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렝케는 잠시 눈을 의심하면서 상대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하 감옥의 문을 열고 내려온 사람은…….
그간 그가 쓰레기 같은 재능을 가졌다고 괄시한 소년, 올리버였다.
‘저놈이 무슨 수로……?’
만약 렝케에게 생각할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상황이 무척 기이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렝케는 며칠 동안 지하 감옥에 시달린 상태였다.
반절 이성을 잃은 그는 올리버가 어떻게든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구하러 왔지? 구하러 왔구나, 이 착한 것!”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올리버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렝케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끼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 올리버에게도 달려들어야 할 마수들이, 그가 자신들의 천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겁에 질려 달아난 것이다.
‘뭐…… 뭐……?’
올리버는 미처 달아나지 못한 마수 몇 마리도 귀찮다는 듯 손짓해 벽면으로 날려 버렸다.
마수들은 벽면에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부딪쳐 산산이 조각났다.
마법이었다.
렝케의 눈이 경악에 질렸다.
그럴 리가 없었다.
올리버는 롤랜드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대용품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런 힘을 지니고 있다니.
“누,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이건 올리버일 리가 없었다.
‘환술을 쓴 거겠지.’
빛을 왜곡하여 겉모습을 바꾸는 마법은 어렵기는 하나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누구인지, 대체 왜 자신을 찾아 왔는지, 왜 하필 올리버의 껍데기를 흉내 내었는지는 몰라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좀 더 정확히는…….
‘위험해.’
입안이 바싹 말랐다.
마법사의 마력을 파괴하는 감옥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자가 있다니.
그가 그토록 바라던 대마법사 수준이 아닌가.
하지만 렝케는 마냥 감탄할 수가 없었다.
눈앞의 마법사에선 분명 자신에 대한 살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거 섭섭한데요.”
올리버의 말투였다.
“그새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다니, 아예 미쳐 버리신 건가요?”
“……올리버냐?”
“대체 누구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올리버가 씩 웃었다.
“너, 어떻게……. 여긴…….”
렝케는 말을 잇지 못하며 더듬거렸다. 진실을 확인하기가 겁이 났다
올리버는 대답 대신 웃었다.
열 살 소년의 톤 높은 웃음소리가 지하 감옥을 가득 메웠다.
“그건 경이 알 필요가 없는 사실 같은데요. 경이 알아야 하는 사실은 …….”
렝케는 소년의 살기에 눌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귓가에, 올리버가 속삭였다.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경을 죽일 수 있다는 것, 단 하나뿐.”
“……!”
렝케의 이가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살, 살려…….”
“살고 싶다면 경 같은 버러지의 쓸모를 증명해 보이세요.”
올리버의 말투는 항상 순종적이었던 시절의 그와 별다를 게 없었다.
바로 그 점이 렝케를 더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올리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게 아니라, 올리버가 그간 자신을 속여 왔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했기 때문이었다.
‘도망쳐야 해.’
참 우스운 일이었다.
항상 도망치는 아이들을 붙잡는 입장이었던 자신이, 도리어 도망을 생각하게 되다니.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는 렝케를 존대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도망치려는 개에게 낙인을 찍어 주어야겠네.”
렝케는 직감했다.
올리버가 자신에게 표식을 박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을 완전히 차단하고, 흡수하는 지하 감옥에 있는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
렝케는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이, 이건…….”
가슴이 온통 짓눌린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숨도 쉴 수 없었다.
손발에 수십 키로는 될 듯한 쇠사슬이 묶여,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겨우 표식 정도라고 생각했어?”
올리버는 대놓고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겨우 그 까짓 걸로 사람을 구속할 수 있을 리가. 나는 확실한 걸 좋아하거든. 당신과는 달리.”
그는 렝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은 순간, 모든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기억해. 당신이 언제 어디에 있든,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조금 전과 같은 고통을 맛보게 될 테니까.”
“뭐, 뭐든 하겠습니다!”
렝케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뭐든 간에, 뭐든…….”
“그래?”
올리버가 웃었다.
“그럼, 그 남매를 데려와.”
“……!”
렝케의 눈이 놀라움에 크게 떠졌다.
“하지만, 이곳 공작저에서 보호받고 있을 텐데…….”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뒤지고 다니다간 다시 저기로 끌려가기만 할 거고요.”
올리버는 짜증스레 그를 노려보더니,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쥐여 주었다.
보아 하니 공작저의 지도였다.
올리버는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별채였다.
“2층이다. 방 위치는 여기고. 둘 다 같은 방에 자더군. 여자애도 반드시 데려오도록.”
“예, 예. 당연합니다.”
렝케는 연신 굽신거렸다.
올리버가 롤랜드를 필요로 하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분명 그 아이의 재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롤랜드를 제어하려면 당연히 멜리사가 필요할 것이고.
잠시 후.
그들은 지하 감옥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렝케는 달달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깊은 공포와 절망, 자괴감이 그를 지배했다.
만약, 렝케 자신이 대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는 자신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하며 대마법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렝케의 재능은 보잘것없었다.
피를 깎는 노력 끝에 나름대로 명망 있는 마법사 수준의 경지에 도달했기는 하나 그가 원하는 수준까지는 한참 부족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능의 차이.
그래서 그는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아 헤매었다.
대마법사가 될 수 없다면, 대마법사를 길러낸 스승이 되기 위하여.
하지만 지금 바로 여기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압도적인 재능과 힘이 있었다.
감히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여기까지. 나는 외곽에서 기다리겠다. 톰보른 숲으로 오도록.”
식은땀이 비질비질 흘렀다.
톰보른 숲은 토르스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다.
“하지만 애를 둘이나 데리고 어떻게 거기까지…….”
올리버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이제 보니 마법사도 아닌 모양이군. 마차든 말이든 탈취하면 될 것 아닌가.”
“그, 그러겠습니다!”
여태까지 렝케는 단 한 번도 마법으로 강도나 도적질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의 오랜 자존심마저 땅에 떨어트려야 할 때였다.
올리버는 빠른 걸음으로 공작저를 빠져나가 버렸다.
어느 열 살짜리 소년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뒷모습이었다.
잠시 후.
렝케는 지도를 움켜쥐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올리버가 원하는 건 단지 롤랜드뿐일지도 모른다.
저 지하감옥에 갇혀, 마력을 완전히 빼앗기는 것보다는 적당히 비위를 맞춰 살아남는 게 나았다.
‘여긴가.’
그는 마법을 써 기척을 죽이고 문을 소리없이 열었다.
마력은 절반 이상이 빼앗긴 상황이었지만 본디도 렝케는 막대한 마력을 운용하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는 올리버가 알려준 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
눈이 크게 떠졌다.
롤랜드는 화장실이라도 가려는 모양이었는지, 막 방에서 나와 어디론가 가려 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는 롤랜드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몸을 덮쳐, 입을 틀어막았다.
“입 뻥긋이라도 했다간 죽여 버릴 테다. 너도 네 여동생도.”
그가 멜리사도 함께 납치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커다란 창문이 활짝 열려 커튼이 펄럭이고 있었다.
어디에도 멜리사는 보이지 않았다.
렝케가 경악하며 창문으로 달려가는 그때.
그가 꽉 붙들고 있던 롤랜드의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뭐, 뭐야!”
렝케는 당황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게 맥이 뛰던 소년의 몸이…….
순식간에 진흙 덩어리로 바뀌어 버렸으니까.
렝케는 그것의 정체를 즉각 알아차렸다.
호문쿨루스였다.
그것도 그 자신이 직접 만든.
그리고 카리나에게 도둑맞았던!