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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98)화 (98/145)

<98화>

그 한 음절에서 느껴지는 조심스러움과 다정함에, 문득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클로드는 카리나가 감상에 젖어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누가 있을 땐 브리튼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 그게 그대의 지위를 보장할 테니까.”

카리나는 조금 섭섭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클로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면 사생아라는 출신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각하라니.”

클로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대 역시 내 이름을 부르기로 하지 않았나.”

“……아.”

카리나는 그제야 얼마 전, 그녀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클로드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해냈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걸요. 제겐 이미 성이 있고…….”

“하지만 그대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클로드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나 역시 그래, 카리나.”

카리나는 할 말이 없어진 나머지 입을 다물었다.

클로드는 그녀의 꺼려 하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그대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었으니, 그대도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었으면 해.”

카리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클로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카리나는 용기를 내어 되물었다.

“정말, 괜찮은가요?”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전에 한 것 같은데.”

카리나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클로드에게서 많은 것들을 받았다.

그러니 그의 부탁은 무조건 들어주어야…….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카리나는 깨달았다.

그간 그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를 떠나 자신은 클로드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작고 아무것도 아닌 행위 하나로 클로드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카리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클로드.”

두 번째로 부르는 클로드의 이름은, 모래처럼 까슬까슬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만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게 좋겠어. 아이들도 그대 못지않게 걱정할 테니까.”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아이들마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연이어 카리나는 자신의 몰골에 생각이 닿았다.

‘이런 꼴로 가면 애들이 걱정하겠지.’

심각한 상처는 없지만 온몸이 상처투성이인데다 흰색 잠옷은 너덜너덜했다.

“이런…… 모습으로 아이들을 볼 수는 없어요. 갈아입고 올게요.”

카리나는 황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상처를 숨길 수 있는 옷을 찾았다.

온몸을 감싸는 옷을 입으면 얼굴에 난 생채기만 보일 것이다.

카리나는 몸 군데군데에 연고를 발라가며 옷을 갈아입었다.

단지 치료제라고만 생각했던 연고는 진통 효과도 있는 모양인지, 상처의 쓰라린 고통을 줄여 주었다.

손등까지 덮는 옷을 입은 카리나를 본 클로드가 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본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엄마!”

카리나는 자신의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방문을 열고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웃으며 맞이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어디에도 다친 구석이 없어 보였다.

롤랜드와 멜리사가 늘 그렇듯 한꺼번에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상처들이 쓰라렸으나, 카리나는 애써 신음을 삼켰다.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걱정…….”

롤랜드가 말을 뚝 멈추더니, 공포에 질린 눈으로 카리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그 사람이…….”

“죽었어.”

카리나는 굳이 렝케의 죽음을 순화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이들은 여느 어린아이들과 달리, 죽음에 대해 잘 알았다.

그간 렝케가 롤랜드에게 마물들을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

롤랜드와 멜리사의 눈이 커지더니 눈에 띄게 안도했다.

“그럼, 이제…… 우리 잡으러 안 오는 거예요?”

“그래.”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절대, 렝케 경은 너희들을 해칠 수 없어.”

“……!”

롤랜드와 멜리사는 카리나의 품속을 더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카리나는 아픈 티를 내지 않으며 아이들을 떼어놓았다.

그녀는 짐짓 엄한 체를 하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호문쿨루스 쓴 거 봤어.”

“그으…….”

“잘못했어요.”

대답을 망설이던 멜리사와는 달리, 롤랜드는 곧바로 사과했다.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렝케보다 훨씬 강력한, 렝케의 공범이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예전처럼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이들은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마법을 배워야만 했다.

“아니야. 잘했어.”

아이들은 깜짝 놀라 카리나를 올려다보았다.

“만약 호문쿨루스를 쓰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크게 다쳤을지도 몰라. 정말 잘했어.”

“하지만, 엄마를 속였잖아요.”

멜리사는 호문쿨루스를 몰래 가져간 것에 대한 죄책감이 제법 있는 듯했다.

“상관없어.”

카리나는 힘주어 말했다.

“너희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해. 알겠지?”

입맛이 썼다.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카리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주의를 준 다음에, 그래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치는 카리나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때에나 부릴 수 있었다.

지금으로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롤랜드, 멜리사.”

그때, 클로드가 아이들을 부르더니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희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려주었으면 한다만.”

“그, 저어…….”

“…….”

멜리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클로드는 카리나의 눈치를 살폈다.

“알려드려. 아무것도 숨기지 말고.”

체스는 카리나에게 때때로 아이들의 성과를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어렴풋이 아이들이 체스에게도 자신들의 힘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여태까지면 몰라도,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카리나의 말대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든 걸 알려주었다.

롤랜드는 조금 망설이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그, 마정석에 한 번에 마법을 다섯 개까지 걸어 둘 수 있어요. 어떤 건 겹쳐서 걸어 두니까 다른 마법이 되고요. 그래서…….”

롤랜드와 멜리사의 설명은 끝이 없었다.

아이들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카리나는 깨달았다.

이 아이들은, 정말로 천재라는 걸.

굳이 렝케의 가혹한 교육 없이도 충분히 대마법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걸…….

롤랜드의 성과도 놀라웠지만 그녀를 가장 놀래킨 건 멜리사였다.

“……그때, 그 사람을 보러 간 것도 마력을 느껴서예요.”

“뭐?”

카리나는 깜짝 놀란 나머지 멜리사에게 되물었다.

“정말이니?”

“네.”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그렇게 멀리 있는 건 안 느껴지는 데, 갑자기 느껴져서…… 그래서…….”

클로드가 다급하게 물었다.

“마력이 어떤 식으로 느껴지지?”

“색으로 느껴져요.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랑, 마법을 쓰고 있다면 뭘 하려는지 정도가 다예요.”

“다라니.”

클로드가 할말을 잃은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롤랜드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아이는 마정석에 방어 마법만 걸려있다고 한 것에 대한 변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으, 마정석에 공격 마법까지 걸어 뒀다고 하면 엄마가 안 쓸까 봐 그랬어요……. 근데, 방어만 하면 그, 그 사람한텐 당할 것 같아서…….”

“괜찮아, 롤랜드, 괜찮아.”

카리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아이들이 자신을 여러 번 속여 왔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 아니었다.

그동안 카리나는 항상 자신이 아이들을 지킨다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겨우 일고여덟 살 먹은 아이들 또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클로드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역시 엄마를 닮았구나, 둘 다.”

롤랜드도, 멜리사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저희가 엄마를 닮았어요?”

“저희가 닮았다고요?”

“그럼.”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어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유능한 사람이거든. 그 재능이 너희들에게도 보이는구나.”

“……!”

롤랜드는 물론, 멜리사까지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기뻐했다.

카리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 대한 클로드의 칭찬은 제법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그걸로 아이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 * *

단 하루 이틀 만에 카리나와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졌다.

카리나는 아이들을 위한 마정석을 부지런히 만들어냈다.

체스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클로드는…….

이제 카리나는 클로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와 아이들을 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따라서 카리나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에보슨이라는 사람에게서 편지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중략… 유산 정리가 필요합니다. 영지와 저택이 남아 있으니, 남작 영애께서 직접 오셔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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