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02)화 (102/145)

<102화>

카리나는 똑똑히 기억했다.

‘페테라라고 했었지. 치사율이 50퍼센트를 넘는다고.’

이 사기꾼은 엉터리 병명 진단과 버드나무 껍질 가루를 주는 대가로 카리나가 생애 처음으로 받은 월급의 근 절반을 홀랑 챙겨갔다.

지금은 길거리에서 잃어버려도 조금 아쉽고 말 금액이었지만 당시의 카리나에겐 달랐다.

‘설마, 타이슨과 텟사도 내가 당한 것과 같은 걸 당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카리나는 정말로 이 의사를 용서할 수 없을 듯했다.

“누구십니까?”

의사는 카리나가 자신을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자 당황한 듯 물었다.

카리나는 순간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카리나는 그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문을 열어 주며 안으로 친절하게 안내했다.

“들어오세요.”

의사는 카리나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거실로 걸어갔다.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텟사가 그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토비아스 선생님.”

토비아스는 텟사가 앉아있는 안락의자로 다가갔다.

“부인, 오늘 몸은 좀 어떠십니까?”

“견딜 만해요.”

토비아스는 왕진 가방을 열고 진찰을 시작했다.

그리고…….

단 1분만에 진료가 끝났다.

피가 식었다.

카리나는 베리티가 진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봐왔다.

그녀는 절대 환자를 무가치한 물건을 대하듯 살피지 않았다.

오히려 가능한 최대한 꼼꼼하게 살폈다.

몇 번을 본 환자라도 마찬가지였다. 볼 때마다 증세가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토비아스는 그 반대였다.

‘그때, 롤랜드를 진찰했을 때도 이랬겠구나.’

간신히 조절 중인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다행히 베리티 덕분에 나았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롤랜드가 당시 겪은 고통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선 토비아스는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저번보다는 조금 낫군요.”

“정말인가요?”

텟사가 눈을 빛냈다.

“예. 약을 계속 먹는다면 내년 여름쯤엔 완치도 가능할 겁니다.”

그는 텟사를 향해 약주머니를 건넸으나, 텟사는 받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 돈이 다 떨어져서요.”

그 순간, 토비아스의 얼굴에 험상궃은 기운이 지나갔다.

카리나만 눈치챈 게 아닌 모양인지, 텟사의 몸이 순간적으로 위축되었다.

그녀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 당연히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라 이번 한 주만 약을 안 먹으면……. 조금 증세가 좋아졌다고도 하셨으니까…….”

“안 됩니다.”

토비아스가 심각하게 대답했다.

“한 주라도 약을 거르면 증세가 훨씬 나빠질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있어요.”

“그럼, 절반만 드릴 테니 절반만 드십시오.”

텟사는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토비아스는 약주머니에서 약재들을 꺼내, 정확히 절반씩 배분하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나무껍질들이 대부분이었다.

카리나는 베리티가 일전에 일러 준 것들을 떠올렸다.

‘버드나무와 벚나무의 껍질은 돌팔이들이나 쓰는 겁니다. 뭐,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절대 주된 약은 못 되거든요. 그것들만 약으로 준다고 하면 욕을 한바탕 하고 내쫓으세요.’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카리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버드나무와 벚나무 껍질들이네요?”

토비아스의 손이 순간적으로 경련했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일 줄이야.

‘고마워요, 베리티.’

베리티는 두 번 다시는 속지 말라며 말린 버드나무와 벚나무 껍질들을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 아닙니다. 매화노루풀과 황련도 있습니다.”

“안 보이는데요?”

“이번 주엔 다 떨어져서…… 저번 주까지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약 가격을 깎아 주지 않죠? 황련이랑 매화노루풀이 중요한 약재 아닌가요?”

텟사가 불안한 눈으로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저, 손님, 이분은…….”

카리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 의사는 식중독에 걸린 제 아들이 웬 불치병에 걸렸다고 하고, 제가 가진 거의 모든 돈을 가져가셨어요. 약은 버드나무 껍질 하나였고요.”

“……!”

의사는 경악한 얼굴로 카리나를 바라보면서 뒷걸음쳤다.

그제야 그녀를 알아본 듯했다.

‘아예 잊어버린 건 아니었구나.’

단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었던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그의 공포에 가까운 반응 덕에 확신했다.

그녀에게 사기 친 의사들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클로드의 약속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잠, 잠깐……!”

“이제 기억나나 보네요? 까맣게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텟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토비아스 선생님, 여태까지 저희에게 사기를…….”

토비아스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곧장 달아나기 시작했다.

카리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타이슨이 경악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쟁반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카리나는 크게 소리 질렀다.

“잡아요!”

그는 다기와 간식이 담긴 쟁반을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고는 토비아스를 쫓아갔다.

무거운 왕진 가방을 든 의사는 타이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퍽!

타이슨의 주먹이 토비아스의 얼굴에 적중했다.

“끄어헉!”

토비아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는 코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코피가 터진 모양인지 비싸 보이는 재킷 위로 핏물이 번졌다.

“여태까지, 네놈 때문에 우리 집이 얼마나…….”

타이슨은 부들부들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카리나는 토비아스에게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토르스에서 쫓겨나 북부까지 와서도 사기라니, 본성은 어디 안 가네요. 그쵸?”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당하기만 하던 시절은 지났다.

카리나에겐 이 사기꾼을 궁지로 몰 정보와 힘이 있었다.

타이슨이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한 번 더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돈!”

토비아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여태까지 받은 돈을 다 돌려드릴 테니까!”

퍽.

타이슨의 주먹이 다시 한 번 토비아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는 피가 묻은 주먹을 바지에 문지르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내 아내는……. 분명, 낫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것이…….”

카리나는 토비아스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세요.”

토비아스는 몸을 흠칫 떨었다.

카리나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토비아스는 아마, 자신이 아닌 그녀 뒤에 있는 토르스 공작에게 겁먹은 것이라고.

“……부인의 병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뭐……?”

타이슨은 반쯤 혼이 빠져나간 듯했다. 카리나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럼, 고치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처음부터,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는 거군. 병명부터 치료까지!”

그는 토비아스의 멱살을 쥐려는 듯 손을 뻗었다가, 한 줄기 이성을 붙잡은 듯 뒤로 물러났다.

토비아스가 고개를 숙였다.

“부인의 병은 래프토가 맞습니다. 확실합니다. 진단이 틀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잠시 망설였다.

“날씨에 따라 병세가 많이 좌우되는 병입니다. 가을부터 증세가 많이 심해졌죠? 치사병은 아니지만은…… 앞으로 계절에 따라 이렇게,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되풀이할 겁니다.”

“하지만 텟사는 이제 일어서지도 못해!”

타이슨이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그게 다 날씨 때문이라는 건가?”

“예.”

토비아스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기운을 되찾는 듯했다.

“우리 제국에는 사계절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제가 딱히 병세를 악화시킨 것도 아닙니다.”

타이슨이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아니었다면 다른 의사들을 찾아가 보았겠지.”

“그 의사들이라고 뭐가 다를 것 같습니까? 정직하다면 가을과 겨울이 존재하는 한 불치병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댁을 절망에만 빠트렸겠지요. 저는 단지 희망을 드렸을 뿐입니다.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

“…….”

카리나는 토비아스의 뻔뻔함에 놀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때, 여태까지 조용히만 있던 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시간이 아깝군. 그냥 죽여 버리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