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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103)화 (103/145)

<103화>

순간, 침묵이 흘렀다.

아서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자리의 모두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검집에 손을 올려놓지도 않았는데도 그 특유의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죽일 땐 죽이더라도, 일단은 받아낼 건 다 받아내야죠. 보아하니 이 작자 때문에 타이슨 씨가 진 빚이 상당한 것 같은데.”

“그게, 실은…….”

타이슨이 고개를 떨구며 그간의 빚을 읖조렸다.

카리나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대충 계산만 해 보아도 평범한 가정의 5년 치 생활비였다.

토비아스의 혈색이 좋다 했더니,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돈, 전부 돌려준다고 했죠?”

“예, 예!”

토비아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아서를 힐끔거렸다.

“다, 당장 돌려드리겠습니다.”

“돈은 어디에 있죠?”

토비아스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아서가 검집으로 손을 옮기자 곧바로 실토했다.

“집의 금고에 있습니다!”

카리나는 조금 안도했다.

만약 토비아스가 은행이나 사설 금고에 맡겼다면 지금 당장 돈을 돌려받지는 못할 것이다.

“당장 출발해요.”

그들은 걱정스러운 얼굴의 텟사를 뒤로하고 바로 빗길로 나섰다.

카리나는 토비아스가 무언가 술수를 쓰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그 정도의 배짱도 없는 작자인 듯했다.

카리나와 아서는 토비아스에게서 몇 걸음 뒤떨어져서 걸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토비아스가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면 몰라도, 여기에서 경이 저자를 죽였다간 각하께 누가 될 수밖에 없어요.”

“조용히 처리해 버리는 것도 쉽다만.”

“새어 나가면요? 경이 하는 일들은 모두 각하께서 한 일로 알려진다는 걸 기억하세요.”

사실, 카리나는 그 이유가 아니라도 토비아스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토비아스를 죽인다면 그의 사기 행각은 쉽고 간단하게 끝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자들은?

카리나는 자신에게 사기를 친 의사가 세 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기억했다.

‘본보기로 삼아야 해.’

토비아스라는 사기꾼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널리 알려져야 했다.

그러려면 조용히 죽이고 파묻어 버리는 방식은 피해야 했다.

잠시 후, 도착한 토비아스의 집은 카리나가 기억하던 그의 진료소와 완전히 달랐다.

본디의 터전에서 처벌받고 쫓겨난 의사의 진료소라기보단…….

마치, 이 근방에서 가장 잘나가는 의사의 진료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예전보다 훨씬 잘살잖아?’

카리나는 토비아스의 피해자가 타이슨과 텟사 뿐만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타이슨이 씁쓸하게 말을 토해냈다.

“우리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집을 옮겨야 했는데…….”

진료소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 의사 면허증이 눈에 띄었다.

‘그런 짓을 했는데도 취소가 안 되었구나.’

의사 면허증은 의사 협회에서 발급하니, 클로드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저, 돈은 다 금고에 숨겨 놔서…… 혼자 다녀와도 됩니까?”

“그건 안 되겠는데요.”

그때, 아서가 불쑥 나섰다.

“아니, 혼자 가도 상관없다. 단.”

그는 토비아스를 지그시 응시했다.

“허튼 수를 부렸다간 그 목엔 머리가 더는 걸려 있지 않을 거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토비아스는 겁에 질린 얼굴로 아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서둘러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 후.

토비아스는 비밀 금고에서 엄청난 양의 돈이 담긴 자루를 끙끙거리며 들고 나왔다.

카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체격 좋은 타이슨이 휘청거릴 정도로 많은 돈이었다.

토비아스는 카리나에게도 굽신거리며 작은 주머니를 내어주었다.

“그, 그때 못 드린 돈…… 여기 있습니다.”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주머니를 열어 보니 웃음이 나올 정도의 초라한 돈 몇 푼이 들어 있었다.

지금으로선 카리나가 입고 있는 옷 한 벌 못 살 돈이었다.

하지만 토비아스에게 사기를 당하던 시절의 자신에게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액수였다는 걸, 카리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

“세어 보셔도 좋습니다. 전부 장부에 기록한 만큼 넣었으니까요.”

토비아스는 타이슨과 카리나가 액수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 다른 게 더 없다면, 저는…… 허어억……!”

그제야 진료소의 상황을 파악한 토비아스는 소스라쳤다.

카리나는 웃음을 애써 삼켰다.

그가 돈을 찾아서 들고나오는 사이에, 아서가 무심한 얼굴로 진료소를 반쯤 박살을 내 놓았던 것이다.

카리나 또한 그를 말리지 않았다.

아니, 은근히 부추기기까지 했다.

이 값비싼 기기들은 환자들을 속이는 데 사용되었을 테니까.

“이게 다 무슨 짓입니까!”

토비아스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러면 어떻게 먹고 살라고……!”

“정당하게 일해서 먹고 사셔야죠.”

카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전부 사기를 치는 데만 이용하던 기기들 아닌가요?”

“겨, 경비대에 알리겠습니다!”

“경비대가 네 말을 들을까, 아니면 내 말을 들을까?”

아서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여태까지 한 번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으나,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한 듯했다.

토비아스가 겁에 질린 얼굴로 주춤거리는 걸 보면.

바로 그때.

무언가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분명 두 눈으로 그것을 보았는데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 한 방울 없이 깔끔하게 절단된 엄지손가락 두 개.

“으아아악!”

순식간에 토비아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는 잘려 나간 두 손가락을 남은 손가락들로 그러모으고는 벌벌 떨며 뒷걸음질 쳤다.

“마, 마법사……!”

“마법사라니, 개가 웃겠군.”

아서는 토비아스를 쏘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검집에조차 손을 대지 않은 채였다.

‘검기구나.’

카리나는 깨달았다.

토비아스에 대한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카리나는 왜 아서가 그의 두 손이 아닌, 엄지손가락만 잘라 버렸는지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엄지손가락이 없다고 당장 생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심지어 의사로서의 활동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화려하고 복잡한 기기들을 사용하며 환자들을 현혹시키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들은 넋이 나간 채 아수라장이 된 진료실 바닥에 주저앉은 토비아스를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 내내 타이슨은 말이 없었다.

그는 돈 자루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산을 쓸 수 없어 비를 전부 뒤집어쓰는데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집으로 돌아간 타이슨은 돈이 잔뜩 자루를 현관 옆에 떨어트리고, 거실을 향해 달려갔다.

“타이슨!”

텟사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을 다 돌려받았어. 이제 빚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

텟사는 잠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카리나는 조금 뒤늦게 거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감동적인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사실이 있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감격한 얼굴로 연거푸 감사 인사를 하는 텟사에게 휘말리고 말았다.

카리나는 별것 아니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절대 별것 아닌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나, 이 부부에게나.

카리나는 텟사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번 가을과 겨울뿐만이라도 토르스에서 지내시는 건 어떤가요?”

“토르스요?”

텟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여기보다는 훨씬 따뜻하니까요. 부인의 병세에도 차도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무엇보다도 훌륭한 의사가 있어서, 한번 진찰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요.”

“……!”

텟사는 입을 틀어막더니, 동그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타이슨 역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눈으로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카리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물론 자신이 호의를 보였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감동할 사안은 아니었다.

타이슨이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토르스는 텟사의 고향입니다. 떠나온 지 십이 년은 지났을 텐데……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게 되겠군요.”

카리나는 토르스에 가족이 있다면 왜 진작 요양하러 가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고향에 마음 붙일 가족 한 명 없는 자신과 같은 상황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제가 여기서 며칠은 머물러야 하니까, 있다가 같이 출발해요. 타이슨 씨도 같이 가실 거죠?”

타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남은 빚을 갚아야 합니다. 원금이야 생겼다 해도, 이자가 제법 불어나서……. 다 책임져야죠.”

카리나는 기가 막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도 그 돌팔이에게서 다 받아내셨어야죠!”

타이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순 없습니다.”

“…….”

카리나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타이슨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자, 전부 얼마죠?”

“……예?”

“갚으려고요. 그때, 저와 제 아이들의 목숨을 구해주신 빚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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