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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96)화 (96/145)

<96화>

“멈, 멈춰! 멈추거라!”

카리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정석에 걸린 마법은 그 마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은 최대한 렝케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수 분이 흐른 끝에 마정석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었다.

렝케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리나는 그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효력을 다 한 마정석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새로운 마정석을 손에 쥐었다.

“아아아악!”

렝케의 비명이 다시금 방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번엔 그는 비명만 지르지는 않았다.

그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마력을 모아 카리나를 향해 날렸다.

방어 마법은 공격을 대부분 흡수했지만, 아직 롤랜드의 실력이 미숙했는지 틈이 상당수 있었다.

카리나는 왼팔을 찌르는 듯한 격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오른쪽 어깨 부근에 상처가 여러 개 나, 붉은 피가 옷을 적셨다.

‘괜찮아.’

겨우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베리티는 실력이 좋으니, 이 정도 상처는 얼마든지 고쳐 줄 것이다.

카리나는 이를 악물며 렝케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냈다.

피하자니 마정석의 위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카리나는 두 번째 마정석도 떨어트리고 새로운 마정석을 꺼냈다.

렝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쾅!

카리나는 책상에 굉음과 함께 부딪쳤다. 어깨와 팔 전체, 그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 왔다.

뿐만 아니라 상반신 전체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도자기구나.’

체스가 선물로 준 도자기 인형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는지, 산산조각이 나 그 조각들이 카리나의 전신을 뒤덮은 것이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런 사소한 사실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마정석이 꾸러미 채로 떨어진 탓에, 줍기 위해선 바닥을 반쯤 기어야 했다.

그때, 렝케가 마정석 꾸러미를 발로 차 구석으로 보내 버렸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

렝케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발악해 보았자 소용없다는 걸 모르겠느냐?”

카리나는 렝케를 노려보았다. 그런 말을 하는 렝케도, 조금 전까지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굴지 않았던가.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카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패배자가 된 상황에선 무슨 말을 하든 렝케를 즐겁게 해줄 뿐일 테니까.

하지만 카리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해.’

카리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애들은 도망쳤어. 절대 당신에게 붙잡히지 않을 거야.”

“그래, 도망칠 시간이군.”

렝케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카리나는 직감했다. 렝케는 그녀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날려 마정석 꾸러미를 주워 들고, 잡히는 대로 문질렀다.

“……!”

렝케가 일그러진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여러 개의 마정석이 연쇄적으로 작용하자 막아내는 데 기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롤랜드가 준 마정석은 이제 겨우 하나 남았을 뿐이었다.

렝케의 반격 때문에 카리나 역시 전신이 만신창이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마정석의 효력이 아직 다하지 않은 시간을 틈타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간을 계속 끌어야 해.’

롤랜드와 멜리사가 도망쳐서, 사람들을 불러올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이대로 렝케가 도망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는 언젠가 또다시 아이들을 노릴 것이다.

수 분 후, 마지막 마정석마저 그 효력을 다했다.

피투성이가 된 카리나는 바닥에 엎드려 숨을 헐떡이는 렝케를 향해 절뚝이며 다가갔다.

어떻게든 발목을 잡아 둬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브리튼 양!”

염려와 걱정, 그리고 충격이 뒤섞인 목소리가 카리나의 귓가를 스쳤다.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브리튼 양…….”

클로드가 멍하니 카리나의 이름을 불렀다.

카리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도감이 서서히 차올랐다.

클로드가 왔다.

이제 렝케는 다시금 갇힐 것이며, 아이들은 안전할 것이다.

클로드가 카리나를 부여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차마 스치지도 못하고 도로 거두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을 따라온 기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다들 뭐하는 건가. 당장 의사를 불러!”

가장 어려 보이는 기사 한 명이 후다닥 뛰어나갔다.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정말이었다.

렝케의 공격들은 롤랜드의 방어 마법 덕분에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피를 좀 흘리긴 했으나 목숨에 지장이 가는 문제는 아니었다.

“…….”

클로드는 잠시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카리나는 그 속에서, 자신에 대한 걱정과 렝케에 대한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카리나는 그를 안심시켜주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아무런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클로드는 품에서 마정석을 한 움큼 꺼내 렝케를 향해 집어 던졌다.

단 수 초 만에 렝케를 구속하는 결계가 완성되었다.

“으허억……!”

렝케가 신음을 내뱉었지만 클로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카리나에게로 다가갔다.

“앉아 봐.”

그의 손길에 이끌려, 카리나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

카리나가 이를 악물었다.

렝케가 구속되어 긴장이 풀리니, 있는 줄도 몰랐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클로드는 그녀의 상처를 꼼꼼히 살피며 출혈이 심한 부위마다 지혈해주었다.

카리나는 그제야 조금 전부터 경미한 현기증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각한 상처는 없었지만, 상처가 많다 보니 출혈이 컸던 것이다.

클로드는 그녀의 상처를 모두 살핀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서 렝케에게 다가갔다.

“저자가 지하 감옥에서 혼자 탈출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결계들도 전부 파괴되어 있었고.”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저택을 지키는 결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파괴한 것이다.

“네 실력으론 불가능한 일이지. 대체 공범이 누구지? 밝혀라!”

렝케가 한쪽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어떻게 보면 클로드를 비웃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렝케 자신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고?”

클로드가 검을 렝케의 목에 들이댔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말해도 모를 겁니다.”

클로드는 칼날을 렝케의 목에 조금 더 밀어 넣었다.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말해. 아는 건 모두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렝케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언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한 음절을 만들어내려던 때.

렝케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카리나는 본능적으로 귀를 막았다.

그녀는 이미 렝케의 비명은 질릴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비명이라기보단 절규였다.

클로드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렝케를 향해 다가갔다.

렝케는 아무런 이유 없이 별안간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맙소사.”

클로드는 탄식을 내뱉었다.

카리나는 몸을 떨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무, 무슨…….”

“…….”

클로드는 입을 꾹 다물고는, 렝케를 지켜보기만 했다.

렝케의 사지는 모두 기이하게 뒤틀려, 제각기 의지를 가진 것처럼 퍼덕였다.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험악하다기보단 망자의 마지막 발악처럼 보였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몇 분이 지난 후, 렝케의 몸이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클로드는 그의 맥을 짚어 보았다.

“죽었군.”

카리나는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생물학적 아비가 눈앞에서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것 자체는 카리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안심이 되기까지 했다.

앞으로 그는 아이들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카리나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면서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었다.

렝케의 전신에서 보라색 반점이 올라와, 흡사 표범의 무늬처럼 온몸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클로드는 그녀가 단순히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귓가를 스치지도 못하고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카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럴 순 없었다.

이래선 안 되었다.

‘이 마법이 쓰이려면 20년은 흘러야 하는데……!’

전생에 읽은 책은 제목조차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당연히 디테일에 불과한 마법 하나하나가 기억이 날 리가 없다.

하지만 조금 전 렝케를 죽인 마법은, 카리나가 선명히 기억하는 몇 안 되는 마법 중 하나였다.

롤랜드가 삼십 대가 되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마법이었으니까.

롤랜드의 숙적, 버리올이 직접 개발하여 즐겨 쓰는 마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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