리나의 품속에서 울먹거렸다.

카리나는 바들바들 떠는 아이들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멜리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정석, 왜 다 썼어요?”

“엄마, 마정석 다 쓴 거예요?”

뒤이어 롤랜드의 당장이라도 울 듯한 목소리까지.

카리나의 몸이 잠시 굳었다.

클로드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만 생각한 탓에, 아이들에게 할 설명은 전혀 생각해 두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함정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할 생각은 없었기에, 카리나는 애써 말을 돌렸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나중에 설명해 줄게.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니? 무슨 일 있어?”

아이들은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별거 아니에요, 마정석 얘기를 해 주세요.”

난처한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아서가 그들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카리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밝게 입을 열었다.

“경, 당장 각하께 보고하러 가야겠어요.”

일단 클로드에게 보고하면,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도 감이 잡힐 것이다.

아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건 어려울걸.”

“왜요?”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다더군. 각하께선 그분과 함께 계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